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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우리

우리는 배웠다. 모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교과서를 통해, 살아오면서는 부모님과 지혜로운 어른들을 통해. 바로 ‘평등’이다. 이데올로기 간 싸움에서 민주주의가 생존했고(?), 우리는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웠다. 우리가 존경하고 따르던 분들의 가르침이었고,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국가의 가르침이었기에, 지금 평등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더 큰 배신감과 좌절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난 개인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상황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의 3분의 1을 산 지금, 내 생각이 어쩌면 이기적인 젊은 패기였을 수도 있다는, 작은 의문의 싹을 틔우는 중이다.

명견만리는 책 이름 그대로, 만 리를 바라보기 위해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인간이기에, 이웃의 사례를 가지고 냉철한 현실을 비춰주는 한 문장 한 문장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번 책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져온 불평등의 현주소를 적고, 공존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평등의 기준

평등의 기준이 무엇일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기회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 과정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 결과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 개인적으로 어떤 유토피아가 온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을 만족하게 하는 평등은 없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평등은 감정이 없는 기계들만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불평등은 왜 문제일까? 불평등은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사실 모두가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자신보다 위를 바라보면서 불평등을 하소연하면서,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을 바라보면서 안도하는 게 인간이다. 이중적이다. 어떻게 보면 불평등이 인간을 끊임없는 진보의 수레바퀴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이다.

현 불평등의 문제는 기회의 불평등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자로 태어난 아이는 가난하게 태어난 아이보다 당연히 더 많은 학습의 기회를 가지기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 부자의 70%가 상속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출생의 차이가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맞으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똑같은 두 아이라고 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가 다르다. 누구는 부유한 상황에서 몰락하는 반면 누군가는 가난한 상황에서 성공한다. 개인적으로 부모의 가난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 하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다. 기회의 불평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결과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이 100% 원인이 아니다. 상황의 탓도 있겠지만 개인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도 기회의 불평등에 슬퍼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에 탓만 한다면 모든 가능성을 본인이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불평등하다고 느낄까?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적당한 집, 적당한 차, 적당히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 중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항상 불안 속에 살아간다. 이 부분은 정말 공감한다. 나 또한 집 없고 차 없이 적당히 살아가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소리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더 많은 부를 향유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를 잡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하기보다는 현재의 평온함을 선택했다.

쓴 글을 보면 불평등을 옹호하는 기득권층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 몇 있는 금수저 또한 끊임없는 불안과 불평등 속에 살아간다. 대화하다 보면 돈에 대한 스케일이 클 뿐이지 생각의 구조는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 바로 ‘낙인’ 때문이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나보다 더 가난한 친구도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낙인을 찍히지는 않았었다. 나이키 신발을 못 신고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못 입었을 뿐 다 같이 어울렸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너무 다른 것 같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 빌라에 사는 아이, 전세 사는 사람, 차 없는 사람… 자신의 이름에 가난의 어떤 형태가 붙는다는 자체가 사회의 분열을 보여주는 심각한 현상이다. 자신의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타이틀을 얻기 위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회.

낙인을 만드는 주체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리고 그 자기 얼굴에 침 뱉기가 결국 자기 자식한테 돌아간다.

나는 부유하게 살 수 없다. 부유함이 인생의 목표가 아닐뿐더러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한다. 그래서 난 나중에, 누군가를 이겨야 올라가는 비교 지상주의 동네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 같은 동네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게 꿈이다.

‘말할 수 없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직장 선배님이 계셨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주변을 돌아보며 후배들을 챙기는 분. 지금은 이직하셨지만 나에게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는 말이었다. 항상 웃는 분이셨고, 항상 타인을 배려하고 챙기는 분이셨기에 감히 생각조차 못 했다.

그 당시에는 주변에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무게, 회사에서는 과장이라는 무게 때문이었다.

‘나 힘들어요’

이 한마디를 주변에 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이 당겨졌지 않았을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간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힘들다는 모습을 보이면 뒤처질까, 약해 보일까 하는 걱정으로 더 깊은 마음의 수렁에 빠져간다.

우리나라 성인 100명 중 25명이 정신질환을 겪지만, 5명만이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25명이라는 수치도 굉장히 축소된 숫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남자는 아파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우리 모두가 그런 폐쇄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행복하면 행복하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정신질환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하지만 사회 전체의 문화를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 국가 또한 이 사태가 곪고 곪아 터질 때쯤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모든 변화는 작은 곳에서 시작한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회사 직원들에게 힘든 점이 있으면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변화가 시작했다. 특히 회사에서의 변화가 컸다. 선배도 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관리자는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팀원들의 고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정신은 아직 미지의 세계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연결이 정신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 p263

책의 ‘지역 편에 나오는, 이 책의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이다.

공간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최근 보고 있는 드라마 ‘원더우먼’에서 나오는 명언이 있다

“모든 것에 100% 나 때문인 것은 없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며 산다.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인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100% 무엇 때문에 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다.

100%가 나를 향한다면 정말 괴로운 시간을 살아갈 것이고, 100%가 타인이나 환경을 향한다면 비겁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문제를 다방면으로 바라보고, 다방면으로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때, 삶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명견만리’ 책은 그 다방면의 길을 안내해 주는 소중한 길잡이이다.

왜 책을 봐야 하는지 보여주는 책

인상 깊은 문구

사회가 신뢰를 잃으면 미래를 잃는다. 신뢰는 사회를 움직이는 무형의 자신인 ‘사회적 자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 간의 배려, 신뢰와 같이 공동체의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다. 이는 경제 자본 못지않게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소통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 희망의 발견이 절실한 이유다 – p9

우리나라 땅의 97퍼센트를 인구 10퍼센트가 소유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은 지 오래됐음에도 국민의 약 44퍼센트는 무주택자다. 지난 50여 년간 땅값 상승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6700조 원이었는데, 이 중 80퍼센트 이상인 5500조 원을 상위 10퍼센트가 가져갔다 – p26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부의 편중이 상당 부분 세습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무려 74.1퍼센트가 상속부자였다 – p28

이제 새로운 사회계약을 확정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사회 진보는 국내총생산과 같은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의미 있게 사느냐와 같은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본소득과 같은 생각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3

평등은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평등함과 공평함의 문제.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 p36

부모가 소득 하위 10퍼센트이거나 소득 상위 10퍼센트인 경우에 자녀들도 그 계층에 머물 가능성이 90퍼센트나 되었다 – p39

어쩌면 유럽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청년이라는 시기를 어떻게 보는지, 더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시각차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 p60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없으니 대학 진학에 목을 매는데, 대학 진학자가 너무 많다 보니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 차원의 대폭적인 지원 정책을 쓸 수 없다. 지금처럼 모두가 한 목표만을 향해 경쟁한다면, 또 대학 입시라는 사다리에 누군가가 오르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계층이동과 계층유지를 위한 오래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 p62

지금의 상황을 내러벼둔다면 중산층은 사라지고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90퍼센트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탈출 사회’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 – p83

소비 절벽, 경기 침체, 저출산과 고령화. 일본이 지난 20년간 이 삼중고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얻은 깨달음은, 노동자들의 지갑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득이 높아져야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아베 총리가 재정적 부담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인 이유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중산층을 살리는 것이 일본 경제를 구해내는 길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 p89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더 이상 양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갑질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 p123

고통을 잘 감내할 줄 알아야 성숙한 인격이라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우울하고 답답해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정신의학적 증후군인 ‘화병’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 p135

많은 학자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건설사와 정부의 이해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국가가 공공예산으로 마련해야 할 부분을, 시민이 직접 구매하도록 떠넘겼다는 것이다 – p255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 p263

동네가 상품처럼 사고 팔리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모두가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유랑민일 수밖에 없다. 넓디넓은 자동차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이 이 도시의 주인 행세를 하는 한, 도시민들은 당당히 거리를 걸으며 여유를 즐길 수 없다 – p270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른바 ‘감소의 시대’다. 인구는 물론이고 투자와 생산, 노동의 기회, 발전 가능성 등 모든 것이 감소하고 있다. 더불어 지방도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의 소멸은 해당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 모두에 큰 부담을 주고,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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