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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We are the middle children of history, with no purpose or place. We have no great war, no great depression. Our great war is a spiritual war. Our great depression is our lives.”

영화 <파이트클럽(1999)>의 대사 중 일부이다. 세계대전도 대공황도 겪지 않은 현 세대에게 있어 세계대전은 정신적인 전쟁이요, 우리의 삶이 곧 대공황이라며,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고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워 정처 없이 방황하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각자 무언가에 몰두한다. 음식, 술, 담배, 약물, 컨텐츠, 쇼핑, SNS, 성.. 우리는 원하는 건 대부분 손쉽게 얻을 수 있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혹은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쿠팡 총알배송은 갖고 싶은 무엇이든 하룻밤 사이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 주고, 배달 어플은 갖가지 맛집들의 신메뉴를 한 시간 안에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는 날마다 업데이트된 새로운 컨텐츠들이 가득하고, 데이팅 어플은 매력적인 사람들로 넘쳐난다. 멋진 신세계, 그야말로 ‘돈만 있으면 다 되는’ 편리한 유토피아다.

한편 경쟁 문화는 ‘더 빨리’ ‘더 많이’ 무언가를 손에 넣으라고 부추긴다. ‘평균’에 대한 기준은 점점 더 높아만 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걸 욕망해야만 한다. 이처럼 부단히 쾌락을 좇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노잼시기’는 피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찾아오는 공허함과 권태로움, 무기력감. 아직 충분히 누리지 못해서일까?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면 이런 불쾌한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는 신경과학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쾌락주의의 역설을 설명한다. 우리 뇌의 쾌락-고통 메커니즘은 마치 저울과 같아서, 쾌락 추구(또는 고통 회피)에는 그만한 대가, 즉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게다가 쾌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만큼 저울이 고통 쪽으로 더 기울며 ‘쾌락 불감증’ 상태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가진 것에 감사할 수가 없고, 새롭고 더 큰 자극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뜨거운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우리는 ‘고통스러운’ 쾌락을 좇기를 멈출 수가 없게 된다.

스스로를 갉아먹는데 지친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지 말고 직면할 것,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을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근본적인 솔직함’이 요구된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면 너 자신을 최대한 보기 좋게 포장해야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메시지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나이브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솔직함은 우리 뇌를 변화시키고, 타인의 마음을 열고, 삶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솔직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이토록 보잘것없는 나의 민낯을 드러내기는 너무나도 두렵다. 그래서 저자는 수용과 공감을 기반으로 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치스럽게만 느꼈던 내 모습을 비판단적으로 수용 받는 경험을 통해,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누구나 실수를 하고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자신과 타인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안심하여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스스로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로부터 도망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요즘 세상에 중독의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에, 심지어 중독전문의인 저자까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이 지닌 솔직함의 힘 덕분에 나도 작게나마 용기를 얻은 것 같다. 삶이 내게 던지는 실존적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오롯이 마주하고 싶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면의 욕구에 접촉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노잼시기를 외롭게 버텨내던 요즈음 내게 따뜻한 처방을 선물해주는 반가운 책이다.

한 줄 평

자극으로 넘쳐나는 혼란한 현대사회에서 ‘나’를 지켜내며 살아가는 법

인상 깊은 구절

“모든 환자는 열지 않은 상자, 읽지 않은 소설, 탐험하지 않은 땅이다.” -p. 20

“이 책자들은 개인의 행복을 좇는 것이 ‘좋은 인생’을 둘러싼 다른 정의들을 밀어내고 어떻게 현대의 처세술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그 자체로 상찬받아야 할 이타심은 우리 자신의 ‘웰빙’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p. 50

“우리가 아이들을 역경으로부터 과보호한 탓에, 아이들이 역경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된 건 아닐까? … 원하는 걸 다 들어준 탓에, 새로운 쾌락주의 시대를 조장하게 된 건 아닐까?” -p. 52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p.58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p.64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혹시 신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닐까” -p.185

“솔직할수록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당신의 엉망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약점과 됨됨이를 돌아보고 의심, 두려움, 나약함이 자신만의 약점이 아님을 알게 되면 안심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p.222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망각의 길을 찾는 대신 세상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세상에서 도망가는 대신 세상에 몰입하면 어떨까?”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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