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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극받지 못하는 이유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좋고, 정리된 생각을 전달하기 좋다. 매일 글을 쓰지만, 때때로 글이 신기하기도 하다. 몇 자 안 되는 모음과 자음이 만나 무한한 표현을 한다.

기자로 일하며 글을 편집할 때는 무한한 새로움을 느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필자들이 보내는 글에 담긴 색채는 너무도 달랐다. 때론 간결함에 놀라기도 했고, 때론 흥미로운 이야기에 손뼉을 치기도 했다. 그저 문자의 나열인데, 어찌 이렇게 다를까?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청년 대부분이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온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토록 다를 수 없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다르기에 때로는 같기에 상처를 받는다. 어떤 이는 평생 상처 속에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태어나 늙고, 죽는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 삶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왜, 살아야 할까?

타인에게서

책 <인생 수업>에서는 저자가 만난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생을 미워했던 친구를 용서하는 이야기.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자신을 용서하는 이야기.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등. 친구의 친구에게 들을 법한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내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내 어떤 결핍을 용서해야 할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혼자일 때 고통받는 인간이, 왜 함께일 때도 고통받아야 하는지. 그런데도 왜 우리는 함께해야 하는지.

타인의 이야기에서 저자와 나는 함께 공감했다.

죽는 이에게서

저자는 죽는 이를 참 많이 만났다. 책 <인생 수업>을 읽으며 몇 차례 내 죽음을 상상해봤다. 지금 죽으면 누가 슬퍼할지부터 시작해, 무엇이 남을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삶인지. 그리고 죽은 뒤 나는 어떻게 될지까지. 죽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어떨까? 글쎄, 일단 나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현재도 즐기며 하는 일이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의 다음 열매를 더 맛보고 싶다. 내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충분한 보답을 못 하기도 했고, 내게 도움을 바라는 이에게도 더 큰 도움을 주고 싶다. 어쩌면 이 아쉬움은 내가 노인이 돼서도 끊이지 않을 것 같다. 난 욕심이 많거든.

마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얻고 싶은 것을 향한 내 욕심은 삶의 원천이며, 얻지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내 삶이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내 몸부림이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갈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내 영혼이 안쓰러워 보일 것이다.

죽음은 확실하지만, 때론 죽음을 잊고 사는 것도 필요하다.

내게서

최근 유튜브에서 여러 영상을 봤다. 수퍼카를 10여 대 가진 의사, 억대 연봉을 올리는 온라인 사업자. 그들의 부가 부럽기도 했지만, 수퍼카에 앉아 시동을 거는 내 모습을 떠올렸을 땐 마냥 행복한 내가 없었다. 내가 본 모습은 시동을 걸며 다음 목표를 떠올리는 나였다.

동기부여를 하겠다며 자극적인 말을 뱉는 이들이 왜 내게 큰 자극을 주지 못하는지 생각해봤다. 문제는 결핍. 나는 그들이 말하는 자극에 큰 결핍이 없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함께 하고 싶은 이들과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산다. 물론 더 대단한 일을 하면 좋겠고, 더 비싼 것을 사면 좋겠지만, 그건 결핍이 아니다. 그냥 더 좋은 것 뿐,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내게 물었다. 이대로 만족하느냐고, 더 얻어야 할 것은 없냐고. 더 원하는 것은 없냐고. 있더라. 하지만 그게 수퍼카는 아니었다. 그게 억대 연봉은 아니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이다. 더 맛있는 물, 더 영양가 높은 물을 마시면 좋겠지만 일단은 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더 맛있는 물도, 더 영양가 높은 물도 결국 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인생 수업>은 좋은 명상 도구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명상이었다. 좋은 도구였지만, 도구가 없이도 명상을 할 수 있는 내게 반복되는 도구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늘 배우고 있는 내게 복습은 필요했겠지만, 다시 한 번 ‘수업’이 필요하진 않았다.

마무리

문자의 나열인 책처럼, 호흡의 나열인 하루. 눈 깜빡임의 나열인 하루가 때론 간결하고, 때론 화려하고,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호흡을 나열하고, 눈 깜빡임을 나열한다. 그게 어떤 모습을 만들지는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호흡이 꽤 만족스럽게 나열된다면, 더 이상 좋은 도구는 필요 없을 것이다. 호흡 자체가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줄평 ★★★☆☆


명상하는 기분이 드는 책.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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