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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눈 먼 자들의 도시

[읽게 된 동기]

본래 영화화도 되고 작가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두꺼운 소설책은 기피하는 성향이 있어 읽은 적은 없었다. 이번에 Stew 지정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한줄 평]

희망은 빛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꼭 빛이 빛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평]

흔히 실명은 검은색에 비유된다. 하지만 눈 먼자들의 도시에서 모두가 겪게되는 실명은 백색의 실명이다. 너무 밝아 혹은 너무 하얘서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결코 고귀하거나 품격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전전하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개나 고양이와 다를바 없다.

사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처음 눈이 먼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호의에 신뢰를 하는 것처럼 서로를 신뢰하며 구축한 사회라는 거대한 개인의 집단 속에서 개인은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일순간 무너진다. 사회라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지켜주는 제도 혹은 법에 의해 살아갔지만 어느 날 발생한 백색 실명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격리로 시작해 결국 사회의 붕괴로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여 식량을 훔치고 공정한 분배를 의심하며 결국 좀더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학대하려는 모습은 눈이 멀기 전에는 멀쩡한 사회인이었던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과 같다.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절이라는 것이 자연상태의 개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고려할 때 더이상 자신의 의도를 보여줄 수 없게된 사회에서 그러한 자연상태로의 회귀는 일견 타당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연상태로 회귀하는 가운데 의사와 의사 아내, 처음 눈이 먼 남자와 그 아내, 검은 색 안경을 쓴 여자, 사팔뜨기 아이, 안대를 한 노인들은 서로 간에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 시력을 잃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기 때문에 그 집단이 유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초기 서로가 모두 보이지 않는다고 믿던 시기부터 시작된 신뢰에 의사 아내가 눈이 보인다는 것을 공유한 것은 단순히 신뢰를 공고히 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본래 실명이었던 회계사가 총을 쏨과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잃어간 것이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것은 자신이 가진 무기의 실효성만이었던 회계사와 달리 의사 아내는 그들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쌓았고 그 덕분에 집단은 유지되었고 어느 순간 절망적인 순간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불안함과 공포를 품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이 멀었다면 반대로 불안함과 공포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고 희망을 품은 사람이 가장 먼저 시력을 회복한다는 부분을 보며 결국 주제 사라마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자 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소설에서 가장 클라이막스는 지하실에 쌓인 시체더미를 본 후 성당으로 들어가 눈을 가린 신상을 보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어둡고 어두워 보이지 않는 죽음과 눈을 가린 새하얀 성상들은 그 대비를 통해 사람들의 희망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 어떤 시기보다 안정되었지만 그로 인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이었던 의사 아내가 마주한 한 무더기의 시체는 인간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절망에 빠뜨린다. 그 후 몸을 쉬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 기운을 찾아 되돌아오는 모습은 언뜻보아서는 4일만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성당은 신성함이나 회복의 공간이 아니었다. 눈이 멀었지만 여전희 신의 신성함을 믿고 그에 위안을 얻으려는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신의 형상이라 할 수 있는 성상은 모두 눈이 가려져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모든 성상의 눈이 가려졌다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는 결국 인간을 딴 것이고 인간이 모두 눈이 멀었으므로 그들도 눈이 멀고 마는 절대적이지 않은 오히려 인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유지되는 존재라고 보여졌다. 그런 떨어져 버린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눈 가린 성상으로 가득찬 성당을 나옴으로서 의사의 아내는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나 예절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의 버티며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눈 먼 자들 사이에서는 눈이 보이는 자가 왕이다. 이 소설 속의 구절은 맹인 회계사와 총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공포로 지배했던 한 격리자의 모습에서 가장 잘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눈이 보이는 자가 아니었다. 의사 아내야말로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속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이끌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그저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그룹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챙기기 위해서만 그녀의 눈을 사용한다. 이런 모습에서 개인적으로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라는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모두가 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을인 것도 아니다. 순간의 상황 혹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차이로 우리는 갑이나 을이 된다. 명심하여야 할 것은 그렇다고 모두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아내와 같이 그가 가진 지위나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야 말로 눈 뜬 자들이 만들어야 할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갑이라고 해서 모두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며 갑 중에서도 선한 갑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선한 갑이 되고자 노력해야한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지금 우리는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 눈이 멀어만 가는 것 같다. 눈 먼 사람들이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우리는 눈을 뜨고 있음에도 가까이 있는 사람을 불신하고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신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신뢰가 약해져가고 있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책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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