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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읽는 ‘마흔에 읽는 니체’

  1. 첫 인상
  2. 전혀 다른 맥락의 내용을 오랜만에 접하다
  3.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울림을 준다
  4.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말들을 기억하자
  5. 서평을 쓰는 자세를 바꿔야 겠다

1. 첫인상

처음 책을 짚고 느낀 것은 가벼운 철학이라는 이번 기수 주제에 잘 맞는 책이라 생각했다. 지난 기수 마지막 책이 워낙 헤비했던 관계로 그 반대 급부로 얇은 철학서적을 아마 선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책은 얆은 편이었고 동시에 책 안에 여백도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그동안 빡빡하고 두꺼운 책에 파묻혀 있던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고 다행히 잘 시작할 수 있었다.

2. 전혀 다른 맥락의 내용을 오랜만에 접하다.

최근 몇년간 내가 읽은 책은 논리의 덩어리였다. 그 안에는 잘게 쪼개진 논리들이 합쳐서 하나의 요건이되고 효과가 발생하는 식으로 작용하는 그런 책들을 주로 읽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폴론적’인 글을 주로 읽고 모방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목차만 봐서는 순서를 맞추어 하나의 결론을 내릴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혀 한 가지로 압축되지 않는다.

앞부분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중요하다고 말하고 중간에서는 그 태도를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상반되는 삶의 이야기를 하며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나를 찾는 방법으로 보통의 상식과 상반되는 이야기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방식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 글은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피로 쓴 것”은 아니고 그냥 카페에서 책을 읽고 평범하게 그 후기를 남긴 것이라 아직 니체가 말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간단하게 요약했으나 사실 각 단락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으나 내용이 잘 이해되진 않았다. 각 목차의 교훈만 따지면 진부한 자기계발서에 지나지 않아 억지로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려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건 내가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고 마흔만큼의 경험이라 연륜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최근 몇년간 읽었던 글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나름대로는 그런 핑계를 대기보단 책의 교훈을 받아들여 아직 “니체”라는 “고통”을 마주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된다. 니체의 일생의 역작들을 단순히 부분부분 파현화 된 내용만으로 이해하려는 그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마주하여 니체의 글을 찾아 읽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회가 된다면 발음하기도 힘든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를 읽은 후 다시 읽어 보아야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3.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울림을 준다

힘에 대한 의지를 갖고 내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간다는 니체의 말은 나에게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몇가지 확실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있었다

(1) 현재의 나는 과거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총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을 없다고 생각한다. 어쩔 때는 커다란 세상의 흐름에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 혹은 나의 이상과 현실의 나의 차이에 실망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질문에 니체는 전혀 반대되는 방식로 나를 정의해버린다

나는 결국 내가 되고자 하는 자이고 그 생각이 나를 이룬 것이지 나를 떠나 나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 같이도 느껴지는 이 말을 보며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한평생 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괴로워하며 내가 어떤 사랑이고 뭘 해야하는가에 많은 고민을 해왔는데 그 고민 자체가 내가 되었다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위안도 되고 억울하게도 느껴졌다. 그래도 니체의 교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2)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될 것이다.

우리는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어린 시절부터 들으며 살아왔다. 노력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고 노력이 모든 일을 되게 한다. 만일 일이 되지 않는다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항상 나를 좀먹어 왔다.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았고, 노력 외에 다른 핑계를 대는 것은 죄악시되곤 했었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에 실망하면서 살아왔는데 니체는 전혀 반대로 말했다.

‘자신을 탓하거나 다른사람을 탓하지 말자, 운명애는 타인뿐 아니랄 자기 자신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면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변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예전에 인터넷에서 그리스인들은 시험에 떨어지면 자신이 아니라 시험의 신이 나를 버렸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짤을 봤다. 그게 니체의 생각과 어느 정도 상통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에 나를 비난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는 무엇인지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의 의지를 갖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니체의 말은 묘한 위안이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어떤 책을 썻는지도 모르는 니체라는 오래 전 죽은 사람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3)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스스로 회복하라

그렇게 위로는 받는 나에게 그 다음 장부터 니체의 삶과 고통 그리고 그를 극복해나간 니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고통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어떤 물음을 던지고 고통으로부터 무얼 배웠는지, 사실 잘 이해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보단 니체가 내 생각보다 너무 엘리트라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게 더 컸던 것 같다. 25세 박사도 아니면서 교수가 되고 당대 최고의 음악가 바그너와 어울리고 그리고 젊은 시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아프게 되어 일을 그만두게 되고 아프게 되면서 겨울엔 지중해 연안으로 여름에는 알프스 자락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사실 나에게는 요새 말로는 파이어족 같은 느낌을 받게하여 이런 말들을 하기에는 고생이란 걸 덜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의 말이나 생각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도 계속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나의 가슴에 확 찔리는 말이었다.

(4) 제때 기억할 줄 알아야 한다, 제때 잊을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이불킥한 경험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중에서도 이불킥할 경험이 많은 것 같다. 만일 내가 그 모두를 매일 기억하고 되내였다면 아마 이불을 덮지 못하고 잤을 지도 모를 정도이다. 한 때는 그런 일로부터 배우고 나를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실패한 경험을 되뇌이려 했다. 무언가 그 때 잘 못한 것을 이제는 고쳐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교훈을 주기는 커녕 그때 못했던 것들이 더 떠오르면서 지금의 내가 비참해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렇게 고통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니체의 말은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실패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던 나는 제때 잊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 실패로부터 배운 것은 떠올리지 못한 것은 제때 기억하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때는 그 하루하루의 기억을 기록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마치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다시 한번더 하면 되겠지 하던 그때의 안일한 생각이 제때 기억하고 잊는 것을 방해한 것 같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나 자신의 ‘힘에 대한 의지’가 약했던 것 같다.

(5)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예전에 하던 일이 잘 안될 때 도피성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도피성 여행을 통해 나는 여유를 되찾고 다시 한번 더 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여행을 끝으로 나는 그냥 포기하게 되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재밌게 즐겼다. 보고 싶었던 것도 보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그 여행이 끝나고는 허무했고 오히려 모든 것을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냥 여행 뒤의 나는 모든 것에 겁을 먹게 되었다. 사람에도 공부에도 일에도 모두 겁을 먹고 피할 방법만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건 니체가 말한 여행이 아니었고 나는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였기 때문인 것 같다. 도피성이든 무엇이든 그 이유가 뭐든 간에 나를 찾는데 내가 뭘 바라는가에 집중해야 하는 여행이지만 그 여행을 다른 사람들도 다 갈 법한 곳을 위주로 다니면 시간도 돈도 낭비했던 것이다. 고통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남을 의식하면서 여행을 갔다온 나는 결국 그 여행 이후 새로운 나를 찾기는 커녕 어떤 일이든 다시 피할 방법만 찾고 다른 사람의 시선만 의식하며 도망가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 왔던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을 극복한 것 같지만 나에게 이제 얼마나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니체의 말처럼 자신을 찾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그다지 멀리 갈 필요도 없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진정한 여행이 무엇인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6) 열등감을 발판 삼아 도약하는 삶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나를 정의하더라도 나는 금수저는 아닐거다. 물론 그렇다고 어린 시절이 특별하게 불우하거나 힘든 것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도 노예 도덕보다는 주인 도덕에 가까운 가정환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20살이 지나 30이 될때까지 내가 주인 도덕으로 고귀한 인간을 추구한 것은 아닌거 같다.

오히려 나보다 잘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꼬투리를 잡으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노예 도덕에 가까운 마인드로 살았던 것 같다. 질투만 하고 막상 이를 이룰 의지나 행동은 없으면서 못하는 핑계만 대면서 무작정 부러워하고 동경했던 게 내 20대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거 이제는 그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때 가졌던 열등감을 바탕으로 도약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꽤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7) 우연한 일들이 오히려 우리를 기쁘게 한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력하는 만큼 목표들이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신을 불행한 존재라고 인식했던 것이 내 20대였다. 객관적으로 낮은 학점에 제대로 된 사회경험없이 자기관리가 잘 된 것고 아니었던 내 20대 시절은 그다지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방황도 많이 했고 무얼 하든 망설이기도 많이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해본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이국종 교수가 “그러나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보여도 결국 우울한 종말이 찾아온다. 구내 식당의 점심반찬이 잘 나온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라는 말을 한 것을 듣고 나서다.

나는 우울한 내 20대를 무언가 멋진 것을 이루어내려 항상 애달아했다. 왜 안되지하면서 발만 동동구르며 내가 뭘 먹는지 내가 가는 식당 메뉴가 무엇인지 등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고 그로 내 기분이 나아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런 게 잘못이었다.

이국종교수 같이 힘든 일을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커리어에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는 사람도 결국 구내 식당 점심 반찬에 행복해지는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큰 것들에서만 행복을 찾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작은 일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래서 니체의 말에 더욱 놀랐다. 물론 이국종 교수가 니체를 인용한 것이지만 내가 그를 몰랐던 것일 수 있으나 어찌되었든 우연한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라는 말이 매우 크게 와닿았다.

4.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말들을 기억하자

사실 니체가 한 말은 지금에와서는 다소 진부할 정도로 당연한 것들이다. 특히 자존감이 중시되는 현재 사회분위기에서 나오는 그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위로를 준다는 명목으로 곰돌이 푸나 푸바오 같은 동물을 걸고 쓰여진 책들이 하는 말이 다들 그런 내용의 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니체의 말이 특별했던 것은 그가 한 말이 당연한 것이긴 하나 그에 닿기까지의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푸바오의 책이 그 교훈으로 가는 고속도로라면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는 산골짜기 꼬불꼬불한 절벽길 정도 될 것이다. 아무나 갈 수 도 없고 아무나 끝까지 닿을 수 없는 힘겨운 길이기에 니체의 책이 주는 그 교훈이 더욱 크게 와닿고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물론 이제 니체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책만을 읽고 이런 말을 한다는게 우습긴 하지만 3할 정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을 끝까지 읽고 고민하였던 것이 그래도 푸바오의 책보다는 더 어려운 길로 교훈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봐야겠다.

5. 서평을 쓰는 자세를 바꿔야 겠다

예전에 오세용 팀장님이 다른 독서모임과 다르게 서평을 쓰는 이유를 책을 읽고 쓰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맞는 말이지 생각을 했으나 아마 모두가 그렇듯 책을 읽기도 버거운데 서평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고 사실 벌금을 피하기 위해 혹은 환급을 위해 억지로 쓰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니체는 글은 자기 자신을 위해 써야한다고 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자기자신을 위한 글을 써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평을 미리 이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진실되게 써보려고 노력을 했다.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지만 시작이 반이다. 힘에 대한 의지를 갖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나를 위해 글을 쓰는게 내가 되어 있을 것아리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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