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STEW

명견만리를 통해 본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11월 STEW 독서모임 지정 도서 명견만리. KBS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라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다큐멘터리가 워낙 인기가 많았는지 책으로도 꽤 여러 권이 나왔는데, 이번 지정 도서는 그중에서 공존의 시대 – 불평등, 병리, 금융, 지역 편이었다. 실제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인데, 불평등 4 챕터, 병리, 금융, 지역 각 2 챕터씩 총 10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 10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주제도 다양하다. 교육, 노동, 현금 없는 사회, 블록체인, 도시화 등 챕터 별로 굵직한, 쉽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각 파트별로 우리나라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여럿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각 챕터 말미에 해당 챕터를 기획한 PD의 기획 의도가 나오는 부분이 좋았다. 해당 파트를 왜 기획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나오니 훨씬 더 이해가 잘 되고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모든 내용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서평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 위주로 써볼까 한다. 책은 술술 읽혔지만, 각 챕터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노동이 가치를 잃은 사회 – 불평등 편

먼저 첫 번째 챕터인 ‘불평등’에서는 가장 많은 4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세습’, ‘교육 사다리’, ‘노동’, ‘재벌’이 그것이다. 모두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특히 ‘노동’에 관심이 갔다.

직장인들의 익명 앱 블라인드. 가끔 들어가 보는데, 들어갈 때마다 항상 이런 유의 글들을 볼 수 있었다. 핵심은 결국,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일만 늘어나지 아무 소용이 없다’, ‘돈 주는 만큼 적당히 일해라’,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을 따라가지 못한다’ 등인데, 대다수 직장인이 여기에 공감하며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슈카월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Normal Path’의 붕괴.

과거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결혼하고 대출받아서 집을 사고, 대출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해 승진하고 은퇴하는 삶. 이런 Normal Path가 오늘날 붕괴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N포 세대’가 되었고, 현재 우리 사회의 출산율, 결혼율은 처참하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른 것을 경계해야 한다.” – 토마 피케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현재 우리 사회에 위와 같은 정서가 팽배한 이유는 결국 토마 피케티가 지적한 근로 소득과 자본 소득 간의 괴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을 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었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해 가족과 함께 알콩달콩 살 수 있다는 희망. 아무리 일해 봐야 내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근로 소득은 가치를 잃었고, 현재 모든 돈은 주식, 암호화폐 시장으로 들어간다.

물론 이런 상황을 비단 우리나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은 뒤로 돈을 찍어내 위기를 극복하는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이 대세가 되었고,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미친 듯이 돈을 찍어내 이를 극복하고 있다. 돈이 시장에 풀리니 당연히 자산의 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도 코로나로 각종 지원금이 풀리자 시장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근로 소득이 자본 소득을 뛰어넘지 못하는 세상은 옳지 못한 사회라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그 가치를 잃었고, 직장은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를 만들기 위해 대충 다니는 곳으로 전락했다. 가뜩이나 저출산,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아무도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욱 절망적인 건, 이런 인식이 우리 청년들 사이에도 팽배하다는 점이었다.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 연구팀이 2017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나라에서 청년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는데, 중국과 일본의 대학생은 1순위로 ‘재능’을, 미국은 ‘노력’을 꼽은 데 반해 우리나라 청년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고 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청년 대다수가 믿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바보가 된다고 믿는 사회, 현재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은행에 들어오니 보이는 것들, 디지털 약자

– 병리 & 금융 편

책을 읽으며 가장 관심이 갔던 파트가 바로 금융 파트였다. 아무래도 현재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크게 2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하나는 ‘현금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내가 근무하는 은행과도 괴리가 있어 여기서는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오늘날 우리는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미 현금을 아예 안 받는 매장이 늘고 있기도 하고 비교적 적은 금액의 물건을 살 때 5만 원짜리를 내면 잔돈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들도 많다. 그만큼 현재 우리 사회는 현금 없는 사회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와 ‘내 주변’ 기준이었다. 은행에 들어와 영업점에서 근무하다 보니 나와 내 주변이 아닌, 다른 생경한 풍경이 들어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에게 최근 은행에 언제 가봤는지 물어보면, 기억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 은행 업무의 대부분은 디지털화되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은행에는 도대체 누가 오길래 이렇게 영업점이 많은 걸까?

영업점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하면서 느낀 바로는, 은행에 찾아오는 고객들은 크게 2 부류다. 앱이나 인터넷에서 처리가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은행에 오는 고객들과 앱이나 인터넷을 아예 하지 못하는 디지털 약자들. 대부분이 후자이며, 후자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이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디지털 약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디지털 약자는 다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해서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핀테크와 전자화폐로 대변되는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편의성만을 좇다 보면 사회가 더 각박하고 매정해지며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책에서 이 문구를 보며, 내가 매일 영업점 일선 창구에서 마주하는 분들이 떠올라 굉장히 공감이 갔다. 영업점을 찾는 어르신 대부분이 통장정리, 단순 입출금, 계좌 송금을 하기 위해 영업점을 찾는다. 어르신들의 노령연금 날이 25일인데, 이날이면 영업점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창구에서 번호표를 누르면 고객님이 몇 분 기다렸는지가 나오는데, 1시간씩 기다리며 어르신들이 보는 업무는 5만 원 출금, 20만 원 출금, 통장정리, 계좌 송금 이게 전부다. 통장이나 카드로 ATM에서 출금하면 되지 않느냐고? 우리에겐 간단하지만, 어르신들에겐 절대 그렇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요즘 가게들 대부분이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어르신들은 이런 기계가 낯설고, 무섭다. 현재 은행도 전표, 장표가 디지털화되어서 어르신들이 출금하려면 직접 태블릿에 금액과 이름을 적어주셔야 하는데, 이 간단한 것조차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냥 화면에 금액과 이름만 적어주면 되는데, 아예 시도해볼 생각조차 않고 ‘아유 나 이런 거 할 줄 몰라, 해줘’라고 손사래 치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 그냥 태블릿 자체가 처음 보는 기계니 무서운 거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이제 햄버거가 먹고 싶어도, 키오스크 주문이, 뒷사람의 따가운 눈총이 두려워 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르신들을 대하며 또 하나 느꼈던 점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창구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가끔 자식 자랑을 하거나,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내가 별 대꾸를 하지 않아도, 혼자 신나서 이야기하신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그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이나 온종일 집에서 말동무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시다가 은행에 와서 입출금 하며 나누는 몇 마디가  그분들에게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은 갈증과도 같다. 갈증은 우리 몸에 물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갈증 자체는 질병이 아니지만, 이 신호를 무시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외로움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지금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신호.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외로움을 무시하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을 넘어 사회도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지금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신호”, 이런 생각이 들자 좀 더 어르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고, 진심으로 응대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았는데, 가령 폭력 사건의 경우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0.7%에 불과하며, 살인의 경우도 7.3%에 불과하다는 부분이나, 60~70대 어르신들보다 오히려 20~30대의 젊은 층들이 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사실,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주거환경이 우리를 점점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시각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그럼에도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갈등, 부동산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내부적으로도 해결할 게 많은데 미국 – 중국의 패권 경쟁 등 세계정세도 심상치가 않다. 

그리고 이런 심상치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내년 3월 국가의 수장을 뽑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거대 양당의 대선 주자가 정해졌으며,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 부디 양당 후보들이 진영 논리를 떠나서 네거티브 공세보다는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건전하고 발전적인 경쟁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한줄평

인기리에 방영됐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만큼,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내용이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

인상 깊은 문구

“‘974만 원 대 132만 원.’ 대한민국의 최상위 20퍼센트와 최하위 20퍼센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다. IMF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격차가 큰 국가로 나타났다.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약 45퍼센트를 차지한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인격 없는 지식’ 등과 함께 ‘땀 흘리지 않고 얻는 부’를 일곱 가지 사회악 중 하나로 규정한 바 있다.”

“건강한 미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함께하는 생태계를 만들 때 가능해진다. 인류 역사는 이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이치를 방증한다. 기원전 3세기 동과 서에서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됐다. 중국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로마제국은 이 시기부터 약 500년에 걸쳐 로마 가도를 만들었다. 진시황은 이민족을 막는 성벽을 쌓았고, 로마제국은 세계로 연결하는 길을 내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이 흥했던 이유를 로마인의 개방성에서 찾았다. 열린 길을 통해 수없이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로마를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성벽은 단절이고, 길은 포용이다. 개방과 포용을 통한 공존이 한 국가를 흥하게 하는 진리였다.”

“참여를 통한 공론화의 과정은 사회를 튼튼하게 한다.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면 그 가치를 대변하는 교양 시민층이 생겨나고, 이들이 사회적 자본을 확산시키는 주도층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단 2퍼센트, 일본 18.5퍼센트, 미국 28.9퍼센트.

10억 달러 이상을 가진 부자들 중 상속이나 증여로 부자가 된 비율이다.

대한민국은? 무려 74.1퍼센트가 상속 부자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땅의 97퍼센트를 인구 10퍼센트가 소유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은 지 오래됐음에도 국민의 약 44퍼센트는 무주택자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상위 10퍼센트가 너무 많은 땅과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땅과 집을 많이 가진 사람들만 이득을 본다. 양극화가 갈수록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실련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50여 년간 땅값 상승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6,700조 원이었는데, 이 중 80퍼센트 이상인 5,500조 원을 상위 10퍼센트가 가져갔다.”

“<21세기 자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른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엄청난 소득 불평등을 초래해 전 세계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피케티 지수’를 발표했는데, 전체 자본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이 지수가 높을수록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더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피케티 지수는 8.28로, 4.1인 미국과 4.12인 독일의 두 배가 넘는다. 이미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가 더 커져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패감을 느낀다.”

“미국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10억 달러(약 1조 1,120억 원) 이상을 가진 전 세계 부자들 중에 상속이나 증여로 부자가 된 비율을 조사한 결과, 중국은 단 2퍼센트만이 상속 부자이고, 일본은 18.5퍼센트, 미국은 28.9퍼센트인 반면, 대한민국은 무려 74.1퍼센트가 상속 부자였다.”

“영국의 공익재단 ‘이퀄리티 트러스트’의 이사 리처드 월킨슨은 불평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평등은 사회적 관계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선택된 소수만이 돈을 버는 경제적 불평등은 결국 공동체를 빠르게 분열시킵니다. 많은 연구들은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믿음이 없어지고, 지위 경쟁이 일어나며, 이기적인 행동방식이 만연하고, 이타적인 분위기가 사라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이 사회에 정말 크고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세금을 몇 퍼센트 더 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세금을 내면 그것이 자신과 이웃에게 공정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핀란드는 범칙금도 소득 수준에 비례해 부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 똑같은 범칙금을 낸다면 고소득자에게는 처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루 수입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일수벌금제는 1921년 부터 생겨난 사회적 합의이자 규칙이다. 경찰차 안에 있는 컴퓨터로 국세청에서 최신 과세 정보를 받아 소득수준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핀란드의 백만장자인 핀리틸라 그룹의 야리 바르 회장은 지난 2009년 과속으로 엄청난 벌금을 냈다. 제한속도보다 1킬로미터를 초과한 탓에 그가 낸 벌금은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2억 원이다. 백만장자인 그에게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야리 바르 회장은 벌금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게 핀란드 법이니 인정할 수밖에요.””

“조세 정의는 많이 벌고 많이 가진 사람을 무조건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세금을 부과해서 사회의 공적인 가치를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부의 편중을 바로잡는 데 세금이 합당하게 쓰인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와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한 공동체로 살아가는 부자들에게도 유리한 일이다.”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새로운 사회계약을 확정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사회 진보는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의미 있게 사느냐와 같은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본소득과 같은 생각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구 소득 중 국가로부터 직접 받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공적이전 비중을 보면, 한국은 OECD 평균인 21퍼센트에도 한참 못 미치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출처: OECD, 2012)”

“‘공평함’은 모든 사람이 재화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만큼 재화를 받음으로써 같은 조건에 서는 것이다.”

“‘평등은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다(Equality doesn’t mean justice)’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평등함(equality)과 공평함(equity)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그림이다.”

“‘당신의 나라에서 청년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가 2017년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4개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 중국과 일본의 대학생은 1순위로 ‘재능’을, 미국은 ‘노력’을 꼽았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압도적으로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 재능과 노력보다는 부모의 재력이 성공의 우선 조건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에 미국의 오리건주에서는 2014년 청년들의 학자금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 나눔형 학자금 제도’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취업 후 소득의 3퍼센트를 일정 기간 지불한다는 조건 아래 상환 의무 없이 학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학자금을 오로지 개인이 부채로 부담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눠 부담하자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 내 28개 주에서 이 정책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대학 교육은 사치품이 아니라, 경제적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품이다”라는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서도 대학 교육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일고 있으며, 청년들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학자금 대출 금리는 0퍼센트다. 상환은 30년에 걸쳐 진행되고 그 뒤에는 전액 면제된다.”

“네덜란드를 비롯해 핀란드, 독일 등에서 대학 진학률은 30~40퍼센트에 불과해 70퍼센트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없으니 대학 진학에 목을 매는데, 대학 진학자가 너무 많다 보니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 차원의 대폭적인 지원 정책을 쓸 수 없다.”

“독일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항상 중하위권에 머문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15~2016년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독일은 세계 4위를 기록했다. 독일의 교육은 개개인의 수준과 진로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종류도 정말 다양해서 독일 사람들도 무엇이 있는지 다 알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직업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높은 사회적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례로 굴뚝 청소부는 5년 동안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오히려 수입이 좋아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우리의 사회적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은 누구나 잘하는 게 하나씩은 있고, 바로 그 하나를 제대로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다.”

“옥스퍼드대학의 대니얼 돌링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 문제로 번지는지 영국 사회가 그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신경 쓰기 시작해요. 자기에게만 돈을 쓰고 세금도 내지 않죠. 아무도 돌보지 않아요. 그러면서 사회가 분열해요. 지금 영국이 그렇습니다. 유럽연합 탈퇴 논의까지 진행되며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죠. 영국은 불평등이 심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금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 격차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양극화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소비 절벽, 경기 침체, 저출산과 고령화. 일본이 지난 20년간 이 삼중고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얻은 깨달음은, 노동자들의 지갑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득이 높아져야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아베 총리가 재정적 부담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인 이유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중산층을 살리는 것이 일본 경제를 구해내는 길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어떻게 적게 일하고도 소득이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지 틸버그대학 톤 빌트하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충분한 임금과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고용 유연화만 강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사회문제가 상당히 발생했을 거예요. 네덜란드는 두 가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는 가계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시간제나 비정규직 일자리에 사회보장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가 중요하다. 갑질 문제 해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역할이다. 힘없는 을, 병, 정의 눈물을 닦아줄 제도와 시스템은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연일 터져 나오는 갑질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문제의 정치’가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40분에 한 명, 하루에 36명.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숫자다. 2003년 이후 2017년까지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놓친 적이 없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1991년 경제위기를 겪은 스웨덴은 당시 노동자의 10퍼센트가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자살률은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오히려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는 스웨덴 정부가 실직자들이 좌절하거나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좋은 일터로 복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우리와 달리, 사회 안전망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경제위기가 반드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

개인의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여건을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은 이처럼 아주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범죄자 개인의 탓으로 돌려왔다.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을 ‘예비 범죄자’로 규정해놓고 함께 섞이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는 이런 편견과는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폭력사건의 경우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0.7퍼센트에 불과하다. 살인의 경우도 7.3퍼센트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낮은데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다고 경계하면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과 사회는 멀쩡하다는 왜곡된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하면 많은 언론이 이를 정신질환 탓으로 돌리지만, 실제 폭력이나 살인사건 대다수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이 저지른다. (출처: 경찰청, 2016)”

“우울이나 불안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직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억누르고 부정할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러니 마음을 열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는 게 회복을 위한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왜 화가 나는지,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동료, 좋은 PD가 되어야 했기에 화는 출구에서 길을 잃었고 어디론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제 나는 응석을 부릴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 함부로 ‘미친 짓’을 할 수 없었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엔 벼랑이 너무 높아 보였다.”

“개개인의 인생은 모두 다른데, 왜 답은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퉁’쳐지는가. 우리는 아픔을 견뎌야만 하는 변태들인가. 타인의 아픔을 무감각하게 봐야만 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도대체 왜 우리는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것인가.”

“영국 정부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 개인의 감정인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무연고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2017년 무연고 사망자 2,010명 중 50~60대가 1,029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그중 남성 사망자 수가 907명이다. 왜 무연고 사망자 중 남성이 월등히 많을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도태된 남성이 결국 사회와 단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

지금 우리는 고독하고 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효율성을 따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을 빠르게 퍼뜨리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세대별로 느끼는 외로움을 조사한 결과, 예상외로 20~30대 청년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한편 영국에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코스타에는 ‘수다석’이라는 것이 있다. 젖먹이 엄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수다석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다석에 앉는 손님들끼리는 처음 보는 사이라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니까 수다석에 앉는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사인인 셈이다. 수다석을 이용해본 손님들은 잠시 외로움을 잊고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며 호평 일색이다. 2018년 4월부터 25개 매장에서 시작된 수다석은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레이트 겟 투게더’ 측이 영국 전역에서 조사한 결과, 고립감과 외로움이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비만보다 치명적인 사인이고, 하루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사회도 영향을 받는다.”

“외로움은 갈증과도 같다. 갈증은 우리 몸에 물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갈증 자체는 질병이 아니지만, 이 신호를 무시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외로움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지금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신호.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빈곤은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외로움을 무시하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을 넘어 사회도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준다면 살아갈 힘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엄청난 부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주요 은행 지점 1,600곳 중 900여 곳이 현금취급 업무를 하지 않는다. 현금인출기(ATM) 역시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현금을 입금할 수 있는 기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바일 금융거래 간편 결제 앱인 스위시는 사용자의 계좌가 아닌 전화번호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노르디아, 한델스방켄, SEB 등 스웨덴에서 가장 큰 여섯 개의 은행이 협력해 만든 것으로, 국민의 60퍼센트가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다른 은행들과도 연합을 맺어 총 여덟 개의 은행이 스위시와 연결되어 있다.”

“스웨덴 상점들은 약국 등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현금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현금 사용이 줄어들자 ‘현금 반란(kontantupproret. Cash Rebellion)’이라는 시민단체가 생길  정도로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거부감도 늘어가고 있다. 현금 반란의 비에른 에릭센 대표는 2018년 4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불 시스템이 완전히 디지털화되면 누군가가 시스템을 껐을 때 방어할 수단이 없다”라며 디지털 시스템의 취약성을 경고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스웨덴 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다. 덴마크는 2017년 1월부터 화폐의 제작을 중단했고,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상점 주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유로존 역시 2018년 1월부터 고액권인 500 유로화의 발행을 전면 중단했다. 고액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는 추세도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1,000유로, 그리스는 1,500유로, 스페인은 2,500유로, 벨기에는 3,000유로 이상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위반 시 수십 배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기존 금융회사들은 개인의 직장이나 소득, 금융거래 실적, 연체기록 등을 근거로 대출을 심사했다. 그러나 핀테크가 결합하면 SNS에 올린 글이나 연결된 친구, 생활습관 등 수만 가지 빅데이터를 이용해 대출을 결정할 수 있다.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정보들이 중요한 신용평가 자료가 되는 것이다. 최근 핀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로 구글 출신 데이터 분석가들과 금융사의 대출 전문가들이 창업한 제스트파이낸스(ZestFinance)가 있다. 이 회사는 기존 금융시장에서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의 신용을 빅데이터를 통해 재평가한다. 미국의 일반 은행들이 20개 안팎의 변수로 신용을 평가하는 반면, 제스트파이낸스는 동호회 정보, SNS 포스팅 주제, 인터넷 접속 시간 등 7만여 개의 각종 변수를 분석해 신용도를 평가한다. 제스트파이낸스의 모델로 분석한 신용도는 기존 신용점수보다 40퍼센트 이상 상향 평가된다. 또한 대출 승인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부실률은 기존 평가방식보다 낮으며 수익률은 훨씬 높다.”

“홍콩의 핀테크 기업인 렌도(Lenddo)도 SNS 데이터로 신용도를 평가하고 대출을 진행하는 평판 대출회사다. 렌도는 대출 희망자의 동의를 얻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활동을 파악해 신용도를 평가한다. 이때 SNS 친구들 중에 연체자가 있을 경우 신용점수가 깎이고, 친구들이 제때 대출금을 상환하면 점수가 올라간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렌도의 신용평가 시스템은 대출금 상환율이 95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매우 우수하다.”

“한편 상위 10대 기업에 오른 회사를 살펴보면, 중국 기업이 네 곳(앤트파이낸셜, JD파이낸스, 두샤오만금융, 루팍스홀딩스), 미국 세 곳(소파이, 오스카헬스, 로빈후드), 영국 한 곳(아톰뱅크)으로, 중국은 현재 핀테크 세계 최강자로 부상했다.”

“한국의 대출시장은 한쪽에서는 과잉 가계부채가 국민경제를 짓누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고 사채업자의 약탈적 금융에 피해를 보고 있다. 각 연령대별 신용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은행 대출을 받는 세대는 60대가 가장 많고, 20대가 가장 적다. 반면 고금리의 제2, 제3 금융권을 이용하는 비율은 20대가 가장 높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청년들이 가장 위험한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초래할 가장 두려운 문제는 ‘감시사회’로의 진입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현금 없는 사회의 시작은 “모든 돈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계좌에 넣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빅브라더의 출현을 경고했다. 전자결제는 모든 금융거래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감시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4,000명 이상이 손등에 개인정보가 담긴 전자칩을 이식하고 다닌다. 이들은 인식기에 손등을 가까이 대고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 결제를 끝낼 수 있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의 모습 중 또 하나가 현실화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디지털 약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디지털 약자는 다시 경제적 불이익을 당해서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핀테크와 전자화폐로 대변되는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편의성만을 좇다 보면 사회가 더 각박하고 매정해지며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리플은 기존 가상화폐들처럼 누구나 거래의 검증자로 참여 가능한 분산형 구조가 아니라 사전 검증된 몇몇 주체들만 검증자로 허용되는 폐쇄형 블록체인을 택했다.”

“”우리는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건축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 한국에 아파트가 많은 이유로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나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은 파리에는 8층 이상 고층 주택이 별로 없다는 점이나(파리는 1제곱킬로미터당 2만 3,000명, 서울은 1제곱킬로미터당 1만 7,000명) 인구밀도가 낮은 한국의 중소도시나 농어촌에까지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아파트 사랑을 인구밀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아파트에는 아궁이 대신 입식 부엌, 재래식 화장실 대신 수세식 화장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동네에는 없던 공원과 놀이터, 주차장, 경비실, 복지관, 쓰레기장도 함께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는 그 자체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동네’였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집만이 아니라 깨끗하고 안락한 동네까지 ‘구매’하게 했던 것이다. ‘새 동네’ 만드는 일을 맡은 대형 건설사들은 공사뿐 아니라 설계와 분양까지, 노다지를 떠안게 되는 셈이니 정부의 정책을 두 손 들어 반겼다. 많은 학자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건설사와 정부의 이해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국가가 공공예산으로 마련해야 할 부분을, 시민이 직접 구매하도록 떠넘겼다는 것이다.”

“자르크파브릭(빈의 대표적인 사회주택)에는 식당, 카페, 도서관, 공연장, 유치원, 옥상정원, 세미나실, 사우나 같은 부대시설이 있는데 모두 지역사회에 열려 있다. 입주자는 물론 외부인도 연회원으로 가입하면 누구든지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외부를 향해 문을 개방한다는 자르크파브릭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입주민이 아니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르크파브릭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공간 역할도 한다. 이곳에 있는 250석의 공연장은 빈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다. 주변에 문화시설이 없는 근처 유치원의 아이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자르크파브릭을 찾는다. 집이 외부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해야 더 큰 가치가 생긴다고 믿는 자르크파브릭의 입주민들은 최근 전체 회의를 거쳐 난민 가족을 입주자로 받았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의 역사가 수십 년에 이른 지금 그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세대가 등장하면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우리의 심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도시건축 이론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나무형 구조의 도시를 ‘날카로운 면도날이 가득한 그릇’으로 비유한 바 있다. 나무형 구조는 그 안에 담긴 삶들을 조각내서 파편화시킨다.”

“안전 문제만 하더라도 스크린도어와 담장으로 아파트를 둘러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도어나 담장은 얼핏 안전해 보이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 침투만 하면 훨씬 위험해진다. 감시망 안쪽은 고립돼 있기에 뚫리면 속수무책인 것이다. 사실 가장 좋은 파수꾼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확보된 곳에는 강도가 별로 없다. 잠재적 범죄자들의 행위를 시선 범위에 놓이게 함으로써 범죄율을 낮추는 것을 자연감시 전략이라고 한다. 빈의 아파트처럼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면해 있는 집이 오히려 안전한 이유다.”

“두 지역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10차선에 도로의 폭이 40미터인 테헤란로에 비해 맨해튼 5번가는 5차선에 도로의 폭이 20미터다. 맨해튼 5번가는 차도의 폭이 좁고 블록이 잦아 자주 신호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차들이 별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 반면 테헤란로를 비롯한 강남의 대로들은 10차선 도로를 꽉 채운 자동차들이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어서 그 옆에서 걷는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 옆에서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에 느긋하게 머물기가 어렵다. 공간의 속도가 빨라서 자동차처럼 빨리 가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뉴욕은 건물 1층에 입주한 가게 가운데 두 곳 이상은 내부가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구조여야 한다는 제한을 일부 구역에 두고 있다. 개인 소유의 건축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열린 공간이며, 어떤 길을 걷고 어떤 건축물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기에 모든 건축물에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 그 이유다.”

“빈의 카벨베르크가 들어선 지 20년, 지역 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해 단지를 건설했던 첫 입주자들은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입주자를 받을 때면 아직 하는 일이 있다. 아파트 단지의 역사에 대한 책자를 배부하고 관련 설명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 아파트 단지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지,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공유하는 일인지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거리에서 만난 모든 주민이 이를 언급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풍경은 생경했다.”

“이미 일본 곳곳에서 소멸의 징후가 보인다. 2016년 실시한 일본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373개 기초의회 가운데 23퍼센트가 입후보자가 부족해 무투표로 의원을 채웠다. 사람이 없는 일부 시골 마을에서는 지방의회가 폐지되면서 지자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지금 일본에는 가게가 없어 생활필수품 구매가 힘든 쇼핑 약자가 600만 명에 이른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시골뿐 아니라 지방의 대도시까지도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청년들은 생계를 위해 수도권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떠난 지방에는 돈이 들지 않고 자금이 융통되지 않아 생활 인프라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60년대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였던 수도권 인구 비중은 1970년대에 28퍼센트로 증가했고, 이후 서서히 늘어나 2018년 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9.6퍼센트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인구통계모형에 의하면 2040년 전국 지자체 중 30퍼센트는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95년과 비교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 지자체들은 급격한 세수 감소를 경험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그러면 중앙정부가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시골 한구석의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는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소멸하는 지방을 위한 공적자금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비용은 우리 국민 모두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원도심에 위치한 발산마을은 죽어가던 원도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좋은 예다. 이곳은 1970~1980년대만 해도 여공들의 주거지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방직공장이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낙후 지역이 되었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빈집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쓰러져가던 ‘달동네’였던 발산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일본의 가미야마정처럼, 빈집을 고쳐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공급한 것이다.

버려진 단독주택을 보수해 카페를 창업한 오유연 씨는 광주광역시로부터 주택 보수비용과 1년 치 월세를 지원받았다. 발산마을의 할머니들과도 힘을 합쳤다. 할머니들이 자두청, 매실청 등을 만들어 유연 씨의 카페에 ‘할매스 음료’라는 메뉴로 공급하면서 마을 주민과 협업하는 상생 모델을 만든 것이다. 그밖에도 공방, 아트 스튜디오, 소품 가게, 게스트하우스 등 매력적인 공간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발산마을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을의 변화는 할머니들의 삶도 바꿨다. 마을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시작한 할매 밥집은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독일 정책의 핵심은 젊은이들이 살 만한 지방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문화와 스포츠 등 여가생활을 즐길 시설과 시스템이 구비되어야 한다. 독일은 인구 2만 이상의 도시에는 그러한 조건들이 구비돼 있었다. 도시마다 잔디축구장, 테니스 코트, 실내 수영장 등이 갖춰져 있었고, 농촌 마을에도 자전거 도로들이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웬만큼 규모가 되는 지방도시에는 자체 오케스트라가 있고 공연장도 잘 구비돼 있었다. 교육 인프라도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 못지않게 중소도시도 잘 갖춰져 있었다. 특히 좋은 대학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어서 멀리까지 유학할 필요가 없었다. 전국에 산재한 유명 대학들은 분야별로 특화돼 있고, 그 대학의 특성에 맞는 일자리가 그 지방에 있었다. 예를 들어 IT산업이 발달하고 관련 일자리가 많은 지역에는 IT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과 고등학교, 직업훈련 과정이 있었다. 지방마다 산학이 연계돼 특색 있게 발전하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우리가 만났던 독일의 젊은이들은 대도시 거주를 선호하지 않았다. 주택, 환경 등 삶의 조건이 지방보다 열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자리와 교육, 문화생활의 인프라를 갖추는 것, 그것이 독일 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는 핵심 조건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지방정부의 힘, 바로 분권이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