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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역사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

2020년 7월의 STEW 서평

도서: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한줄평: “사피엔스가 가장 모르는것은 사피엔스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든 사피엔스

1. 언어

사피엔스가 이토록 발전하게된 이유는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사피엔스는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7만년 전에 탄생한 ‘인지혁명’은 지금 우리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술을 먹고 깊은 대화를 하며, 책을 읽고 만나 토론도 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러한 행동을 시키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사피엔스는 이렇게 진화했고, 이것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편견

“1865년이 되자 백인들뿐 아니라 많은 흑인들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객관적으로 지능이 낮고 폭력성이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르며 개인적 청결에 관심이 적다고 말이다. 따라서 흑인은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의 원인이었다.”

백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만들어낸 흑인의 편견을 흑인들 조차 믿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인들을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한 듯 하다. 사실 흑인들에 유전자와 문화에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은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다. 우리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에 굴복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3. 돈

예수도 부처도 칼 마르크스도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공을 이룬 큰 정복자가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 신’을 숭배한다. ‘이 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라고 믿으며, ‘이 신’을 위해서 땀과 눈물을 흘린다. ‘이 신’에 대한 믿음은 지구 대부분의 퍼져있는 보편화된 것이며,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별보배고둥 껍데기와 달러화의 가치는 우리의 공통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가치는 조개껍데기나 종이의 화학적 구조, 색상, 형태 속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행복을 찾는 사피엔스

1. 기술의 활용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이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돈을 더 벌면 행복할거야, 집이 있으면 행복할거야, 좋은 직장에 다니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복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마치 사막의 한 사피엔스가 오아시스를 영원히 쫓는것 처럼말이다.

그런 오아시스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오아시스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국은 GDP 기준으로 세계 20위 안에 드는 부유한 국가이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면, 그들은 아주 행복해야 한다.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정확히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70년의 과거를 뒤돌아 보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북한 국민보다 행복하다고 입증하는 근거를 찾지는 못 했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지도자를 투표할 수 도 있으며, 며칠에 한 번 쯤은 주말에 침대에 누워 유투브를 봐도 아무도 나를 강제하지 못 한다.

지금부터 70년 뒤에 이 같은 감정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술을 개발하는것 만으로는 굉장히 부족하다. 칼은 나무를 잘라 집을 지을 수도, 고기를 잘 라 먹을수도 있게 하지만 학살에 사용될 수 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과 윤리의 발전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기술과 함께 기술을 활용하는 법에 배우고 공부하고 이야기하는것이 필요할것이다. 칼은 학살에 사용되는 것보다 집과 음식에 사용되는것이 사피엔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중세까지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인지하지는 못 했던듯 하다. 그리고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도 또 다른 기술에서 그 차이를 모른다.

2. 아체족

이 책에서 나오는 아체족은 아무런 기술도 가지지 못 했지만 행복을 다루는 기술 하나만큼은 현대 사회인들 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3. 부처

종교는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 종교로 나뉠 수 있다. 현재 거대한 종교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중에서 불교는 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연법칙 종교이다. 불교에서 따르는 것은 후세에 부처라고 불이는 고타마라는 인간이다. 고타마는 기원전 500년경 히말라야에 있던 작은 왕국의 후계자였다.

“고타마는 29세에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고 한밤중에 왕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집 없는 방랑자로 인도 북부를 구석구석 떠돌았다. 완전한 해방의 길을 찾을때 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번뇌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과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따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처 이야기는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행복’에 대한 글과 이어진다.

4. 연구

이 책에 후반부에 나오는 중산층 쌍둥이 가상연구가 있다. 이것은 복권 당첨이나 다리 절단 같은 크지만 일시적인 사건들은 장기적인 행복에서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그것들 보다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 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가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피엔스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이루면 더 높은것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는듯 하다. 몇몇 사람들은 취업을 하여 연봉이 4000만원이 되면 고과를 잘 받아 5000만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몇 개월 이내에 행복감은 사라지고 6000만원이 되기를 원하는 무한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행복감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른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는데 6월 STEW에서 읽은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이다. 이 책에서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욕구를 줄일수록 행복은 증가한다.”

SAMSUNG CSC

<폴 사무엘슨의 행복공식>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한 말은, 고고학자 유발 하라리가 행복에 대한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로 말한것과 동일하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소유를 늘리면서 욕망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소유를 늘리겠다는 마음이 곧 욕망이다. 행복해지기위해서 소유를 늘리려 할 수록 빛의 속도로 욕망이 늘어난다. 욕망이 늘면 소유가 욕망을 따라가는데에는 훨씬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 스님은 이런말을 하셨다,

무소유

<무소유 , 법정 스님>

무소유는 소유를 0으로 만들어 행복을 0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다. ‘무소유’는 해석하면 공교롭게도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욕망’이다. 불필요한 것을 원하지 않아 욕망을 줄이고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은 3000년 전 부처라 불리는 사나이의 가르침이다.

3000년 전의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얼슨, 법정 스님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모두 다른 문장으로 같은 의미를 이야기 했다. 이 들은 서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며, 고타마와 법정스님을 제외하면 각자의 분야도 모두 다르다.

이 들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들의 생각과 함께 할것이다.

<김우빈의 운동 전과 후>

이렇게 신체도 노력으로 충분히 단련할 수 있는데, 좋은 신체에 좋은 마음이 깃든다는 말도 있는 마음을 여전히 단련할 수 없다고 믿는가?

5. 앞으로

수렵채집인들과 자본주의자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이 책을 읽기전에는 수렵채집인 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수렵채집인이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와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그건 모른다”로 바뀌었다. 두 사피엔스 중 누가 더 행복할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똑똑한 과학자에게 맡겨두고, 나는 현재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것이 더 좋을것 같다.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여기에 너무 많은 논쟁과 고뇌를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의 삶도 지금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일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나와 내 주변사람들의 안녕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데 노력을 하는게 좋겠다.


책임을 져야하는 사피엔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윤리와 책임보다 앞서 나간다면 이것은 분명히 큰 문제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숭이에게 원자폭탄을 터트릴 수 있는 스위치를 선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를 몰기 전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과 운전 법률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또한 가르쳐야 한다. 군인들에게 총을 다루는 법과 포를 쏘는 법 뿐만 아니라, 군인이 존재하는 이유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면 기술을 무턱대고 사용하기 전에, 기술의 역할과 이것이 가져올 부작용 그리고 책임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문제에 ‘관심’을 갖는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인용

  1.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 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수렵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3.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기독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4.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5.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6.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7.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많일 그렇다면, 2백 개에 가까운 독립국가는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인, 인도네시아인, 나이지리아인이 똑같은 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단일 세계정부가 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겠는가?
  8.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진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9. 과거 뉴에이지 세대의 유명한 구호만큼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또 없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성형수술, 아름다운 집, 높은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적 행복은 오로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에서만 온다.
  10. 또 다른 가능성은,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11.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직한 시련이다.
  12. 우리가 중세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이들은 주관적 행복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세 조상들이 행복했던 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집단적 환상 속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환상에 구멍을 뚫어 파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을리가 없다. 우리가 아는 하나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3.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자의 복제에 좋은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14. 행복에 대한 불교의 접근방식은 생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의 측면에서 일치한다.
  15.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16.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17.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18.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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