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

[서평] HARVARD BUSINESS REVIEW | 2019년 5, 6월 호

읽게 된 동기


STEW 경영소모임 2019 2/4분기 지정도서

한줄평


주위를 환기할 수 있는 초점의 전환.

서평


요즘 꽂힌 단어가 있다. <지적유희>다. 네이버 사전에서 유희는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라고 나와 있다. 지적인 유희. 즉, 지적인 행위를 즐기는 것을 뜻한다.

나는 지적인 캐릭터를 좋아한다. 삼국지에서는 관우, 장비보다 제갈량이 좋았고, 유비보다는 조조가 좋았다. 지난 회식 때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나는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그다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TV 프로그램을 즐겼냐는 질문에 나도 슬램덩크와 드래곤볼 봤다고 답했지만, 생각났던 TV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였다.

성공시대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명사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밤늦게 방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왠지 모르게 그들의 열정이 나를 TV 앞에 앉혔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더라면 지금 내 삶은 더 달라져 있을 것이다.

HBR은 내가 읽는 지적유희에 가장 가까운 콘텐츠 중 하나다.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관계, 역사, 미래, 환경, 행복, 사랑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경영 매거진이지만 경영 이야기만 나온다는 상상은 오해다. 특히 원어 콘텐츠 중 실제 필드에 있는 사람들의 콘텐츠가 좋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영어 공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HBR 2019년 5-6월호를 읽으며 즐겼던 지적유희를 소개한다.

채용 그리고 해고


이번호 제목은 <이제는 무한 연결의 시대 : 24시간 고객과 소통하는 비즈니스 모델 만들기>다. HBR은 제목이 중요한 매거진은 아니지만, 이번호 제목은 많이 아쉽다. 내가 편집인이었다면, 채용과 관련된 제목을 뽑았을 것이다.

먼저 골드만삭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비동기 화상 면접을 도입해 채용 절차를 개선한 아티클이었는데, 다양성을 확보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놀라웠다.

“미국 골드만삭스의 대졸 신입 채용자는 특정 명문대를 의미하는 이른바 ‘타깃 스쿨’ 출신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이제 우리는 더 폭넓게 리크루팅하고 최종 선발자들도 더 다양해졌다.”

이들이 왜 다양성이 높은 점수를 줬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양한 인재를 채용한다고 말하면서 획일화된 엘리트만 채용하는 기업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데이터’다. 골드만삭스는 비동기 화상 면접 시스템으로 5만 개 이상의 영상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 향후 업계가 원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교육 방법도 준비한다고 하니 이보다 채용 프로세스에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내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점은,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채용 부서가 지속적인 학습과 개선이 이뤄지는 연구실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원자들이 녹화한 5만 개 이상의 영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통창력 넘치는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데이터의 보고이자, 비즈니스 운영에 필요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다. 우리는 올바른 역량을 측정하고 있는가? 일부 역량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후보자의 배경은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어떤 면접관들이 가장 효과적인가? 주립대의 최상위 학생이 아이비리그의 평균적인 학생보다 회사에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가?”

이 아티클을 읽고 경영소모임 멤버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미 우리나라도 비동기 화상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AI 면접관을 이미 적용해 우리나라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했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인에어(inAIR)다. 경험해보지 못해 정확도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채용시장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

AI 면접관 인에어. / 인에어 홈페이지

채용에 관한 아티클을 읽고 이번호 최고의 아티클이라 생각했지만, 훨씬 매력적인 글이 있었다. 채용의 반대되는 해고에 관한 아티클이었다.

나는 최근 조직을 옮겼다. 크게 봤을 때 내 커리어상 4번째 조직이다. 첫 회사에서 자회사로 이직을 몇 차례 했으니 그 횟수를 더하면 2배는 될 것이다. 프리랜서나 SI 시절 파견된 조직을 더하면 또 2배는 될 것이다.

SI 환경을 경험하다 보니 길지 않은 커리어에 면접관 역할도 수차례 해봤다. 심지어 나보다 20년 이상 긴 커리어를 가진 시니어들을 판단해야 했으니, 내가 가진 경험 중 매우 가치있는 경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니어를 면접본 경험보다 더 값진 경험이 있다. 시니어를 해고한 경험이다. SI 환경은 늘 긴급하다. 특히 은행 SI는 돈이 오가기 때문에 다른 프로젝트보다 몇 배는 더 공격적이다. 그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 필요하다. 즉, 빠르고 정확하지 않은 사람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나는 몇 차례 시니어를 해고했다. 결과만 보자면 시니어 해고 이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해고 이후 더 높은 강도의 일정을 견뎌야 했으며, 어떤 가장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해고한 시니어에게 해고당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쨌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까.

이번 아티클에서는 내 선택에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HBR이 좋은 이유는 이런 콘텐츠 덕분이다. 반대되는 의견도 각종 사례와 논문 등 이해되는 레퍼런스가 붙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

“정리해고는 근로자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 기업에도 높은 비용을 야기한다. 채용과 교육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또한 정리해고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어 생산성을 저해하는데 불황기의 생산성 저하는 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정리해고가 인건비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일시해고(무급휴가), 성과급 등도 고려해야 한다.”

직원, 대표, 프리랜서를 모두 경험한 나는 다양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해고를 진행하는 인사 담당자나 결정하는 임원, 억울하게 희생된 직원과 의욕이 꺾인 직원. 아티클을 읽으며 이들 모두의 입장에 서서 상상을 했다.

현재 내가 속한 스타트업은 30명의 임직원이 함께한다. 스타트업에서 채용과 해고는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은 사람이 전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최근 이직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무척 흥미로운 아티클이었다.

시간빈곤


시간빈곤(Time Poverty)은 타임 푸어(Time Poor)로 더 알려져 있다. 사회인 중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할 일은 늘 많은데, 미래를 생각하면 물장구를 멈출 수 없다. 잠시 한눈을 판다면 금세 가라앉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이 떠올라 아티클을 읽으며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하고 싶은 청년들과 일이 너무 많아 허덕이는 사회인. 두 케이스를 모두 곁에 둔 사람으로서 참 마음이 불편했던 아티클이다.

“유럽, 아시아, 북미 내 다양한 문화권의 중간소득계층과 고소득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들은, 소득이 더 높은 사람일수록 시간 압박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례로 호주인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심한 시간 스트레스와 높은 소득이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의사 커뮤니티에 참가했다. 전문의가 10명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흥미로워 입 벌리고 지켜보다 왔다. 한편으론 이미 상류층에 있으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그들이 무서웠다.

하지만 내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소득대비, 시간에 관한 선택이 나도 달라졌다. 자신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니, 달라지는 게 맞다.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시급을 계산해 보라고 지시하기만 해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크게 상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얼마 전 SNS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시간 씀씀이를 비교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자취만 해봐도 금세 느낄 수 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게 그냥 있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3~4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과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정부가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과 녹초가 돼 귀가해서 집안일도 해야 하는 사람의 삶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비즈니스는 시간 절약에서 시작된다. 나는 필수 교과과정에서 이 이야기도 다뤘으면 한다. 누구나 24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비싼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빈곤에 시달린다면, 가난하다는 증거다.

“네덜란드에서 백만장자와 평균 3만7500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백만장자들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단순히 백만장자가 돈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백만장자들이 하루 동안 능동적 여가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대조군에 비해 30분 더 길었고, 수동적 여가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40분 더 짧았다.”

결국, 시간이다.

남녀평등


언젠가부터 HBR에 남녀평등에 관한 아티클이 많이 보인다. 심지어 이번호 케이스스터디는 성희롱을 주제로 한다. 그만큼 관련 주제가 이슈라는 것은 공감한다. 나 역시 일을 하며 관련 이슈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케이스스터디에서 이 주제를 다뤄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HBR의 명성을 만들어준 케이스스터디와 맞는 주제인지는 아티클을 다 읽은 뒤에도 의문이다.

게다가 앞부분 아티클 역시 남녀 임금 차별에 관한 아티클이다. 이 아티클을 읽자마자 HBR을 덮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구진은 2015년 1월 ~ 2017년 3월까지 미국의 모든 우버X와 우버풀 운전자 약 187만명의 데이터를 조사했다. 그 결과 남성이 시간당 평균 21.28달러를 버는 반면(비용 지출 전), 여성은 겨우 20.24달러를 벌어서 수입에 7%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굉장히 자극적인 도입부다. 자극적인 도입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티클이 풀어낸 깊이를 보면 깊은 의문이 든다.

“연구진은 이 격차가 온전히 운행장소, 플랫폼 사용경험, 운전속도 등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들은 범죄율이 높은 지역, 위험성이 커서 요금이 더 붙는 술집 밀집 지역처럼 수익성이 더 좋은 지역에서 운행하는 경향이 있다. 매주 더 많은 시간을 운전하고 회사에 더 오래 붙어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운행장소, 시간, 어떤 여정을 수락할지에 대해서도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 남성들은 여성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운전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손님을 더 많이 태운다.”

이게 왜 남녀 임금 격차인가? 나는 남성이지만 범죄율이 높은 지역, 위험성이 커서 요금이 더 붙는 술집 밀집 지역에서 운전하고 싶지 않다. 돈을 덜 벌더라도 편안한 곳에서 일하고 싶고, 돈을 더 내더라도 범죄율이 적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남자여서가 아니라 위험도에 따른 가치를 더 가져가는 것이다. 이게 HBR에 나올만한 깊이인가? 위험도에 따라 임금이 차이 난다면, 위험도에 따른 사고 위험정도는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아티클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이런 연구 결과로 미뤄볼 때 “긱 이코노미가 성별에 따른 소득격차를 좁힐 거라고 기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연구진은 “전반적으로, 우리의 연구 결과는 실무학습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경제적으로 성별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폭넓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남녀의 시간사용 선택의 변화를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여성이 남성과 같은 속도로 학습곡선을 끌어올리도록 도움으로써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다.”

도대체 저 사례에서 ‘학습곡선’과 관련 있는 내용이 어디 있나? 도대체 독자에게 무슨 생각을 원하며 이 아티클을 실었는지 의문이다. HBR 편집팀에 심각한 의문을 표한다.

HBR을 읽은 지 어느새 3년째다. 나도 잡지를 만들던 기자로서 HBR의 편집력에 늘 놀라고 있다. 하지만 이번호는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성별 이슈는 더욱 신경 써서 다뤄줬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문구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