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W

불쾌한 친밀감의 극대화

처음 한강의 소설을 읽는 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지인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한강은 뭔가 내용이 은근히 불쾌해”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난 달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도 불쾌하다기 보단 그 소설 속 주인공의 비극에 심장이 불안불안 하다는 정도였을 뿐 그다지 불쾌한 감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확실히 알겠다. 한강의 책은 불쾌하다. 우리가 여러가지 미사어구로 혹은 무의식 중에 넘어가는 불쾌한 지점을 정확히 캐치하고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책의 지점지점이 사람들이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일이기에 그 묘사가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일반적인 인식을 뒤틀어 모순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혹은 높은 확률로 피해자의 심정에 공감을 하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 혹은 악당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을 자극한다.

이 책에서 나는 채식을 하며 말라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해치면서 모호한 이유로 채식만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시각에 공감을 갖게 되었다. 왜 그렇게 까지 하지 왜 그러지 라고 생각하며 클라이막스로 치달아가서 결국 자살시도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무언가 잘 못 되어 간다는 인상을 주며 기존의 인식을 뒤틀어버리면서 이 책을 읽는 혹은 이와 같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소수인 채식주의자들과 대척점에 서있는 대다수의 사람의 무의식적인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장 하나 하나가 정말 불쾌했다. 비슷한 사례로 내 기대와 생각을 뒤틀어버리면서 발상을 뒤집는 영화 기생충 생각도 났다.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을 뒤틀어서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걸 보는 사람으로부터 그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게 하여 불쾌함을 이끌어 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하거나 이 책이 전하려던 메시지에 그렇게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도 있구나 이러할 수 도 있구나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보고 아마 누군가는 정말 무관심한 사람이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수준을 넘어 이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나를 파렴치한으로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정말 뛰어난 문장으로 사람의 불편한 감정을 자극하고 그 인식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하여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고 하여서 그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생각에 이 책은 아무런 결말을 짓지 않고 모호함으로 끝을 맺음으로서 사람을 불편하게 할 뿐이지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해서 바꾸려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고 “이거봐, 그러니까 네가 잘못된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한 주인공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던 아버지와 타인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다를게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는 매우 생생한 불쾌함을 느끼게 하였으나 그 자체로 무언가 나를 바꿀게 만드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년이 온다]와 연결하여 본다면 그 소재의 차이일뿐 결국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모두 독자에게 지긋이 응시하는 듯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생각은 들었다. 다만 거기까지다 가능성만을 이야기할 뿐 누군가를 일부러 바꾸려는 의도는 전혀 없는 것 같았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