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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정의란 무엇인가 ★★★★★

읽게 된 동기

‘ STEW독서소모임’ 지정 도서

한줄평

‘당연’을 ‘당연’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읽어야 할 책

서평

우선 이 책은 나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가방이 텅텅 비었는데도 굳이 책을 손에 들고 다니고 싶게 한다. 물론 제목이 잘 보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책장 한 가운데에 꽂아놓으면 묘한 만족감을 준다. 한편으론 책이 출판되어 선풍적 인기를 끈 지 오래되었는데도 정작 읽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맛있는 반찬은 마지막까지 남겨뒀다 먹는 일과 같은 이치라고 핑계를 대본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맞이했을 때 순간적인 판단을 한다. 언젠가 어느 회사 대표의 인터뷰를 보았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불쾌감이 좀 들었다. 논리를 자세히 따지기 전에 쾌・불쾌라는 감정이 먼저 왔다. 그 대표의 언어 안에는 어떤 가치가 담겨 있었고 그 가치는 나의 신념과 배치되는 축에 있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드는 감정과 생각을 종합해보면 내가 평소에 어떤 가치를 중히 여기는지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를 신뢰한다. 이성이 작동하기 전에 직관적으로 판단을 하였더라도 그 판단과 선택은 내가 평소 중히 여기는 가치들이 뇌 속에서 서로 충돌하며 내린 최선의 결론일 것이다. 결정을 내리고서도 의구심이 들어 종이를 펴고 각 선택의 장단점이나 이유를 나열하고 나면 첫 판단이 얼추 맞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자동적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고만 있으면 ‘당연’의 탈을 쓴 논리에 의문이 제기 되었을 때 말의 빈곤을 겪게 된다. 논리는 언어화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 무수히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봐.”혹은 “반대 입장인 나를 설득시켜 봐.”라고 나오면 뭐라고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의 빈곤이다. 이러한 말의 빈곤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고 그냥 넘기면 나중에는 꼰대가 되고 만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꼰대보다 더 무서운 신념만 고수하는 완고한 사람이 된다. 인류에 심각한 해를 입힌 독재자들은 자신의 신념만을 고수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 아래의 인용구를 보며 섬뜩했다.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가장 열광적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된다. 성자와 같은 일편단심의 이상주의자와 미치광이 광신자의 거리는 단지 한 발짝에 불과할 때가 많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책은 명제 하나를 던지고 그것을 철학자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그 철학의 맹점을 들고 다시 재반박하는 구성이다. 각 챕터 별로 대략 한 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처음에는 마치 심리테스트를 하듯이 “나와 맞는 철학자는 어떤 사람일까?”궁금해 하며 인덱스로 표시를 해가며 읽었다. 칸트와 롤스의 논리가 나온 부분을 읽을 때 인덱스와 메모가 가장 많이 늘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챕터의 후반부에서 그에 대한 반박을 읽을 때는 전적으로 싸고 돌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떤 철학자는 겉보기에 훌륭한 명제를 세웠지만 현재 관점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결국 책을 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어느 한 철학자의 말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각 철학자들의 말을 들어가며 학술적으로 보이는 서평을 쓰려다가 읽고 난 전반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어떤 철학자의 맹점을 알게되면서 실망했다고도 했지만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내가 사는 현실 안에서 이치를 따져 무엇이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라는 개인 한 명이 아닌 보다 많은 이의 행복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나의 철학이다.

철학책을 찾아 읽을 만큼 지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철학자를 단독으로 만날 일은 잘 없다. 대부분 다른 인문서적을 읽다가 책의 저자에 의해 선택적으로 소개된 철학자의 이론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드문드문 파편화된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해 둔 좋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단번에 토론을 잘하게 되고 명석한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두고두고 곁에 놓고 읽으면서 나만의 철학 논리를 세우고 싶다. 관심이 가는 철학자의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엄청난(?) 다짐도 한다.

인상 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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