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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톨라니는 비트코인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지난 2022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2022년에는 겨우 4권을 읽었는데 이는 모두 회사 독서소모임에서 읽은 것이다. 결국 독서모임이 아니면 책을 읽지 못하는 몸인 걸 인정했다.

힘겹게 현생을 살아내는 중이다. 그동안 찍어둔 점을 이어가며 어찌어찌 선을 만들고는 있다. 어떤 가능성을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그동안 찍어둔 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다 써버리면 나중엔 어쩌나 싶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뿐이다. 1년 반 만에 스튜 독서소모임을 부활시켰다. 그나마도 당장 모임 전 날이 돼서야 책을 처음 펼쳤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투자 도서를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싶더라.

책이 쉬운 건지, 그간 내 독해 능력이 는 건지. 어쨌거나 하루만에 다 읽었다.

오랜만에 서평을 쓰려니 다소 어색하다. 그런데 대충 쓰고 싶진 않다. 글발 죽이는 형의 글을 하루 종일 읽었는데, 이거야 원. 대충 쓸 수가 없겠더라고.

글 참 잘 쓴다

코스톨라니 형. 책을 읽다 보니 ‘코스토’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 같더라. 하루 종일 형의 말을 들었으니 왠지 친해진 것 같다. 그러니 나도 코스토라고 부르련다.

코스토 형은 글발이 참 좋다. 번역이 잘 된 것 같기도 하다만, 사이사이 나오는 오타와 어색한 번역 투를 보자면 온전히 번역으로 커버된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잡지 <캐피탈>에 무려 35년 동안 기고했다고 하니 원서 자체 퀄리티가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번역도 나쁘지 않았다.

칼럼을 35년 동안 연재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1년 동안 IT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IT 도서를 읽고 칼럼을 썼는데 매달 꼬박 이틀을 할애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월 2회 협업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데 2주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느라 쉽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데 35년 동안 기고라니. 그저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참 닮고 싶다.

내가 코스토 형의 글에 빠지기 시작한 건 다음 문구에서다.

브로커는 상담을 시작하면 고객의 의도는 제쳐두고 다짜고짜 주식 매매를 권유한다. 한 고객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브로커를 방문했다. 브로커는 고객에게 IBM 주식을 매수하라고 열정적으로 권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그는 고객이 사실 IBM 주식을 팔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아아, 그렇습니까?” 브로커가 말했다. “파신다고요.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간 투자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읽었는데 이렇게 유쾌한 문장을 본 적이 없다. 투자 도서란 늘 진지하고 무게감을 갖는데, 코스토 형은 맥락은 묵직하되 문장은 유쾌하다. 참 글 잘 쓴다.

또한, 유쾌함 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어떤 사례로 명확히 이해시키는 능력이 있다. 이는 어떤 내용에 관한 본질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특히 반려견과 주인을 각 증권시장과 경제에 비유한 것은 경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한 번에 이해할 만큼 쉬운 설명이다.

한 남자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한다. 보통 개들이 그렇듯이 그의 반려견은 주인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주인에게로 되돌아간다. 산책 내내 그런 행동이 계속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둘은 같은 목표 지점에 함께 도착한다. 하지만 주인이 천천히 1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주변을 달리며 돌아다닌 개는 4킬로미터를 산책했다. 여기서 주인은 경제이고 개는 증권시장이다.

책을 읽으며 몇 차례 반복해서 읽은 문단이 있는데 ‘하락장’과 관련된 문단이었다.

투자자 마이어는 판타지아 사와 애틀란스 사의 주식이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 예컨대 지금 이 기업들의 주가가 둘 다 100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주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한 마이어는 어느 한쪽이라도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는 두 기업의 주식을 다른 투자자에게서 빌린다. 그리고 빌린 주식을 100에 판다. 며칠 후 마침내 판타지아 주식이 100에서 80으로 떨어진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다고 판단한 마이어는 다시 80에 주식을 사서 다른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20퍼센트 차액을 챙긴다.

사실 ‘공매도’에 관한 글을 많이 봤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공매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주식을 빌려서 팔아 수익을 낸다는데 그 내용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오늘 코스토 형의 ‘하락장’ 이야기에서 ‘공매도’를 이해했다. 정말이지 글 참 잘 쓴다.

워렌 버핏도 여러 활동을 하지만 코스토 형은 13권을 저술했다. 최근 작가가 된 나로서는 코스토 형의 행보에 좀 더 매력이 끌린다.

어떤 투자자의 신념

내 첫 투자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스팀’이었다. ‘스팀’은 ‘스팀잇’이라는 웹 애플리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으로 ‘스팀잇’은 글을 쓰면 ‘스팀’과 ‘스팀달러’라는 암호화폐를 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즉, 콘텐츠 생태계를 블록체인에 올려 작가들에게 보상을 돌려주는 서비스다.

당시 기자였던 나는 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고 즉시 취재에 들어갔다. 조금씩 확신이 생긴 나는 100만 원, 100만 원 그리고 500만 원까지 투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블록체인 거품이 꺼지며 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게 내 첫 투자였다.

이후 코로나로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1년 뒤 폭등하며 너도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테슬라를 필두로 많은 개미가 생겨났고 나는 우리 세대에 기회가 온 걸 느꼈다. 이때 스튜 투자소모임을 만들어 투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미 스팀으로 ‘투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으니 그저 감으로 투자하진 않았다. 지수를 공부하며 ETF에 투자했고 내가 잘 아는 소프트웨어 영역에 투자했다. 3년이 흐른 지금 내 투자 포트폴리오는 +8%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자의 무기는 첫 번째도 경험이고, 두 번째도 그리고 세 번째도 경험이다. 나는 지난 80년간 쌓은 나의 경험을 내 몸무게만큼의 황금을 준다 해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에 관심을 뒀다. 또한 장기투자 역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삶은 결국 우상향하는 삶이다. 그간의 내 노력과 경험이 축적돼 언젠가 되돌아봤을 때 지나온 길이 자랑스러운 삶을 원한다. 그리고 이 삶의 철학과 버핏이 말하는 투자 철학에 유사성을 봤다.

솔직히 말하면, 난 여러분 모두에게 장기투자를 권하고 싶다. 장기 투자는 모든 주식 거래 중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약속한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이 방법을 선택했고 거의 대부분 주식은 매수만 했지, 매도하진 않았다. 페이스북이 ‘메타’로 이름을 바꾸며 폭락하던 시절에도 묵묵히 가지고 있었다. 매번 정보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매일 접속하는 페이스북의 가치를 여전히 믿긴 했다. 최근 내 포트폴리오에서는 메타가 +8%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내 삶은 많은 선택지를 떠올리는 한편 순간순간 늘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여있다. 때문에 늘 생각 또 생각이다. 하지만 선택지를 많이 떠올리는 것 자체는 그다지 잘하는 게 아니다. 좋은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할 뿐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가졌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최적의 선택 역시 결국 좋은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투자자는 언제라도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면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많은 선택지를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은 그럼에도 내가 최적의 선택을 하려는 것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지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선택지를 만드는 경험치를 쌓는 것이며,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경험치를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주어진 환경을 경험치로 바꾸는 중이다.

이건 내 신념이다. 늘 우상향 하는 삶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많은 일들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질 순 없겠지만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적어도 오늘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를 들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상황을 끝까지 버텨보려 한다.

이제 수단까지 갖춘 나는 편안한 삶을 즐기려 했다. 하지만 나는 괴로운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철학적 현실주의와 증권 감각으로 내가 많은 돈을 버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손해를 봤다. 내 소원은 성취되었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평소 좋아했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파멸했다. 그들은 이 공황에서 돈이나 지위를 잃어버렸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 반면 나는 한때 내가 꿈꿨던 모든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재력을 가지게 되었다.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운전사를 둔 자동차 등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만큼 내 지갑은 항상 두둑했지만 그것을 같이 즐길 누군가가 내 곁에 없었다. 유쾌한 웃음이 넘치던 즐거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씁쓸함이 가득한 우울한 분위기만이 남았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어디서든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넘쳐흘렀지만 쇼핑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았다. 친구들이 고작 커피 한 잔으로 만족해야 할 때 나 혼자 즐기는 샴페인과 캐비아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 혼자서 행복해질 마음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따라서 내 상황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코스토 형의 어떤 고백은 내게 큰 위안이 됐다. 혼자가 되지 않으려는 지금의 내 도전은 신념을 가진 어떤 투자자의 깨달음과 닮았기 때문이다.

코스톨라니는 비트코인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코스토 형은 300페이지 내내 펜을 칼처럼 휘두른다. 아마 그 칼에 피를 철철 흘릴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코스토 형이 지금의 비트코인을 본다면, 지금의 AI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세계 경제사의 위대한 발전은 언제나 위험 부담이 큰 모험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본이 아닌 대출만으로는 이렇게 빠른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업가들 역시 고액의 채무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더욱이 은행은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기대감에 거액의 돈을 선뜻 내어놓는 주식투자자들처럼 그렇게 큰돈을 섣불리 내놓았을 리가 없다. 근래 들어 증권시장을 통해 신생 인터넷 기업에 엄청난 액수의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롯이 대출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난 이 인터넷 기업의 주주들이 결국에는 모두 승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AI 시장을 보자면 마치 2018년 블록체인 시장과 비슷하다. 너도나도 ICO를 하겠다 외치던 그때와 너도나도 GPT를 활용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하겠다 외치는 지금이 너무도 유사하다. 물론 깊이 없이 편승하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순환하는 주식시장의 사이클에서 투자자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대유행과 이어진 경제위기를 참고하면 이 질문에 답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투자자는 소신파에 속해야 하고 현대 경제 순환과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코스토 형에게 묻고 싶은 건 비트코인의 미래이기도 하고, AI의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건 코스토 형은 지금 어디를 쳐다보겠느냐는 거다. 사실 최근 업계는 비트코인보다는 AI에 몰려있다. 때문에 AI에 온갖 똑똑한 사람과 돈 많은 사람이 모조리 몰려갔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거든.

코스토 형의 말처럼 이는 또 다른 기회다. AI가 아닌 다른 곳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기회를 찾아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궁금하다. 만약 코스토 형이 있었다면 지금의 AI 업계를 보고 뭐라고 했을지.

나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은 수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증권거래소에 자주 방문했다. 내가 어리석은 사람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정반대로 행동하기 위해서였다.

마무리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 이 매력적인 형을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스튜 독서소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했을 때 처음 알았고 힘없는 할배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이 없는 양장서를 구매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할배가 참 귀여워 보인다.

버핏은 한평생 오마하에서 살았다. 매일 아침 맥모닝을 씹는 단조로운 삶이 그의 매력이다. 그런데 코스토 형은 다르다. 캐비어와 위스키를 마셨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경제 교수를 앉히고 경제 교수를 까는 강의를 했다. 매력이 흘러넘친다.

매력적인 할배라 생각한 버핏은 내 기준에서 코스토 형의 하위 호환이다. 이 책에 이어서 ▲투자는 심리게임이다 ▲실전 투자강의 등 코스토 형의 책 두 권을 더 읽을 계획이다. 코스토 형의 매력에 빠질 생각에 심장이 두근댄다. 정말 오랜만에 서평을 별점 5개로 시작할 수 있어 신난다.

한줄평

버핏의 매력은 코스톨라니 하위 호환이었구나.

인상 깊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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