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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피아: 돈과 마음의 전쟁 ★★★★★

읽은 책 :  우석훈, 『모피아: 돈과 마음의 전쟁』, 김영사

다 읽은 날짜 : 2019년 7월 10일, 지면

 

< 읽게 된 동기 >

스튜 독서모임 8월 지정도서. 연간 수백 권의 책을 읽는 엄청난 다독왕 회원님께서 추천한 책이기도 했고, 간만에 읽는 소설이라 그런지 큰 기대 속에 읽었다.

 

< 한줄평 및 별점 >  ★★★ ( 5점 / 5점 )

세계를 움직이는 검은돈들이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 소설 속에 펼쳐진 모피아들의 세계는 무서웠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잘 보여준다.

 

< 서평 >

재정경제부 출신 인사들을 마피아에 빗댄 합성어 ‘모피아’. 스튜 독서모임 덕분에 간만에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작년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은 뒤 올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인데, 너무 재미있어 2주 동안 읽을 예정이었던 책을 3일 만에 다 읽어버렸다.

소설 자체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실제 소설 안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 소설 속에 펼쳐진 모피아들의 경제 쿠데타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지만, 그 결과는 온 국민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소설에서는 다행히 ‘오지환’으로 대표되는 국가 측이 승리하였지만, 만약 그 반대였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이렇게 경제와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 온갖 어려운 전문용어들로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왜 자신들의 처지가 그렇게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정작 경제 위기의 핵심은 대부분 금융가의 도덕적 해이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지만, 결국 이들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돈이 투입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권력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 강한 사람들의 큰돈이 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 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책을 읽으며 가장 와 닿았던 구절 중의 하나인데, 특히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정말 무서운 말이지만, 이미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차례 현실화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기업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정부의 돈이 투입되었고,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힘을 보탰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때에도 결국 미 정부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들여 문제를 일으킨 금융기관을 구제한다. 정작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따로 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온 국민, 아니 전 세계로 돌아간다.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Inside Job)’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금융공학자들은 4배에서 100배를 일반 직장인들(engineer) 보다 더 받습니까?
공학자들은 진짜 다리를 만들고, 금융분야 공학자들은 꿈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런 꿈들이 악몽으로 밝혀지면, 다른 사람이 비용을 지불합니다.
–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Job> 중

▲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Job>의 한 장면

‘다른 사람이 비용을 지불한다’. 결국 우리가 정치와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소설 모피아와, 인사이드 잡을 보면서 궁금증이 더 커졌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너무 어릴 때라 내 기억은 ‘아나바다 운동’밖에 없지만, 외환위기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런 마음에 모피아, 인사이드 잡에 이어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나 세부 내용들은 픽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펼쳐진 내용은 역시나 모피아들의 행태와, 서브프라임 사태 때와 다르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꽃은 ‘금융’이고, 금융의 핵심은 바로 신용 창출이다. 금융 공학 덕분에 실제 발행된 화폐의 수백 배, 수천 배의 경제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여러 경제위기를 겪으며 바젤 협약과 같은, 금융을 규제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돈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임을 시켰을 때 마약을 할 때와 유사한 부분이 뇌에서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만큼 강력한 유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를 알아야 한다. 이처럼 모피아는 평소에 잊고 지냈던 ‘경제’의 중요성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외에도 소설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이 3개가 있다.

 

먼저 첫 번째. 모피아의 수장 이현도가 추진하던 경제 쿠데타는 결국 그가 청와대에 추천한 오지환에 의해 실패로 끝이 난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 내내 이현도가 왜 오지환을 대통령에게 보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에 대한 답은 책 중간중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김수진이 오지환에게 찾아가 청와대 경제특보로 임명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전해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영감(이현도)이 대통령에게 차리는 마지막 예의 같은 거예요. 이제 곧 공격이 시작될 텐데, 방어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주고 싶다는 거예요.”

김수진의 말처럼 책 곳곳에는 대통령에게 오지환을 보험용으로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단순히 대통령의 ‘보험’용으로 추천했다는 건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 서평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현도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지환 정도가 아니면 내 공격을 알아차릴 청와대 인사는 없다. 그렇게 되면, 내 공격에 멋모르고 덤비다가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 옆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이현도는 미리 매집한 공기업의 해외 발행 채권을 무기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가 무너지면 본인이 구상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이현도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대통령이 본인의 협박에 겁을 먹어 싸움을 포기하고 굴복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옆에서 그만큼 압도적인 전력차가 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려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현도는 그 인물로 오지환을 점찍은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싸움을 피하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현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지환은 강력했다. 오지환은 이현도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준비했던 돈이 다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오지환은 동영상을 찍어 전 세계에 호소한다. 그리고 결국 이 호소를 통해 싸움에서 승리해 대한민국 경제를 지켜낸다.

 

두 번째. 소설에 등장하는 김수진이라는 여성은 어마어마한 거물이다. 미국의 펜타곤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브로커로, 초반에는 이현도와 로펌 롱골드를 도와 한국 경제를 전복시킬 시나리오를 세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지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은 양쪽 진영의 대척점에 서있던 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현도의 계획을 알아채고 막으려고 했던 게 오지환인데, 김수진은 이현도와 일을 하면서도 오지환을 돕는 굉장히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 김수진은 브로커 일을 그만두고 오지환과 결혼한다. 특히 이현도의 모피아 세력과 오지환의 국가 세력의 마지막 경제 전쟁 때 김수진은 자신의 사비 1조 원을 털어 오지환을 돕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으로 만났던 오지환과 김수진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데 서평을 쓰며 소설을 찬찬히 다시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실마리가 보였다.

“자신은 정의롭지 않더라도 정의로운 것 아니, 정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애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오지환이 스위스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실패한 뒤, 김수진을 만나 술을 마시며 우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김수진은 평생을 정의와 거리가 먼, 철저하게 경제적인 이득에 의해 움직였던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정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오지환을 보며 애정을 느낀다.

또한 본격적인 교제 이후에 오지환은 김수진에게 스와로브스키 귀고리 세트를 선물한다. 선물하며 멋쩍었는지, “아주, 아주 싼 거야. 그냥 크리스털이 좋아서”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귀고리를 찬 뒤 어떠냐고 물어보는 김수진의 질문에 오지환은 “곱다, 참 곱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곱다, 참 오래된 말이지만 중년의 사랑에는 이만한 찬사도 없다. 김수진은 수많은 남자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지겹도록 들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에게 곱다고 말하는 남자는 없었다. 자신의 힘이나, 힘에 굴종한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결국 이 부분에 답이 있었다. 자신의 힘에 굴종하지 않고, 온전히 사람 김수진으로 봐주는 남자. 돈이나 배경이 아닌, 김수진이라는 사람을 오롯이 봐주는 남자. 실제로 오지환은 대통령이 김수진의 정체를 알아채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내고 김수진을 택한다.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 수록 사람보다는 서로가 가진 배경이나 조건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속된 말로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 김수진과 오지환은 둘 다 이미 결혼을 한 번 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지환은 딸이 있고, 김수진은 그 누구라도 두려워할 만한 어마어마한 거물이다. 하지만 오지환은 그런 배경에 휘둘리지 않았다. 김수진이라는 사람에 집중했고, 김수진과 다른 정의로움이 있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일명 ‘무기녀’ 김수진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질문은 ‘오지환은 어떻게 마지막까지 경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한국은행 팀장이자 청와대의 경제수석. 한 나라의 경제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우리 경제를 마지막까지 수호하는 건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결국 ‘사람’이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수천만의 국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한 국가의 경제가 무너지냐 마느냐의 경계에서, 만약 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그냥 패배를 시인하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지환은 싸우기로 결심하고 밀어붙인다. 마지막 위기 상황에서는 동영상을 찍어 전 세계에 호소한다. 이때 오지환은 두렵지 않았을까? 실패로 끝났을 때의 책임은 자신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져야 하는데, 그 엄청난 중압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 정도로 본인의 정의에 대한 신념이 강했을까?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답이 딸 현주에게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현주의 아버지로서 떳떳하고 싶지 않았을까? 정의가 불의에 굴복하는 세상을 딸에게 넘겨주기 싫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오지환과 대통령의 주변에는 이상대나, 대통령의 비서실장 등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모피아 일당을 물리친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의 소임이고 경제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뻔하디 뻔한 결말이었음에도, 식상하지 않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 펼쳐진 모피아들의 세계는 무서웠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일반인들은 알기 힘든, 세계를 움직이는 각종 검은돈들의 힘 싸움을 우리나라 경제에 빗대어 기가 막히게 풀어냈다. 책의 내용은 허구일지 모르나, 실제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금융 공학자들보다는, 실제로 다리를 만드는 공학자들이 더 대우받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무기가 되고 돈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이 곧 권력이 되었다. 그리고 소설 모피아는 이 돈이 잘못 쓰일 때 우리 삶이 얼마나 위협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최근 들어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된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고,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옆 나라 경제대국 일본은 우리나라에 수출 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경제이고 돈이다. 우리는 경제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눈 뜨고 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인상 깊은 문구 >

“지난 수년 동안 통치 의지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던 사람들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소그룹에 분명 집권 의지가 있었다. 집권 의지만큼은 아주 강렬했던 것 같다. 그러나 통치 의지도 그만큼 강렬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잘 통치하기 위해 집권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내 눈에 비친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는 선진국이 되면서 자국의 통화가 강해졌다. 전후 일본의 복구 과정과 엔화 가치의 끝없는 상승 국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외국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르크화 시절 독일이 그랬고, 프랑스화 시절 프랑스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프랑이 그렇다.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자국 화폐가 그게 반비례해서 약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수많은 회사가 이곳에 주소를 가지고 있다. 서류상으로는 수천조 원 이상의 금융자산이 이곳에 존재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이 작은 해변가 인근의 건물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돈거래를 빈번하게 하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진짜 주소지는 이곳으로 되어 있다. 구단주인 글레이즈 가문이 편법으로 영국 정부에 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지주회사를 이곳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주요 대기업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케이맨 제도나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가지고 있다.

카리브 해의 수많은 무인도 중의 하나, 그야말로 해적섬이라 불리던 케이맨 제도가 특별해진 것은 이곳에서는 조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 인근의 대표적인 조세회피처가 케이맨 제도이다.”

“‘결국 오바마도 이곳은 손을 못 댔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당선 다음 해인 2009년, 케이맨 제도에서 미국 기업들이 세금을 탈루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를 시도했다. 성공만 한다면 10년간 220조 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걷을 수 있고, 미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의료보험 개혁 등 복지 문제에 대한 재정적인 정책 마련을 한꺼번에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집권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좌절됐잖아. 여기나 거기나, 변화가 힘든 건 마찬가지야.’

오바마의 조세회피처 개혁은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장인 맥스 보커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케이맨 제도는 겉으로 보기에 흔하디흔한 카리브 해의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구 5만이 약간 넘는 영국령의 이 섬들에는 280여 개의 은행, 780여 개의 보험회사, 560여개의 자산운용사 등 총 8만여 개의 기업이 등록되어 있다. 인구수보다 기업의 숫자가 더 많은, 지구상에서 가장 기이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케이맨 제도이다. 케이맨 제도의 주지사는 영국 여왕이 직접 임명한다.”

“이런 게 망해가는 국가의 특징이다.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삶과 권력을 지탱해주는 대다수 구성원에 대한 고민을 잃어버릴 때, 그 사회는 내부로부터 붕괴하게 된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그 나라의 경제 현상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삶의 가치만 추구하려 할 때, 부패는 필연적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권력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 강한 사람들의 큰돈이 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소리가 없는 공간은 사람을 매우 편하게 해주거나, 아니면 반대로 신경을 극도로 날카롭게 만든다. 적당한 소음은 영혼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보이는 선명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신장하게 된다. 조용함은 때때로 이겨내기 어려운 부담감이 된다. 일반인들은 조명과 스태프가 빙 둘러서 전부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촬영 현장의 투명함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숨소리는 물론이고, 심장박동의 미묘한 변화마저도 느껴질 듯하다.”

“모피아들은 재계 서열 앞쪽에 있는 기업도 무서워해. 날린다고 맘만 먹으면, 어느 바람에 날아가는지도 모르고 사라지거든. 더구나 재계 서열 20위 밖에 있는 우리 같은 기업은 파리 목숨이야. 7급 주사보 한 명이 큰 공사 물고 늘어지기만 해도, 캐시 플로우가 엉망이 돼서 무너질 수도 있거든. 우리야 정말 그냥 머리 푹 숙이고, 공무원 하자는 대로 맞춰주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1992년 조지 소로스의 콴텀 펀드가 영국 파운드화 폭락을 주도할 때도 그랬고, 2012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파운드화 폭락을 만들어낼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중앙은행은 자국의 화폐 가치를 지키기 위해 돈을 투입했지만, 이 돈들은 탐욕스러운 투기 자본의 좋은 멋잇감일 뿐이었다. 일단 투매가 시작되면 멀쩡한 나라의 경제도 삽시간에 무너지고 만다. 2012년 초순,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과 공기업의 신용등급을 별도로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때, 한국에서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공기업과 중앙정부의 신용을 별도로 평가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그만큼 한국 공기업이 이미 머니게임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은행에는 돈을 맡기러 와야 대접을 받지, 빌리러 오니 문전박대 아녜요.”

“세상에는 뱅커들이 움직이는 돈이 있고, 무기상들이 움직이는 돈이 있다. 그 돈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고,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시민의 정부가 경제 민주화를 맨 앞에 내걸고 뱅커들과 재벌들을 화나게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펜타곤을 화나게 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북한과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걸 기점으로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내는 게 무기가 움직이는 길이고, 그 길을 따라서 돈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시민의 정부에서 청와대는 뱅커들이나 기업들이 움직임을 잘 관찰하고 있었지만, 펜타곤 근처 무기의 돈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절망의 끝에는 오히려 평온함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안달하면서 초조해하는 것은, 아직 그 끝에 도달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은 정의롭지 않더라도 정의로운 것 아니, 정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애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중년의 사랑은 청춘의 사랑과는 다르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거나. 이미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서 이마가 깨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벽을 더 두려워하게 될까, 아니면 이미 부딪혀보았다고 덜 두려워하게 될까? 당연히 벽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중년의 사랑은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서운 벽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누구나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은 첫 번째 사랑이 아니라 마지막 사랑을 찾아 나서게 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하는게 중년의 남녀가 사랑하는 이유이다. 설령 사랑이 배신할지라도, 첫사랑이 아니라 마지막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종족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경제 방안을 직접 만드는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로펌들의 몫이 되었다. 금융이 복잡해지고 파생상품들이 도입되면서, 진짜 돈을 다루는 일들이 경제학자들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IB’라고 부르는 투자은행은 일반적인 은행과는 달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돈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개별 고객들이 필요 없게 된 투자은행의 시대가 열리면서 상품을 디자인하는 수학자들과 법학자들이 전면에 나서고, 경제학자들은 자문 역할로 물러서게 되었다. 돈이 돈을 부르는 시대의 클라이맥스로 가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모든 돈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국가부도의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모두가 고생을 하는 것 같지만 대통령이 치러야 할 대가가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IMF 경제위기로 돈을 번 사람들을 통칭해서 강남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그 위기 한가운데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왜곡이나 과장 없이, 정말로 그랬다. 새로운 정권이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은근히 IMF 같은 경제위기가 한 번 더 와서, 정치적 문제도 풀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았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경제쿠데타는 이렇게 20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경제에 관한 권한이 신임 총리에게 넘어가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차피 밑그림은 로펌에서 마련한 것이고, 누가 악역을 맡을 것이냐는 문제만 남은 상황이라서 형식이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1998년 5월의 어느 날, 청와대 경제수석과 기획수석이 자리를 맞바꾼 일이 있었다. 그게 1차 경제쿠데타였다. 그때는 IMF 자금 철수가 무기였다. 2004년 1월, 노무현 시절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외평채 가산금리가 무기였다. 2015년 2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개혁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3차 경제쿠데타가 감행되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 측근들도 대부분 청와대 내부에서 벌어진 예전 일들은 알지 못했다. 정권을 만든 사람들과 정권을 움직인 사람들이 다르고, 실제 일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지거나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더 이상 파생상품의 거래가 힘들어지자, 아직 전격적으로 파생상품을 도입하지 않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외국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싶어 하는 상태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같은 일이 벌어졌다. 명분이 늘 효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계파의 지분을 맞추고, 적당한 균형을 찾아서 결국 적당히 짜맞춘 경제팀을 만들다보니, 언제나 이현도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오늘 현실적으로 이현도가 경제대통령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된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보수 쪽이 집권했을 때는? 민주당도 견제하지 못하는 경제 관료들을 그들이 견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모피아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모피아가 형성된 이후 한국 경제의 역사는, 모피아들이 좀 불편할 때와 행복할 때, 이렇게 두 시기로만 나뉜다.”

“한국 경제에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서로 갈등하면서 조정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경제 관료 내에서의 성향 문제이지, 정말로 통치의 주체가 바뀐 적은 없었다.”

“내가 왜 경제학과 안 가고 법대 간 줄 아세요? 경제계에서 여자는 안 된다, 이거 한참 안 바뀔 거예요. 변호사 쪽이 훨씬 빠르다고 봤죠.”

“다른 건 다 바뀌어도 경제는, 하여간 암것도 없으면서 스스로 엘리트라고 떠들어대는 남자들의 왕국이에요. 완전, 동물의 왕국.”

“머니세이버 호는 중요한 금융 거래나 대형 인수합병 작전이 진행될 때 실제 회의실로 사용되는 배이다. 무엇보다 감청 등으로부터 비밀을 보호하기에 바다가 더 유리했고,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을 통해 외부로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에 대한 격리 효과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VIP의 접대를 위해서도 사용됐다.”

“군대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다 간첩 같은 놈들이고, 이적질하는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그냥 둘 수 없잖아요.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반역자들입니다, 반역자들.”

“왜 우리는 늘 돈이 없는가? 간단하다. 돈이 잘못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머니로 들어올 돈이 엉뚱한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TV나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런 걸 바로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은 늘 좌절하고 쓰러지거나 무기력해졌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 특히 야당 출신의 대통령과 그 주변 집단은 집권에 대한 의지는 강렬했지만 통치 의지는 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모피아들은 강력한 통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출세하겠다는 개인의 욕망과 집단적 통치 의지가 뒤엉켜서 분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의지는 강렬하다. 개인은 실패할 수 있어도 집단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는 모피아! 그러나 그들의 집단적 성공으로 인해 우리는 늘 돈이 없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랬지만 군벌이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중을 배부르게 하거나, 아니면 배부르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결국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라는 두 축 중에, 금융 쪽 힘이 너무 세진 거죠. 실제 일본이 부동산 버블 위기 때 우리의 재정부에 해당하는 대장성을 해체시켜 버리면서 상공부 쪽으로 권한을 대거 넘긴 사례도 있습니다.”

“”대선 때, 집권 욕구에 대한 얘기를 해준 사람은 많았는데, 통치 방법 아니, 통치 욕구에 대한 얘기를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이제야 내게 통치 욕구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솔직한 말이었다. 대통령 혹은 대통령을 만들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의 집권 욕구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강렬하다. 그리고 그게 개인의 영달이든 국가의 번영이든, 그 사람들의 욕구는 생존욕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다. 그러나 통치 욕구가 강렬했던 사람은 박정희와 DJ가 유일하지 않았나? 통치를 위해 집권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집권을 하고 나니 통치도 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대통령은 이 질문 앞에 서 있었다.”

“국가의 원수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의 주요 공장 시설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미묘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금융자본의 기세에 눌려 있던 실물경제의 힘을 빌려올 수 있는 돌파구를 열었고, 첫 번째로 뚫은 포위망이었다. 재계 서열 순위에 따라 지역별로 하나씩의 공장을 돌았는데, 죽어버린 사람인 줄 알고 안심하고 있던 사장들은 대통령이 여전히 건재함을 목격했다.”

“대통령은 답답함을 느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돈은 오너에게 가고, 오너는 그들에게 돈을 만들어준 노동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그 돈을 관리하는 은행에게 더 굽실굽실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 은행의 목줄을 쥐고 있는 관료들의 비위를 맞추게 된다. 그런데 그 관료들의 임명권을 사실은 대통령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공무원들의 힘이 고시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헌법에서 나오는 것인가?”

“남편 죽을 때, 딸도 죽었다는 얘기해줬죠? 지킨다고 꼭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키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건 죄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새끼 에이전트들이 무기 거래 한 건 하고 얼마 받는지 아세요? 100억이에요, 100억. 한 건 하고, 평생 숨어 살아야 할 비용이 100억이라고요. 싸다면 싸고, 비싸다면 비싼 거예요. 저는 한 번 움직이면 받는 돈이 최소 1,000억이에요. 목숨 열개를 걸어놓고 한 번 움직이는 거죠.”

“쪽지 줘봐. 내가 전화해줄게. 오지환, 간이 그렇게 작아서 게임을 어떻게 뛰냐. 만나보고 턱도 없는 소리 한다면, 조치는 그때 취해도 안 늦어요.”

“미국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경계를 높이는 중이었고, 중국은 미국 국채의 절대고객으로, 단번에 미국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은 무기로, 또 다른 쪽은 돈으로 서로를 견제하면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두 거인 모두, 자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군대가 움직이면 세계 평화를 깬다는 비난을 뒤집어써야 하고, 미국 채권을 일시에 풀면 세계 경제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맹비난 앞에 서게 된다. 더군다나 남북한의 통일은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당장 곤란해지는 것은 무기의 돈들을 움직이는 펜타곤이었다. 남북한이 끊임없이 대치하면서 크고 작은 국지전을 만들고, 일종의 테스트 마켓이자 확실한 구매처로 남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최적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나을 수도 있어. 그 친구가 정치 쪽 출신이라서, 은근히 골치 아플 수도 있어. 자리 탐하는 사람들은 돈으로도 매수가 잘 안 되거든. 게다가 잘못 협박했다가는 장인표 그 인간,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폭발할 수도 있어. 경제 쪽과 달리 정치한다는 인간들이 은근히 의리 같은 거 따지고 그리거든, 아주 끈적끈적한 종류의… 그냥 깔끔하게 사고사로 가는 게 제일 속 편해.”

“제일 높은 위치에 서는 방법은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장대 꼭대기에 서 있을 때는 흐름대로 있는 것이 제일 좋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쳐다보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게 제일 좋다.”

“통치 의지만 있지, 집권 의지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 정말 어려운 일 겪고 나니, 집권 의지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원래, 대통령 선거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게 형님 생각이었잖아요. 바뀐 건가요?

내가 바뀐 게 아니라, 시대가 바뀐 거지. 시민들이 직접 경제에 참여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살아남겠나. 미국, 일본, 프랑스 심지어는 중국까지 경제 엘리트들이 확실하게 국정을 주도하면서 선택과 집중으로 국가를 끌어나가는거 아닌가? 정치 민주화는 찬성하고, 경제 민주화도 찬성해.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생각하는, 그런 졸렬한 방식은 반대야.”

“대선 이후로 지리멸렬하게 흩어진 보수를 선진경제라는 명분으로 다시 묶어내는 데, 전직 혹은 현직 경제 관료들이 대거 입당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현도가 추진한 경제쿠데타는 해외에서 발행한 공기업 채권들을 몇 달간 소규모로 비밀리에 사들인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일거에 그 채권이 시장에 풀리면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 정도 채권이야 정부 연기금 등의 공적 자금으로 받아주면 그만이지만, 공기업 채권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보다 신용도가 떨어지는 민간 회사의 회사채는 물론이고, 주식에 대해서도 투매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더욱 다급한 건 그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원화에 대한 투매 현상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경제가 튼튼한 상황이라면 시장에 풀린 특정 국가의 대규모 유가증권은 오히려 돈을 버는 기회이므로 누군가가 바로 매입한다. 그러나 한국은 2014년, 부동산 버블 붕괴와 지방경제의 붕괴 등으로 지자체별로 지급불능 상태인 모라토리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 해외 채권이 투매에 가깝게 풀리면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열흘 내에 국가부도 상황 혹은 원화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특정 화폐에 대한 투매가 이루어지면 어떤 국가도 견디기 힘들다. 영국의 파운드화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이고, 그런 이유로 유럽 화폐통합에서 영국이 빠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사거나 아름다움으로 사는 것이다.”

“곱다, 참 오래된 말이지만 중년의 사랑에는 이만한 찬사도 없다. 김수진은 수많은 남자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지겹도록 들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에게 곱다고 말하는 남자는 없었다. 자신의 힘이나, 힘에 굴종한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남미가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이라면, 아프리카는 유럽의 힘이 더 강하게 미치는 곳이다. 미국은 유럽을 제제할 필요가 있을 때 남미에서 만나고, 반대로 미국이 무언가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일 때 아프리카를 만나는 장소로 사용한다.”

“정부직제를 개편한다는 것은, 매번 새로운 대통령이 집권을 하면서 이전 정권에 줄섰던 공무원들을 다시 자기 쪽으로 붙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큰 카드 옆으로 작은 카드들을 몇 개 더 마련해놓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간 금지하는 법안을 포함한 법률회사 관리에 관한 제도와 국회 등 로비에 관한 제도 정비였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무성으로, 국방 전문가들은 펜타곤 쪽으로 줄을 선다. 돈과 관련된 일은 워싱턴이 아닌, 뉴욕의 월가에서 기본적인 흐름과 방향을 결정한다.”

“국무성과 펜타곤 그리고 월가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움직이는 세 개의 다리이다.

미국에서 선거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그리고 국무성 장관이 전부이다. 월가는 유대인과 오일머니 혹은 수많은 자금이 얽혀서 이미 대통령 선거와는 무관한 독자적 권력이 되었다. 펜타곤 역시 수많은 무기 회사와 자금을 배경으로 군인들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장관이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더 이상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지환은 결혼과 동시에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를 사임하고 싶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가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아빠이고, 좋은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한 번 영광을 보면 더 큰 영광을 위해 끝없이 달려나가는 것이 삶이다. 어릴 때부터 야수를 잡아와야 하는 사냥꾼으로 길러진 남자들의 경우에는, 집 안에 갇힌 삶에서 만족하는 경우가 없다. 그게 오지환이 그보다 먼저 이 자리를 거쳤던 사람들과, 심지어 대통령과도 다른 점이었다. 이현도나 대통령이 오지환에게 느꼈던 신뢰감은 그런 특이점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 죽어라고 힘을 숭배하며 달려왔던 이전과는 또 다른 흐름이 등장한 것이다. 오지환은 그 사람들 중에서, 단지 가장 높은 자리에 우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돈과 사랑은 몇 가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탐하는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정말로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도 오지 않는다는 것. 모든 건 비워야 차는 법이다.”

“물러나? 결국 생각하는 게 그만둔다, 그런 것밖에 없나? 억울하면 억울한 걸 풀 생각을 해야지. 그래야 내 사람이지. 복잡하다고 그냥 물러난다는 사람에게 내 운명을 맡기고 있었던 건가?”

“우리가 이기는 게 세상이 좋아지는 거 아닌가? 그게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거든.”

“가서 며칠 쉬어. 일단 카드를 던졌으니 우리도 받아주자고. 그걸 받아줘야 저들도 다음 패를 꺼내겠지. 그 패 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아. 당신이 지금 없어져야 할, 꼭 없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아쉬울 거 없다. 참모의 길이 있고, 지도자의 길이 따로 있는거다. 넌 지도자의 길이 어울려.”

“우리의 피가 조국의 부로 돌아올 겁니다.

그렇겠지. 이게 결국은 다 돈 때문 아닌가? 하긴, 돈이 아닌 이유로 군인들이 목숨을 거는 일은 없지. 결국은 다 돈의 문제야.”

“오지환이 탄 헬리콥터가 날아오르는 순간, 한국과 중국 국채의 가산금리는 일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덩달아 일본의 가산금리도 내려갔다. 작은 국지전 양상으로 투매 직전까지 갔던 세 나라의 채권들이 순식간에 힘을 회복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돈은 누가 벌었을까? 제주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이어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미국 항모와 중국 항모가 충돌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펜타곤의 무기 펀드와 중국의 무기 펀드가 적지 않은 수익을 챙겼을 것이다. 긴박한 하루였지만, 그 와중에도 정보를 돈으로 바꾸는 일이 멈추지는 않았다.”

“한 국가의 돈의 운명은 그 나라의 경제적 운명과 일치한다. 그 나라의 경제가 강해지면 당연히 그 나라의 돈도 강해진다. 그리고 그 돈의 힘은 구매력 즉, 환율로 표시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딱 한 나라, 그러한 돈의 법치고가 거꾸로 간 나라가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던 시절 250원이던 달러화와 대비한 원화 환율이 그가 죽을 때에는 600원이 되었다. IMF 때는 평균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980원 수준까지 내려갔다가,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다시 1,200원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한국의 GNP는 1인당 2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지만, 몇 백 달러 시절보다 원화는 몇 배로 약해졌다. 원화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국민들의 구매력도 약해진다. 그 대신 대기업 특히, 수출을 하는 기업들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대한민국은 경제가 강해져도 원화는 더욱 약해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화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IMF 경제위기의 핵심 메커니즘 역시 원화 가치의 하락이었다. 1달러를 사는 데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 그걸 나타내는 원화의 가치가 환율이다. 원화의 힘이 떨어지면, 한국에서 찍어낸 돈이 외국인에게는 휴지처럼 느껴지고, 개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원화가 휴지가 되기 전에 내다팔기 시작할 것이다.”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몇 장과 금반지 한 개, 지금 오지환이 싸우고 있는 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지환이 가끔 말하던, 마음을 이기는 돈은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에야 이해가 됐다.”

“통일부는 크게 돈을 벌거나 영광을 볼 일이 없어서, 모피아들이 침투해 들어가지 않은 정부 부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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