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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조금은 즐기고 싶다

어려운 이야기여서일까? 아니면 내가 환자가 된 것 같아서일까. 책을 다 읽은 지금. 썩 편치 않은 기분이다.

지루함을 견뎌야 할까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 위에서 돌아간다. 그리고 자본이 부족할수록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반대로 자본이 있다면 뭐든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단,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편하게 해결해야 한다. 좀 더 멀리, 좀 더 계획적으로 삶을 대하는 탓에 나는 내가 늙고 건강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자본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더 나아져야만 한다.

스타트업 대표자로 살아가는 건 불편함 아니, 늘 불안감과 함께한다. 늘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앞으로 갈 수만은 없다. 만약 어제와 같거나 혹은 어제보다 못하다고 느껴질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휩싸인다. 스타트업은 늘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타트업 대표자가 아닐 때도 나는 커리어 측면에서 이렇게 살아왔다. 한 번에 대단한 걸음을 하진 못하더라도 늘 더 나아지려 노력했다. 늘 더 나아진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지만 사회 시스템을 인지하고 내 삶을 설계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 조급했다. 때문에 나는 지금부터라도 늘 더 나아지는 것으로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잡는 전략을 택했다.

그런데 이게 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스스로가 납득되지 않는 나태함을 보였을 경우에는 불안과 불편함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나는 주말마다 헬스장에 가는데 이걸 가지 않았다던가, 주말 모두를 집에서 쉬었다면 한 주를 나태하게 보낸 것 같아 불안해진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뒤처진 나는 매일 같이 나아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 끔찍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도서 <도파민네이션>에서는 지루함이 발견과 발명의 기회라 말한다. 어쩌면 내가 피곤함을 무릅쓰고 늘 나아가려 했던 게 어떤 발견과 발명의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늘 계획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게 새로운 가능성을 지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계획된 도전과 압박

어떤 온라인 퀴즈에서 내 성향을 ‘계획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라 했다. 어디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별것 아닌 퀴즈였지만 결과 문구가 꽤 와 닿았다.

두 번째 창업이 어느새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여러 지표와 상황은 내 계획대로 됐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매출 지표가 내 예상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대표자로서 상당한 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할 수 있는 여러 행동을 취하는 중이지만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맡으며 종종 정신과 치료에 관해 떠올리곤 했다.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곤 했다.

팩실, 프로작, 셀렉사 같은 항우울제 사용률은 미국을 선두로 세계 각지에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 10퍼센트 이상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아이슬란드(10.6퍼센트), 호주(8.9퍼센트), 캐나다(8.6퍼센트), 덴마크(8.6퍼센트), 스웨덴(7.9퍼센트), 포르투갈(7.8퍼센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25개국 중에 한국의 수치가 가장 낮다(1.3퍼센트)

본문에 따르면 항우울제 사용률이 25개국 중 한국이 가장 낮다고 한다.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한 지인에 따르면 주말 오후 기분 좋은 몽롱한 느낌이 유지된다던데, 종종 그 느낌을 받을 때도 한편으론 불안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약이 꼭 해결책일까 싶다.

매일 뭔가 해내면서도 ▲내게 능력이 없는 걸까 ▲좋은 방향이 아닌 걸까 ▲결국 나를 비롯해 우리 팀을 내게 힘들게 만드는 중인가? 등 상황에 관한 비관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이 답답함을 속 편히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지 싶다.

나를 보고 그런 모습들을 짐작하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사실 나는 늘 불안하고 두렵다.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엄격한 스케쥴, 예측 가능한 루틴을 따르고 할 일 목록을 맹목적으로 고수한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내 의지와 목표에 따르도록 강요한다.

다행인 것은 이 모든 압박이 내 ‘계획’ 중 하나였다는 거다. 나는 늘 압박을 견뎌왔고 덕분에 강해졌다. 좋은 시점에 좋은 기회가 됐고 결국 나로서도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올라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이 압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계획’했다.

우리는 고통 후에 쾌락이 온다는 것을 배워도 이를 아주 쉽게 잊는다.

물론 이 압박을 견디며 내가 무언가 얻는 만큼, 무언가 잃어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어쨌거나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익숙하되 익숙하지 않은 요즘이다.

나도 조금은 즐기고 싶다

종종 지인들에게 말한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부럽다고. 그냥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부럽다고. 난 그게 안 되거든. 그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혹은 그 시간 중에도 이러면 안 되는데, 좀 더 나은 선택은 없나? 등 몸이 편한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불편하다.

누구나 얼마쯤은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어 한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종종 적용하는 불가능한 기준으로부터 나와 있길 바란다.

늘 성장을 외치고, 늘 더 나은 환경을 기대하면서도. 어쩌면 나는 나를 위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은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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