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와 기차 이야기를 해주어서 알게된 책. 그때 그 친구가 빌려준 책이 아직도 내 책장에 있었다.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게 됐다. 이제 돌려줘야 겠다.
한 줄 평
내 안에만 갇혀있던 도덕과 정의에 대한 관념을 바꿔버린 책.
서평
나는 공리주의자 였다.
나는 공리주의자 였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 집단의 행복이 가장 커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선택을 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어떤 모임의 장이었을때의 일이다. 모임의 식사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의 선호가 높은 것을 찾으러 애를 썼다. 열심히 후보지를 찾고, 그 후보지를 투표에 올리기도 했다. 그럴때, 나는 내가 모임의 장이라는 큰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 결정하는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했다. 이것이 권력으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것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한가지 생각이 있다. 나는 나의 행복을 조금 줄이더라도, 집단 전체의 행복을 더 크게 늘릴 수 있다면 그런 행동을 기꺼이 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게 좋은사고방식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 집단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항상 사람들이 더 행복할 테니까. 이 사고방식이 정의로우며 존중받아야 하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바란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테니, 다음에는 너가 양보하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집단 전체로 보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도 공리주의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다음에 자신이 바랄 이익을 기대하면서, 양보하는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쾌락이나 이익을 위한 행동을 도덕적 가치가 없는 일이며, 의무적으로 하는 행동이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상대방에게 배려와 양보를 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내가 하는 만큼의 배려와 양보를 기대해왔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의도가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나의 미래의 호의를 바라며 또는 어떤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이렇게 하는것이 나쁜 행동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간혹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다. 사실, 내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었어도 상대방이 다음에 내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는 없다. 만약 그런 의무가 있다면 내가 베푼것은 호의가 아니다. 나는 호의가 아니라 미래의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던것 같다. 상대방에게 다음의 호의를 바라며 호의를 베푸는 행동은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칸트의 말에 따르면, 조건이 붙는 행동인 가언명령이다.
정의로운 행동이라면’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 인간을 위해 내가 세운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깝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모든 행동을 합리화 할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모든 행동을 합리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반의 학생들이 모두 동의하여 한 명의 학생을 왕따시키는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또 한 예로, 한 나라의 최고 부자가 한 명 있다. 그 부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동의한다고 해도, 한 나라의 최고 부자에게 재산의 일부를 모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남의 재산을 빼았는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법의 우선순위.
정의와 법이 항상 같은곳을 바라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 개념일까. 한 상황을 고려해보자. 자신의 아이가 굶주려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했을 때, 어느 상점의 빵을 훔쳐 아이에게 주었다면 이것은 생명을 구했으므로 정의로운 행동인가, 타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정의롭지 않은 행동인가? 나는 생명이 재산의 소유권보다 높은 단계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행동은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 문구
- 인간은 단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은 목적이 되어야 한다.
- 권리가 공리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권리의 도덕적 근거는 무엇일까? 여기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개인은 타인의 행복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자기소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내 삶, 내 노동, 나라는 인간은 내게, 오직 내게만 속한다. 사회가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 나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인간은 목적이라는 공식이다.
- 그러므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것도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로 용납될 수 없다.
- 칸트가 생각하는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상대가 어디에 살든, 우리기 상대를 얼마나 잘 알든, 모든 사람이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 이 말은 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한다면 누구나 똑같은 결론에, 유일한 정언명령에 이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유의지와 도덕법에 따른 의지는 똑같은 하나다.
- 보편화하는 것은 강도 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 하려는 행도잉 다른 사람의 강도 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 하려는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지 점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