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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 없는 사회주의자의 궤변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가 말하는 ‘가짜’에 관해 나 역시 경험 바 있으며 보다 내 삶을 살기 위해 도전하는 중이다. 때문에 저자의 주장에 관해 일부분 동의한다.

다만 굉장히 편향되다 못해 이념과 사상을 ‘노동’이라는 주제 뒤에서 풀어낸 방법에 관해서는 심히 부정적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13장과 14장에 압축 돼 있는 것 같다. 이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앞서 많은 자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미 답을 정해두고 필요한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정리한 것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결국 ‘너희는 잘못 하고 있어’라는 이 메시지를 읽는 입장에서 그러는 저자 스스로는 무엇을 했는지 심히 의문이다. 이 책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는 거 아닌가? 부와 명성. 그런 것들 말이다.

불편함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초반부에는 다소 딱딱한 주제 탓에 읽기가 꺼려졌으나 본격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저자의 궤변에 눈쌀이 찌푸려졌다.

저자의 논리로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건데, 이런 식이면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에는 멈추고 파란불이 되기 까지 기다리는 것 조차 불필요하다는 것과 같다. 어차피 차도 안 오는데 빨간불이 뭔 소용인가? 그냥 가면 되지. 사고만 안 나면 되는 거 아닌가?

업무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지만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어려운 거다. 모든 업무를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할 수 없고, 감정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관리자가 생각하는 대로 행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그럼에도 조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저자처럼 관리자의 역할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자들의 시선과도 싸워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시스템을 비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 근거가 빈약하다. 부정적인 인터뷰 내용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편향적이며,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파레토 법칙이란 게 있다. 80:20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이탈리아 20% 인구가 80% 땅을 소유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 품질관리에 적용돼 80% 분량이 20% 원인에서 나온다는 내용으로도 알려졌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전체 기능 중 80%는 사용되지 않고 20%만 쓰인다. 전체 매출의 80%가 20% 기능에서 나온다 등으로 쓰인다.

그럼 전체 기능 중 80%를 만든 노동은 가짜 노동인가?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일은 가짜 노동인가? 결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실무자가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가짜 노동인가? 그리고 이 가짜 노동의 원인은 관리자인가?

문제의 원인을 상대적 강자인 관리자와 시스템으로 돌린다고 해서 모든 논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관리자와 시스템이 그렇게 행동하고 구성된 그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깎아 내리는 게 올바른 비판의 자세인가 싶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물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가짜 노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 프로젝트에 개발자로 참여했을 때 일인데,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앞선 공정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수백 명의 개발자가 참여한 큰 프로젝트다 보니 이 시간이 꽤 길어졌고 몇 주 동안 대기한 경험이 있다. 심지어 프로젝트 전체 규율을 따라야 했기에 대기하는 상황에서도 야근과 주말 출근을 했다.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라 느꼈으며, 당시에도 무척 짜증이 났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이게 필요했다. 보통 프로젝트는 노동자가 노동 시간을 채우는 맨먼스 단위로 계약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앉아서 노동 시간을 채우는 게 회사 입장에서 필요하다. 그게 프로젝트 참여의 조건이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 속한 직원이기 때문에 회사가 계약한 프로젝트 조건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

물론 한동안 이른바 현타가 오기도 했고, 동료들과 많은 뒷담화를 했지만. 어쨌든 나는 월급을 받았고 이어서 진행된 내 역할을 잘 수행했다.

물론 여기서 해당 프로젝트의 일정이 더 잘 관리 됐어야 한다는 둥.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본질은 무엇이냐는 둥.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실제 내뱉으며, 수백명 중 한 명일 뿐인 사람이 모든 프로젝트의 일정을 흔드는 건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저자가 가져온 인터뷰 내용은 굉장히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다. 이사회 멤버가 정치적인 이유로 8년동안 제안을 거부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하나 들이밀며 ‘내 생각에 동의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논리적인 방식인지 모르겠다.

‘가짜 노동’을 경험했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노동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회주의자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을 저자가 결국 말하긴 한다.

결국은 현실적인 이유다.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 현실에 살며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심지어 무시하는 게 옳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자신의 일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자신이 책임질 수도 있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저자는 이어서 이런 말을 뱉는다.

이게 저자가 ‘엘리트주의’라고 느껴진 이유다. 저자가 뭔데 어떤 학문의 전문가로 인정 받은 교수의 삶을 ‘존중 해줘’야 하며, 자존감을 잃을까 ‘걱정 해줘’야 하나? 저자가 뭔데 한 가정을 부양하는 사람의 현실을 두고 걱정 하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결국 저자가 누리는 건 스스로 ‘특권’이라 인정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는 참 운이 좋거나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가짜 노동’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한 거라면 운이 좋은 것이고, ‘가짜 노동’이라는 주제를 잡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 평생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계산한 거라면 영악한 거다.

자영업자가 의욕이 없으면 쉬고, 의욕이 있으면 일하는 그런 단순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나 역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이딴 무책임한 말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지만 결국 그렇구나… 라고 체념한 건 다음 문장에서다.

결국 국가가 알아서 해라. 결국은 기본 소득을 누군가가 내고, 나는 좀 더 본질적인 생각을 하며 고고하게 살아가겠다. 저자 개인의 이념이다.

물론 나 역시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기본 소득을 만들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주6일제, 주5일제를 지나 주4일제가 되는 사회를 바라보며 결국은 인류가 더 많은 여가를 갖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흐름의 후폭풍을 감당해내야 하는 게 저자와 같은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마무리

저자가 언급하는 사람 중 회사에서 계속 놀다가 MBA도 공짜로 다녀오고, 심지어 회사에서 놀고 먹었던 걸 책으로 썼다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워야 할 상황 아닌가?

보고서가 200페이지가 넘어서 아무도 안 읽는다고 툴툴대는 사람도 나온다. 200페이지를 다 안 읽고 자신에게 물어본다며 툴툴댄다. 200페이지라서 안 읽으면, 2페이지로 요약을 하던가. 200페이지를 요약 설명하는 영상을 만들던가. 그게 200페이지를 만들어서 보고하는 사람의 자세인가 싶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논리를 위해 이렇게 많은 궤변을 모아둘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열심히 산다 싶다. 그 열심히를 보며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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