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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데이터에 관한 희망찬 이야기 모음집

읽게 된 동기


2020 STEW 1월 지정도서

한줄평


데이터에 관한 이상적인 기사를 짜집기한 블로그 모음집

서평


먼저 2019년도 마지막 서적을 이 책으로 선택한 것에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 1월 독서소모임을 위해 읽어야 했지만, 연말 휴가를 반납하고 이 책을 붙잡고 있자니 괴로움이 몰려왔다. 도대체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일까?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저자 이력에 비하면 너무도 아쉬운 책이다. 정말 저자가 쓴 책이 맞나 의심이 든다. 이 책이 3쇄를 찍은 것에 제목이 갖는 힘을 새삼 느꼈고, 온라인 서점 예스24 기준 평점 9.2를 확인하며 좌절했다. 이는 사피엔스와 같은 평점이며,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0.1점 높은 점수다.

여기에 안 하느니만 못한 번역가의 해설은 황당하다 못해 짜증이 났다. 아니, 도대체 협업 도구 슬랙이 IoT와 뭔 상관이며, 스크럼 도대체 무슨 맥락이냐. 전산을 공부했고, IT 기업에서 일했다는 이력을 확인하게 된 번역가의 ‘코드’ 해설을 소개하며 이 책의 아쉬운 부분 설명을 시작한다.

스크럼과 슬랙은 모두 IoT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협업 관리 도구다. – 옮긴이

코드 :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구동시키는 명령어 – 옮긴이

IOT는 데이터와 인공지능과 엣지와 블록체인과 보안과… 아무튼 짱임!!

초격차라는 책이 나오고서부터일까? 책 제목에 ‘초-‘가 붙는 경우가 많아졌다. 초예측도 있고… 이 책은 초연결이고… 책을 다 읽고서 도대체 이 책은 왜 초연결로 지었나 싶어서 원서를 찾아봤다.

The Future is Smart. 어디가 초연결이냐.

연결에 관해서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웨어 392호>를 만들며 공부한 경험이 있다. 결과적으로 체인 빅뱅(Chain Bigbang)이라는 제목을 달게 됐지만, 처음 기획은 Connecting the World 였다.

내가 만난 전문가들은 각각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인더스트리 4.0, 의료 빅데이터, 클라우드 보안 등 연결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썼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콘텐츠를 정리하며 건설, 자동차, 제조, 의료, 보안 등 각 분야에서 연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배웠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을 IoT라는 이름으로 묶어도 될까?

IoT, Internet of Thing은 우리말로 ‘사물인터넷’이다. 말 그대로 사물에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게 쓰레기통이든, 냉장고든 인터넷을 연결하면 IoT다. 책 내용처럼 IPv6(Internet Protocol version 6)체계가 도입됐고, 무한대에 가까운 IP를 부여할 수 있다. 컴퓨팅 속도도 빨라졌고, 저장공간 가격이 제로에 수렴하며 정말 모든 것을 연결하는 희망찬 미래에 다가가는 듯하다. 그런데 전문가로서 희망찬 미래만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 내용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진 커리어 덕분도 있지만, 이는 꼭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이미 흔히 알려진 내용이란 것이다.

때문에 모든 기술을 언급하며 IoT라 엮는 내용이 불쾌했다. 저자 또한 각 기술이 IoT 하위 기술에 속하는 게 아니란 걸 알테니 말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IoT 솔루션은 ‘데이터 수집력을 향상시키는 일’과 ‘그것을 조사하고 분석할 데이터 과학자를 영입하는 일’ 두 가지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IoT를 가능케 하는 최초 접점인 센서(감지기)는 IoT를 위한 기술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IoT의 하위개념인가? 데이터 분석이 IoT에만 사용되는가?

각 노드에서 엣지 컴퓨팅이 IoT를 의미 있게 한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클라우드 기술 자체가 IoT의 하위 개념인가?

도대체 뭔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핫하다는 기술이 죄다 IoT를 위해 존재하는 듯 설명한다. 그래서 IoT가 도대체 뭔가?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원서 제목을 찾아본 것이다. The Future is Smart. 어디가 초연결이냐. 번역서 부제는 ‘구글, 아마존, 애플, 테슬라가 그리는 10년 후 미래’다. 그리고 원서는… How Your Company Can Capitalize on the Internet of Things–and Win in a Connected Economy 너무 다른 거 아니냐.

각 로컬에 맞게 적절히 번역하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초-‘라는 접두사가 유행한다고 억지로 ‘초연결’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3쇄를 찍었다. 각 기술 위에 IoT라는 상위 기술이 있다면, 그 위에 마케팅이 있다.

밝고 희망찬 미래 기술

이제 내용을 보자.

저자가 독자를 ‘휴가지에 누워 있는 CEO’를 대상으로 했다면, 딱 거기까지 이 문체에 동의를 할 수 있겠다. 전장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는 CEO에게 밝고 희망찬 미래는 심신건강에 좋다. 그게 아니라면, 현실 얘기도 해야 하지 않는가?

2016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AGT의 AI 해설가는 무대에서 포착한 관람객과 모델의 움직임, 대화, 복장 등을 포함해 폭넓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공연이 끝난 뒤 AI 해설가는 홍보용 후기 포스트와 비디오클립을 수백 개나 만들었다. 그 결과 이전 행사에 비해 콘텐츠 구독률이 4700퍼센트 증가했다.

아주 흥미롭다. 4700퍼센트라니,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프로그래밍 전문 지식이 없는 콘텐츠 제작도 인터넷을 통해 뷰포리아 소프트웨어에 접속해 자신만의 직관적인 증강현실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와우. 이제 개발자는 뽑을 이유가 없겠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전문 지식이 없는 직원이라면, 어떤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 될까?

농기계는 해마다 새로 살 필요가 전혀 없지만, 데이터는 해마다 새로 사야 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데이터의 이점을 한번 경험해본 고객은 반드시 우리를 다시 이용할 수밖에 없다.

역시, 데이터다. 데이터가 구독 경제도 만들어주는구나. 역시 우리 회사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구독 경제를 실현해야겠어. 좋아. 휴가를 마치면 우리 회사는 넷플릭스로 향한다! 그런데 뭐부터 하면 되지?

프랫앤드휘트니는 GTF 엔진에 감지기를 5000개나 설치했는데, 초당 10기가바이트에 이르는 데이터를 생성한다. 평균 비행시간인 12시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844테라바이트에 이른다.

그래, 센서부터 사야지. IoT의 생명은 센서와 데이터지. 일단 센서가 있어야 데이터를 만들지. 그렇고말고.

디지털 사회의 특징은 먼저 자리를 잡아 표준의 기준을 장악하는 자가 모든 영광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빠르게 해야 해. 역시 내가 전선에 복귀해야 회사가 돌아가지. 여보세요? 어, 김비서. 나 돌아가야겠어. 우리도 IoT인가 뭔가 해보자고. 일단 센서 5만개 사둬.

GE의 내부 평가에 따르면, 세계 곳곳의 500개 넘는 GE 공장 가운데 약 100개가 ‘생각하는 공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생산성과 이윤을 최대로 끌어올리고자 ‘린 생산방식’과 ‘3D 프린터’, 그리고 ‘전면적인 디지털화 전략’을 결합했다.

내일부터 우리 회사는 ‘전면 디지털화 전략’을 시작한다! 뭐?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튤립의 제조용 IoT 플랫폼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은 코드를 아예 입력하지 않아도, 혹은 매우 간단하게 쓰기만 해도 구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짤 줄 모르는 공장 엔지니어도 단계별로 차근차근 알려주는 쌍방향 안내서를 보며 현장용 애플리케이션을 뚝딱 만들 수 있다.

걱정 마. 설명서가 있어.

블로그 모음집

성공사례가 무궁무진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으스댈만한 성공사례는 정해져 있다. 제트기 데이터 이야기는 3번이나 나왔고, 쓰레기통 이야기 등 반복해서 언급하는 사례가 많았다. 사실 사례보다 ‘어쨌든 데이터 모아서 분석해야 해’라는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불편했다.

각 챕터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서 이상함을 느꼈다. 도대체 이 저자가 뭐 하던 사람이었지?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맞는 거야? 저자가 말을 반복할 때마다, 나도 이 생각을 반복했다.

W. 데이비스 스티븐슨은 미국 국토안보연구소 전문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밖에도 다양한 신산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IoT 솔루션을 집약한 ‘스티븐슨 전략’을 수립해 구글, 아마존, 테슬라, GE 등 초대형 글로벌 기업의 IoT 혁신을 도왔고,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시티 정책으로 손꼽히는 워싱턴 D.C. 스마트시티 사업을 주도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분야의 최신 이슈와 소식을 전하는 최상위 구글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으며,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허핑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등에 다수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렇다. 블로그와 칼럼을 모은 책인 것이다.

적힌 이력이 맞다면, 각 프로젝트에서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한 게 맞다면, 각 칼럼은 힘을 얻는다. 하지만 칼럼과 책은 다르다. 각 칼럼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각자일 수 있지만, 책은 큰 하나의 맥락을 가져야 한다. 그 맥락이 ‘아무튼 IoT 짱임’이라면, 너무하지 않는가?

신기술 도입에 관한 가장 흔한 반박인 ‘노동자 감소’에 관한 질문도 너무 편안히 넘어간다. IoT를 도입해도 결국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할리데이비슨이 41채나 있던 공장 중 39채를 없애고 2채만 남겼다. 노동자 2천 명 중 800명만 남았다. 이에 저자는 노조가 개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영영 스마트 제조 기회를 놓쳤을 거라며 문단을 마친다. 도대체 전문가로서 견해는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사례를 모아 전달하는 것이라면, 뭐가 ‘초연결’이란 말이냐. 블로그 포스트 초연결이냐.

마무리

책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글이 있다. 무려 ‘초연결시대 IoT 설계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10개로 마치 가톨릭 십계명처럼 적어놨다. 그리고 첫 번째 항목은 이렇다.

우리는 호들갑 떠는 IoT 광고를 믿지 않는다.

연결이 중요하다. 연결을 위해 센서가 필요하다. 각 센서는 빠른 처리를 위해 엣지 컴퓨팅을 도입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중앙화된 데이터 센터 위험을 막을 수 있다. 데이터를 모으는 것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좋은 데이터 과학자를 뽑아야 한다. 통찰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로 팀을 구성해야 한다. 모든 설계는 보안이 기반돼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뭘까? 위 소개된 메시지는 미래기술을 말하는 인터넷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냥 다 좋은 말 아닌가?

사실 표지를 보니 CEO가 휴가지에서 읽는 책이 맞는 것 같다. 제목이며, 부제며 나무랄 대가 없다. 내가 잘못했네…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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