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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모르는 30대 직장인이 읽어야 할 책

내 첫 회사는 은행을 고객사로 하는 IT 회사였다. 은행이 IT 서비스를 발주하면, 이를 수주해 만드는 ‘을’사에 해당했다. 덕분에 나는 지난 6년간 은행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로 살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은행과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6년 중 2년은 프리랜서로 일했다. 당연히 은행 직원들과 친분도 생겼고,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 친구도 자주 만나면 단점이 보이는 법, 6년여 매일 같이 은행과 일하다 보니 은행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은행이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눈에 보였고, 나는 홀로 큰 결단을 내리며 업계를 떠났다. 나는 사실 은행이 곧 망할 줄 알았다.

망하지 않은 은행, 레거시의 힘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내게 은행은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내가 짠 코드가 은행 서비스가 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실제 악성코드를 심었던 개발자가 실형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내가 투입된 첫 프로젝트에서 나는 실제 돈이 오가는 ‘이체 기능’을 개발하게 됐다. 악성코드를 심을 생각은 없었지만 살 떨리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생긴 뒤, 한 프로젝트에서 내가 만든 코드에서 보안이 취약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오픈을 앞둔 상황에서 이는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 있는 큰 위기였다. 다행히 사내에서 기술력을 자랑하는 리더가 문제를 해결해줬지만, 모두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몇몇 고비를 이겨내고, 경험이 쌓이니 맡는 일들이 다소 시시해졌다. 나보다 경험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내 입김이 세졌다. 나는 은행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한편으로 무시했다. 더 좋은 환경으로 가지 못하는 그들의 안일함을 탓했다. 분명 더 나은 환경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점이 보였다.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내 위치에서 누군가를 곤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보내는 신뢰만큼 나는 시스템을 무시했다.

은행에 속한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 그들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 그들로 이뤄진 그 시스템에 나는 실망했고 더 배울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한 곳으로 떠났다.

그렇게 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는 내 한심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은행과 함께 일했음에도 나는 은행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은행에서 일하면서도 나는 은행을 이해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던 일을 조금 잘하게 됐다며, 시스템을 무시했다.

내가 은행과 일하지 않은 지 몇 해가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은행을 이용하고, 은행이 만드는 자본주의에 살아간다. 쉽게 무너질 줄 알았던 은행들이 여전히 막강한 것을 보며, 내가 힘들게 만들어 둔 서비스들이 너무도 쉽게 대체되는 것을 보며, 자본의 힘 앞에서 내가 알았던 모든 지식이 그 누구에게도 의미 있게 쓰일 수 없게 된 것을 보며.

비로소 나는 은행이란 레거시 시스템에 관심이 생겼다.

30대 직장인에게 경제란

거창한 인트로였지만, 나는 여전히 은행을 모른다. 어느새 9년 차 사회인이자 30대 직장인이 됐지만, 은행은커녕, 자본주의는커녕, 귀여운 내 월급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끼리끼리 논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동료 중 경제 지식이 뛰어나 자본주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몇몇 금융인도 그랬다. 은행에서 일한다고 해서 무조건 은행 시스템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더라.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를 몰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는 큰 불편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커리어가 쌓이고, 조금씩 내 경제력에 안정이 생기며 한 달 뒤, 반년 뒤, 혹은 1년 뒤 등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또, 그동안 기록된 내 통장 내역을 보며 이렇게만 살아서는 내가 원하는 삶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자, 나는 조급해졌다. 아니, 그동안의 삶이 그토록 바보 같을 수 없었다.

돈의 양이 늘어나면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인플레이션이 따라온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은행’이 있고 ‘중앙은행’이 있는 한, 인플레이션이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치명적인 현상인 셈이다.

머리를 굴리고 싶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잉여 시간이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자본을 굴려야 할지, 기회를 찾아야 할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기술을 쌓아야 할지, 기회를 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인맥을 넓혀야 할지, 건강에 투자해야 할지, 아니 그저 내 행복을 좇아야 할지.

하지만 머리를 굴리려 해도 지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식보다 더 큰, 내가 가져보지 못한 거대한 자금이 내 선택지를 막았다. 만약 내가 부자라면, 재정적 자유를 얻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얼마가 필요할까?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돈이 필요할까?

결국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민만 하게 될 것이고, 평생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늘 하던 것을 하며, 추가로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렇게 주위에 경제 공부에 관한 도움을 요청했고,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로 이 책을 만났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는

오랜만에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제작이 주가 된 작업이라 후속작이 있는진 모르겠다만, 이 팀이 경제 관련 책을 또 쓴다면, 구매는 물론 약간의 투자를 할 생각도 있다. 그만큼 나는 이 책과 팀에 감사를 표한다.

사실 이 책 내용 중 많은 부분은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다. 하지만 쉽게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경제 입문서로 적절하며, 2020년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FRB는 미국 정부를 고객으로 하는 몇몇 이익집단들이 단단히 결합된 모임체일 뿐이다. 정부 예산을 쓰지 않으며, 정부 차원의 감시도 없다. 그들은 금이 없어도 되고 별도의 은행 거래 창구도 필요 없다.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돈을 찍어내 미국 정부에 달러를 빌려주고 거기에 따라서 이익을 얻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 바퀴와 더불어 이 FRB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2018년 기자 시절, 블록체인을 취재하며 미국 연준을 욕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연준이 정부 기관이 아니며, 그냥 돈을 만들고 싶을 때 만들 수 있는 사설 조직이란 말에 헛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도 나는 연준이란 것이 뭔지 몰랐다.

그나마 블록체인을 만나고 난 뒤 삼바 분식회계 사건(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라던가, 기준금리 인하, 통화 스왑 등 경제 관련 뉴스에 관심을 두게 됐다. 온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몇몇 사건을 따라갈 수는 있게 됐다.

몇몇 주위 친구들과 경제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는데, 사실 지금까지는 목돈을 모을 기회가 없었다. 학자금을 갚고, 월세를 살고, 창업을 해 불안정한 시기를 겪는 바람에 늘 한 달살이 인생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옮기고, 전세를 시작하며 조금씩 재정 상태가 안정됐다. 덕분에 친구들과 나누는 경제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특히, 저축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저축을 하느니 나 자신에게 투자하겠다며, 영어 수업을 듣거나 책을 사고, 차라리 주위 친구들에게 밥을 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 년 동안 일해도 내 재정 상태가 특별해지지 않고, 늘 이렇게 유지된다면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1~2% 단위 이자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1~2% 단위 이자도 받지 못한다면, 내 자산이 매년 1~2% 이상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도대체 여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은행이 하는 일의 본질은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서비스를 만들면서도 바보같이 쳐다보지 않았던 많은 상품들. 그들이 바로 옆에서 하던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눈을 뜨게 된 내 지난 날이 참 바보 같았다.

어쨌거나, 이제서라도 나는 경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마냥 어려웠던 단어들도 조금씩 익숙한 단어를 늘리고 있다. 내 재정 상태는 조금씩 나아질테고, 그렇게 1%, 2% 나아지다 보면 어느새 나는 눈을 뜨기 전과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내가 확연히 다른 사람이 돼야만 하는 이유가 있거든.

언젠가 다시 창업을 꿈꾸는 내게 경제란

2016년 창업 시절, 한 기관에 가서 뉴스 사용권 관련 회의를 할 때였다. 당시 나와 대화하던 팀장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이거 비즈니스 모델은 생각해두신 거죠? 당연히 생각하셨으니까 이렇게 오셨겠죠? 잘 되셨으면 좋겠어요.”

없었다. 지금도 모르겠다. 내 창업 아이템이었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없는 비즈니스라니,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창업을 커리어로 바꿨고, 상당한 경험치를 먹었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

나는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즈니스 맨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STEW 경영소모임을 만들어 경영 공부를 시작했고, 비즈니스 이야기를 전하는 STEW 와레버스를 만들어 매주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비즈니스를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모른다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좋은 아이템을 찾아도 돈을 모르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없다. 때문에 나는 기술적 성장은 물론, 비즈니스를 위한 여러 준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취약성에 관해 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올해를 기점으로 미루던 경제 공부를 시작했고, 돈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경험치를 쌓고 있다. 이런 내게 이 책은 참 적절했던 경제 입문서라 생각한다.

마무리

은행과 일했지만, 은행을 몰랐고. 9년 차 사회인이지만 경제를 몰랐다. 창업을 했음에도 돈을 몰랐으니 참 한심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간 쌓인 경험이 앞으로 내 경제 공부에 큰 속도를 더해줄 거라 생각한다. 돈만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진 않다만, 비즈니스에 돈이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으니, 어떻게 채울지는 훨씬 쉬울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는 마음에 드는 책이다.

한줄평 ★★★★☆

내가 원했던 경제 입문서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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