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STEW

[서평]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소모임 6월 지정도서. 생전 처음 보는 세계 역사 책.

한줄평

어벤저스-엔드게임을 봤더니 세계질서 따위 하찮아 보였는데, 세계질서를 보고 나니 내 인생이 하찮아 보이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도 될 것 같다.

서평

2015년 시작한 STEW 독서소모임은 지금까지 책을 수십 권 읽었다. 나는 운영진으로서 책을 꼭 읽고, 서평을 썼다. 100% 참석도 힘들었지만, 모든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었다. 서평도 100%를 목표로 했지만, 그동안 딱 한 권 포기했던 책이 있다. 징비록이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해 쓴 책으로, 책을 읽고 있자면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는 것인지에 대해 큰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결국 독서소모임을 운영하며 유일하게 포기한 책으로 남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포기한 두 번째 책일 뻔했지만 결국 디펜스한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를 소개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어려운 분야다.

정말 쉽지 않았다. 최근 커리어를 변경하며 전과 다르게 앉아서 일하는 업무 형태로 돌아왔다. 몸이 쑤시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적인 업무 자체가 쉽지 않았다. 고작 1년 3개월 기자 생활을 했을 뿐인데, 다시 업무 패턴을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 이동 시간도 줄었고, 업무 시간도 줄었지만, 퇴근 후 집중이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책장을 넘겼음에도 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들춰보기 일쑤였다. 저자가 친절하지 못해 구글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럼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른바 정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나는 정책이 제기될 때마다 국가 이익을 정책의 지도 원리로 삼아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답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저자도 책에 나오는 어떤 정의에 대해 단순하고 명쾌하게 소개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 분야가 모호하고,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 읽는 도중 하도 답답해 내가 왜 이 책을 소화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대항해시대> 게임 외 세계 역사에 대해 훑어본 적이 없었다. 스페인 여행, 중국 여행 중 가이드가 소개했던 내용이 전부였다.

“이과 -> 공대 -> 개발자 -> IT기자” 테크를 탄 내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서 기술 이야기가 나오자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마치 내 잠자리에 누운 양 “편-안” 했다.

익숙치 않은 분야, 원래 어려운 분야, 편치 않은 번역 여기에 저자 스타일이 친절치 않았다. 정말 꾸역꾸역 읽었다.

내게 질서란?

나는 행복하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핑계가 많지만 어쨌든 또래집단에 흡수되지 못했고, 주말만 기다리며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아가면 결코 그렇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다.

책을 읽으며 내 한 몸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육체적 힘이 부족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내 몸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참 미안하다. 대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나는 군대에 가서야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학창시절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았다면 나는 지금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정복왕 메흐메드 2세는 15세기에 초기 형태의 다극 체제를 시험하고 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당신들은 20개의 국가입니다. 당신들은 서로 의견이 다릅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권만 존재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나는 이슬람처럼 나 이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힘이 없었기에 모두에게 나를 부정당했다. 나는 내가 모두를 부정했다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저 또래 집단에 흡수되지 못했을 뿐이다.

나를 지키는 법을 깨닫고, 내 힘을 기르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행히 사회에서 좋은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고, 순박했던 내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줬다.

19세기의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내 이익을 내가 추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이익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군대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내 이익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나와 함께해준 여러 엉아들이 알려줬다.

사회에 나온 지 어느새 7년이 흘렀고, 이제는 함께할 동료, 친구 그리고 내 분야와 무기도 생겼다. 어지러운 사회에서 내 한 몸 지키는 게 어쩌면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내 편안함을 찾는 어려운 과정을 지나, 내 마음의 질서를 찾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참 많은 것을 해냈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질서는 찾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는 피곤한 일을 해야 한다.

하찮은 고민, 중요한 것은.

최근 포지션과 조직을 바꾸고, 거주지도 바꾸고, 큰돈을 쓰는 경험도 했다.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큰 결정 앞에서 나는 작아졌고, 선택한 뒤에는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감에 절대 즐겁지 않았다. 피로도와 압박감에 눌리니 그 어떤 사건들도 가볍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 중 하나는 타인과 나의 비교였다. 그 누구도 나와 비교하지 않았지만, 나는 자꾸 누군가와 나를 비교했다. 한 단계, 한 단계 그리고 또 한 단계 높은 타인과의 비교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면 내 성장이 멈출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아시아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가장 의미 있는 유산 중의 하나로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종종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들이 각자 주권 국가를 수립하고, 각 국가들은 지역별 그룹으로 조직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자니, 내 고민이 굉장히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하는 선택은 잘못됐을 경우 대부분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른다. 큰 결정에 있어 보수적인 성격이기에 가족과 내 주위 사람들은 내 결정을 대부분 믿어주는 편이다. 큰 무리도 없고, 주위 사람들도 나를 믿어주니 부담감을 놓아도 되련만, 쉽사리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편히 생각하련다. 너무 사소한 선택에 에너지를 다 쏟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하수의 장고는 악수라지 않는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던 시점에 적절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좀 더 시야를 넓히고, 대범한 선택을 해보도록 해야겠다.

인상 깊은 문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