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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단어, 자유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어떤 기술적 발명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상적 토대를 만든 사람들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존 스튜어트 밀은, 문과를 나온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 붙이게 들었던 이름이다.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닦은 사람이자, 밴담과 비교되는 공리주의 사상가. 고등학생 당시에도 물질적 쾌락을 중요시했던 밴담이 우리 처참한 현실과 더 맞다고 생각했지만, 정식적 쾌락을 중요시했던 밀에게 더 애착이 갔던 기억이 난다.

1800년대는 유럽에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휘몰아치고, 이에 따른 영향으로 자유민주주의 파도가 덮친 시대이다. 그리고 밀은, 자유주의가 향하여 할 100년 뒤 미래를 주창한 사람이다.

200여년이나 지난 책임에도 현시대의 문제를 같이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랐다. 아래 문구에서 저자가 말하듯,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되지만 밀의 사상은 미래와 함께하게 될 것 같다.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폐기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 p53

‘고집’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p42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너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끔 잊고 살지 않나 하는 소중한 문장이다.

나는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누가 뭐라 하든 마이웨이가 견고한 편이다. 때로는 내 선택이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남의 말을 듣고 선택하여 문제가 생길 시 더 큰 후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가끔은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은 느끼곤 한다.

이 책의 요점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로운 개별성의 발현이야말로 인간이기에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삶의 길이며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이라는, 틀에 박힌 교육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교훈은 맞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그 틀 속에서, 자신만의 고집 있는 아름다운 삶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부모님의, 사회의, 주변의 눈초리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다.

다행히 민주주의와 4차 기술혁명의 조화에 힘입어, 최근에는 나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의 이야기를 함께 즐기는 시간, 이것이 나는 인간다운 삶이라 생각한다.

고집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은 단어이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저자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개별성의 한계를 두고 있다. 바로 미개인과 어린아이들이다. 미개인은 정말 시대적 배경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10살 이후부터는 자신만의 사고와 자신만의 삶의 길을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에, 과거보다 특히 더 심한 오냐오냐 교육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힘과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 p57

‘국가’

저자는 국가 권력 확대의 문제점을 역설한다.

국가가 정한 틀이 확대될수록 개별성과 다양성이 축소되고 인간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의 한계에 대한 논쟁은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 주제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권력 집중이라기보다는 과보호 정책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셧다운제이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심야 시간에는 게임을 못하게 하는, 10년 전에 만들어졌던 법이지만 이번에 폐지됐다. 내가 자식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셧다운제가 얼만큼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법이 인간의 행동을 사전 방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일상생활 영역을 법으로 한계로 둔다는 것 자체가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정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청소년 대상으로 과보호적인 법이 많다. 교육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을 법으로, 강제로 억제하려 하므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간의 소통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난 내 자식에게 전교 1등을 위한 교육을 제공할 자신은 없지만, 스스로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지혜를 제공할 자신은 있다.

우리나라도 틀에 박힌 교육과 법적 정책적 제약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별성을 뿜어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국가의 부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완벽한 기계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기계가 더욱 부드럽게 작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생명력을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국가는 그것이 생명력을 잃어버린 탓에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p236

한 줄 평

고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 필수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할 책

인상 깊은 문구

이들을 향해 밀은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비판과 회의를 두려워하면 어떤 진리라도 ‘헛된 독단적 구호로 전략’하고 만다는 것, 이것이 자유론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 p12

그러나 분명히 강조하지만,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서 정치적 독재를 발지하는 것 못지않게 긴요하다 – p28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들의 그런 선호가 도덕과 기호 또는 예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세우는 데 강력한, 그리고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 – p30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신의 물질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간섭하는 것도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당사자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거나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옳은 일이라는 이유에서, 그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선한 목적에서라면 그 사람에게 충고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며, 설득하면 된다. 그것도 아니면 간청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강제하거나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을 억지로라도 막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고말 것이라는 분명한 근거가 없는 한, 결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 – p36

나는 효용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효용은 진보하는 존재인 인간의 항구적인 이익에 기반을 둔, 가장 넓은 의미의 개념이어야 한다. 나는 이런 이익 개념 때문에, 오직 다른 사람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외부의 힘이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p38

자유의 기본 영역 – p40

 첫째, 내면적 의식의 영역

 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셋째,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의 자유가 도출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 p42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그러한 행위는 잘못을 드러내고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해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함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 p51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폐기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 p53

온갖 논박을 거쳤지만 허점이 발견되지 않은 어떤 생각을 진리라고 가정하는 것과, 아예 그런 논박의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그것을 진리로 가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 생각에 대해 부정과 비판 과정을 거친 뒤, 그래도 살아남은 생각에 입각해서 어떤 행동에 나선다면 그 행동의 타당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보통 사람이라 해도 인간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고 수준의 이성적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p56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힘과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 p57

지성을 단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를 꼽으라면 단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학습하는 것이다 – p84

진리와 오류 사이의 논쟁은 진리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또 깊이 깨닫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으로 확연히 구분되기보다는,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럴 때 통설이 채우지 못하는 진리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도록 그 통설에 도전하는 이설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주제에 관한 대중의 주장이 흔히 진리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 그런 주장은 상황에 따라 진리를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담고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 대체로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 p102

만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싶다면, 자신들부터 먼저 이교도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의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도덕률의 상당 부분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나아가 잘 알면서도 배척한 사람들의 작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엄연한 사실을 일부러 모른 체한다는 것은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 p113

만일 개별성의 자유로운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특별히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문명, 지식, 교육, 문화 등과 같은 용어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요소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그런 모든 것들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조건임을 깨닫는다면, 자유를 가벼이 여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25

사람의 지각, 판단, 특이한 감정, 정신 활동,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 선호와 같은 능력들도 오직 선택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단련될 수 있다.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 p128

인간의 삶을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 그 자체이다 – p129

욕망과 충동 역시 신념과 자제 못지않게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충동이 강하다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다시 말해 특정 종류의 목표와 성향은 강하게 발전하는데, 그와 함께 있어야 할 다른 것들은 약하고 활발하지 못할 때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양심이 약한 것이 문제이다. 강한 충동과 약한 양심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인과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고 더 다양하다는 것은, 분명히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이 더 풍부하고 따라서 남도다 나쁜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보다는 좋은 일을 할 가능성이 더 큰 셈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강력한 충동이란 곧 정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력은 나쁜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게으르고 무덤덤한 사람보다는 정력적인 사람이 좋은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는 법이다 – p131

자신만의 욕망과 충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기 고유의 성격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 p132

누군가가 처음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우리 주변에 보이는 좋은 것들은 모두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이다 – p141

사람들을 똑같게 만드는 것 : 정치적 변화 / 교육 기회의 확대 /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전 / 상업과 제조업의 발달 / 여론이 국가를 움지기이는 중요한 변수로서 절대적으로 확실히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 – p155

그러나 사회가 순전히 개인적인 행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간섭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178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 용납하지 못하는 행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불확실한 문제에 대해 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주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 p179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 p213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을 끝낼 법적 자유에 그 어떤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되지만, 도덕적 자유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다 – p215

국가의 힘은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 p235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완벽한 기계를 얻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기계가 더욱 부드럽게 작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생명력을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국가는 그것이 생명력을 잃어버린 탓에 결국에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p236

밀은 ‘자유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사상가이다. 그는 개별성의 보존과 더불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성을 함께 강조했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라는 점을 전제하고서, 개별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설명한 밀이었다. – p254

자유가 왜 소중한가? 그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근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유, 즉 개별성의 발현이 전제되지 않은 행복이란 생각할 수 없다. 이처럼 밀의 자유론은 자유의 합목적적 가치를 규명하고 역설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유란 단순히 수단적, 기능적 차원에서 소중한 것이 아니다. 행복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다.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60

이처럼 자유론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일이라고 해서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유론은 내 방식대로의 삶, 즉 자유 그 자체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기조 위에서 전개된다 – p261

방향이 없는 무원칙한 자유까지도 개별성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262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고민하는 소크라테스’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전범으로 삼았다. 물질보다 정신적 만족을 우선시하는 터전 위에서 밀은 지적, 감정적, 도덕적 자기 발전을 행복의 기준으로 선정했다 – p267

밀은 인간의 이성을 믿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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