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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만든 선배의 소탈한 이야기

2016년, 이 책을 읽고 별점 5점을 줬다. 첫 회사를 나와 창업한 시기였고, 길 없는 길을 걸으며 막막했던 시기다. 그 시기에 만났던 이 책은 앞서 내 길을 걸어간 선배의 이야기로 들렸다.

시간이 흘러 2020년 말에 이 책을 스튜 독서소모임에서 발제하며 다시 펼쳤다. 그동안 이 책을 길 없는 길을 걷는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했고, 스튜에서 다시 소개할 수 있어 꽤 뿌듯하다.

다시 펼쳐 든 이 책에 4점을 부여하는 건, 그동안 내가 많은 경험을 해서이기도 하고, 길 없는 길을 꽤 많이 걸어왔기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높은 점수를 부여한 것은 여전히 내가 길 없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욕심을 채우는 방법

사회에 나오고 나는 꽤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원하는 것을 대체로 얻은 편이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내 계획대로 된 것이 많으니 지난 9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꽤 괜찮은 시간이라 하겠다.

물론 여전히 내가 걷는 길은 흐릿하고, 내 많은 계획은 내 시야가 뚜렷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길을 걷는 건 아니, 걸을 수밖에 없는 건 이게 내 길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내 욕심을 말하자면, 이 서평 전체를 채울 수도 있겠다. ▲괜찮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는 것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것 ▲매력적인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 ▲나아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좋은 매니저이자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 ▲훌륭한 비즈니스 감각을 갖는 것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며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 ▲때로 지칠 때 많은 이가 함께 해주는 행복한 사람으로 남는 것 ▲그보다 더 많은 이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결국, 그게 ‘오세용’이 되는 것

내가 여러 일을 하면서도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건, 내 욕심 때문이겠다. 무슨 짓을 해도 이어질 수 있는 많은 욕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달려도, 걸어도, 멈춰도 내 욕심으로 이어지니 꽤 편한 전략이다.

여러 곳에 욕심을 심고, 여기저기 물을 뿌려대니 꽃이 필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 핀 꽃을 이어 어떤 별자리를 만들고자 하니, 피곤한 것은 내 업보겠다. 그래도 그게 나라고 생각하면, 이 무모한 방향성을 멈출 수 없다.

저자는 이런 내게 꽤 단호한 문장으로 위로한다.

자신의 존재에 자부심을 느껴라.

어젯밤 책을 다 읽고 침대에 누워 불을 껐는데, 저자가 위로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더라. 그래도 이 추운 날씨에 내 몸 뉘일 따뜻한 방이 있으니, 내 열정과 사회의 필요 사이에 줄타기를 아직은 잘하고 있지 않나 싶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지만, 청년에게 역시 힘든 시기 아닌가.

내 주변 많은 사람이 내게 이야기한다. 욕심을 줄이고, 조금은 즐기라고. 욕심과 즐김을 나누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욕심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욕심이 많아 행복한 걸 보면, 역시 그런 것 같다.

욕심 끝의 공허함

▲모바일 앱을 만들고 싶었고 ▲창업을 하고 싶었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으며 ▲다시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

사이사이 더 욕심을 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욕심을 다루는 데 꽤 능숙한 편이다. 가장 중요한 욕심을 쫓아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끝을 보길 원하는 편은 아니다. 의미를 찾는 편이고, 가치를 찾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일을 하던지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시간이 누군가에게 가치를 줄 수 있다니, 이것 참 가치 있는 일 아닌가?

끔찍하게 당황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면 며칠 혹은 몇 년 후 이를 재미난 강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라.

하지만 때로는 어떤 것의 끝을 보고 싶기도 하다. ▲좀 더 기술적이고, 많은 이가 쓰는 모바일 앱 ▲더 성공적인 창업 ▲더 유명한 사람 ▲더 좋은 글 ▲더 많은 친구들 ▲더 기술적인 기술자.

그런데 어떤 것의 끝이 어디 있겠는가. 그마저도 그보다 끝이 있겠지.

여러 경험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다재다능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호기심이 될 수도 있다 ▲시작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작은 것에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욕심이 나는 건, 여러 경험이 ▲끈기 부족을 의미하기도 하고 ▲열정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근성도 부족하고 ▲어쩌면 분야 재능이 부족한 것을 뜻하기도 하겠다.

현재 내 자아는 어린 시절과 비교해 세 가지 큰 강점을 갖췄다. 하나, 나는 똑똑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둘, 내가 멍청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셋, 어느 쪽이든 나는 존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욕심은 공허하다. 욕심 끝엔 또 다른 욕심이 있기에 비우려 할수록 채워지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채움이 비움을 가져오니, 마음 둘 곳을 모르겠다.

이런 일화를 스스로 말하다 보면 또 다른 교훈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로 내 인생에 가장 멋진 순간은 앞으로 10초 안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세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건, 그래도 내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내 이야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친구가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은 건 뭔가 싶다. 친구든 나든 누군간 변했단 건데, 도대체 누가 변했단 말인가.

연봉이 20배 많다고, 20배 행복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연봉이 20배 많아야 2배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연봉을 20배 높이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이런 속세에 휘둘리다 보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싶다. 애초에 연봉 20배는 누구 연봉 기준이며, 20배 행복 역시 누구 행복 기준인가. 내 행복에 필요한 건 따뜻한 집과 편안한 츄리닝 그리고 컴퓨터뿐인데 말이다.

자기 나름의 진로를 그리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다소 살기 불편한 곳이다.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다 보니 이제야 이 책이 좋았던 이유가 생각났다. 꽤 성공한 버커니어 아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건 책 제목처럼 공부도, 열정도 아니고. 자신의 성공도 아니다. 독자를 향한, 새로운 시작의 부추김이다.

고흐, 클레멘스, 다윈 모두 결과를 모른 채 자신의 열정을 쫓았고, 이게 나의 길이 맞나 고심했으며, 성인이 되기 전에는 자기 인생의 목적을 확신하지도 못했다. 나는 결국 이들이 성공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들의 용기와 그 불안한 출발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시작이 있어야 새로운 이야기가 있음을 잠시 잊었다. 피할 수 없는 ‘비교’스러운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시작’임을 잠시 잊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이야기 속 내 모습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은 과거가 될 것이고, 내 시작이 미래가 될 터인데 과거에 묶여 달리지 못할 이유는 또 뭔가.

버커니어들이 ‘필히’ 해야만 하는 일은 인생의 항로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든 못 거두든 후회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내디디면 시작이다. 그게 이야기 시작이고, 시작된 이야기 주인공은 나다. 무슨 상관인가,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나 뿐인데.

이제 비교는 내 이야기에서 하자. 등장인물이 나 뿐이니, 비교는 나와 하면 된다. 어제와 다른 내가 오로지 비교 대상이겠다.

쌀쌀한 연말, 변한 건 없지만 모든 게 변한 지금이다. 채우고 채워도 비워진 욕심 굴레에서 잠시 떠나도록 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내 이야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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