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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크눌프

고전문학에는 영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이번에 얼마만인지 모르게 읽어본 고전 “크눌프”

어디선가 인생책으로 추천 받아서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읽어본 책이었다.

사실 헤르만헤세의 다른 소설이었던 데미안의 경우 너무나도 현학적인 말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명작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크눌프의 경우 데미안에 비하면 훨씬 술술 잘 읽히는 글이었다.

그런데 크눌프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뽑는 크눌프의 유명한 구절은 아래와 같다.

보아라.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했고 조롱당했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당했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했었다.

크눌프, 헤르만헤세

하느님이 크눌프에게 전하는 말,

다소 종교적이기도 하지만

방랑하던 크눌프는 어찌보면 하느님을 대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평범한 (크눌프처럼 자유롭지만은 못한) 삶에도 의미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하며, 매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의 설레는 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나의 삶에도 잠시 크눌프 같은 사람이 지나갔던 것 같은 기억이 나기도 한다.

그로하여금 그러한 방랑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러한 방랑보다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내 삶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크눌프는 어찌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영감을 주기 때문에 사랑 받았을지 모른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대신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왜인지 모르게 그를 동경하는 마음에 그를 환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그저 방랑자로 취급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크눌프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이 크눌프와는 달리 안정되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소하고도 평범한 일상도 모두 의미있다.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자.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서평을 쓰다보니 생각보다 더 좋은 책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서평을 쓰느라 이미 두번이나 읽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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