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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잘 지은 책

2026년 스튜 독서소모임 시즌1, 그간 다소 딱딱한 이야기를 읽어왔으니 말랑한 이야기도 좀 읽어보잔 의견에 ‘에세이’를 택했다. 스포츠 스타의 에세이류를 골랐는데, 그것도 너무 딱딱하다는 의견에 몇 가지 제안을 받고는 선택했다. 평소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제목이라 골랐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제목 참 잘 지었다 싶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냐면, 책의 저자가 장애를 갖고 있었는지.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겪는 일상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그냥 골랐다. 책을 펼쳐들며 무척이나 놀랐다. 작가의 글쓰기 실력이 상당해 글을 읽는 내내 머릿 속에 영상이 그려졌다.

2024년 알라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는데, 중고로 산 책 뒤를 펼쳐보니 2025년 6월 30일에 17쇄를 찍은 책이더라. 17쇄라니. 대단한 작가였다.

나에게 장애란

난 장애라고 할 만큼 불편한 건 없다. 덩치가 작은 건 학창시절엔 불리했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고, 손발에 땀이 나는 다한증을 가지고 있지만 다소 귀찮을 뿐 장애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때문에 내가 장애를 이해한다는 등의 말은 무리가 있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63만 1천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라고 한다. 이중 시각장애인은 25만명이란다.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날 일은 거의 없는 거 같다. 살면서 함께 생활한 적이 없어서도 있고, 장애인을 마주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사실 좀 어렵긴 하다. 사무실 같은 층에 방향제를 만드는 기업이 있는데, 일주일에 며칠 시각장애인이 출근하는 거 같다. 종종 화장실 앞에 멈춰 서 있을 때가 있는데, 뭔가 도와야 할까 싶다가도 그게 더 무례한 행동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래도 되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적도 있다.

내게 장애를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글쎄. 뭐라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혹 말실수를 할까 두렵기도 하고,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두렵기도 하고, 괜히 그 자리를 피해버릴 것 같다. 저자의 여행 스토리와 마사지샵 스토리를 읽자면 상처가 되는 일이 참 많은 거 같은데, 경험하지 못하고 배운 적도 없는 나는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관광지에서 마주친 한국인 할머니들이 걱정을 담아 우리에게 건넨 말은 이렇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하러 왔누!”

그저 장애인 하면 내 초등학교 시절 잠시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문득 생각 난다.

장애를 가졌던 친구

그 친구의 정확한 장애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가끔 소리를 지르고, 눈치를 많이 보고, 힘이 무척이나 셌던 것이 기억난다.

A는 나와 같은 반이었을 거다. 또래에 비해 키도 컸고, 초등학생인데 팔에 털도 많았다. 나와 짝꿍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이 내게 짝을 지어줬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집 근처에 살았지만 당시엔 대부분 같은 아파트 세대에 살아서 큰 차이는 없었다. 내가 왜 A와 지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건 A는 나를 좋아했다. 그리고 A의 어머니도 나를 예뻐했다. 나는 잘 웃는 A가 편했고, 내 말을 잘 들었던 A가 좋았다. A와 놀면 칭찬을 받았던 것도 좋았고, 나의 어머니와 A의 어머니도 우리가 같이 노는 걸 좋아했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A가 나와 다르다는 건 분명히 기억한다. 다른 친구들은 A와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A를 괴롭히던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나서서 괴롭힘을 막아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있을 땐 A가 늘 웃었던 게 기억나는 걸 보면 우리는 잘 지냈지 싶다.

내 기억이 짧은 건 아마도 내가 전학을 갔기 때문일거다. 기껏해야 1-2년 그 지역에 있었을 거고 정말 짧게 A와 놀았을 거다. 몇년 뒤 내가 그 지역에 찾아가 친구들을 만났을 때 A를 찾아가기도 했고, A는 반가워 했지만 어색한 모습을 보이며 멀리서 날 보고 웃었던 게 기억난다.

내가 전학을 가지 않았다면 A와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초등학생이니 같이 놀았겠지만, 중학생만 돼도 같이 어울리지 못했을 것 같다. 또래집단이라는 게 서로의 공감대가 중요한데 A와 나는 공감대라고 할 만한 게 그리 많지 않았을 거다. 레고를 가지고 노는 건 초등학생 때 졸업했으니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 지내는 건 참 힘들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장애 때문이라면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떻게 지내야 할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고, 그래서 5.1%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기는 외로움이 저자가 말하는 ‘지랄맞음’이라면. 나는 그걸 축제로 받아들일 자신이 아직은 없다.

장애를 갖게 된다면

2019년, 도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던 독서소모임이 떠오른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각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은지를 나눴던 거 같다.

[서평] 눈먼 자들의 도시 ★★★☆☆

가끔 생각해봤다. 내가 팔이 없어진다면, 다리가 없어진다면.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면. 내 삶은 어떨까.

내 기준에서 참 대책 없다 싶은 사람들이 있다.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너무 한 분야만 파는 사람이나, 한치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사람들. 나는 온갖 걱정이 돼 돈을 아끼고,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고, 주변을 둘러보곤 하는데 그러지 않은 강심장들을 보자면 대책 없구나 싶다. 그런데 사실 일상이 무너지는 건 그리 멀지 않아 보이긴 한다.

얼마 전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던 적이 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구나 하며 고속도로에 올라탔는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폭설이 내렸다. 8차선은 돼 보이는 자유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4줄이 돼 의아했는데 10중 추돌은 돼 보이는 무리가 보였다.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거렸고, 브레이크를 밟고도 몇 미터를 미끄러지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러다 정말 죽겠지 싶었고 20km/h로 몇 km를 갔지 싶다. 그 다음날 목에 담이 왔다.

슬프게도 그때 우려가 됐던 건 회사였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법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만 믿고 일하는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서비스를 믿고 업무에 도입한 고객들은 어떻게 될까.

참 우습다. 완벽주의자로 이것저것 다 챙겨대는 주제에. 천재지변의 딸깍 한 번에 온 일상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게. 그런 측면에서 어떤 장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차이가 있나 싶다. 운명이란 게 정해져 있는 거라면, 운명이 원할 때 일상이 끝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타인의 삶을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참 좋은 책이지 싶었다. 꼭 저자가 장애인이고 내가 장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일상을 머릿속에 그려줬다는 것에 굉장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겐 내 일상이 마치 장애처럼 불편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면에서 저자를 측은하게만 바라보고 싶진 않다. 그저 이 지랄맞음에도 어떤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음에. 결국 저자의 성공에 진심으로 박수쳐 줄 사람들을 만났음에. 먼 거리에서 나 역시 독자로서 그 축제를 조금은 같이 즐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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