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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부에 관한 어떤 철학

이 책을 읽으려고 연차를 썼다. 이 책만 읽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번 연휴에는 이 책만 기억에 남는다. 아니, 이 책만 기억에 남아도 훌륭하다 하겠다. 아니, 이 책만 남아야겠다.

정보를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정보 조각이 하나씩 이어질 때가 있다. 어떤 그림이 되기도 하고, 꽤 큰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는 어떤 메시지로 표현되는데, 그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그 그릇이 됐다.

지난 3월 읽은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 별점 5점을 줬는데, 이 책 역시 별점 5점이다. 별점 5점은 꽤 아끼는 편인데, 이 책은 5점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벌써 주위에 이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이 책을 소스로 3가지 이야기를 해보련다.

방향을 잃었던 최근

터무니없을 정도로 방향을 잃었다. 주변에 짜증을 내고 술을 마셔댔다. 노력이 배신했다며 우울해했고, 앞으로의 노력은 또 무슨 의미냐며 비관했다. 내 사람들을 밀어냈고, 홀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혼자이고 싶었고, 혼자이기 싫었다.

강을 곁에 두고 걸으며 차분한 노래를 들었다. 우울함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들어가지 않길 바랬다. 그렇게 쌓이다 보면 우울함의 원천이 따라 나올까 싶었다. 그렇게 꽤 오랜만에 홀로 울었던 것 같다.

방향을 잃었다. 잃다 못해 키를 완전히 놓았다. 액셀을 밟아도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보며 마구 때려댔다. 아무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찌어찌 그 어둠을 벗어났고, 우연히 부동산에 눈길을 돌렸다. 하도 시끄럽길래 쳐다봤을 뿐인데, 괜히 나도 조급해지더라.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남들이 하길래 같이 세상을 원망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것에 몰두했다. 부동산이 꽤 재밌더라.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문가를 찾았고, 전문가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다 보니 어느새 경제 유튜브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경제가 다시 내 관심사에 들어왔다.

꽤나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있던 책이다. 우연히 온라인 서점에 들렀더니, 세상에 150쇄가 넘었다. 무려 작년에 출간한, 무려 한국인이 쓴 한국어 도서가 150쇄라니. 도대체가 어떤 힘인지 궁금했다.

그냥 그랬다. 우울했고, 우연했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이 이렇게 나를 달굴 줄은 연차를 썼던 그날 아침에도 몰랐다.

한국판 이나모리 가즈오

혁신의 아이콘 잡스를 좋아한다. 그가 활약하던 시기에 나는 공대생이었는데, 어째서 그때는 관심을 갖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그가 만든 세상 덕에 밥벌이를 시작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나는 그가 좋다.

하지만 그가 좋은 것과 별개로 나는 그처럼 살고 싶지 않다. 홀로 화려하다 초라하게 간 것도, 적이 많은 것도, 다음 스텝에 목맨 것도 싫다. 화려함을 좇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안전 추구형이다.

성공 혹은 뛰어난 이론은 그것이 무엇이든 오랜 기간으로 증명해야 한다. 오랜 기간이란 최소한 한 세대(30년) 이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경영자는 일본 3대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다. <왜 일하는가>로 알게 된 그는 꽤 오래전 읽은 책임에도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얼마 전에는 다시 이 책을 읽고자 리뉴얼된 이 책을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이 책 <돈의 속성>을 읽으며 나는 이나모리 가즈오를 떠올렸다.

나는 이런 사소한 것이 사람의 인생과 운과 심지어 경제적 환경까지 모두 바꿔나간다고 믿는다. 꼰대가 되고 꼴통 보수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 순간 인연도 행운도 재산도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미 성공한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고 성공하여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절대로 이런 경박함을 배우면 안 된다.

어떤 한 가지 캐릭터를 봐서 그런 건 아니다. 어떤 행동이나 문장이 이나모리 가즈오의 그것과 일치해서도 아니다. 그냥 전반적인 느낌이 그렇다. 이런 류 흥분감이 오랜만이어서인지 에어컨을 20도로 맞췄는데도 갑자기 땀이 났다.

이나모리 가즈오를 한 단어로 떠올리면, ‘정도(正道)’ 그 자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을 그대로 표현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일본 3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건 전혀 의아하지 않은 일이다.

어떤 분야든 대가가 된 사람들은 모두 지혜와 지식수준이 남다르다. 그가 음악가든, 운동선수든, 예술가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모두 어떤 경지에 이른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책 <돈의 속성>은 돈에 관한 이야기지만, 정확히는 돈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삶을 사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이야기일지 모르고, 누군가는 이를 두고 ‘꼰대’라 칭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정도를 지키는 철학자가 꼰대라면, 나는 꼰대가 되겠다.

7월이 되면서 어느새 내가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됐다. 마침 오늘 내가 투자를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 ‘투자 소모임’을 진행했다. 정말이지 딱 1년이다.

1년 동안 꽤 다양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 쇼크에 투자를 시작했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서 만 1년을 맞이했다. 어느새 작년엔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주식 계좌에 들어갔고, 투자자의 마인드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주식 투자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자신을 경영자로 생각한다. 투자금을 모아 함께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하기에 회사의 본질을 잘 이해하려 든다. 무슨 회사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운영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둘째, 보유하고 있는 돈이 품질이 좋은 돈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자금은 돌같이 단단하고 무겁다. 이 돈은 당장 어디로 갈 생각도 없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편안하다. 오히려 배당이라는 식사만 제공하면 평생 자리 잡고 살 생각도 하는 돈만 모여 있다.

셋째, 싸게 살 때까지 기다린다. 진정한 투자는 팔 때를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살 때를 잘 아는 것이다. 살 때 싸게 사면 파는 건 한결 쉬워진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세 가지 특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스스로 경영자로 생각한다는 건 경영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거고,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내 <도밍고 컴퍼니> 시절에 느꼈다.

품질이 좋은 돈이라 함은 상당히 심오한 이야기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를 두고 정기적인 수입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꾸준히 모아온 단단한 돈이라 말하기도 한다. 당연히 그 돈이 좋겠다만, 그 돈을 갖기가 어디 쉬운가

싸게 살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싸다’는 걸 판단할 수 있다는 거다. 그걸 판단할 수 있으면 누가 투자를 못 하겠나.

하나 같이 어려운 말을 하는 걸 보면, 꼰대가 맞을지도 모른다. 다만, 저자 스스로가 이를 공부하며 체화한 것을 보면 그렇게 스스로 증명해낸 것을 보면 이 사람도 독자에게 이나모리 가즈오의 길을 권하는 것이다. ‘정도(正道)’ 말이다.

단단함. 내가 걸어갈 길

책 <돈의 속성>은 곱씹을 이야기를 담았으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 때문에 술술 읽힌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빠르게 읽힌다. 그렇게 읽던 중 스스로에 대한 오만함에 꽤 충격을 받은 소제목이 있는데, ‘내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매일 하는 일’이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이 소제목 내용을 대부분 밑줄 쳤고, 이 서평 아래 따라서 타이핑했다.

나는 정보를 모으고 구분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공부와 정보수집을 게을리할 수 없다. 유튜브를 통해 젊은 선생들의 강연을 듣고 관록 있는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자산을 벌고 모으고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유일하게 나를 믿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정보를 끊임없이 구걸하는 것이다. 아마 이 아침 행사를 며칠 안 한다고 내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두 달 안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년 혹은 1년을 공부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점점 투자 세계에서 밀려나고 판단이 흐려지고 순식간에 후퇴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몰락할 수 있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늘어진 자세로 있거나 책상 밑에 누워 있는 개에게 발가락을 빨리고 있어도 아침 수업은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인상 깊은 문구에 대부분 타이핑했으니, 서평 본문에는 위 문단만 가져왔다.

나는 꽤 오랜 시간 정보를 모으고, 공유했다. 2015년 <SWIKI> 서비스로 사내에서 매일 큐레이션을 했고, 이에 자신감이 생겨 같은 아이템으로 창업했다. 2016년부터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도밍고뉴스>를 만들었고, 2018년부터는 <개기자의 큐레이션>으로 IT 큐레이션을 이어갔다. 2019년부터는 <와레버스>를 만들어 비즈니스 이야기를 전달한다.

나는 오만했다.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하는 저자도 매일 같이 정보를 모으는데 나는 고작 몇 년 한 것으로 스스로 잘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자책했고, 세상을 비관했다. 오만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어쨌든 <SWIKI>는 새로운 스텝을 내게 만들었고, <도밍고뉴스>는 온전히 나로서 움직일 수 있게 해줬다. <개기자의 큐레이션>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줬고, <와레버스>는 이것들에 비하면 꽤 성숙한 팀을 만들게 했다.

빨리 부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빨리 부자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수성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나이 40에 부자가 되는 것도 너무 빠르다. 20대나 30대에 빨리 부자가 된 젊은이 중에 그 부를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50세 이후다.

나는 천천히 내 길을 만들었고, 작지만 늘 결과를 내면서 걸어왔다. 어쩌면 나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잘 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는지 모른다. 칭찬에 목마른채, 어떤 기준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저자는 내게 잘 하고 있다 말했고, 어떤 기준을 제시했다. 그림 하나 없는 이 책을 읽으며 추호도 지루하지 않았던 건, 내가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겠다.

마무리

연차에 해야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새로운 일을 하게 됐고, 계획했던 모든 것을 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었으니 썩 훌륭한 휴가를 보냈다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어젯밤 꽤 긴 시간 여운을 즐겼다. 문득 실험해보고 싶은 게 떠올라 시트를 만졌고, 내가 원하는 숫자가 만들어지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하면 만들 수 있는 꽤나 현실적인 계획으로 만든 꿈 같은 숫자다.

열심히 산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부자가 되지도 못한다. 부자가 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부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부가 인생의 미덕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길에선 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부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이는 내 경험과 노력 그리고 여러 정보가 필요했고, 이 책 <돈의 속성>이 이들을 한데 모았다.

나는 다시 내 루틴을 찾으려 한다. 지난해 유지한 루틴을 올해 던졌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망가졌나 싶다. 다시 내가 걷던 길을 걸으려 한다. 그들이 갔던 길. 내가 익숙한 길. 정도 말이다.

한줄평

부에 관한 어떤 철학. 한국판 이나모리 가즈오.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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