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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을 위한 자기 암시

일하지 않을 방식을 궁리한다. 2018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회사에서 같은 팀, 같은 업무를 한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더해진다. 반복되는 업무에 귀찮은 전화는 덤이다. 이 굴레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1-2년 차의 나는 이직을 꿈꿨다. 다른 회사로 도망가면 해결될 거야. 자기소개서를 쓰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똑같은 일을 한다. 엑셀을 켜고, 왼쪽 모니터와 오른쪽 모니터를 번갈아 본다. 반복, 반복, 또 반복이다. 3년 차의 나는 이직이 아닌 다른 돈벌이 방식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한다. 월급이 아닌 머니 파이프라인을 찾아 헤맨다. 재테크와 관련된 책을 읽고,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모니터를 켜고, 엑셀을 켠다. 일단, 아직은, 여전히, 월급쟁이 직장인인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54)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서는 확실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저 막연히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다면, 아무리 좋은 회사에 간들 또 똑같지 않겠는가. 그래서는 인생이 잘 풀릴 리 없다.’ /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회사를 그만둘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우선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 불평불만을 내뱉는 대신, 일단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철저히 몰두해보자고 다짐했다. 쓸데없는 잡념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그러자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 뒤로 나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진지하게 일을 해나갔다.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의 책 <왜 일하는가>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도망가는 대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는다. 불평불만 대신에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몰두하자는 생각이다. 그와 비교하자면 나는 지금 하는 일에 몰두하기 보다는, 최대한 덜 할 수 있는 방식,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나의 힘을 가장 덜 들이는 방식이 무엇일지를 찾는다. 그건 바로 ‘매크로(https://brunch.co.kr/@lim6922/238)’였다.

클릭 한 번으로 매일 반복되는 특정한 작업을 컴퓨터에 맡긴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후엔 다시 사람의 눈과 손으로 훑어야만 한다. 다시 반복의 시작. ‘글로 먹고 살기’를 바랐으나 매일 엑셀 노가다를 한다. 점점 글쓰는 일이 일상에서 멀어진다.

(88)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출발을 ‘좋아하지 않는 일’을 맡으며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마지못해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일에 불만을 품고 탄식과 불평만 쏟아낸다. / 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의심하면서 아까운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가? / 좋아하지 않는 일은 낯설고 어렵기 마련이다. 예상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예상대로 흘러간다고 해도 너무나 힘들고 지긋지긋하다. 사소한 일을 해도 불만만 앞서고, 한순간이라도 빨리 그 일에서 손을 떼고 싶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맡으며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서 그 일을 끝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런 측면에서라면 어찌되었든 지금 눈 앞에 놓인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낫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그나마 재미를 찾는 일은 반복되는 업무를 컴퓨터가 대신 하게끔 매크로를 만든다거나 구글링을 통해 찾은 정보로 간단한 코딩을 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한 번 만들어둔 매크로를 다시 손 볼 일은 잘 없다. 그래서 다시 반복되는 업무에 지루함을 느끼며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다시 가즈오가 한 마디 한다.

(88) 누군가에게 지시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일하는 고통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우선 주어진 일을 좋아하는 마음부터 갖길 바랍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쫓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환상을 좇기 보다는 눈앞에 놓인 일부터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노력을 노력이라 여기지 않으며,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의 일을 사랑하는 것. 거기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일이 시작된다.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마음이 책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하지만 3년 동안 반복되고, 짜증나고, 회의감이 드는 일을 해온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를 나의 ‘회사 밖’ 시간에 적용해서 생각해본다. 이마저도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겠다. 회사에서 고생했다는 핑계로, 눈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회사를 벗어난 시간에서도 나는 그리 나의 일을 사랑하지 못했다. 가득차게 내 일을 해내지 못했다.

(163) ‘아무것도 보지 말자. 오늘 달성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오늘 해내자. 일의 성과와 진척 상황을 하루 단위로 구분해 확실히 지키자. 하루 동안 적어도 한 걸음만큼은 꼭 앞으로 나아가자. 오늘은 어제보다 1센티미터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자.’ / 단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오늘을 돌아보고 그 성찰을 토대로 내일은 반드시 ‘한 가지 개선’, ‘한 가지 궁리’를 더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불평불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나랑은 맞지 않아.’ 그러나 책을 다 읽고 표시해둔 부분을 옮기는 과정에서 <왜 일하는가>의 의미가 조금씩 다가온다.스치며 읽을 때는 몰랐던 내용을 곱씹어 본다. 되뇌일 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매일 약간의 창의와 궁리를 더해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앞서간 오늘을 창조하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일과 인생에 더없이 중요하며, 진정한 창조의 길로 다가가는 비결이다.

스스로 불평불만 해왔던 사람에서 “그것 참 흥미로운데요. 어디 한번 해보죠!” 하는 사람이 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독서를 통한 자기암시다. 가즈오 회장이 강연장에서 만났다는 마쓰시타 회장이 중얼거린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으면 되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분명 시간이 지나선 달라져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게 회사에서의 일을 전념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회사의 일에선 가즈오의 말을 실행하진 않을 듯 하다. 대신하여 나의 삶 전체에 그의 이야기를 적용해보련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련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이미 걸어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평탄한 길을 걷기보다는 힘들어도 새로운 길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고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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