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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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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


STEW 경영소모임 지정도서.

 

[ 한줄평 ]


전혀 다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면, HBR을 읽자. 그리고 실천하자.

 

[ 서평 ]


이번 호는 유독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인상 깊은 문구를 무려 3천자나 적었다. 덕분에 1시간 반 정도 타이핑만 했다.

시간이 부족한 이들은 인상 깊은 문구만 읽어도 꽤 많은 내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HBR을 읽으며 페이스북 포스팅을 한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구를 뽑는 것도 좋은 연습이다.

책을 타인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facebook url=”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524687384269375&set=a.760825053988959&type=3&theater”]

▲페이스북에 HBR을 공유한다.

 

<혁신에 날개를 다는 4가지 도구> 아티클에서는 첫 번째로 SF 소설을 꼽는다.

 

노트필기 소프트웨어 분야 대표주자인 에버노트의 전 CEO 필 리빈은, 노트필기 앱이라는 개념을 소설 듄에 등장하는 증강지능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SF는 상상하면 이뤄질 수 있다는 일종의 낙관론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마법처럼 뚝딱 실현되는 것은 없습니다. SF는 영감을 줄 뿐입니다. 실현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죠.”

 

에버노트가 SF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줄이야. 나도 무기력해질 때 종종 ‘판타지소설’을 읽곤 하는데, 비슷한 효과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HBR을 읽지 않는 SNS 친구들에게는 HBR이 SF소설과 같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긍정적인 면이 많아 이번 호부터는 인스타그램에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직장을 그만두는 법


거의 1/3가량 형광펜을 그은 아티클이다.

지난 2월 초, 설 연휴에 휴가를 3일 더해 꽤 길게 쉬었다. 1년만에 1주일 이상 쉬었더니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그리고 아무 것도 하기 싫기도 했는데…

자꾸 일 생각이 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에너지는 없으면서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조직이 우리의 마음을 얻는 이유를 수십 년간 연구해 왔다. 그들은 그 이유를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동일시 현상이 일어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된다. 조직의 가치관을 내 안에 통합하게 된다. 내가 일하는 조직이 개방적이고 철저하고 진취적이면 나도 그렇게 된다. 조직이 빛나면 나도 덩달아 빛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직이 힘들면 나도 따라 힘들어진다. 어떤 자리에서 일을 한다는 건 가장 건강하고 합리적인 종류의 중독현상처럼 보인다. 연애와 마찬가지다.

 

학생때는 이러지 않았다.

직장인에게 일이 있다면, 학생에겐 공부가 있다. 하지만 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디테일에서는 일을 정말 잘 하는 사람과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봐서는 결코 중위권에 머무르진 않을 것이다.

 

동일시 현상이 늘 좋은 것만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얻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은 없다.

 

내가 지금 잘못된 연애를 하고 있을 때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나는 많은 걸 주는데 상대에게서 필요한 걸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가 지속적인 사랑으로 전환돼 갈 때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나의 열정이 헌신으로 바뀌어 가고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정확히 깨닫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줄어든다. 내가 아무리 이 일자리를 사랑하더라도 그 일자리가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과 지금까지 그 일을 해온 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일과 더불어 그 일로 접촉하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사람들이야말로 헌신할 가치가 있는 존재다.

 

필자는 떠나라고 한다.

 

첫 직장을 4년 다니고 떠날 때 기분을 기억한다.

속 시원한 상쾌함.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스스로가 멋져 보인다는 만족감.

동료들이 더 잡아주지 않아 드는 섭섭함. 완벽한 계획이 없음에 불안감. 그동안 쌓아둔 것을 초기화 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

 

일에서 마지막 한 가지 교훈을 얻어라. 바로 상실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날이 또 찾아올 테니 말이다.

그만두는 법도 배워야 한다. 사랑을 잘하기도 어렵지만, 잘 떠나기는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상실을 음미하라?

그게 그렇게 맛있는건가?

 

만나면 헤어진다지만,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지만

그 아픔은 결코 무뎌지지 않더라,

아니, 무뎌지고 싶지 않더라.

 

일을 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현재의 자리나 조직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사랑을 잘하는 데 필요한 능력 하나는 어떤 자리도, 어떤 조직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홀로서기 능력이다. 일단 홀로 설 수 있으면 사랑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기쁨이 된다.

 

함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홀로서기라니.

조직에 속했다가, 조직을 만들었다가, 홀로 서다가, 다시 조직에 들어왔다.

조직이 주는 여러 가치, 조직이기에 가질 수 없는 가치.

 

어쩌면 그 어떠한 가치도 없이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꿋꿋함이 지금 세대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좋은 것에 좋다, 나쁜 것에 나쁘다 말하는,

사물을 그대로 보는 ‘도인’이 돼야 할까?

 

사랑하기에 떠나야 하는 걸까?

 

서베이몽키 CEO, 호기심 가득한 조직문화 만들기


서베이몽키.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들어봤다.

아티클을 읽고 보니, 이 회사 참 매력적이다.

 

자주 생각해보는 편이다.

내가 리더라면, 내가 저 위치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헌데, 서베이몽키 이야기에서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비슷한 고민들을 했고, 실천했다.

 

나는 계속해서 하루의 일부를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우리의 전략적 투명성을 유지하는 데 할애했다. 우리 직원들은 유능하고 많은 선택지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2016년 초에 서베이몽키에서 일하는 것이 그들의 경력과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아울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기업문화를 정의하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인지, 서로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규정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속한 회사 팀도,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STEW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자주 고민한다. 하지만, 이 고민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결론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수 년 동안 ‘사색노트’를 쓰고 있지만,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늘 정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질문이 환영받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부터 묻고 답하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나는 보고 체계를 한 단계를 건너 뛰어, 나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직원들 바로 아래 직원들과 정기적인 회의를 열어 이를 실행했다. 이때의 대화는 격의 없이 열려 있으며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은 방향을 찾았다고 해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서베이몽키는 계속해서 고민했고, 실천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는 과정에서 가끔 예상치 못한 답을 얻기도 한다. 이건 사실 호기심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근에도 사례를 목격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직원 복지에 지출하는데,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 돈을 쓰기 위해 어떤 복지제도가 가장 좋은지 묻는 설문을 실시했다. 이러한 설문을 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주제가 출연했다. 대부분의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외주업체와 구매업체를 가지고 있다. 사무실을 청소하거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서메이몽키의 직원은 아니다. 몇몇 직원들은 이러한 팀의 일원들이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는 이들을 고용한 기업들과 협력해서 그들의 복지 혜택이 우리의 복지 수준과 더 비슷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우리 직원들의 호기심과 우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 사안에 관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자는 ‘말’ 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경영진을 보며

직원들은 굉장한 충성심이 생겼을 것이다. 함께 조직을 만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경영자는 직원들의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호기심을 개발하는 사람에겐 보상을 해줘야 한다.

 

조직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숨 쉬는, 살아있는 조직은 꼭 함께 만들어야 한다.

 

살아있는 조직이야 말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실천하기


최근 작은 소호사무실을 계약했다.

여러 상황이 겹치며, 아이디어를 실천하기 위한 또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서 도보 10분거리, 새로운 공간

 

정말 작은 공간이다.

그동안 미뤄둔 영어공부, 쌓아둔 책, 커뮤니티 기획 등. 그동안 다양한 핑계로 도망다닌 일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왜 갑자기 새로운 일을 또 벌이느냐며 물었다.

그냥 원래 생각하던 거라며 둘러댔지만, 서평을 쓰면서 보니 HBR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며 마음이 굳어진 듯 싶다.

 

호기심을 갖기 위해선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서만 쌓을 수 있는 경험치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성장한 방향도 그랬다.

현재 위치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은 이제 식상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 인상 깊은 문구 ]


  • 경영학계에서 가장 창의적 연구를 하고 있는 젊은 학자 중 한 명인 네이선 퍼 인시아드 교수가 전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틀을 완전히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전혀 새로운 접근을 해보라는 조언입니다. 예를 들어 공상과학 소설을 써보거나, 전자제품 매장에서 발견한 사업 원리를 중고차 매매에 적용하는 식의 연상적 사고를 하거나, 우리 사고방식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뒤흔들어 보라는 식입니다. 10배 싱킹, 즉 10%의 개선이 아닌 10배의 개선을 원한다면 이런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현지 기업의 원조를 많이 받은 국가가 원거리 기업의 원조를 받은 국가보다 도움을 훨씬 빨리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연구진은 기업들이 기부의 대가로 받은 혜택을 조사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기부금을 낸 기업이 다음 기부자들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사한 사례의 89%에서 최초 기부금과 나중에 기부한 기업들의 기부금이 각 기업의 시장가치, 시장점유율, 재무성과와 상관없이 거의 일치했다. 2010년 칠레 지진을 예로 들면, 지진이 일어나고 몇 시간 뒤 다국적 광산기업 앵글로 아메리칸이 10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했고, 며칠 안에 주요 경쟁업체 세 곳이 같은 금액을 기부했다.
  • 기부가 기업에 끼치는 실질적 영향력은 분명하다. 평판이 좋은 기업은 재해가 발생한 뒤 앞장서 행동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Q. 기업들이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도움’을 줄 때가 있나요?
    A. 고전적인 문제입니다.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담요를 기증하고 싶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7월의 열대지방에 말이죠. 기업에서 뭔가 보내고 시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선 직원과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 시리아 난민들에게는 스캐너와 카드를 사용해 식량을 나눠주고 추적합니다. 그전에는 펜과 종이로 20만 명이 모인 난민 캠프에 식량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추적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모든 사람이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게 됐고, 배급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과 부패, 부당한 비축, 재판매 등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 연구진은 리더들이 상황에 따라 경쟁심을 고취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담한 행동이 요구될 때, 관리자는 실력이 비슷한 직원들을 서로 겨루게 하는 등 직원끼리 경쟁을 부추기도록 업무를 설계할 수 있다. 신입사원들에게 조직의 유서 깊은 경쟁의식을 심어주거나, 주기적으로 경쟁사들과의 비교를 강조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반대로 실수 없는 결과가 더 중요한 경우, 리더는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건을 최소화해야 한다.
  • 동료가 자기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직원들의 노력과 실적은 하락하고 이직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상사가 자기 생각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직원들은 비슷한 자리에 올라 그만큼 연봉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 만약 어떤 일을 하라고 아티스트를 고용했다면, 그 일을 하게 내버려둬야 한다. 스탠 리(Stan Lee)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창조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고 자기 방식이 옳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 루시안 벱척, 앨마 코언, 앨런 페렐이 2009년 개발한 지수로 측정한 결과, 경영진의 지배력이 강한 기업(이를 테면 경영진의 리더십에 따라 주주 권력을 제한하는 거버넌스 프로토콜을 가진 기업)일수록 내부고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 내부고발 시스템 활용에 적극적인 기업은 소송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전에 내부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
  • 소송 방지의 중요성은 단순히 직접적인 소송비용과 합의금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합의금이 수억 달러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소송이 브랜드 평판과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모든 현금 지출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내부고발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기업은 법적인 문제에 노출되는 일이 적을 뿐만 아니라, 대개 수익성이 좋고 경영 기간도 길었다.
  • 내부고발 시스템의 활용도가 높은 것은 심각한 문제의 조짐이 아니라, 직원과 경영진들의 개방적이고 건강한 소통문화의 상징이다.
  • 당신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환송회 같은 것도 없이 회사에서 내쳐진다. 새로운 인재를 받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혹은 그들 스스로의 일에 대한 애정이 서서히 식으면서 안일함에 빠져 영혼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 현실을 인정하자. 한 세기 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좋은 삶을 위해서는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일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 이제 우리는 직업에서 자존감, 안정감, 돈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과 성취감, 놀라움도 얻길 바란다. 한마디로 로맨스를 바라는 것이다.
  • 심리학자들은 조직이 우리의 마음을 얻는 이유를 수십 년간 연구해 왔다. 그들은 그 이유를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 동일시 현상이 일어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된다. 조직의 가치관을 내 안에 통합하게 된다. 내가 일하는 조직이 개방적이고 철저하고 진취적이면 나도 그렇게 된다. 조직이 빛나면 나도 덩달아 빛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직이 힘들면 나도 따라 힘들어진다. 어떤 자리에서 일을 한다는 건 가장 건강하고 합리적인 종류의 중독현상처럼 보인다. 연애와 마찬가지다.
  • 내가 지금 잘못된 연애를 하고 있을 때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나는 많은 걸 주는데 상대에게서 필요한 걸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 연애가 지속적인 사랑으로 전환돼 갈 때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나의 열정이 헌신으로 바뀌어 가고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정확히 깨닫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줄어든다. 내가 아무리 이 일자리를 사랑하더라도 그 일자리가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과 지금까지 그 일을 해온 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일과 더불어 그 일로 접촉하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사람들이야말로 헌신할 가치가 있는 존재다.
  •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 한 번은 무엇을 놓아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한 번은 무엇을 나와 함께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 송별회가 있다면 그 자리를 이야기로 가득 채워라. 그 자리에선 축하와 아쉬움을 나란히 둬라.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면 아쉬움이 뒤따르기도 한다는 걸 알려라.
  • 일에서 마지막 한 가지 교훈을 얻어라. 바로 상실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야 할 날이 또 찾아올 테니 말이다.
  • 그만두는 법도 배워야 한다. 사랑을 잘하기도 어렵지만, 잘 떠나기는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 가능하면 뒤에 남겨두는 것 없이 다 챙겨가라.
  • 마지막으로, 회사를 한 번 더 바라봐라. 비록 회사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해도 거기서 익힌 가치와 습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동일시’의 묘미다.
  • 일을 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현재의 자리나 조직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사랑을 잘하는 데 필요한 능력 하나는 어떤 자리도, 어떤 조직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홀로서기 능력이다. 일단 홀로 설 수 있으면 사랑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기쁨이 된다.
  • 페이스북,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알리바바 등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규모가 가장 큰 기업 상당수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포드자동차와 뉴욕타임스 등 일부 오래된 가족 지배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 최근들어 차등의결권을 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5분의 1이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워런 버핏은 차등의결권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버핏 자신이 설립한 지주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는 계속해서 차등의결권을 유지하고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가진 대부분 기업은 하위 등급인 A급 주식보다 10배 더 많은 의결권을 가지는 B급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알파벳, 언더아머, 블루에이프런, 스냅챗 등 몇몇 기업들은 이 제도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켰다. 의결권이 아예 없는 C등급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펴는 기업이나 가족이 지배하는 차등의결권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보다 장기 주주수익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투자리서치 기관인 MSCI가 2007년 1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차등의결권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 차등의결권 주식을 전면 금지한다면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예컨대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테크기업의 수가 감소하는 주된 원인은 주주 행동주의의 확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등의결권을 금지하면, 더 많은 테크기업이 비상장 기업으로 남도록 부추기거나, 이미 주식시장에 상장한 테크기업도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도록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점점 빨라지는 창조적 파괴의 속도와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기업들과의 경쟁을 고려할 때, 기성 기업들 역시 그들이 현재 갖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영원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아마존, 알파벳, IBM, 애플 등 많은 대기업도 스스로를 재창조해야만 했다. 이때, 차등의결권 구조가 기업의 변신을 촉진할 수 있다.
  • 나는 계속해서 하루의 일부를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우리의 전략적 투명성을 유지하는 데 할애했다. 우리 직원들은 유능하고 많은 선택지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2016년 초에 서베이몽키에서 일하는 것이 그들의 경력과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아울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기업문화를 정의하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인지, 서로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규정하는 작업이었다.
  • 시장에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하고 회사를 재정립하면서 우리는 고객에게는 가장 값진 우리의 제품이 무엇인지, 직원들에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매일 즐겁게 출근하게끔 만드는지를 물었다.
  • 아울러 우리는 조직 전반에 걸쳐 호기심을 장려하고 보상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포럼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원 설문조사에서 ‘이번 주 최고의 질문’을 선정해 칭찬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 질문이 환영받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부터 묻고 답하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나는 보고 체계를 한 단계를 건너 뛰어, 나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직원들 바로 아래 직원들과 정기적인 회의를 열어 이를 실행했다. 이때의 대화는 격의 없이 열려 있으며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도록 했다.
  •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면 더 나은 아이디어와 더 큰 호기심이 나온다고 믿는다.
  •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는 과정에서 가끔 예상치 못한 답을 얻기도 한다. 이건 사실 호기심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근에도 사례를 목격했다. 우리 회사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직원 복지에 지출하는데,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 돈을 쓰기 위해 어떤 복지제도가 가장 좋은지 묻는 설문을 실시했다. 이러한 설문을 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주제가 출연했다. 대부분의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외주업체와 구매업체를 가지고 있다. 사무실을 청소하거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서메이몽키의 직원은 아니다. 몇몇 직원들은 이러한 팀의 일원들이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는 이들을 고용한 기업들과 협력해서 그들의 복지 혜택이 우리의 복지 수준과 더 비슷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우리 직원들의 호기심과 우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 사안에 관여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상장하게 되면 로드쇼에서 발표할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2주일 동안 약 75번에 걸쳐 발표를 한다. 이 정도로 반복하다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꽤 잘하게 되지만 진정한 마법은 발표가 끝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질문할 때 일어난다. 나에게 로드쇼는 잠재적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에 대해 가진 희망과 우려에 대해 배우는 기회였다.
  • 호기심을 갖기 위해선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 경영자는 직원들의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호기심을 개발하는 사람에겐 보상을 해줘야 한다.
  • 낭비 제거는 경영과학의 성배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기업은 탄력성에도 그만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스미스, 리카도, 테일러. 데밍은 모두 경영을 시간, 원자재, 자본의 낭비를 제거하는 객관적 기능을 가진 과학으로 바꿔 놓았다.
  • 낭비 제거는 합리적 목표처럼 들린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관리자를 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효율에 집중할 경우, 초효율적 기업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는 놀랄 만큼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이런 현상은 효율성이 향상되고, 고도의 전문성이 창출되고, 가장 효율적인 경쟁자들에게 계속해서 시장지배력을 부여해서, 효율성으로 얻는 보상이 점점 더 불평등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기업, 정부, 학계가 효율성보다 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비교우위의 원천에 더 강력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탄력성이다. 탄력성이 집중할 경우 효율성에서 비롯한 단기 이익은 감소할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공정한 사업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 하지만 경제적 결과에 대한 무작위성의 가정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사실 효율성의 이익은 일부 기업에 지속적인 우위를 만들어주고, 결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분포를 따른다. 지난 세기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차지한 현상을 관찰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딴 파레토 분포다.
  • 가우스 분포에서와 달리 추가 데이터 포인트는 파레토 분포를 심지어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
  • 어떤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누구를 팔로할지 결정할 때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라. 보통 그 사람은 다양한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팔로어가 얼마 없는 사람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반대로 최근 1억1500만 명의 팔로어를 기록한 킴 카다시안처럼, 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유명인사는 곧장 매력적인 후보가 된다. 많은 팔로어라는 효과는 추가 팔로어라는 더 많은 효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파레토 분포를 따른다.
  • 부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돈의 양은 한정적이다. 내가 가진 달러는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다. 내가 1달러를 버는 일은 다른 사람이 1달러를 버는 일과 독립적이 아니다. 게다가 더 많은 달러를 가질수록 돈을 더 많이 벌기가 더 쉬워진다.
  • 사업 성과도 파레토 분포를 향해 이동하는 듯 싶다. 기업 합병은 선진국에서 점점 더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산업에서 한 줌도 안 되는 기업에 수익이 쏠리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산업 75%의 집중도가 심화됐다. 1978년 가장 수익성이 높았던 100대 기업은 모든 상장기업의 수익을 합한 금액의 48%를 벌었다. 하지만 2015년 이 비율은 믿기 어려운 수준인 84%가 됐다.
  • 알려진 대로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는 아몬드 재배에 최적지였고, 오늘날 전 세계 아몬드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이것이 생물학자들이 모노컬처라고 부르는 고전적 비즈니스사례다. 한 공장에서 단일한 제품을 생산하고, 한 기업이 하나의 산업을 지배하고,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모든 시스템을 지배하는 식이다.
  •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이 최대 주주와 공통된 명분을 내세우는 자본시장에서 이런 역학을 볼 수 있다. 일은 이렇게 진행된다. 기관투자가들이 고위급 임원들의 주식 기반 보상을 지지한다. 그러면 임원들은 효율성이란 명목으로 급여를 줄이고, 연구개발 및 자본투자 지출을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다. 즉각적인 비용 절감으로 인해 현금 흐름이 증가하고, 따라서 주가가 치솟는다. 투자자들, 특히 헤지펀드를 적극 거래하는 투자자와 임원들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단기수익을 실현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판매한 주식은 주가가 하락하면 거의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의 수익에는 비용이 따른다. 가장 명백한 패자는 회사의 취약한 재원 때문에 해고당한 직원들이다.
  • 탄력성은 어려움에서 회복하는 능력, 충격을 받은 뒤 용수철처럼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능력이다. 효율성이 제공한 기존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그런 환경 속에서 변화에 적응력을 갖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탄력적인 시스템은 대개 효율성이 파괴하려는 특성, 즉 다양성, 중복성, 느슨함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 당신은 아마 표준적 경쟁자들에게는 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가오는 변화예요. 당신이 오르려는 산이 그대로 있을 거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 보장된 미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낙관적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같은 설계로 오래 버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입니다.
  • 혁신적 문화의 달콤함은 훨씬 엄격하고 덜 유쾌한 행동들로 상쇄돼야 한다. 실패는 봐줘도 무능함을 봐줘선 안 된다. 실험은 과감하게 추진하되 엄격한 규율이 적용돼야 한다. 심리적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협력은 개인의 책임감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수평적 조직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거나 자기 능력에 더 적합한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 내성적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고객 유형별로 자사 상품을 구입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동안 능수능란한 대인관계 기술로 슈퍼스타로 활약해 온 영업사원은 더 이상 조직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 아무리 과감하게 실험하겠다고 해서 삼류 추상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듯이 실험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 규율을 중시하는 조직은 잠재적인 학습가치를 바탕으로 실험 대상을 신중하게 선정하고 비용 대비 많은 정보를 산출하기 위해 철저히 설계한다. 이런 조직은 실험에 착수할 때부터 어떤 경우에 실험을 계속하고, 방향을 수정하고, 아이디어를 폐기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명확한 기준을 세운다.
  • “탐색 초기에는 ‘이게 사실일까?’ ‘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가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설이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학술 논문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에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어떨까?’ 혹은 ‘이게 사실이라면 가치가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합니다.”
  • 심리적 안전이란 개인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문제를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조직환경을 말한다.
  • 부하직원이 상사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평하고, 타인의 아이디어에 반대의견을 내고 논쟁하는 걸 두려워하면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
  • 내가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안심하고 비평할 수 있다면 상대방도 똑같이 내 아이디어를 안심하고 비평할 수 있어야 한다.
  • 상대방을 솔직하게 비평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다.
  • 협력적인 동시에 개인의 책임감을 중시하는 문화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위원회가 결정을 검토하고 다른 팀들이 의견을 제시했더라도 결정적인 사안을 선택하는 건 결국 개인의 책임이다.
  • 직원들은 지위가 높은 사람보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존중한다.
  • 두 조직에서 마르치오네 회장에게 바로 보고하는 직원은 한때 46명이나 됐다고 한다.
  • 마르치오네 회장은 세세한 것까지 신경은 쓰되 결정권은 아래 실무자들에게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 혁신을 무한경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규율을 창조력을 억제하는 불필요한 제약으로 생각한다. 합의의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찾는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감을 중시하는 변화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규칙에 손쉽게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변화를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학생들에게 숫자로 경영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경영자들은 정량화 하기 쉬운 요소에 치중하고 정량화가 어려운 요소는 간과하게 됐다.
  • 25년 전만 해도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놀리우드에서 오늘날 연간 약 1500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100만 명 이상의 나이지리아 국민에게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으며 놀리우드의 가치는 약 33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 측면에서 할리우드와 인도의 발리우드에 견줄 만하다.
  • 2018년 뉴욕과 토론토에서 놀리우드 영화제가 열렸으며, 넷플릭스 역시 놀리우드 영화인 <Lionheart>를 처음으로 구매했다.
  • 시장창출 혁신이란 본질적으로 낮은 임금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프런티어 시장에서 나이, 가장 가까운 친척을 묻는 질문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잘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으며, 복잡한 가족 구조에서 가장 가까운 친족을 누구로 할지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다른 제조사들이 TV광고를 할 때, 갈란즈는 신문을 선택해 자사 제품 사용법과 신모델의 세부사항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 마케팅’을 선보였다.
  • 알콜에듀의 분석을 위해 우리는 2010년에 개발된 무작위 대조 실험을 활용했는데, 그 결과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이 위험한 행동, 부끄러운 말이나 행동, 음주로 인한 자괴감 등 ‘알콜 관련 사고’에 관련될 확률이 11% 감소했다고 나타났다. 환산하면 23만9350건의 음주사고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 사망 원인 중 0.015%가 알콜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라이즈의 추산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알콜 에듀 프로그램을 들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학생 220만 명 중 36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 셀루런트는 아프리카의 모바일결제 플랫폼 기업으로 은행, 유통업체, 통신회사, 정부 등이 고객이다. 셀루런트와 나이지리아 농업부는 협력관계를 맺고 부패로 찌들어 있던 종자와 비료 직읍 시스템을 개혁하기로 했다. 셀루런트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 농민들이 뇌물을 주지 않고도 보조금으로 지급받는 상품을 지역 상점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했다. 그전에는 부정과 관리부실로 인해 농민 보조 프로그램 자금의 89%가 새고 있었다. 셀루런트의 앱은 90%의 보조품이 원래 목적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 알콜에듀의 임팩트를 돈 가치로 환산해 보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미 교통부의 사망 및 부상자 감소 가치평가에 대한 가이드였다. 이 가이드는 통계적 생명 가치(VSL)라는 측정 기준을 사용한다. 이 준거연구에 따르면 사망사건의 비용은 540만 달러다. 따라서 알콜에듀는 36명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최소 1억9400만 달러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 새롭게 추구할 방법을 찾을 때, 우리 대부분은 로컬서치를 강화하는 인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지역적 탐색은 컴퓨터공학 용어로, 전체영역을 탐색하는 대신 단시간에 일부 영역만 탐색해 최적화 방안을 찾는 기법이다. 사용 가능한 데이터만 대표 데이터로 삼는 가용성 편향,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과대 평가하는 친근성 편향, 기존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확증 편향 등이 모두 로컬서치에 해당한다.
  •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최근 진행한 현장 실험에서, 애자일 방법론이 실제로는 확산적 사고를 저해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고객관찰, A/B테스트, 스프린트가 진정 다음 시대의 트랜지스터, 아이폰 또는 스페이스X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 노트필기 소프트웨어 분야 대표주자인 에버노트의 전 CEO 필 리빈은, 노트필기 앱이라는 개념을 소설 듄에 등장하는 증강지능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SF는 상상하면 이뤄질 수 있다는 일종의 낙관론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마법처럼 뚝딱 실현되는 것은 없습니다. SF는 영감을 줄 뿐입니다. 실현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죠.”
  • 데이터과학 전문가 휴고 본-앤더슨은 2018년 HBR 온라인 아티클에서 “방송에 출연한 게스트 대부분이 데이터과학 전문가가 갖춰야 하는 필수능력으로…일하면서 언제라도 배울 수 있는 것, 비즈니스 질문에 잘 대처할 수 있게 커뮤니케이션을 잘해 복잡한 결과물을 비전문가인 관계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 아직도 데이터과학 전문가가 데이터 랭글링도 하고 사업적, 전략적 맥락 안에서 분석도 하고 차트도 만들고 비전문가에게 프레젠테이션까지 해주기 원한다. 터무니없는 요구다. 그런 만능 사원은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
  • 타플로의 리서치과학자 마이클 코렐은 “인문학의 눈을 통하면 사안에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며 “기술 아래 묻혀 있던 사람이 또렷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 디자인을 둘러싼 오해는 광범위하다. 좋은 디자인이란 서체와 색상을 고르거나 미적 감각을 담은 차트를 내보이는 일이 아니다. 그건 스타일링이다. 디자인 재능 보유자는 효과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일을 한다. 주어진 콘텍스트 안에서 디자인 재능 보유자는 어떻게 관객에 맞춰 시각 자료를 만들어 편집하고 아이디어를 정제할지 파악한다.
  • 멀티 호밍이란 사용자나 서비스제공자가(즉 네트워크의 ‘노드’)가 여러 플랫폼이나 허브를 동시에 사용하는 현상이다.
  • 아마존 프라임은 구독회원이 주문한 상품을 이틀 내에 무료로 배송해 사용자의 멀티 호밍을 줄일 수 있었다.
  • 한 연구에 따르면 경영진이 매주 회의에 쓰는 23시간 중 평균 8시간이 비생산적이다. 참석자의 90%가 회의 중 딴생각에 빠지고, 73%가 다른 업무를 한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리더들은 회의 참석자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본인의 회의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1300명이 넘는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9%가 자신이 주관한 회의가 ‘최고로’ 또는 ‘매우’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주관한 회의에 대해서는 56%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전형적으로 ‘나는 문제없어’ 성향을 나타내는 사례다.
  • 가장 적극적인 참가자가 그 회의를 가장 효과적이고 만족스럽게 여긴다. 그렇다면 대체로 누가 가장 많은 발언을 할까? 바로 리더다.
  • 사람들은 종종 회의를 ‘진짜’업무를 못하게 방해하는 일로 여기기 때문에, 리더의 첫 번째 임무는 참석자들 간에 존재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회의실 문 앞에서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시간을 내준 데 감사를 표하기, 간식 제공하기, 음악 트리, 휴대전화와 노트북 전원을 꺼 달라고 요청하기 등이다.
  • 어머니는 책이 가장 좋은 양식이라 하셨다. 독후감을 써서 아버지께 보여드리면 용돈을 주셨다.
  • 하지만 누군가가 남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그가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대개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술을 사용하는 데 대가를 지불하기 꺼린다. 실제로 지불하는 경우에도 후한 보상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실시되면서 “우리가 당신의 쿠키를 사용할 테니 여기를 클릭하세요”라는 사실을 알리는 팝업창이 항상 뜨는 걸 볼 수 있죠. 무의미한 짓이에요. 사용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동의하는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사용자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려면 “쿠키를 이용해 내 정보를 추적해도 괜찮습니다” “추적당하기는 싫지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용하고 싶습니다” “이번 거래에 대한 쿠키는 사용해도 되지만 불필요한 데이터는 폐기하고 절대 공유하지 마십시오” 같은 여러 옵션이 제공돼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런 옵션을 찾아볼 수 없어요. 이걸 과연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읽게 된 동기 ]


STEW 2019년 1월 도서

[ 한줄평 ]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나는 얼마나 보고 사는가를 생각하게 만든 책

 

[ 서평 ]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이다. 제목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눈먼 자 라니..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 어쩌다 티비에서 방영되는 이 영화를 보았는데,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새하얀 방 안에서 눈이 보이지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참혹한지 결말이 어찌되었든 나는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번째, 문장부호가 없다.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문체였다. 문장부호가 없다보니, 대화가 이루어지는 부분에 있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담담하지만 강단있게 흘러갔다.

  두번째, 등장인물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중간에 몇번 이름을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바로 나다 라는 말로 대체하였다. 모두에게 ‘백색 질병’이 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외국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렵게 느껴지는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름’=‘나’ 라는 묻고따지지도 않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는 이 표현은 이름도 껍데기인 뿐 이라는 생각이 깃들여 있던 것인가.

  아 그나저나, 정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눈이 멀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책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모습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여 긍정적으로 측면으로 접근해보았다. 그런데 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다가와버렸다. 아! 만일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배려심 넘친다면 그들만의 체계 하에서 오손도손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경쟁은 사라지고 탈문명화가 시작되며 자급자족의 문화가 형성될 것 같은데.. 하지만 존엄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사가 아닌 서로를 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백색 실명’으로 모두가 눈이 멀어 정말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우리네 세상에서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경우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며 사는가?

 

[ 인상 깊은 문구 ]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0p
  •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오,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더니 덧붙였다, 그냥 눈먼 사람, 여기에는 그런 사람밖에 없으니까. 185p
  • 눈이 빛을 잃으면 우리를 인도하는 염치라는 마음도 잃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233p
  • 누구든 항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자를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소. 왜요, 원을 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물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지옥에서, 우리 스스로 지옥 가운데도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지금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의 굴로 찾아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275p
  • 그녀는 아주 작은 글씨들을 훑어보았다. 위로 아래로 춤을 추는 문장들, 종이 위에 기록된 말들, 실명 상태에서 기록된 말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오,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가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들이었다. 의사의 아내는 작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작가는 두 손을 잡더니 천천히 자기 입술 위로 들어올렸다. 이윽고 작가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414p
  •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삶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지도 몰라요, 삶은 우리에게 지능을 준 뒤에 자신을 우리 손에 맡겨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이 우리가 그 삶으로 이루어놓은 것이에요. 418p
  • 당신은 여전히 볼 수 있잖아. 점점 안 보이고 있어요, 설사 내가 시력을 잃지 않는다 해도, 나를 봐줄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나도 점점 눈이 멀어갈 거에요. 448p

[ 읽게 된 동기 ]


 

STEW 2019년 1월의 도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감이 강해지는 책.

[ 한줄평 ]


공포앞에서 인간과 사회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 서평 ]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던 남자를 시작으로 원인불명의 실명현상이 전염병 처럼 퍼져나간다.

처음 병동에 수용된 사람

무질서해지고 더러워 짐

점점 불어나는 인원으로 무질서해지고, 더러워지는 병동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

이 소설에서 안과의사의 아내는 어떤 역할일까? 인간의 선한 면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녀는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돕고 남편을 돕는다.

한 무리의 불량배들 질서를 무너뜨린다.

불량배들은 그 음식을 강탈하고, 물건을 요구, 여자를 요구

안과의사의 아내는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를 아무도 몰래 죽인다.

불량배 위축, 다른 이들의 사기는 올라간다.

한 여자가 병동에 불을 지르는 사건 발생. 모두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미 세상 모두도 눈이 멀어 버렸다.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 인간이 쌓아올린 사회구조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 남자가 원인불명으로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감기마냥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다. 사람들은 원인도 모르는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상태가 되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인류가 공들여 쌓아올린 사회를 밀물 앞의 모래성 마냥 단숨에 붕괴시킨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을 크게 두개로 나눴다. 첫째로,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다. 사람들은 보통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서 말하곤 한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인간에게만 생명의 존엄성을 매우 크게 둔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든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이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위협과 공포앞에서 인간 역시 얼마나 나약하고,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추악함을 드러내는 동물인지를 드러낸다.

 

둘째로,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규율이 더이상 지켜질 수 없고, 의미가 없어지면서 사회는 붕괴한다. 인류는 생존의 안전망으로써 사회를 만들었고, 국가로 까지 발전했다. 이 소설에서는 ‘백색 실명’하나로 온 사회가 초토화가 된다. 사회가 우리의 생존을 절대적 보장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적 안전망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이런 위기가 왔을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오.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에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읽게 된 동기>
2019년 Stew 독서 소모임 대망의 첫 번째 책!
<한줄평>
눈먼지 모르는 눈먼 자들을 위한 팩트폭행
<서평>
읽기 시작했다. 어? 돌아가서 다시 봤다. 어? 형광펜을 들고 왔다.
이 책은 단순 소설이 아니 구나… 철학책이구나…
저자는 이 한권의 책을 통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너무 심오한 내용들이 많아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지 참 난감하다
주요 키워드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이기 (利己)
나는 개인적으로 성악설에 동의한다. 악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 의하면 사람은 결국 궁지에 몰리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의 모습이 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이 우후죽순 나오면서 국가 수뇌부들은 수용소 내에서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까 고민한다. 이 때 한 사람이 말한다.
“아직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을 내쫒아버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미 눈먼 사람이 자기네 쪽으로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사람들을 이끌고 통제한다. 결국 위 말처럼 수용소 통제는 인간의 이기에 의해 자연적으로 통제되어진다. 특히,  이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집단에 속하게 되면 집단 이기주의에 쉽게 휩쓸리는 것 같다.
*두려움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상황들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을 의심하고, 공격한다. 나는 책에 나오는 위 말이 저자가 책의 소재로 눈 먼 자들을 택한 근본적인 이유라 생각했다.
  세상이 발전하고, 가진게 많아질수록 인간의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다. 가진게 많으니 잃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려움이 혼자만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 타인에게 악영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권력
현실비판을 다루는 책에서 권력은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권력을 형성하는 모습이 나온다. 권력은 집단이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것처럼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가져오는지는… 너무 어려워서 Pass
*리더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내가 봐야만 하는 걸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에요”
리더의 덕목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 책의 리더인 의사의 아내는 희생형, 이타적 리더이다.  의사의 아내는 개인적인 사람들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라 계속적인 내적 갈등에 놓여있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렇다면 집단의 안위를 위한 살인은 정당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에 의해 집단의 생존이 위험하다면 살인이라는 죄는 정당방위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인간의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내용이 많다.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쓸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고민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쉽게 쓰질 못하겠다
너무 심오한 내용들이어서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마감 시간이 촉박한 부분도 인정…^^)
못다한 이야기는 오프라인 모임에서 해야겠다ㅎㅎ
<인상 깊은 문구>
사실 기쁨과 슬픔은 물과 기름과는 달리 섰일 수 있는 것이니까 – p91
P114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거야 – P190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p419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모임에서 선정되어서 읽게 된 도서.

독서모임에서의 첫 책인만큼 다 읽은 지금 애착이 간다.

 

 

[한줄평 및 별점]


★★★★☆ (4점 / 5점)

우리가 굳건하게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과연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서평]


소설책과 거의 담을 쌓고 살다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뒤 좋은 소설을 찾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침 독서모임을 통해 이 책을 추천 받게 되어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말과 말을 반점과 온점으로 구분하면서 인물의 이름은 물론 장소에 대한 언급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 소설의 속도감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그런 간결한 표현과 빠른 전개와 호흡은 나로 하여금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어느샌가 책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다.

줄거리의 큰 줄기는 제목 그대로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통증과 이상도 없이 눈이 멀게 만드는 전염병이 도시에 퍼지기 시작한다. 단, 한 여자를 제외하고… 그 여성은 눈이 멀어버린 자신의 남편의 곁을 지키기 위해 눈 먼 사람의 행세를 하며 눈 먼 자들의 무리에 동행을 하게 됨으로써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의 눈을 통해 시각의 부재가 도시에 끼치는 영향들을 설명해준다. 도시 전체가 실명의 늪에 빠진 상황은 말 그대로 절망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은 커녕 배정 받은 침대에 조차 남들의 도움 없이는 네 발로 땅을 기며 입구부터 하나씩 세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눈이 멀어버린 그들의 생활공간은 그들의 배변이라는 생리적 욕구에 의해 삽시간에 악취로 뒤덮히지만 눈이 멀어버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극단적인, 하지만 동시에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지만 않는 설정에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등장인물들을 등장 시키면서 작가는 인류가 지난 몇천년간 만들어왔던 질서와 사회기반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며, 그것들을 잃었을때의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덤덤하게, 하지만 동시에 여과없이 보여준다. 특히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해진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하나 둘 포기하는 모습에서 다가오는 공포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선할까 악할까?>

일반적인 사회에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의 끝은 아니다. 아직 잃은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은 불편함은 있지만 약간의 도움과 함께라면 여전히 살 날들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눈을 멀게 된 세상에서 그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먼 자들은 시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소중하고 많은 것들을 잃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분실리스트에 인간성을 포함하게 되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성”은 이 극단적인 사회에서 도전받게 된다. 인간성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특성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인간성은 타고 난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들은 그것을 따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는 그런 나의 이상적 믿음에 강한 반박을 가한다.

서로가 힘을 합쳐도 헤쳐나가기 힘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거짓말한다. 거기에 독재자의 등장이 이어지게 되고 몇몇은 획득한 권력으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추악한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은 맥없이 서서히 죽어간다. 물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그 “악”과 맞서 싸우고 자신들의 안위를 지킨다. 나는 읽는 내내 선한 사람을 응원하며 그들이 이런 악랄한 사람로부터 승리를 쟁취하길 진심으로 원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그것이 실현이 되었을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불편한 마음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악”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는 것으로 알아냈고 어째서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그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에 대해 의문을 답하느라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들이 과연 시작부터 악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로 하여금 “악”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무슨 계기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적인 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누가 저렇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말이다. 물론 그들은 절대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남들의 물건을 뺏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남에게서 남은 인간성마저 빼앗아 버렸고,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며 하물며 그들의 이 잘못된 행동이 옹호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두서 없이 찾아온 질문고리는 나로 하여금 인류가 진정 선과 악을 나눌 능력과 권위가 있을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은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거짓말은 나쁜 것이며 남들을 해하면 안된다고 배워오며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처음 조우한다. 그렇게 유아시절 체득된 기준은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보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대부분의 인간은 여기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어쩌면 금기시 되었던 그런 절대적인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나로서는 결론은 내릴 순 없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 유발 하라리가 본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거짓말로 인하여 진화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사는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고 하지 않는가?

나로 하여금 신선한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준 이 책을 계기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드려다보며 책과 사람들을 조우하며 자극받으면 언젠가는 이 질문에도 내가 답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첫 서평을 마친다.

 

 

[인상 깊었던 문구]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그들이 총질을 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어. 지금까지 한 일을 보면 저놈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저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으면 모두가 똑같이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니까.”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읽게 된 동기 ]


이전에도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제목이지만, 읽지는 않았다. STEW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올해의 첫 지정 도서라 이제서야 책을 들었다.

 

[ 한줄평 ]


당연시해왔던 사회의 안전망이 오늘 밤 붕괴되면, 내일의 나는 누구일까.

 

[ 서평 ]


이 소설의 설정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실명이 된다. 일반적인 빛이 안 보여 어둠에 잠기는 실명도 안타깝지만, 그런 실명과 다르게 흰색 빛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데, 마치 수술대에 누워 있는 상태를 연상시키는 듯 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이른바 ‘백색 질병’은 단 한 명의 인물인 의사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기상천외한 전염률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아무도 눈 먼 사람에게 도움의 손을 건낼 수가 없으며, 아무도 이 질병을 연구할 수조차 없다. 이 혼란 속에서 사회는 붕괴한다.

사실 우리를 포함해서 책을 살 형편이 되는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시한다. 오늘 밤 잠을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눈이 머는 둥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세상이 실제로 그렇게 안전하지만은 않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던 중 엔진 폭발로 비행기 창문이 깨져 사망한 승객은 이를 예상하고 비행기를 탈 때부터 초조했을까? 타이타닉호 탑승객들도, 세월호의 학생들도 그들의 세상이 갑자기 뒤집힐 것이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화여대 교정 안에서도 트럭이 학생을 들이받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휴리스틱에 의존해 세상을 간단히 보는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대해 둔감해, 극심한 빈곤 상태가 아닌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내일에 대해 안일하다.

이러한 우리에게 작가 사라마구는 포비아(공포증) 노출치료인 홍수처럼 돌직구를 날린다. 재미 있는 우연이지만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지만) 세계2차대전의 시작을 알린 폴란드 전투는 독일어로 “백색 상황”으로 불렸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 온 소설 속 비현실적인 백색 질병에 대처하고 대처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정말 현실적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사회와 우리 사회는 겹쳐 보인다. 등장 인물들은 내 친구나 이웃일 수도, 심지어 나일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과정 내내 저자는 사회가 지속되는 데에 치안 관리와 같은 동력과 사회의 안정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그리고 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사회는 사실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어렵사리 형성이 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이는 결국 사회 속 개개인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심 아닌 의심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 갑자기 내 방 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약탈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내가 보람을 느끼며 하는 많은 활동들은 사실 상 위태롭지 않은 사회가 있기에 그 의미가 있으며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사회가 없는 세상 속 개인은 무엇일까.

 

[ 인상 깊은 문구 ]


  •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이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이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 언제 살인이 필요할까, 그녀는 생각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한느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에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
  • 다행히도,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부정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럼 인간이고 뭐고 없는 거지
  •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 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 그러나 램프든, 개든, 사람이든, 누구도 또 어떤 것도 처음에는 왜 이 세상에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운생이에요.

[ 읽게 된 동기 ]

2019년 STEW 독서소모임 첫 선정 도서

(사실 제목을 보면 내용이 뻔할 것 같아서 혼자서는 안 읽었을 것 같다.

 

[ 한줄평 ]

시작은 뻔해보였지만 끝은 소름 돋았던 책.

 

[ 서평 ]

처음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을 때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눈이 안보이게 되고, 전염병이 퍼진다는 설정이 개연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소재 자체는 신선해서 초반에 기대를 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세밀한 묘사와 심리에 대한 설명이 왜 이 책이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인지 알게 해주었다.

1995년에는 놀라운 작품이었겠지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컨텐츠 (소설이든 드라마 또는 영화)가 넘쳐나는 요즘, 그 내용 자체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점점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고,  다 읽고 나서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며, 읽고 나서는 환경에, 배경에,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며 다양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특히나 등장 인물을 의사, 의사아내, 검은 선글라스와 같이 부르기에 다르게 읽어보았다. 요즘은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왜 이렇게 소름끼쳤던 것일까.

환상적 리얼리즘이다고 보니 이 책의 설정과 설정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의 중요한 설정이자 은유는 인간이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지만 중요한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예측할 수도 없이 갑자기 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고 타락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특정한 인물은 그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과 사람들의 변화들이 단순한 소설이 아닌 설득력있게 심지어는 소름끼치게 다가왔다. 지금의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과 같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게 여겨졌다. 인간의 문명은 이렇게 크게 발전했고  좀 더 신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 능력을 넓혀가고 있지만 언제든 싶게 잃을 수 있는 능력들이다. 즉, 소설에서의 상황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자동차, 비행기를 바탕으로 멀리가고 컴퓨터의 메모리를 이용하여 많은 내용을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더 작은 것을 더 멀리있는 것을 보고 기록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러한 능력들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당장 스마트폰이 없어져도, 아니 당장 인터넷만 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고 불편해하지 않는가. 그렇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러한 기술과 능력들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기에, 더욱이 그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에, 언제든지 사라진 수 있다. 언제든지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이 상황이 걷어갈 수있다. 소설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소름끼쳤던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서로 다른 모습들 모두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폭력적으로 자원을 획득하고, 독점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모습들 뿐만 아니라 누구 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 있어 다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모습 또한 설득력이 있었고 그래서 소름 돋았다.  바로  인간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하는 지점이 나온다.

둘 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인간의 양면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혼란스럽게 발전하는 이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소설의 또 다른 역할을 알게 되었다.

 

[ 인상 깊은 문구 ]

  • 자신이 아는 것을 알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며, 나아가서 그것을 표현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 처음으로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멸스럽고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읽게 된 동기 ]


따뜻한 커뮤니티 STEW, 2019년도 첫번째 지정도서

 

[ 한줄평 ]


다 잃는다면, 나는 뭐부터 얻으려 할까?

 

 

[ 서평 ]


소설책을 평소 안 읽는 편이다.

STEW에서는 지난 12월에 처음 소설책을 지정도서로 읽었는데, 2월에 연달아 소설책이다.

덕분에 소설책을 읽는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들이 눈을 먼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나약한 존재다. 그저 눈만 멀어도 아무짝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게다가 눈은 굉장히 약한 신체 기관이다. 이토록 중요한 신체 기관이 사라졌을 때, 그러니까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잃어버릴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래서 원하는게 뭐야>

최근 겪는 고민과 소설 내용을 함께 읽었다.

사회 생활 8년 차. 이제는 한 분야 전문가가 되거나, 다방면에 축적한 지식이 많아져야 할 시기다. 헌데, 생각보다 지나온 7년이 그다지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우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느샌가 방향성을 잃었고, 어딘가로 가고는 있지만 마지못해 가는 것이다. 헌데 가고 싶은 곳도 잘 모르겠다. 그토록 걸어왔는데, 어떤 길이 좋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눈이 먼다면 이런 기분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눈이 먼 것과 다름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에게 기대하는 눈먼 자들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음식과 위생을 바란다. 길잡이는 당연히 그녀 몫이다.

과연 그녀에게 그 많은 것을 맡기는 이유는 그녀가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아등바등하며, 움직여 봤자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가 볼 땐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가?

음식을 얻지 못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는 걸까?

 

<잃는다는 것>

어느새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게 됐다.

 

학창시절 갖고 싶었던 맥북을 가졌다. 아이패드도 가졌고, 얼마 전엔 애플워치도 샀다.

어렸을때 로망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도 샀다.

 

좋은 코트도 샀고, 가방도 샀다.

가끔 차를 빌려 타기도 하고, 피곤하면 택시를 타기도 한다.

 

도전을 하고 싶어 창업을 해보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이 궁금해 커리어도 바꿔봤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얻은 걸까?

잃은 걸까?

 

하나 둘, 내 주머니에 들어왔기에 얻은 것일까?

내 호기심과 버킷리스트, 만족감, 기대감 등이 사라졌기에 잃은 것일까?

얻는 삶은 행복이고, 잃는 삶은 불행일까?

 

얻으면서 잃고, 잃으면서 얻었다면

그건 잃은 걸까? 얻은 걸까?

 

<살아야 하나>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일까? 눈이 보이는 아내를 가진 의사일까?

새로운 보호자와 함께한 사팔뜨기 소년일까? 젊은 미녀를 얻은 노인일까?

눈이 보이기 시작해 집을 되찾을 흥분감에 젖은 첫 번째로 눈먼 남자일까?

수십 명과 쾌락을 즐긴 깡패 두목일까?

어쩌면, 가장 먼저 죽어버린 자동차 도둑일까?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하루하루 배달되는 음식에 연명하며, 할 수 있는게 없어 그저 먹고 자며,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뭘까?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무엇을 상상하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만나는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특히, 깡패 두목이 여자를 노예로 만드는 과정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주변에서 내가 읽는 부분을 보진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덮어버렸다.

어느새 감정을 이입한 나 역시 그들처럼 삶을 위해 이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왜 살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갖게 됐지만, 갖기 전에는 행복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어떠냐는 질문을 해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눈이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가진 전부 중 행복의 기준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행복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도 중요치 않다.

어쩌면 살면서 기적을 만드는 것도 의미 없을지 모른다.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굴까?

 

끝나지 않는 재귀함수 속에서

기적이 아닌, 기적을 기다리며

 

눈을 뜨기 위해,

눈을 감아본다.

 

 

[ 인상 깊은 문구 ]


  •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을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이이 될 수 있어요.
  •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 아마 인류는 눈 없이도 살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인류라고 부를 수 없을 거에요, 그 결과는 분명해요.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 부호를 생략하며 직, 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읽게 된 동기 >

2019년 STEW 독서모임 첫 번째 지정도서. 몇년 전 영화화 되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 하고 예전에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 한줄평 및 별점 >

★★★★☆ (4점 / 5점)

본능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고발.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하였을 지 끊임 없이 성찰하며 읽었고, 우리 ‘눈’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서평 >

<눈먼 자들의 도시>. 몇년 전에 영화화 되면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에 진작 전자책을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STEW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선정되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작년 상반기 ‘해리포터’ 이후 간만에 보는 소설이라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운전을 하며 신호를 대기하던 중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후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이 ‘백색 질병’은 전염병이 되어 천천히 온 도시를 집어삼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인간성 상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며, 소설을 읽으며 만약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스스로 끊임 없이 되물으며 읽었다. 또한 눈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용이 이렇다 보니, 소설을 읽는 내내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우리 몸에서 단 한 부분,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저자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나 씁쓸했던 것은, 과연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아니 모든 생명체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욕구는 ‘생존’이다. 이러한 생존 욕구는 다른 모든 욕구보다 우선하며,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 달랐을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소설 곳곳에서는 인간성이 상실된, 여러가지 인물들이 등장한다. 눈이 먼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차를 훔쳐 달아난 남자, 전염을 막기 위해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폐 정신병원에 격리 조치부터 하고 보는 정치인들과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군인들, 병동 내에서 폭력을 앞세워 약탈을 일삼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리들, 일부 사람들이 마트를 점거하고 먹을거리를 독차지하자 거기에 불을 지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먹을거리가 발견되자 지하실로 몰려가다가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 등등. 소설을 읽으면서 당연히 머리로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러한 인간성 상실 외에도, ‘눈’을 잃자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모든 시스템이 붕괴한다. 소설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수 천년에 걸쳐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진다. 실명은 우리가 평소에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 가령, 집에 도착해서 불을 켜고 손을 씻는 행위 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결국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사와 그의 아내는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바로 이 말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사실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비인륜적인 장면들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 인륜적인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 범죄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며,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역시 종종 보도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를 외면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먹고 살기 바쁘니까’ 등등 변명거리는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 눈먼 도시에서는 이러한 범죄가 일상이 되고, 그 범죄가 나한테까지 미치자 사람들은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저자가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또 우리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얻는 수많은 이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수도와 전기가 있었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높은 건물에 올라갔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이 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 아내의 말처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희망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눈먼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이다. 본인 눈은 멀쩡한데도 남편을 따라 정신병동으로 들어와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끊임없이 희생을 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폭력배 두목을 가위로 찌른 장면이었다. 본인은 폭력배들에게 끌려가 인권을 유린 당해도, 같은 병동 사람들의 식량을 얻기위해 꾹 참았지만, 같은 범죄가 다른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모습을 보자 결국 외면하지 못하고 폭력배 두목을 살해한다. 이외에도 늙은 노파와 따라다니는 개를 위해 소중한 식량을 나누어주고, 남편보다 어린 아이를 먼저 챙기는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는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같은 병동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소설 내내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주인공들이 비가 오자 빗물에 샤워를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바로 이 장면이 동물과는 다른,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늙은 남자는 아무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혼자 씻고 싶어한다.

이처럼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저자는 ‘인간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모든 도시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폭력과 살인, 무질서가 난무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로 대표되는 병동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평소 눈이 보이는 것에 감사하고 그 동안 외면했던 다양한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자신의 잘못을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낡고 황폐한 건물 어딘가의 은신처에서는 도둑들이 예기치 않게 두 배, 세 배로 늘어난 식량으로 차갑긴 하지만 우유를 섞은 커피와 비스킷과 마가린을 바른 빵으로 배를 불리고 있을 텐데, 예의를 존중하려던 사람들은 그 이 분의 일이나, 삼분의 일, 심지어 그것조차도 안 되는 양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반면 저 바깥 도시에 있는 눈먼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 정말 괴로울 것이다. 길을 가다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고, 모두들 그를 보기만 하면 달아날 것이고, 그의 가족은 공황에 빠져, 그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자식의 사랑, 그런 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조직이다. 첫 번째가 먹을 것이요, 그 다음이 조직이다. 둘 다 사는 데는 불가결한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소, 모든 병실을 개방하는 거요. 그렇게 되면 보균자들이 맹인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는데. 어차피 보균자들은 조만간 눈이 멀 가능성이 아주 높소,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 모두가 감염될 판이오.”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이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군은 늘 모범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소.”

“아, 잊기 전에 하나 이야기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사격이 공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승합차 운전사 하나가 눈먼 재소자들과 함께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 눈은 아주 잘 보인다고 항변했다. 그 결과, 삼초 뒤, 죽으면 눈도 먼다는 보건부의 이야기가 증명이 되고 말았다.”

“오후 네 시였다. 그러나 사실 기계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시계는 일에서 십이까지 움직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일 뿐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버스 사고에 대해서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사실 그 사고는 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나 일어난 사고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에는 바로 그런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꾸로 사고 버스의 운전사가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곳에 있으면 악당들의 불의의 행동으로 그의 정직한 마음에 적개심이 불타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동시에 이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금번 격리 조치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나머지 구성원들과의 연대에 기초한 것임을 명심하고, 정직한 시민들로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눈에 그런 표정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례인데, 사실 이런 표현은 근거가 없다. 눈에는, 엄격히 말해서 눈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알을 뽑아냈을 때도, 그것은 그저 아무런 활력이 없는 두 개의 둥그런 물체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시각적 웅변과 수사를 전달하는 것은 눈꺼풀, 속눈썹, 눈썹이다. 사람들은 보통 눈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요,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우리는 기생충처럼 사모님 피를 빨게 될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을 때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어.”

“그러나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아래층의 노파는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기가 그런 감상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떠났다. 거의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이곳을 떠나버렸다. 노파는 기뻐해야 마땅했다. 이제 닭과 토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는 기뻐해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예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 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만일 그 눈마저 언젠가 소멸해 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 우리와 인류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끊어지고 말겠죠, 그렇게 되면 마치 허공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영원히, 모두 눈이 먼 채로.”

“어쨌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대를 이으며 계속되어 온 일이다.”

“불행이 모두에게 닥쳐도, 늘 남들보다 더 심하게 그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읽게 된 동기]

20대 초반에 읽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워낙 인기있는 소설이기도 해서 책을 빌리자마자 냉큼 다 읽어버렸다. 눈이 멀어버리는 내용이라 소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줄 평]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과 이기심을 적나라게 드러내 불편했지만 반성하게 만들었다.

 

[서평]

눈에 상이 맺힌다고 해서  본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눈이라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뇌가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면 우리는 같은걸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즉 착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는 경고 메시지

나는 평소에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일회용품을 마구 사용하고 버리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대량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상황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공간을 눈요기하러 보러 가면서도 이를 위해 깎이고 버려진 자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정작 내가 환경 보전을 위해 큰 일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조금이라도 덜 훼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금 노력을 할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초기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수용된 정신병원 시설이 수용자들의 배설물,  시체, 먹고 남은 그릇과 음식물 등으로 오염되가는 모습이 인간이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오르면서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농업의 발달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지구의 파괴 속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편리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만든 도시는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 지구가 생겨나면서 이뤄좋은 생태계가 파괴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훼손과 오염을 보지 않고 외면한 채 멋지게 구조화된 도시를 동경하며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건 우리가 눈이 먼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이 멀어버렸다

소설 속의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정작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더듬거리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에 충실해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 성적 욕망을 채우고, 불편한 뱃속을 비운다. 우리는 본능적인 모습을 잘 차려진 음식으로 둔갑시키고,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적이거나 숨겨진 공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고, 배설물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즉시 잊어버린다. 그리곤 우아하고 품위있게 행동한다. 더럽고 추악한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고 착취를 하지만 이를 정당화 시키려는 구실을 찾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양심마저 눈이 멀어버렸다

내가 환경 오염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을 하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양심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안과 의사의 아내는 우리의 마음 속 양심과 같다. 인간의 본능에 의한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듯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양심은 봐야할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면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의사의 아내는 이내 눈이 멀어버린다. 양심이 눈이 멀어버린다면 과연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제대로 보고있을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환경 말고 또 내가 보고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게 또 뭐가 있을까.

 

[인상 깊은 문구]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어쩌면 눈이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하야 해요.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나는 보고 싶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 가지고 눈을 뜰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아가씨가 이제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이 아리는 거지요.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건가.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몬 사람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