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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불확실성’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으로서 불가능 할 거라 단언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비단 사회생활을 넘어 삶 자체를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군 시절은 물론 대학, 학창시절, 유년기 등에서 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원인은 ‘불확실성’이다.

명확함

나는 엔지니어다. 주로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운영해왔는데 이 분야에서 10년을 살아 남았으니 꽤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버텨낸 것으로 봐서 나는 이 분야에 적당히 어울리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명확함’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엔지니어가 있을까? 만약 ‘명확함’을 싫어한다면, 그런데 나보다 더 많이 이 업계에서 살아남았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사람과 협업을 피하고 싶다.

나는 ‘명확함’을 좋아한다. 명확한 의사표현, 명확한 설계, 명확한 시스템, 명확한 평가, 명확한 보상 등 내 주위의 모든 불명확한 것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역할을 좀 더 부여 받아서 더 많은 곳을 명확하게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최근 나는 정신적으로 참 많이 지친 상태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가 실제로 통제권을 갖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운이 지배하는 상황을 자신이 통제한다는 인식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불확실한 정보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얼마 전 작은 팀의 팀장이 됐다. 나는 우리 팀 업무를 해야 할 임무가 있고, 우리 팀 여섯 명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임무가 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생겨나는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 대상으로 생각했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네 달이 지났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또 다른 불확실성이 나왔다. 그렇게 불확실성이 내 주위를 둘러 싸며 나는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때로는 이 상황을 만드는 몇몇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했고, 나아가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일을 해야 했고 생기는 불확실성들을 제거하며 우리 팀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땐 내 원래 계획은 모두 엉망이 돼 있었다.

사람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은 애초에 내 계획에 없었다. 그저 내가 잘 계획하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상황을 마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늘 불확실성은 내게 무거운 과제를 던져댔다.

슬프게도 이런 상황에 나를 지치게 하는 많은 개인적 사건이 생겼다. 내 건강은 물론 나를 구성하는 많은 관계가 엉클어졌다. 이 모든 걸 그저 내 탓으로 돌리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내가 구상했던 ‘명확함’ 자체를 잊었다.

포커를 칠 때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최고의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우기를 바랐다. 또한 포커를 통해 운을 길들이고 싶었다. 패가 좋지 않을 때도 좋은 결과를 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블러프> 저자는 심리학 박사로 현재 내가 마주한 불확실성을 먼저 경험했다. 나아가 이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1984년생으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점은 놀랍게도 현재 내 나이와 비슷하다. 책을 펼치곤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포커의 세계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게 있다. 포커 게임을 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결국 책을 읽다가 포커 앱을 받아 1시간 여 플레이 했다. 과거 ‘한게임’, ‘넷마블’ 등이 PC방을 점령하던 시기 이후 처음으로 온라인 보드게임을 해봤다. 온라인 속에서 책 속 감동은 없었지만 저자가 책 초반에 설명한 포커에 관한 막막함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포커 챔피언 ‘에릭 사이델’을 만나 포커를 배우기 시작한다. 1년 만에 챔피언이 되겠다는 목표. 포커 카드가 몇 장인지도 모르는 저자가 챔피언이 되고, 그렇게 프로 선수가 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흥미진진 했다.

때때로 번역 투로 읽히는 부분과 다소 지루한 회상 씬은 조금 읽기 힘들었지만 포커 판을 빗대며 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부분은 저자의 필력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았다.

“패배를 당해야 해.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방법이야”

그중 몇 장면은 현재 내가 마주한 현실과 오버랩 돼 다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팀장이 되는 걸 기대했지만, 실상 내 기대보다 내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한 시기. 이런 내게 에릭 사이델이 패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아프고, 한편으론 힘이 됐다.

만약 내 사회 생활이 포커 게임이라면 매일 크고 작은 포커 게임에서 나는 늘 이기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포커 게임에서 작은 패배가 현실에서 작은 실수라면, 작은 실수 정도는 언제든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실패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지는 법을, 패배로부터 배우는 법을 알지 못하며 탓할 대상만을 찾는다. 그들은 한발 물러나 자신의 결정, 플레이, 잘못을 저지른 지점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실수를 마주했을 때 무엇이 잘못 됐는지,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최근 나는 작은 실수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잘 하고 싶은 욕구가 되려 나를 억누른 것이다.

“카드가 안 좋게 나와서 지는 건 괜찮아. 별일 아냐. 하지만 나쁜 결정이나 실수 때문에 지면 훨씬 마음이 아파.”

포커를 치다 보면 ‘운’이 작용한다. 그리고 이 ‘운’ 때문에 울기도, 웃기도 한다. 누군가는 운은 실력이라 하지만 그래서 운이 어디까지가 실력인지를 알아보는 게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기는 것 보다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에 이야기했잖아. 모든 핸드에 대해 분명한 사고 과정을 거처야 한다고.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봤는지, 그 정보가 이 핸드를 판단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해.”

이쯤 되니 그래서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됐다. 어쩌면 이게 내 문제의 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게 올바른 선택이란 좋은 결과를 뜻했다. 올바른 선택이라 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나쁜 선택이라 생각했다. 이게 내 멘탈을 흔들고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올바른 선택에 나쁜 운이 작용해 나쁜 결과를 만났다면, 나는 나쁜 운을 고려하지 못한 나를 탓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나쁜 운을 내 탓으로 돌린 셈이다. 즉, 내 노력과 상관 없이 나는 나를 탓한 것이다.

더 잘못된 것은 나쁜 선택에 좋은 운이 작용해 좋은 결과를 만났을 때다. 어쨌든 좋은 상황이라며 나는 긴장을 풀었다. 결국 내 감정은 운에 작용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불확실성 곁에 있기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부모님에게 당당히 외쳤던 말이 있다. “10년 만 기다리세요. 10년 뒤에는 부모님이 일 안해도 되게 만들게요.” 그리고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두 분께 작은 용돈을 매달 드리는 것 뿐이다.

“임의로 정한 기한에 얽매이지 마. 항상 내년이 있으니까.”

생각보다 나는 이 말에 갇혀있었다. 어떤 선택을 내릴 때 늘 고려했으며, 결과적으로 내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다. 때로는 이 목표가 너무 무거워 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건강히 일을 하며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시다. 결과적으로 내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저 아들이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 일하는 것에 자랑스러워 하시고, 내가 드리는 작은 용돈에 충분히 행복을 느끼신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나는 우리 팀원들을 지켜야 한다며 여기저기 눈을 부라리며 인상을 쓰곤 했다. 하지만 우리 팀원들은 내가 늘 지켜야 할 만큼 약하지 않으며 충분히 능력있는 엔지니어들이다.

결국 나는 실체가 없는 임의의 무언가에 눌려있었고, 내 가능성을 스스로 막았던 것이다. 즉, 불확실성에 진 것이다.

에릭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침체기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10년 전보다는 정말 많은 성장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리고, 약하다. 쉽게 흥분하고, 좌절한다. 내 단점을 명확히 아는 것이 개선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불확실성을 크게 받아들이려 했던 것 같다. 늘 ‘잘 안 될 수도 있잖아’와 싸웠다.

내가 우려하는 상황은 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적절한 지점을 유지한다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과대 망상’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결국 나는 불확실성에게 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여기에 있으며 삶을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그 모든 우여곡절, 그 모든 불공정한, 그 모든 소음을 경험할 기회를. 결코 존재하지 못한 수억, 수십조, 수백경, 상상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테이블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추측하는 건 의미가 없다. 운은 운일 뿐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사고, 결정 과정, 반응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포커 챔피언이 됐다. 힘겹게 많은 상황을 이겨냈고, 좋은 멘토와 친구들이 곁에서 도움을 줬다. 결국 목표했던 포커 챔피언이 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나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피엔딩이다. 내게도 좋은 멘토와 친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포커 챔피언’과 같은 진짜 ‘목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기가 됐다. 내 곁에 놓인 많은 문제들이 이제는 그저 ‘불확실성’으로 보인다. 이제 내게 ‘불확실성’은 ‘명확함’으로 바꿔야 하는 제거 대상 따위가 아니다.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존재라면 함께하는 게 맞겠다.

누군가가 기대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해야 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 누군가가 너 자신이라고 해도. 물러설 때를 알아라. 재조정이 필요한 때를 알아라. 이전의 계획들은 무시하고 전략을 재평가해야 할 때를 알아라.

2022년은 내게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다.

마무리

책을 읽으며 내가 무엇에 흔들렸는지 명확해졌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와 별개로 뜻밖의 이득이 있었다. 역시 나는 운이 좋다는 것이다. 힘든 시기에 어떤 책을 읽고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흔히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경우가 참 많다. 이 책은 <왜 일하는가>를 읽으며 내가 주니어 시기를 이겨냈던 것 만큼 임팩트가 컸다. 저자는 내게 조금 더 힘을 준다.

운에 대해 많이 인용되는 말로 준비된 사람에게 운이 따른다는 루이스 파스퇴르의 말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가 한 말을 자세히 읽지는 못했다. “관찰에 있어 운은 준비된 사람을 따른다.” 우리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부분에만 시선을 집중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면 좋은 기회가 나타났을 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부분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잘 살피지 않으면, 애초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어떤 준비도 충분치 않다.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으면 거의 쓸모가 없다.

당신이 운이 나쁜 이유는 좋은 일들이 실제로는 더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운이 좋은 이유는 그때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아채기 때문이다. 윌리엄 베버리지는 <과학적 탐구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도깨비불 혹은 운을 임의로 불러낼 수 없지만 잘 살펴서 나타났을 때 알아보고 이득을 보도록 준비할 수 있다.” 그러니 성공하고 싶다면 “관찰력을 기르고 예기치 못한 일들에 항상 주의하여 운이 제공하는 모든 단서를 살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분산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는 통제할 수 있다.

결국 나를 비롯해 힘든 시기에 책에서 답을 찾는 사람은 간단하다. 힘든 시기에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든 시기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책을 읽기 때문이다. 결국 힘든 시기에 책에서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사람은 늘 책을 읽기 때문에 책 속에서 운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내가 참 잘 하고 있는 것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게 해준 스튜 독서소모임을 비롯해 나를 성장하게 하는 나를 구성하는 많은 시스템. 이들이 내게 운을 가져다주고 있던 내 힘 중 하나였구나 싶다.

오랜만에 머리에 가득 찬 압력이 약해지는 기분이다. 조금은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다.

한줄평

내 삶의 이 시점에 이 책을 발견한 건 내 운이다. 그리고 이 운은 내 관찰 기술 덕분이라 하겠다.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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