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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찾아 삼만리

나는 어떤 존재인가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 p159

인간의 역사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인간이 동물의 왕으로 생존이 끝난 시점부터, 사유의 능력을 가진 인간은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인간은 존재의 가치를 ‘소유’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어떤 존재를 소유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에서 존재의 의의를 찾기 시작한 후, 끝없는 전쟁과 투쟁의 역사와, 멈출 수 없는 발전과 소유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저자가 던진 위 질문은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자는 소비자의 왕, 소비자는 생산자의 노예라는 새로운 계급체계를 만들었다. 모든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소유한 물건의 가치가 당신의 가치라고.

이러한 경제체계의 발달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 p23

내가 아는 분의 전 재산은 비싼 외제 차이다. 결혼하면서 돈이 없어서 9평짜리 전세에 들어가면서 하소연 하지만 외제차를 팔고 더 나은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못 한다.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 강남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세와 자가에 따라서 서로를 차별하고 나눈다고 한다. “휴거”로도 모자라 전세와 자가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 됐다. 영끌족은 늘어나고 이들의 돈과 소유에 대한 집착과 정신병은 부모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전염되고 있다.

자극이란 단순한(반사적인) 것일수록 그 강도나 종류 면에서 잦은 교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극이 능동적인 것일수록 자극성은 그만큼 오래 지속되고 강도와 내용의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p110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사실 인간은 소유와 존재 둘 중 한 가지 가치로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소유할 수 있는 정신과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도 소유에 치우친 인간성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최근에 20년 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앞으로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를 축적한 분을 만났다. 그분의 인생은 코로나가 전환점이 됐다. 코로나로 사업상 시간의 여유가 생겨 주변을 돌아봤지만, 정작 마주한 것은 가족과 동떨어지고 자신의 삶은 없는 돈 버는 기계였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계신다. 그분과 소유와 존재의 삶에 대해 간단히 대화를 나눴지만, 그 분은 과거로 돌아가도 소유의 길을 택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어정쩡하게 소유와 존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둘 다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난 누구보다 소유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왔다. 존재의 가치관을 중요시하며 살아왔지만, 나이 듦과 함께, 책임감과 함께 소유의 가치관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안전한 내 집을 가지고 싶고, 외제 차는 아니지만 더 안전하고 편의성이 있는 큰 차에 욕심이 생기고, 로또를 사고 있었다. 소유라는 마약은 점점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소유의 가치관이 꿈틀거릴 때, 그래서 내가 이것을 소유함으로써 어떤 나를 만들어 가려는지, 나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나다운 것인지 생각한다. 인생의 정답은 없다지만, 생각하는 삶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점은 두 사람 모두 서로 사랑에 빠졌던 그때와는 이미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그릇된 기대감이 결국 사랑을 정지시켰다는 사실이다 – p76

소유 가치관의 가장 큰 악영향은 위 문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선사된 선물. 그 사랑이 소유로 폄하되고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현대 결혼 문화를 보면 사랑보다 상대방의 조건이 우선시된다. 조건보다는 사랑이 우선이라 외치는 난 꼰대이다. 사랑으로 함께 인생의 굴곡을 헤쳐 나가기보다는, 굴곡이 없을 사람을 찾다 보니, 굴곡이 왔을 때 헤쳐 나가기보다는 포기를 한다. 현대 이혼율 증가가 그 증거가 아닐까.

사랑을 소유하려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혼할 때 명품백과 시계의 값어치로 자신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증명하려 하고, 상대방이 해오는 돈의 무게로 상대방의 가치를 판단하려 한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병폐는 이 모든 것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환경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내면적 근본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까지 소유하려는 그릇된 생각이 그릇된 인간성을 만들고, 인간관계를 해체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소유의 사랑, 결혼을 할 뻔했다. 정말 다행히 그 달콤한 속삼임에서 벗어났다. 사람과 사랑의 결혼을 한 현재의 이 결정은 내 인생 모든 선택에서 가장 최고의 선택이었다.

결혼은 인생의 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소유와 존재의 삶을 조명한다. 글이 길어질 수 있어서 줄이려 한다.

비록 현학적인 문장으로 어려운 전개도 많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독서라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고작 물건의 값어치로 평가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인상 깊은 문구

“과감히 지금의 상황을 보십시오. 인간이 초인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초인은 초인적 힘을 지닐 만한 이성의 수준에는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온전히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 이 초인은 자신의 힘이 커짐과 동시에 점점 더 초라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이제는 명명백백해졌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의식해야 할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의식해야만 했던 점은 초인으로서의 우리는 비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p15

우리는 우리가 벌이고 있는 “행복 사냥”이 복지라는 목표에는 결코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 p20

이러한 경제체계의 발달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 p23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 p33

테니슨은 사람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히 꽃을 손에 쥘 필요가 있었고, 꽃은 그의 소유가 됨으로써 파괴된다. 바쇼는 다만 바라보기를 원한다. 또한 꽃을 그냥 관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꽃과 일체가 되기를, 꽃과 결합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꽃의 생명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 p36

요약하면,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아마도 현대 잉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형태일 것이다. 소비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써버린 것은 빼앗길 염려가 없으므로 일단 불안을 감소시켜준다. 그런 한편, 점점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일단 써버린 것은 곧 충족감을 주기를 중단해버리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 p50

그것은 진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을 뚫고 들어가서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진실을 향해 가급적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 p66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점은 두 사람 모두 서로 사랑에 빠졌던 그때와는 이미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그릇된 기대감이 결국 사랑을 정지시켰다는 사실이다 – p76

그 무엇이든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용품, 재산, 의식, 선행, 지식, 그리고 사상 등등. 이 모든 사상들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것들에 집칙할 때, 그리하여 그것들이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족쇄가 될 때 그것들은 우리의 자기실현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 p100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점은 자아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각기 소유물로 느낀다는 점, 그리고 그 “사물”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 p108

자극이란 단순한(반사적인) 것일수록 그 강도나 종류 면에서 잦은 교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극이 능동적인 것일수록 자극성은 그만큼 오래 지속되고 강도와 내용의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p110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죽은 언어가 지배하는 반면, 존재적 실존양식에서는 표현 불가능한 살아 있는 경험이 지배한다 – p130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 p159

기쁨이란 몰아의 경지, 순간의 불꽃이 아니라 존재에 내재하는 불씨이다 – p170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의(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인) 지도자와(왕/여왕 또는 신)를 소유하며, 그럼으로써 안전을 소유한다. 단,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인물로 있는 전제에서 말이다 – p176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그것은 그의 육신, 그의 자아, 그의 재산, 그의 실체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며, 자기를 확인할 수 없는 심연에서 “상실”을 직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 p183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 p184

우리가 헌신의 대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우리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결집하기 위해, 온갖 의혹과 불안을 수반하는 고립된 실존을 초월하기 위해, 그리고 삶에 의미를 주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 p198

문제는 실상 엄청난 무력의 순간에 빠져 있는 인간이, 과학 및 기술의 진보에 기대서 스스로 전능하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이미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그 노예가 되고 있다 – p220

소비자의 욕망은 생산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건전하고 분멸 있는 소비는 전적으로 기업의 이익과 성장의 관점에서 생산을 결정하는 기업 경영인과 주주의 권리를 과감하게 제한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시민들이 소비자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의 하나는 전투적 소비자연맹을 조직하여 불매운동을 무기로 사용하는 일이다 – p256

개개인의 연간 최소 수입을 보장해주는 비용은 현재 운용되고 있는 사회복지 분야의 지출보다 한결 적은 수치가 나오리라고 추산된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하고 위험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진부한 확신에는 이렇다 할 사실적 근거가 없다. 그것은 단지 무력한 약자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합리화하는 표어에 불과한 것이다 – p273

권위로부터의 해방과 병행하여 지금은 섹스에 대한 죄악감에서의 해방이 진행되고 있다. 섹스는 이미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도 아니고 죄악도 아니다. 섹스 혁명이 지닌 여러 측면에 대한 상대적인 장단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사실, 즉 섹스는 이미 죄악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그럼으로써 굴종을 강요하는 데에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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