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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섬 ★★★☆☆

읽은 책 : 장 그르니에, 『섬』, 민음사

다 읽은 날짜 : 2019년 10월 25일

< 읽게 된 동기 >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나온 책.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 ‘섬에 부쳐서’ 때문에.

(생략) 나는 아직도 그 독자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될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14p

< 한줄평 및 별점 > ★★☆☆ ( 3점/ 5점 )

옛사람의 소소한 이야기. 시대는 흐르지만 생각은 비슷하다.

<서평>

집에서 전에 다니던 회사까지 지하철을 타면 1시간이 걸렸다. 만원 지하철에 책을 들고 읽을 수가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듣는 것이었다. 저작권 때문에 책을 모두 읽어주지는 못하지만, 책 소개를 듣고 지하철에서 내릴 때면 그 책을 다 읽은 기분이었다. 그때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를 듣고서 이 책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는 스승인 ‘장 그르니에’에 대한 아부성 멘트가 아니었을까.

‘섬’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이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에 대한 추억, 낯선 도시로의 여행기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쉽게 놓치는 일상의 것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잡아내서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다만, 쉽게 읽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좋은 음식처럼 꼭꼭 씹어 먹어야 제맛을 내는 책이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 물루’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나는 ‘행운의 섬’ 첫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대만으로 자유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더 내 마음에 꽂혔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95p

마음 편하게 도착해서 중요 관광지만 빠르게 보는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나로서는 자유여행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대만에 도착해서 이때까지 일상에서 써본 적 없던 영어를 쓰고 구글 맵으로 길을 찾고 우버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 오는 날은 갑자기 일정을 바꾸는가 하면 예정에 없던 만남에서 현지인의 맛집을 찾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도 타이페이라는 도시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을 하고서 새로운 곳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1년간 고전 문학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왜 그렇게 많이 읽었는가 생각해봤더니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에서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흥미를 느끼고 말을 건넨다.

나가사와라는 사내는 알면 알수록 기묘한 남자였다. 나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나 따위는 따라잡지도 못할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은 지 삼십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밖에는 믿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문학을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인생은 짧아.”

쓰여진 지 30년이 훨씬 넘은 ‘섬’이라는 책을 읽고서 고전이라고 해도 현대보다 더 우월하거나 깊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나 21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나 훌쩍 떠나는 여행을 바라고 고양이!를 좋아하니 말이다. 이제 지적 허영심을 버리고 현대 문학(혹은 최근 쓰여진 책)에서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보며 더 열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은 현재 이 땅에 발을 내디디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인상 깊은 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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