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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니체_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연습

익숙함을 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

10대부터 40대까지 아니면 길게는 죽을 때까지 우리는 대입,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 인생에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러한 삶이 잘못되었다고 감히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니체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자신을 극복해야하는 그 무엇이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 계기도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삶에 대한 태도를 향상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사 생활을 한지 어언 11년차가 되며 많은 권태와 단조로움에 몸부림 칠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고 , 어떤 때는 생각만 하다 다시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후회되는 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때였다. 니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가장 위험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나중에 하지뭐’, ‘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 라고 합리화 했던 때였다.

익숙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같은 회사, 같은 동료, 같은 업무 … 이 얼마나 편안하고 수동적인 삶인가. 최근 이 안락한 삶에 잠깐 취했던 때가 있었다. 긴장감 없는 업무를 반복하며 나 자신이 도태된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참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니 불안함이 엄습해 왔고 새로운 욕망을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니체의 말 중 이런말이 있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욕망이 충족되기를 원한다. 그 욕망이 충족되어 가라앉으면 다시 공허함과 권태에 따진다.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강한욕망이 존재해야만 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무한한 공허함과 권태에 빠지게 되는것 같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동사형의 삶

요즘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명사’ 의 형태로 고정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요즘이다. 성공, 명예, 돈, 사랑, 권력 등 소유를 위한 명사형의 삶이 많은 이들의 기준이 되면서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조금 더 건조해졌고, 각박해졌다.

‘동사’형의 삶이란 자신의 삶 자체 혹은 자신의 경험 즉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행동하는 삶을 말한다. 다만 누구든 불안하고 예측하기 힘든 동사형의 삶은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동사형의 세계에서 경험을 통해 쌓은 지혜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이를 통해서 만이 진정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12년의 공교육 및 사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배우지 못하고 누군가가 지침을 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한 학습 방법은 우리를 한 사회의 인원으로서도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삶에서 역풍을 만났을 때 항해하는 방법 자체를 알지 못하는 상황도 맞닥뜨리게 하는것 같다.

하지만 니체는 “오히려 자신의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을지라도 거기에서 자신의 최고로 현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실수들도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생긴다.“라고 말하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어려운 역풍 속에서도 자기자신에게 끊임없이 시도와 물음을 통해 감추어진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귀한 인간과 건강한 이기심

자신의 최고로 현명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실수와 관련하여 책에서는 또한 고귀한 인간의 면모와 건강한 이기심에 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니체는 고귀한 인간임을 결정하는 것은 고귀한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갖는 어떤 ‘근본적인 확인’ 즉 믿음에 있다고 말한다. 타인에게서 받는 인정이 아닌 자기자신이 먼저 인정하는 자신의 모습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니체는 “자기 자신에게 외경심을 갖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고 싶어한다. 새로운 옷을 사고, 화장을 하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을 위한 이유가 대부분일거라 생각된다. 나조차도 남들의 시선에 종속되어 있을때가 있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모두 입는 힙합바지로 길거리를 청소하고 다녔을 때도,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얼굴형을 고려하지 않은 뱅헤어를 했을때도 모두 그 초점은 타인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변화에 대해 지적을 하면 생각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나는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즉 ‘사랑’을 받게 되면서 타인의 기준에 매여있던 속박이 조금씩은 풀렸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나의 내면은 단단해지고 남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이 되었다.

책에서도 니체는 “고귀한 인간은 모든 삶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성공을 하면 기쁘고, 실패해도 스스로 책임을 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평판에 온통 귀를 귀울인다.“라고 언급한것처럼 세상의 평가에 귀를 귀울이다보면 자존감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것 같다. 사실 이는 사회초년생까지도 많이 겪게되는 문제인것 같은데, 나는 이를 많은 ‘인간관계’를 경험 해보며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 혹은 새로운 친구, 동료, 동호회 등 자신이 겪게 되는 많은 인간관계를 겪으며 나의 자존심을 올려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되는 사람이라면 가감없이 잘라내고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들만 남겨놓는것이 나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니체도 책에서 ‘건강한 이기심’을 언급하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까지 남의 기존에 맞추어 살지 않는다.” 라고 한것처럼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의 시선에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흔에 읽는 니체에서는 삶을 살아가며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에 대해서 강조하는 점이 가장 좋았다. 결국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익숙한 것들과는 결별하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 여러 책을 집필하며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가장 어렵지만, 결국은 우리가 알아내야 할 그 삶의 태도를 한번더 깨달을 수 있어 좋았던 책이었다.

(디오니 소스적 긍정=부정한 삶의 측면들을 필연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공제나 예외나 선택함이 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우리를 올바른 해결책을 찾도록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 초월하여 다다를수있게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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