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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라니… 물리라니!!

학창 시절 내가 좋아했던 과목은 지구과학이다. 점수도 가장 잘 나왔지만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궁금했다. 그다음은 화학을 좋아했다. 역시 점수가 잘 나오기도 했지만 무척 신비로운 과목이었다.

보통 고등학교에서 이과, 문과를 고를 때 수학을 기준으로 고르곤 했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좋아서 이과를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다음으로 점수가 잘 나오던 건 국어였다. 국어와 과학이라니. 이 연결되지 않는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던 나는 결코 한국 교과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학생이었다.

어쨌거나 대학교 입학 후 나는 과학 과목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던 지구과학이며, 화학 따위는 금세 잊혀졌다. 그런데 양자라니. 물리라니.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돼 버린 내게 이제 과학은 그저 무지한 세계였다.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양자 세계. 평소 양자 세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양자로 구성돼 있다고 한들. 아니 사실 우리는 우리 몸 70%인 물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과학이 알아낸 가장 심오하고도 중요한 발견은 모든 것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를 거창하게 소개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혹여나 독자가 책을 덮어버릴까 조심조심 설명을 이어간다. 너무 어렵지 않게, 너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저자가 정말 양자를 좋아해서 양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양자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은 게 느껴졌다. 그 점은 참 좋았다.

그렇게 양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줬다. 책 뒷부분에는 저자가 잡지 등에 기고한 내용을 묶어 보완해서 낸 책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각 챕터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책을 덮고 난 뒤 생각나는 양자 세계는 이렇다.

가장 먼저 ‘슬릿 실험’이 떠오른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슬릿 실험은 텍스트만으로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더라. 그래서 유튜브에서 영상도 찾아봤다. 텍스트 설명과는 꽤 다른 내용의 영상이 보였고 그제야 어떤 실험인지 이해했다. 그림을 좀 더 여러장 그렸다면 어떨까 싶다.

슬릿 실험을 영상으로 보며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싶더라. 양자라는 놈이 구멍(슬릿) 2개를 통과하는데, ‘측정’하면 한 곳만 통과하고 ‘측정’하지 않으면 두 곳을 동시에 통과한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 좀 더 들여다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측정’하면 안 된다. ‘측정’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니 정말이지 신비롭다.

자, 사기가 아니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라. 사진을 보면 전자는 왼쪽 또는 오른쪽, 분명 하나의 구멍만을 지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중 슬릿 실험을 하면 스크린에는 2개의 줄무늬가 생긴다. 입자니까 하나의 구멍만을 지나고, 따라서 입자의 성질인 2개의 줄무늬가 생긴다. 여기서 모순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어태 떠들어 대던 여러 개의 줄무늬는 뭐냐고? 여러 개의 줄무늬를 얻으려면 사진 찍기를 중단해야 한다. 과학적인 용어로 하자면, 측정을 중단해야 한다.

이 실험으로 포문을 연 양자 세계는 이어진 이야기에서 더 현실감을 잃게 했다. ▲양자는 특정 속도만을 낼 수 있도록 ‘연속성이 없다’던가 ▲정확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던가 ▲갑자기 순간이동 하는 양자 도약이라던가 등 각 개념은 어떤 물리학자 평생의 결과였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 어떤 구조를 평생에 걸쳐 구해내는 게 멋져 보이기도 하다가 그래서 그런 삶이 뭐가 재밌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모두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이름을 남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여준 논리는 참 놀라웠다. 나는 논문을 써야만 졸업할 수 있는 학과도 아니었고, 꼭 논문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직업도 아니다. 때문에 논문은 내게 꽤 먼 존재이지만 학자들의 논리를 들어보니 이 분야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 보였다.

양자 역학, 아니 모든 과학은 이 세상을 최소한 둘로 나눈다. 관심 있는 대상과 그 대상이 아닌 것. 대상이 아닌 것을 ‘환경’이라 부른다.

굉장히 먼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지만 서서히 내 자세가 책 속으로 당겨졌달까. 이게 무슨 의미냐 싶던 내가 어떤 개념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인생이 꽤 궁금해졌다. 왜냐면 내 인생에도 이미 양자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

우리는 양자를 벗어날 수 없다

양자 컴퓨터. 내가 몸담은 IT 분야에 양자가 들어왔다는 걸 깨닫자 글이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양자 컴퓨팅은 이름만 들었지 사실 개념을 잘 몰랐다. 앞으로 유망한 분야이며 양자 컴퓨터가 발전한다면,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시스템을 뒤엎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다.

저자가 양자 컴퓨터를 소개하자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저자가 글을 참 쉽게 잘 썼구나 하는 깨달음. 앞서 써온 양자도 무척 쉽게 쓴 것인가 보다 하는 깨달음.

현대 소프트웨어에서 RSA 암호화는 빼놓을 수 없다. 가장 쉽게는 회원가입부터 주요 개인정보를 처리하는데 RSA 암호화를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한 번 이해하면 무척 쉽게 사용하는 암호화 기법 중 하나다.

RSA 암호화는 더 이상 나뉘지 않는 두 소수 값을 찾는 게 핵심인데 양자 컴퓨터가 연산 속도를 지금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끌어올리면 이 RSA 암호화가 풀릴 수 있는 가능성이 대폭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 RSA 암호화는 ‘절대 안 풀린다’가 아니라 ‘풀릴 수 있다. 다만, 그 기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등의 결론이다.

즉, 양자 컴퓨터가 IT 세상을 모조리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전 세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고전 컴퓨터와 무엇이 다른가? 양자 역학은 하나의 비트가 동시에 0과 1을 갖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을 퀀텀 비트(quantum bit), 줄여서 큐비트(qubit)라 부른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2개의 구멍을 지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양자 역학의 핵심 원리인 양자 중첩이다.

다행인 것은 양자 컴퓨터가 아직 갈 길이 멀고 그동안 암호학도 발전을 한다면, 양자 컴퓨터 보급 전 암호학이 보완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내가 이해했던 업계 의견이었다.

그런데 구글 등 IT 공룡이 빠르게 양자 컴퓨터를 발전시키고 있다니 앞으로도 내가 속한 IT 세계는 많은 일이 벌어지겠구나 싶더라. 그런데 양자로 인해 내 업이 변화될 수 있다니… 전혀 다른 세상이라 생각했는데 나도 별수 없이 양자를 벗어날 수 없구나 싶었다.

어휴… 양자라니…

다시 한번 겸손의 길

양자 세계가 무엇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한 번 들었다. 그리고 그 세계 속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도 어떤 생각을 해야겠다. 그 이야기를 보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읽었지만 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세상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 내가 단단히 한 개념이 어떤 과학자 놈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상황. 이를 방어하지 못하면 내 개념이 아니, 내 인생이 무너지는 상황. 때문에 나는 더 나은 생각을 해야 하고, 더 강한 방어를 해야 하고, 그래서 생각 또 생각해야 하는 상황.

나는 그토록 강력한 개념을 만든 적도 없고 때문에 그런 개념이 무너진 적은 없다. 하지만 커리어를 이어오며 몇몇 지점에서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내 능력을 의심해야 했고, 내 캐릭터를 버려야 했고, 내 커리어를 버려야 했고, 내 스타일도 버려야 했다. 그 상황이 올 때마다 꽤 괴로웠고, 힘겨웠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됐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서 살아간다.

가볍게 들어본 양자 이야기 중 나는 기존 물리학 법칙에서 자유로운 세계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판타지 아닌가? 어벤저스가 나올 것 같고, 마법사와 소드마스터가 나올 것 같다. 어쩌면 정말 그 세계에는 에네르기파를 쏘는 사이아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런 내용도 나오더라.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라고.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세상에.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세상에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는 것이 힘이라 했는데,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다. 아차,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게 양자 중첩 아닌가.

결국 이 세상도 똑같다. 내가 경험했다며 다 아는 세상이라 자만하면, 이 세상 자체를 부정할만한 일이 터진다. 결국 우리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겸손 또 겸손뿐일까.

마무리

매달 한 권 읽고 쓰는 스튜 독서소모임이 어느 순간부터 다소 벅차다. 할 일이 많다는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는 것도 될까? 내가 만든 스케줄임에도 소화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휴가를 내고 책을 읽는다. 이번 책은 1/3을 틈틈이 읽어뒀고 2/3를 오늘 휴가와 함께 다 읽었다. 그래서인지 매달 마지막즘에 휴가를 내고 읽는 이 시기가 때로는 싫다. 나도 놀고 싶다고.

하지만 이게 참 묘하다. 결국 휴가를 이렇게 보낸 탓에 내 머릿속에 양자가 들어오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 세상 모든 게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상상력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겸손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게 진실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대함을 마주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이 마약을 내가 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늘 이렇게 읽고, 쓰고, 생각하며 배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줄평

양자라니… 물리라니!!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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