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STEW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서평


 알랭 드 보통.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에, 감히 현 21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라 말하겠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20대 초반, 한창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유치한 감상과 진지한 고민을 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책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 공감돼서 흥분의 도가니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 공감하는 감정보다는 딱딱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는 내 모습은 나이를 먹어서일까?

마지막 역자 후기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책은 저자가 25살에 쓴 초기작이라는 것이다.

최근 두 권의 책을 1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같은 글 같은 장면에 대해, 내 삶의 흐름과 함께 그 느낌 또한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10년의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깨닫는 것은 참 값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 생각에 대해 달라진 내 태도에 조금 놀랐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성숙이지만, 부정적으로 말하면 때가 많이 붙었다.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우연이라는 상황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끼던 때가 언제였을까? 계획적인 삶을 강요받는 시대이다. 유치원 때부터 학부모들은 계획적으로 자식의 삶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은 모든 것에 계획적으로 다가가는 게 성공의 원칙으로 생각한다. 불행한 것은 감정 또한 계획하게 된 것이 아닐까?

10대, 20대 자그만 우연에도 행복해하며 운명론적 사고를 했던 소소한 순간들이 있다. 저자 또한 본인 20대의 우연과 운명적인 사랑을 기초로 이 책을 썼다.

나를 돌아보며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아직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순간들에 우연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굉장히 감상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낭만적 실존주의나 금욕주의 같은 이성적인 해결책으로 사랑에 접근하지 않기에 행복과 고통의 조화 속에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마르크스주의

참 공감되는 장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가벼운 멜로 소설에 딱딱한 철학적 내용을 잘 조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의 25살 현학적인 태도가 오히려 사랑을 더 심오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읽기 어려우면서도 더 오기를 가지고 읽는 것 같다.

저자는 (부족한)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소름 끼치는 문장이다. 이기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나도 그랬고 내 주변에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싸운 커플들이 많다.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 없던, 또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부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같은 것이고, 이 다름이 맞기에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 평온한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생각으로 트집을 잡고 이상한 생각을 할까. 이 행복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불안에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 이 기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는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 사이에 균형에 달려있다고 한다.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내가 상대방을 통해 어떤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 않는다

 너무 슬픈 문장이다. 이 책에서는 결국 클로이가 주인공 친구 윌과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는 너무 잔인했다.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사랑하면서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 주인공 또한 책 중간쯤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

사랑하면서 상대방을 알아간다. 그 앎을 통해 더 상대방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앎의 욕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향하는 욕심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지 않을까 멋대로 판단해본다. 인간의 앎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일까.

몇 번 이런 연애 상담을 해 본 적이 있다. 지금 여친, 남친을 사랑하는데 다른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난 냉정하게도 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결국에는 너와 연인에게 상처를 주고 좋지 않은 결말을 가지고 올 거라고. 뭐 나도 그렇게 차인 적이 있기도 하다.

어렵다

참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20대 초반에는 쉽게 읽으며 쉽게 공감했지만, 지금은 너무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다.

‘사랑하기 가장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은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 20대 후반이 되면 연애를 할 때 많은 것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변에서 가르친다.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평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따짐이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이 외에도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지만, 글로 표현하기에는 끝이 없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 또 나에게 많은 교훈과 숙제를 주었다.

한줄평 ★★★★


아름다운 멜로디, 기분 좋은 리듬, 생각을 만드는 가사가 자아내는 한 편의 인생 노래

인상 깊은 문구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 p39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 p48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 p52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 p59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 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p70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 p110

사랑은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회에 의해서 구성되고 규정된다 – p111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 p122

그녀에 대한 나의 지식은 나 자신의 과거를 통해서 여과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 p154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61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p161

연인들은 단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랑의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 – p186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 p191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p240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