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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없는 두 가지

공부와 열정. 제목을 듣자마자 알았다. 이 저자와 나는 안 맞는다(그래서 사실 발제 투표도 안 했는데 다수 앞에서 소수는 힘이 없다). 어쩜 이리도 나에게 없는 두 가지만 쏙쏙 골라놓은 책이 있는지. 하지만 독서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존재하며, 그 중에는 나에게 없는 이상을 쫓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인체 드로잉 책을 읽었으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라는 책을 읽기도 했다. 자신이 겪지 못한, 하지 않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의 나와 이 책을 덮었을 때의 내가 조금이라도 변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버커니어 학자

저자는 스스로를 버커니어 학자라고 칭한다. 버커니어 학자란 17세기 ‘버커니어’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순 해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래 프랑스, 영국 출신의 사냥꾼, 농부들을 칭하는 말이었는데 이후 스페인의 공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약탈을 시작하고서도 버커니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17세기 버커니어는 신대륙 발전의 주요 동력이 되며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매력을 느낀 저자는 버커니어의 일부 자질을 본따 ‘버커니어식’ 학자 및 학습법을 정의내린다. 바로 대담하고 적극적이며 자유롭고 순발력 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주어지는 주입식 교육에 순응할뿐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자유롭게 나의 열정을 일깨워주는 주제를 탐구하는 모든 사람들을(비록 학교라는 기관에서 공부를 할지라도) 그는 ‘버커니어 학자’라 칭한다.

약탈한 배!

책 속에서 저자는 굉장히 구체적인 11가지 버카니어 독학 비결을 공유한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비결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을 버커니어 학자라는 컨셉에 충실한 점이 유쾌했고, 적절한 예시들로 쉽게 읽히는 좋은 글이었다.

  1. 철저한 물색: “(물색은) 고전적인 버커니어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사냥감을 찾아 바다를 누비는 행동으로, 희생양이 갈 만한 곳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2. 진정한 문제: “(버커니어는) 선원들에게 동기 부여 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자기네 배를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결국 물에 빠져 죽게 생기자 다급해진 버커니어들은 온갖 보물이 가득한 새 선박을 망가뜨리지 않고 재빨리 포획했다.”
  3. 인지 파악: “내 의식은 항해하는 배와 같다. 의식을 항해하는 방법은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게 아니다. 의식을 항해한다고 곧장 바람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나는 이따금씩 삭구를 손보고 선박 표면을 긁어내야 한다.”
  4. 지식: “어떤 운전사가 전에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자동차에 탑승한 경우, 그는 곧바로 조작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운전법을 알아낸다. 모든 차량이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동차를 알게 되면 여기서 생긴 ‘자동차 스키마’가 다음에 다른 차량도 몰 수 있게 가르친다.”
  5. 실험: “컴퓨터에 대해 배워야 하는가? 컴퓨터를 한 대 사서 만지작거려라. 나는 처음으로 요트 수업을 받은 지 5분 만에 요트에 몸을 실었다. 10분 후에는 요트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
  6. 여유 시간: “버커니어 학습에서 방황은 호사가 아닌 필수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방황하려면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는 허비해도 좋은 시간이다.”
  7. 이야기: “미국 문화에서 버커니어 이야기는 월트디즈니사와 피터 팬이 완전히 장악했다. 버커니어 하면 당장 떠오르는 모습이 롱 존 실버와 후크 선장이니 말이다.”
  8. 아이디어끼리 비교: “나는 사물끼리 충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은하나 차량, 암석, 원자끼리 충돌하거나 아이디어끼리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때로 어떤 아이디어를 이해하려면 다른 아이디어와 충돌시킨 다음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9. 다른 두뇌들: “나는 동료 해적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내가 작업상 실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데, 내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언하는 요령을 안다.”
  10. 단어와 사진: “훌륭한 버커니어는 단어 앞에서 위축되는 일이 거의 없다. 단어를 정복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또 그 단어가 쓰인 글을 형편없게 보는 것이다.”
  11. 시스템 사고: “어떤 대상을 단순화하려면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혼잣말한다. 단순한 실들이 매우 복잡한 직물을 짜 낸다고.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패턴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설령 내가 틀렸어도 이를 깨달을 때면 이미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이처럼 놀라운 열정의 색깔

정말 배가 고프면 기를 쓰고 먹을 것을 구하려 할까요, 아니면 빈둥거리다가 굶어 죽을까요? 저는 세상에 게으른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정말 갈망하는 대상을 찾지 못했을 뿐이죠.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었다. 게을러서 고민이라는 학생에게 저자가 해준 조언이었는데 왜인지 이 문장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사회는 열망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쉽게 게으름이라 이름 붙이고 이를 부정적이고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겨오지 않았나? 그렇기에 열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 열망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subject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인상 깊었다. 버커니어 학자의 공부법을 떠나, 이처럼 열정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높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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