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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족제도를 바라본 발칙한 유학생의 관점

학창 시절, 학교에서 처음 맞은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는데요. 축구 경기를 하다가 늦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단소가 손바닥에 닿았을 때의 그 얼얼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억을 뚜렷이 하는 이유는 아마 그것이 제가 받은 첫 체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점잖은 아이였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모님은 이상하리만큼 회초리를 드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반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랑의 매”를 맞아본 적이 없는 것이죠.

다행히 아직 사랑의 바주카를 맞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단순히 옆 짝꿍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었죠. 그 친구와 달리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골프채로 맞아 피멍과 함께 등교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언가 이상합니다. 성적이 안 나왔을 때 그 친구만큼 답답할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왜 그 친구는 슬픔을 위로받기는 커녕 불타는 허벅지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 외에도 가족 전반에 대한 물음들이 막연하게 머릿 속을 지나고 있을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김희경 씨의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한국에서의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각자 다른 문제였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하나의 원인으로 묶였던 점이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제가 깊게 공감했던 몇 부분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강타했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바로 <SKY 캐슬>이었는데요. 트렌드에 뒤처진 저는 보지 못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이 보면서 공감하였습니다.

모두가 쓰앵님을 찾게 만든 그 드라마, <SKY 캐슬>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한 데에는 과장된 점은 있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삶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국 교육이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저도 유학 가기 전엔 3주밖에 안되는 방학인데도 그중 2주는 특별 수업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었는데요. 요즘은 초등학생, 아니 그 이전인 유치원 때부터 입시 경쟁에 돌입한다고 하니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정말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적 요인을 단연 학교의 서열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또 다른 매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바로 아이들을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소유물”로 보는 관점입니다.

과보호와 방임 둘 다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바라보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

<이상한 정상가족>

많은 부모님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아이들이 아닌 부모가 그린 설계도를 만들고 아이들은 이 설계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관점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의 친구도 “공부 잘하는 우리 아들”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멍 든 허벅지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은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부분을 고치지 못하면 아이들은 결국 자신만의 설계도 그리는 능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죠. 이 책의 저자도 그 부분을 지적합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운전하는 데에 익숙해져 버리면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혼자 힘으로 길을 찾지 못하듯,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앞길의 돌부리를 치워주는 부모에게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앞길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상한 정상가족>

하지만 어른들만이 판단하는 세상은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의 판단이 처음엔 부정확할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들의 의견도 존중할 수 있는, 즉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한 이유죠.

우리 모두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가족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인가?

책은 “정상가족”의 범위에서 일어난 문제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벗어난 여러 “비정상가족”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있는데요. 막연히 알던 이들의 사정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미혼모 가정이든 입양 가정이든 재혼 가정이든 동성 가족이든 가족의 형태를 불문하고 모든 가족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누릴 혜택과 권리, 그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양육자에 대한 지원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한다.

<이상한 정상가족>

책 중반부에 있던 이 말은 울림이 컸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차별을 받아선 안 되는 소중한 인격체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줬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족으로부터 왔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선언이지만, 현실은 저 이상과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적인 차별을 받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심지어 법적으로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 가족을 중심으로 법률이 제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책이 가족 단위로 설계되는 방식이 지속되면 가족을 형성치 못한 개인, 가족에게서 충실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에게는 사회가 또다시 불이익을 가하는 셈이 된다.

<이상한 정상가족>

특히 제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많은 미혼모가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부분이었는데요. 미국에서 친분이 있었던 분으로, 한국에서 입양되어 자라온 분을 자연스레 떠올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eKgJZXFQ

유학을 처음 시작했던 2012년, 저의 호스트 부모님은 바로 옆집 이웃들과 매우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스트 부모님이 직장 때문에 온종일 저를 관리해주실 수는 없었기에 옆집 형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중 저랑 가장 친했던 형이 바로 입양되었던 이 형이었습니다. 처음 성이 최씨길래 한국말을 건냈지만, 자기가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이 애기 때 입양되었던 것을 말해줬었는데요. 아직도 섣불리 한국말을 건낸 것이 미안할 정도로 눈빛이 아련했었습니다.

형의 그런 슬픈 모습을 봤던 저였기에 당연히 형의 부모님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시야가 좁았던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했습니다.

아이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보다 아이를 버렸을 때 그 아이를 대신 키우는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는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이상한 정상가족>

나는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삶은 잘못되었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교육받을 권리와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한국의 가족주의에 그 혐의를 두고 싶다.

<이상한 정상가족>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여러 “비정상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키우는 것보다 다른 “정상가정”으로 보내는 것에 더 많은 제도적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형의 부모님에 대해서만 삿대질했던 과거를 반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사례들을 보고 난 이후, 저는 누가 “비정상가족”을 규정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정상으로 남게 하는 것이 온전히 그들의 것이냐는 궁금증까지 생기게 되었죠. 이 책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미혼모 문제, 동반 자살, 과보호, 방임, 체벌 등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담론들을 모두 담아내려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문제가 또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워낙 거대한 담론을 건드려서였을까요? 결론적으로 어떻게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가족에서 사회로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결론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적 방향이라는 것에 말이죠.

다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그런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나 제도의 기준을 만들어 내는 데에 있어서는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던 부분이 약간의 옥에 티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논의가 있어야 하고, 그런 논의가 있으려면 적절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책은 단순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짚고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추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이런 모든 문제가 100%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런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도 아직은 먼 목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책을 통해 중요한 첫걸음을 띄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첫걸음을 뗐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언젠가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희망과 함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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