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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라는 사람

오랜만이다.

책을 읽고 꽤 자극을 받은 것도, 짧은 시간에 주변 친구들에게 수차례 언급한 것도 꽤 오랜만이다. 책 주요 주제를 넘어 여러 고민을 하게 만들고, 심지어 새로운 꿈까지 만든 책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내게 그런 책이다. 시간에 쫓겨 꽤 타이트하게 책을 읽었는데, 그 시간이 썩 괜찮았다. 더해서 빌 게이츠라는 인물이 참 놀라웠다.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몇몇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줬는데 아껴두고 있다.

2018년 이후 첫 별점 5점이 나온 것을 자축하며, 서평을 시작한다.

기후재앙. 제로로 가야 하는 이유

먼저, 내가 기후재앙에 무지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이제는 기후재앙을 명확히 인지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이 책으로 한 사람에게 지구의 문제점을 명확히 전달했다는 것에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고 전하고 싶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늘 ‘문제 인식’이다. 문제 인식은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며, 가장 어려운 단계 중 하나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이 책을 통해 무지했던 나를 바꿨다.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노력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분명히 안다.

온실가스 배출량 중 각각의 인간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 ▲무언가를 만드는 것(시멘트, 철 플라스틱) 31% ▲전기(전력생산) 27% ▲무언가를 기르는 것(식물, 동물) 19%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비행기, 트럭, 화물선) 16% ▲따뜻하고 시원하게 하는 것(냉난방 시설, 냉장고) 7%

기후재앙에 온실가스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온실가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래서 크게 5가지 온실가스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앞으로 기후재앙은 어떻게 더 악화되는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논거는 무엇인지. 그래도 막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우리에게는 앞으로 깨끗한 전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우리가 강철을 만들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탄소 집약적인 활동들을 전기화함에 따라, 2050년까지 세계의 전기 공급은 두 배, 심지어 세 배까지 증가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이 책이 놀라운 또 하나의 이유는, 엔지니어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고, 핵심만 언급하는데 그 깊이가 참 적절하다. 또한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내 의식이 원하는 다음 답을 내놓는다.

게다가 어찌나 다양한 범주를 오가는지,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과학에서 수학으로, 정치에서 경제로. 기후재앙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 한 권에 풀어냈다.

현실적으로 핵융합은 매우 어렵다. 핵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핵융합이 정착하려면 아직 40년이나 남았고, 아마도 항상 40년 남을 것이다”라는 농담이 돌 정도다.

특히 2050 제로를 목표로 하는 이유는 꽤 긴 문단임에도 모두가 읽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 문장 모두를 옮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다르다.

잘못된 방식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자칫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을 못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2050년까지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이라면 우리는 이 목표를 위한 수단에만 집중할 것이다. 설령 이런 방식이 제로달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불가능하게 만들어도 말이다.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이 목표라면 석탄화력발전소를 가스화력발전소로 대체하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게 된다. 대신 우리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투 트랙 전략이란 첫째로 제로 탄소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데 ‘올인’하고, 둘째로 화석연료에 의존적인 지역을 포함해 자동차부터 열펌프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기화하는 전략이다.

‘2030년 감축파’가 보기에 2030년까지 감축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위 방식은 실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이 문단은 서평 뒷부분에도 다시 언급할 텐데, 빌 게이츠가 얼마나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고, 어떻게 목표를 쟁취하는지 곱씹어볼 만한 문단이다.

어쨌든, 다양한 측면과 깊이,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까지 고작 300여 페이지의 책으로 거대한 문제를 무지한 사람이 인지하게 했다는 것이 다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빌 게이츠라는 사람

그리고 이 책 제목 맨 앞에 나오는 인물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빌 게이츠. IT에 몸담고 있음에도 빌 게이츠란 거인에게 너무도 무지했다는 것에 놀랐다.

1955년생. 빌 게이츠가 고작 60대일 줄이야. 아직도 최소 20년은 더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다니, 뒷방 늙은이라 생각했던 그가 여전히 건재한 것에 놀랐다.

나는 엔지니어이지 정치학자가 아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만으로 빌 게이츠는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빌 게이츠가 누구인가? 전 세계 컴퓨터 대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거인 아닌가. “모든 사무실 책상과 가정에 컴퓨터를”이란 포부에 걸맞은 유일한 인물 아닌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그가 “나는 엔지니어이지 정치학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뱉은 것에 나는 괜히 숙연해졌다. 어쩌면 여전히 60대인 그의 체력보다, 손꼽히는 그의 재력보다, 명성보다. 어쩌면 이 문장이 그를 ‘빌 게이츠’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비건들은 또 다른 해결책을 제안할 수도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기보다는 가축 사육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십분 이해하지만, 현실성 있는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기는 인류 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 심지어 고기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고기를 먹는 것은 축제와 행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애피타이저, 고기 또는 생선, 치즈, 디저트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미식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식 문화는 유대감, 식사의 즐거움, 인간과 자연 생산물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많은 이가 반발할 수 있음에도 소신을 주장하는 것은 그가 가진 많은 것이 있어서도 있지만, 결코 물질적인 것만이 이를 가능케 했다 생각지 않는다.

역학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려줘도 어떻게 멈추는지 알려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후 과학은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어떻게 막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공학, 물리학, 환경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을 활용해야 한다.

활자중독까진 아니지만, 나도 읽는 걸 꽤 즐긴다 생각했다. 내 주변엔 늘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도 그들과 함께하며 공부를 즐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빌 게이츠라면, 60대에 이미 모든 걸 이룬 시점에도 지금과 같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후재앙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어쩌면 나는 빌 게이츠를 읽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

기자 시절, 한 박사님을 만났다. 하버드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온 이 연구자는 인공지능을 전공했다. 궁금했다. 하버드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면 뭘 하는 건지. 그래서 물었다.

“배터리 개발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려요. 이게 위험해서 함부로 실험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발전이 느립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도입했어요. 그래서 배터리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걸 돕죠.”

덤덤히 말하는 그 앞에서 나는 괜시레 숙연해졌다. 그야말로 인류를 위한 기술 아닌가? 나는 과연 그의 기술을 가졌다면, 어떤 곳에 나를 쓸지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커리어를 이어가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만드는 선택을 선호했는데, 여전히 나는 내가 마음에 들고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내 이야기를 만들지 싶다.

그러나 종종 막다른 길에 선다. 종종 내 이야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종종 후회하기도 한다.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는데, 지나고 보니 이 역시 내 이야기라니 썩 마음에 든다.

이런 내게 빌 게이츠의 이 말은 책을 읽고 난 뒤 수차례 떠오른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다르다.

잘못된 방식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자칫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을 못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2050년까지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이라면 우리는 이 목표를 위한 수단에만 집중할 것이다. 설령 이런 방식이 제로달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불가능하게 만들어도 말이다.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이 목표라면 석탄화력발전소를 가스화력발전소로 대체하는 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게 된다. 대신 우리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투 트랙 전략이란 첫째로 제로 탄소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데 ‘올인’하고, 둘째로 화석연료에 의존적인 지역을 포함해 자동차부터 열펌프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기화하는 전략이다.

‘2030년 감축파’가 보기에 2030년까지 감축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위 방식은 실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과연 2050년까지 뭘 달성하고 싶은가. 2030년까지 2050년의 절반을 달성하는 것과, 2050년에 그것을 달성하는 게 다른 길이라면.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오늘 하루도 예측하지 못하는 작은 사람이지만, 왠지 꿈만은 빌 게이츠처럼 2050년의 나를 꿈꾸고 싶어진다. 상상만으로도 좋은걸 보니, 역시 나는 내 이야기를 써야 할 운명인가 싶다.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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