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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Capitalism)’ 입문서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바로 경제이고 돈이다. 우리는 경제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눈 뜨고 당하지 않을 수 있다.”

부끄럽긴 하지만 내가 예전에 STEW 독서모임에서 ‘모피아’라는 경제 소설을 읽고 썼던 서평의 마무리 멘트다. 이 소설에서는 금융 시스템을 이용해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금융 마피아 일당과 이를 지키려는 공무원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렇게 나와는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쩐의 전쟁’이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가장 와닿았던 문구가 있었는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후, 누구 한 명 잘못했다고 나섰던 사람이 있고, 누구 한 명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 1997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 후, 감옥에 간 사람은 물론이고, 사과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돈이 관여된 전쟁에서는 자기 돈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사태 때, 실업으로 자신의 경제적 삶이 붕괴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기가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착하디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제로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나 자신들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 대신,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늘도 힘겨운 삶을 버텨낸다.”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외환위기가 터지자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수많은 가장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금융 자본의 힘 싸움 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항상 금융에 취약한 서민들이라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고 불편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금융위기를 겪어왔다. 1998년 외환위기 사태,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최근의 코로나 사태까지. 책에서 설명하는 콘드라티예프 파동처럼 우리는 수많은 금융위기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뉴스에는 온통 ‘양적완화’니, ‘연방준비은행’이니 ‘제로금리’니 하는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한다. 사실 경제에 무지할 때는 이런 용어에 관심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당장 내 할 일 하기도 바쁜데 그런 어려운 용어들을 공부할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을뿐더러 내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설 ‘모피아’를 읽은 뒤 자본주의를 알아야겠다 생각이 바뀌었고,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들의 음모’를 보면서, 그리고 이번에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으며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이번에 추천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이상 세상이 돌아가는 핵심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은 바로 그 시스템의 핵심인 ‘빚’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책에서 설명한 내용이 우리 현실 세계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 V자 반등을 보이고 있는 주가 지수.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코스피지수, 나스닥종합지수, 다우존스지수 1일 차트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현재 전 세계가 현재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실물 경제는 멈춰 섰지만, 주식 시장은 V자 반등을 시작하더니 어느덧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예전 같았으면 사실 별 관심도 없었을 내용인데, 이제는 ‘내 자산을 어떻게 지키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를 욕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금융 지식으로 무장하는 수밖에

“우리가 큰 그림 안에서 돈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지갑 속 돈이 사라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통화정책과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그 첫 번째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빚으로 만든 돈을 흥청망청 써버린 우리의 잘못도 크다. 분명한 건 돈이 돌아가는 원리를 모르면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돈은 빚이다. 이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파산을 해야 누군가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래서 우리나라의 금융 정책은 어떻게 바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구조적인 것만 탓해 봐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통화량이 늘어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월급이 들어오면 꼬박꼬박 은행에 돈을 넣는 서민들이다. 부자들은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정 부분 금고에 현금으로 보관하기도 하겠지만, 대다수 부자들은 부동산, 금, 원유 등과 같은 실물 자산에 투자해서 돈이 돈을 벌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떨까? 얼마 전 하나은행에서 연 5% 적금이 나오자 전국 하나은행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물론 나도 가입을 했다…대안이 없…)

하지만 5% 적금이 정말 5%를 보장해줄까? 적금은 매달 돈을 넣는 개념이기 때문에 첫 달에 넣은 금액에 대해서만 온전히 연 5% 이자가 붙지 그다음 달에 넣는 돈에는 11개월 치 이자만 붙고 마지막 납입금에는 1달 치 이자만 붙는다. 그래서 금리 5% 적금이라고 해봐야, 연 환산해보면 수익률이 2.72%밖에 안 되고 그마저도 이자소득세 15.4%를 제하고 나면 2.3%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런 이벤트성 적금은 월 적립 한도는 물론, 기간 역시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 은행에서 근무해보니 연이율 5%라고 하면, 내 납입 원금에 5%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은 것 같다.

이처럼 자본주의 시대 금융 지식은 무기다. 책에서 나오듯 각종 마케팅 상술이 우리를 유혹하고, 이러한 마케팅 기법들은 각종 기술이 개발되면서 점점 더 불가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또한 세계 경제 성장률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 세계가 통화량을 늘려 강제로 경기를 부양시키고 있기 때문에 물가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경제 비주류로 취급받던 소위 ‘현대통화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책에서도 나오듯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내게 분명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살아남기 위해 금융 지식으로 무장하라.’

은행 첫 지점에 배치받고 일하게 된 지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기관인 ‘은행’에서 일하는 만큼 책에서 은행을 비판할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동안 근무하며 고객에게 금융 상품에 대해 쉽게 설명했는지, 불필요한 상품을 권하진 않았는지 등등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금융계의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은행, 헤지펀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덕 관념이 전혀 없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한다고요. 의사들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금융권에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요. 은행가가 되는 사람들이 공식적인 선서를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죠.” –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미국 하버드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들었던 내용인데, 자본주의 시대 금융인들 역시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윤리 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예외로 치더라도 그동안의 경제 위기는 대부분이 금융권의 탐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저금리를 넘어서 제로금리 시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금융권은 더 이상 예대마진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따라 다양한 파생상품들을 팔아야 할 유인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그 타겟은 결국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구조적인 것만 탓해 봐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책의 말처럼, 우리는 반드시 자본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었다.

초반에 비해 뒷 내용이 다소 부실했던 건 아쉽지만, 자본주의의 본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그간의 고전 경제학 이론 등 굉장히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현재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시의적절한 책이었던 것 같다. 특히 STEW 독서 모임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 있어서 더욱더 뜻깊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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