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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처럼 인생도 심리게임 아닐까?

코스톨라니 투자총서 두 번째 시리즈. <투자는 심리게임이다>를 읽었다. 좋은 부분이 너무도 많았지만 안 좋은 부분부터 이야기 하고 시작해 보자.

첫 번째 시리즈인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번역 품질이 너무 달라 이상했다. 아쉽지만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 번역가가 다르다. 편집자는 적혀있지 않은데 편집자도 다른 게 아닌가 싶다. 띄어쓰기 오류를 비롯해 어색한 문장이 너무 많다. 이는 번역은 물론 편집에서도 실수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평]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나는 굳이 양장본을 사진 않는다. 애초에 책에 왕창 형광펜을 칠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가볍고 막 다룰 수 있는 책이 좋다. 그럼에도 구버전이 아닌 2023년에 나온 신버전 책을 구매한 건 구버전보다 번역이 보완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굳이 비싼 신버전을 살 필요가 없었다.

굳이 양장본으로 보관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50% 저렴한 구버전을 추천한다.

돈이란 무엇인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것은 좋다.”

최근 내 관심사는 온통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곳에서 ‘돈돈돈’ 하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특정 지점까지는 돈돈돈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점은 정확히 얼마일까 싶었다.

진짜 한국인 평균을 알아보자

얼마 전 유튜브 ‘지식한입’ 채널에 ‘대한민국 평균’을 주제로 한 영상이 올라왔다. 소득구간별 비율을 보면 무려 57%가 월 급여 300만 원 미만이다. 흔히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 숨만 쉬어도 월 100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 여기에 식대 등을 포함하면 월 200만 원이 사라진다. 만약 학자금을 비롯한 대출 등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저축은 꿈꾸지 못할 것이다. 즉,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이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이다.

만약 가정을 꾸렸다면 외벌이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 모두가 일을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고 저축도 못 하는 재정 상황에 미래를 위해 자기투자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당장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그저 모든 것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유지’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힘겨운 사투다.

사실 월 400만 원, 500만 원을 번다 해도 그다지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2023년 연봉 실수령액 표를 보면 꿈의 연봉으로 불렸던 1억 원의 실수령액은 650만 원이 안 된다. 때문에 요즘 연봉 1억 원을 넘기는 직장인을 보고 꿈의 연봉이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연봉 1억 원은 대단한 고소득이다. 하지만 1억 원을 받는 게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의 연봉 1억 원 이상 고소득자들은 모든 것이 행복하진 않다더라고.

다시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점까지 돈돈돈’ 해야 하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특정 지점’을 말해보자면. 흔히 파이어족이라 불리는 이들처럼 자본 수익만으로 삶이 가능한 수준을 말하고 싶다.

최근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다. 앞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려면 월 2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2인 기준 400만 원을 잡아보자. 여기서 자녀는 제외다. 월 400만 원을 사용하려면 연 4800만 원. 그럼 원금이 얼마가 필요할까?

챗GPT 계산에 따르면 약 13억 7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순수 자본이 약 13억 7천만 원이 있으면 하루 벌어 하루 먹지 않아도 된다는 최소한의 자본이 나온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는 인당 월 200만 원을 사용한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여전히 월세에 살고 있으며 숨만 쉰다는 가정이다. 물론 기준금리 3.5%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낼 자신이 있다면 금액이 달라질 수 있겠다.

약 13억 7천만 원이 있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이 돈이 있어도 일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때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좀 더 가치를 느끼는 방향으로 말이다.

나는 저 돈이 있어도 일을 할 테니 일단 우리 가족만큼은 일을 안 하게 해주고 싶다. 때문에 나는 13억 7천만 원에 달하는 최소 비용을 달성하기까지는 ‘돈돈돈’ 할 계획이다.

물론 위 계획에서 이자 세금을 제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략적인 계산이다. 이 계산을 보고 커뮤니티 스튜 친구는 ‘베트남에서 살면 되죠’라는 답을 했다. 그러네. 13억 7천만 원이 모이면 서울보다 물가가 낮은 곳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물론 서울에서 차도 사고 집도 사려면 순자산 20억 원은 있어야겠다.

35세에 경제적 자유를 얻은 아재는

이전 시리즈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워렌 버핏보다 코스톨라니의 삶에 더 매력을 느낀다. 아니 그 정도 돈을 벌었는데 버핏은 왜 맥모닝을 먹는가.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른 다섯의 나이에 이미 나의 첫 번째 경력은 끝났으며, 그때 나는 내 자본만 가지고도 수입이 들어왔기 때문에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코스톨라니는 35세에 자본 이자만으로 삶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를 했단다. 세상에 파이어족이라며 너도나도 자본 소득만으로 살아가겠다는 유행이 퍼진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코스톨라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를 현실화 했구나.

하지만 그 뒤로 우울증에 빠진 코스톨라니는 의사와 상담을 통해 ‘글을 쓰세요’라는 처방을 받았다. 덕분에 이 책을 비롯해 많은 글에서 코스톨라니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어로 내가 쓴 첫 번째 책은 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것이 증권시장이다>라는 제목으로 1960년 헨리 고버트에서 발간되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캐피탈>잡지의 칼럼니스트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나는 울적해본 적이 없다.

이미 내 나이에 은퇴를 했다는 지점에서 참 부럽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거머쥔 버핏의 삶은 딱히 부럽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코스톨라니의 삶에 큰 매력을 느낀 게 틀림없다. 코스톨라니의 화법은 브레이크가 없다. 학교에서 교수를 앉혀놓고 까는 그에게 고작 글쓰기 따위가 두려움을 줄리 없다. 심지어 이미 은퇴도 한 마당에 뭐가 무서울까.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고서도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이란 거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돈이 전부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거다. 즉, 돈이 있으니까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다.

35세 이후의 코스톨라니 삶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나는 35세 이전의 코스톨라니 삶의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일단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달려야 하는 시점이랄까. 그런데 나는 코스톨라니처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이 정도 투자자의 안목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35세에 내 삶을 만드는 아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해준 지점들이 있긴 하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 유치한 것들은 제외하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굵직한 몇몇 지점이 꽤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2023년, 잠깐 떠올려도 올해는 누군가에게 ‘부럽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해다. 아직 절반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2023년은 내가 커리어를 시작하고 가장 수입이 적은 해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부럽다고 한다. 자신보다 수입이 훨씬 적은 나를 보며 그들은 왜 그런 말을 건낼까.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24시간 먼저 옳다면, 그는 그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리석다고 여겨진다.”

재밌는 것은 그들 중 몇몇은 한때 내 상황을 보고 불쌍하다 말했던 사람이다. 내 행보를 비웃고 때로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부럽다니 이걸 내가 뿌듯해해야 하나 싶다.

사람은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자유로워야 한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 자유로움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양껏 손에 쥐고서 주저앉은 그들이 빈손으로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부럽다 하는 게 정말 부러운 게 맞나. 결국 나는 그들이 양껏 손에 쥔 무언가를 찾아 뛰어다니는 건데 말이다.

나는 곧 85세가 된다. 늙은이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나의 인생을 다시 한번 결산해 볼 이유는 충분히 있다. 잔고가 얼마나 될까? 만족할 수 있는 정도인가? ‘예스’일 수도 있고, ‘노’일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노’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야망은 오직 물질적, 지적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었으므로 ‘예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야망을 이미 달성했으며 지금 이렇게 즐기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아. 이렇게 살아야 돼. 그 누구의 주인도 아니고, 그 누구의 하인도 아니다!” 이것이 나의 성공인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들과 내가 서로 그대로라는 것이다. 삶에 관한 가치관을 유지하며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삶’을 누군가는 ‘부러운 삶’을 살게 됐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도 부러움이 성립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썩 내 삶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따라서 투자자가 군중 히스테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하며 조금은 건방진 면이 있어야 한다. “너희들은 모두 바보야. 나 혼자만 뭔가를 알고 있지.” 또는 “어쨌든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결코 훌륭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그리고 부득이한 조건 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유익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시장에서 단지 소수만이 성공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며, 대다수는 손실을 보는 쪽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삶도, 앞으로 걸어갈 삶도 역시 자신이다. 걸어온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에게 현재는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으로 걸어갈 삶을 설계하는 이에게 미래의 삶은 기대될 수밖에 없다. 그게 건방진 거라면 나는 앞으로도 쭉 건방지련다.

어쩌면 투자처럼 인생도 심리게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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