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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방랑자와 부적응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주제를 모르는 대화의 시작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대체로 내 생각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나로서는 그게 책이던, 실제 대화던 임의의 대화를 선호하진 않는다.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요즘은 말이다.

도서 <크눌프> 역시 어떤 주제인지 모르고 펼쳐들었다. 그저 얇은 소설책이라 다행이라며 자리에 앉았는데, 궁금하지도 않은 등장 인물의 이야기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마저도 세상 책임감 없어 보이는 도입부는 살짝 짜증도 났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며 살짝 몰입하게 됐다. 과연 세계적인 작가의 필력이다 싶다.

방랑자

방랑자의 사전적 의미는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도 아닐 뿐더러 내 인생과는 딱히 연관성이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더욱 크눌프라는 캐릭터에 정이 가진 않았다.

십대 하녀를 꼬셔서 데이트 하는 장면에서는 팁을 줄 정도의 돈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신감일까 싶었다. 외모가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는데, 참 유용한 재능이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방랑자처럼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꽤 오래 전에 계획되지 않은 여행을 해보겠다며 부산에 내려가 지도 없이 홀로 걸어다닌 적이 있다. 고작 몇 시간 정도였지만 나로서는 꽤 신선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계획된 방랑이었지만

계획대로 사는 걸 선호한다. 원하는 것이 명확하고, 때문에 명확한 계획을 세워 접근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누군가에겐 내가 ‘방랑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적응자

크눌프라는 방랑자를 보는 내 모습은 ‘사회 부적응자’였다. 왜 저리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건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는 내 모습을 보며 ‘사회 부적응자’라 말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친구야, 자네가 고향에서 계속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아내와 자식도 얻고, 또 매일 밤 편안한 잠자리를 가졌더라면, 아마도 자네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어쩌면 ‘떠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부적응’이라 여겨지는 건 이 사회가 만든 편견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인류는 수렵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녔던 개체다. 농업시대를 맞이하며 정착했을 뿐 인류는 원래 떠돌던 종족이다.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부러웠던 때도 있다. 정말 큰 대기업의 정직원이라던가, 높은 급수의 공무원이라던가, 아니면 3대째 내려온 가업을 물려 받은 장남이라던가. 이렇다할 방향을 잡지 못했던 내게 그들은 꽤 부러웠던 적이 있다.

발버둥 쳤다. 어떻게 하면 나도 주류에 올라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도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가족도 저들처럼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나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까.

나도 자리를 잡고 싶었다. 누구나 탐내지만, 쉽게 넘보지 못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10여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내 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내가 원하는 자리를 만들진 못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게 방랑자라고,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과연 방랑자란 무엇일까, 부적응자란 무엇일까.

결국은 내 인생

크눌프의 화려한 시기와 어두운 과거 그리고 초라한 종말을 읽으며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했다. 확실히 명성 있는 글은 이유가 있지 싶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했고 조롱당했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당했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을 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했었다.

크눌프가 홀로 종말을 맞이하는 장면에 밑줄을 그었다. 종교를 믿진 않지만,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서 많이 흔들릴 수 있는 약한 존재이지 싶다. 본문에서는 신에게 의지하며 종말을 맞이했지만, 꼭 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는 삶에서 꼭 풀어야 할 숙제이지 싶다.

때문에 삶에서 끝까지 함께 할 누군가는 정말 중요하며, 근본적으로는 그 존재가 스스로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단단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건 스스로 뿐이니 말이다.

마무리

조금 지친 요즘이다. 더운 날씨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내 삶의 방향은 괜찮지만, 속력이 다소 아쉬운 요즘이다. 속력을 끌어올리려 노력하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다.

스튜 독서소모임 지정 도서라 또 다시 억지로 펼쳐든 책이었지만, 그동안의 내 선택에, 내가 만든 방향에, 그리고 앞으로의 내 여행에. 조금은 더 확신이 생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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