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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돌이인 내가 양자 역학이라니!!

나는 문과다. 경제나 역사와 같은 사회 과목들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내가 문과를 택한건 온전히 과학이 싫어서였다. 과학 중에서도 특히 ‘물리’가 싫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물리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양자 역학 책을 읽었다. 무려 ‘양자 역학’. 물리가 싫어서 문과로 간 내가 이름만 들어도 어려워 보이는 양자 역학이라니. STEW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발제자 동이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내 평생 양자 역학에 대해서 공부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양자 역학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자 역학? 양자는 뭐고 역학은 또 뭐야…

양자 역학. 문과생인 내가 ‘양자 역학’ 이 4글자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이었다. 양자가 뭔지, 역학이 뭔지 알아야 대충 떠오르는 생각이라도 있을텐데, 양자가 뭔지, 역학이 뭔지 모르니 무엇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책을 펴고 초반 몇몇 챕터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한국어로 된 책을 읽는데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내용이 없었다.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믿지 않았다는 양자 역학,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조차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는데, 양자 역학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세계적인 과학자들도 어렵다고 말하는걸까?

양자 역학!!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자 역학은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원자’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학교를 다닐 때 물체를 쪼개고 쪼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원자’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바로 이 원자를 설명하는 학문인 것이다. 원자는 가운데 원자핵이 있고,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는(돈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학문인 것이다(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맞는지는 모르겠다).

▲ 보어의 원자 모형 (출처 : 한국 원자력연구원)

그리고 그중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양자 중첩’과 ‘양자 도약’이다. 먼저 양자 중첩이란,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인데, 평소 전자는 파동으로서 존재하지만, 이를 측정하는 순간 ‘결어긋남’이 일어나 파동함수가 순식간에 붕괴하고 입자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양자 도약이란, 전자가 원자의 궤도를 도약하는 현상인데, 이때 전자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궤도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순간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상깊었던 것

그래서 양자 역학이란 원자와 전자를 설명하는 학문인데, 도대체 이게 왜 중요하다는 것일까?

저자인 김상욱 교수님에 따르면 일단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는데, 양자 역학잉 원자를 설명하니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양자 역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양자 역학은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이고,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양자 역학이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좀 더 와닿을만한 실제 사례가 필요했는데, 이번 주말 독서모임에서 동이님이 스마트폰의 사례를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자 역학 덕분이라는데, 이는 반도체가 전자의 ‘양자 도약’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성질을 가진 물체다. 도체는 전기가 통하는 물체이고, 부도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체이니 반도체는 그 중간 성질을 가진 물체라고 보면 된다. 즉 반도체는 특정한 상태에서는 전기가 흐르고, 그 외의 상태에서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체인데 바로 여기서 양자 역학이 작동한다. 앞서 양자 도약이란 전자가 순식간에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반도체는 평소 중간에 부도체가 막고 있어 전자가 반대편으로 이동하지 못하지만, 전압을 걸어주면 양자 터널링 효과를 일으켜 전자가 부도체를 도약해 건너편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양자 도약이 일어나는 셈이다!

사실 경영학에서도 양자 도약에 대한 이론이 자주 등장한다. 양자 도약이라는 명칭보다는 영어 명칭인 ‘퀀텀 점프(Quntum jump)’라는 용어로 자주 등장하는데, 흔히 기업이 한 순간에 비약적인 도약을 했을 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경영학과의 케이스 스터디의 대부분은 이런 퀀텀 점프를 이룬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많이 다룬다.

이처럼 그동안 내가 몰랐지만, 양자 역학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현재에도 내가 양자 역학을 온전히 이해한 지 모르겠다. 아니,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천재 물리학자조차 이 세상에 양자 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니 애초에 내가 책 한 권으로 양자 역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사실 양자 역학을 몰라도 내가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학문을 전 세계 유수의 물리학자들이 오랜 기간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하고 있다. 나와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이런 과학자들 덕분에 인류가 발전하고 우리 모두는 오늘날 문명의 혜택을 보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떻게 보면 오늘날 실용성?과는 전혀 멀어보이는 양자 역학 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덕분에 우리 모두는 오늘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과학자들 만큼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는 나 역시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좀 더 고민해보고 좀 더 진지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당장은 서평부터.

간만에 의미 있는 주말을 보냈다. 2021년 첫 서평인데, 반성하고 남은 11월, 12월 두 번의 STEW 독서모임에서는 꼭 서평을 제출해야겠다.

< 인상 깊은 문구 >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 리처드 파인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원자는 양자 역학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니 A와 B의 중첩 상태, 그러니까 A이면서 동시에 B일 수 있다. 독약병이 멀쩡하면서 동시에 깨져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도 살았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원자는 미시 세계에 속하니까 그렇다 쳐도 고양이는 거시 세계에 속하는 존재 아닌가? 고양이는 절대 이럴 수 없다. 그렇다면 독약병도 이럴 수 없고, 원자도 이럴 수 없다. 즉 중첩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양자 역학은 틀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보어에 따르면 원자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우리는 원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자 도약을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이해 못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우리는 왜 태양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원자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걸까? 우리가 원자와 전자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이런 경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훗날 보어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라 우리의 직관, 상식, 언어에 있다.”

“파동이면서 입자다.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표현이 등장한다.”

“양자 역학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라이프치히 대학교는 24세에 불과한 하이젠베르크에게 교수 자리를 제안한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보어에게 간다. 양자 역학의 해석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교수직을 마다하고 비정규직 연구원을 자청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코펜하겐에서의 1년여 동안 양자 역학의 표준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하이젠베르크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 준다.”

“양자 역학에서 모든 ‘것’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

“다시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문제로 돌아가자.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면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한다. 위치의 부정확도가 파장의 크기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장이 짧아지면 광양자 이론에 따라 빛의 운동량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빛의 운동량이 커지면 빛과 충돌하는 전자가 받는 충격도 커진다. 따라서 전자의 운동량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결국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위치가 정확해지면 운동량이 불확실해지고 운동량이 정확하려면 위치가 부정확해지기 때문이다.

왜 빛으로 측정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빛이 아닌 다른 물체, 예를 들어 전자를 이용해서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도 있다. 전자 현미경이 그 예다. 이 경우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전자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운동량과 파장이 드 브로이의 공식으로 기술된다. 전자 현미경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전자의 파장을 작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전자의 운동량이 커야 한다. 운동량이 큰 전자는 충돌 시 큰 충격을 주어 측정당하는 전자의 운동량을 크게 교란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리적으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측정은 반드시 교란을 수반할 뿐 아니라, 위치나 운동량의 오차 중 한쪽을 줄이는 것이 다른 쪽을 늘이게 된다. 이것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 부른다. 본질적으로 완벽한 측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불가지론은 측정에 담긴 자연의 본질인 것이다.”

“벨기에의 사업가이자 기업가 에른스트 솔베이는 염화나트륨과 탄산칼슘으로 염화칼슘과 탄산나트륨을 생성하는 ‘솔베이 공정’을 개발해 많은 돈을 벌었다. 부자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회의를 개최하는 데 이 돈의 일부를 썼다. 바로 솔베이 회의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회의의 공식 주제는 “전자와 광자”였다. 하지만 진짜 주제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 맞는가?”라고 봐야 한다. 회의는 10월 24일 월요일에 시작되어 28일 금요일까지 이어졌다.

물리학에서 이 회의의 기념 사진만큼 유명한 것도 없다. 사진의 인물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만 17명이다. 이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넣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진부한 장난이다. 참석자의 국적도 다양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하나.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어떤 언어로 이야기했을까? 지금이라면 이건 질문도 아니다. 답은 영어니까. 하지만 영어가 과학의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다. 솔베이 회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12년 전에 개최되었다. 놀랍게도 회의의 공식 언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세 가지였다. 발표자는 본인이 원하는 언어로 발표했다. 회의 조직 위원장인 헨드릭 로런츠는 세 언어 모두에 능통했기에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도왔다고 한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의 상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보여 준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지구상의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보잘 것 없는 암석 덩어리 같은 것이며, 우주는 138억 년 전 폭발하며 생겨났다. 일견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사실이 옳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 과학이다. 과학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상식조차 의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의 핵심은 합리적 의심이다. 허나 의심 전문가인 과학자들조차 상식의 덫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직관 때문이다.”

“사실 양자 역학에서 자유 의지 문제는 여전히 미묘하다.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던질 때 우리는 확률을 생각한다. 각 면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 이것은 우리가 주사위의 초기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사위의 초기 상태를 왜 모른단 말인가? 주사위는 손바닥 위의 어느 위치에 정지해 있다. 따라서 웬만한 물리학자라면 주사위의 궤적을 계산하여 어느 면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사위 던지기는 완벽히 무작위적인 과정은 아니다. 잼 바른 빵은 항상 잼 바른 면으로 떨어진다는 머피의 법칙은 빵의 낙하 운동으로부터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것은 뉴턴의 고전 역학이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결국 주사위 던지기를 확률로 다루는 것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물리를 잘 몰라서다.”

“측정하는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위치와 운동량을 모르면 뉴턴 역학에 따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확률을 쓸 수밖에 없으며, 결국 비결정론이 도입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한 말이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는 데카르트가 틀릴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저항군 지도자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내민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대로 계속 살 수 있다.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하고, ‘매트릭스’를 벗어난다. 네오의 세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가상 세계였다. 양자 역학은 데카르트와 <매트릭스> 중 누가 옳은지 답을 준다. 이 세상이 실재인지, 또한 실재가 무엇인지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양자 역학은 측정하기까지 결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당신 앞에 모피어스가 내민 알약 하나가 있다. 빨간색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보기 직전에 이 알약의 색은 무엇이었을까? 이 따위 질문이 있다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야 당연히 빨간색이라고 말한다면 이건 양자역학을 모르는 것이다. 측정하기 전에, 즉 보기 전에는 알약의 색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측정하는 순간 색이 정해진다. 측정이라는 행위가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양자 역학에서 우리는 대상이 내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단지 측정이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재성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대상을 측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환경이다. 측정을 통해 대상이 나의 마음에 지각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양자 역학은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이고,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양자 역학이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실험을 해 보니 간섭 무늬가 사라졌다. 결국 측정에서 중요한 것은 교란 여부가 아니라 정보라는 것이다. 전자가 어느 구멍을 지났냐는 정보만 얻어지면 원자는 입자같이 행동한다. 결국 양자 역학의 측정은 오직 정보만을 고려하는 듯 보인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양자 역학은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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