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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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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 우울한 사회상이 어울어져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서평

실제로 이 책은 나에게 꽤나 재미있었다. 매우 속도감있게 전개가 이루어져 읽는데 집중하기도 용이했다. 하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책이다. 다른 멤버들은 인생의 책으로 꼽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뜻깊은 책이겠지만 나에게는 ‘아 무언가 있긴 한데 나는 모르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서평도 길지 않게 쓰려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했던 부분까지만 써보려 한다.

수면 위의 행동은 수면 아래 감정을 나타내지 못한다.

토마시, 테라자, 사비나, 프란츠, 시몽, 카레닌 등 주인공들은 모두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소련의 공산화가 진행중인 동유럽을 배경으로 각 인물들은 매우 인상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들의 관계는 혼란이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글을 전개하며 작가는 각 인물 한명한명의 심리를 세밀히 묘사해준다. 특히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관계에서 토마시가 가지는 태도, 사비나의 예술관을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하는 기자에 대한 항의, 죽음 직전 법적 아내를 보는 눈빛에 대한 프란츠의 심정 등 다양한 장면에서 수면 아래 숨어있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람의 행동은 그 감정을 오롯이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정말 인상깊게 활용한다.

토마시

토마시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다. 그는 분명 배우자를 사랑한다. 그 스스로도 헷갈려하고 다른 여자를 습관적으로 만나기는 하지만 결국 그녀가 테레자에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에는 육체적인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테레자와 그 사이와 같은 사랑의 형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뿐이다.

성공한 외과의사에서 정치세력에 찍혀 유리닦이, 트럭운전수로 지속적으로 그의 사회적 지위는 하강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갈수록 더욱 안정되어간다. 그의 혼란은 사실 테레자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는데서 시작했다. 사랑을 의심하던 그는 지속적으로 다른 여자를 만나며 그 의심을 이어나갔지만 사회적 지위가 하강하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달라지면서 줄어들었으나 의심이 사라지진 않았다. 결국 시골에 가서 테레자와 카레닌을 묻으며 서로 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는 안정을 찾게 된다.

토마시 이야기 중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매우 와닿았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 그는 공산화의 모순을 꼬집었고 당시 사회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렸다. 그런 소신을 그는 끝까지 꺾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소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정말 생각지도 않게 나에게 이 책을 각인시켰다. 아마 10년 뒤 이 책을 떠올릴 때 나는 다른 이야기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는 아마 내가 소설 속에서 현실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대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지만 스스로는 정의감에 불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디 그들이 더이상 부끄럽기 전에 오이디푸스의 과오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응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란다.

테레자

테레자는 시골소녀다. 사랑에 빠져 도시의 혼란에 몸을 던졌고 도시의 혼란이 점점 심해지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혼란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프라하에서 취리히에 가서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시골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었으나 결국 그것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 도시에 나온 사랑하는 토마시마저 버리고 프라하로 돌아간다. 프라하에서도 그녀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돌아온 토마시와 함께 할 시간마저 없는 뒤바뀐 생활을 하게 된다.

토마시의 여성편력은 지속적으로 테레자를 괴롭혔고 그러한 토마시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여자의 냄새를 배고 온 토마시에 대해서도 그녀는 말 한번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정말 시골 소녀였던 것이다. 시골소녀가 자신의 소중한 것 하나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사랑인 토마시가 정말로 떠날까 두려워 혼란에 빠진 것이다. 결국 테레자는 시골에 돌아가서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다. 카레닌과 함께 소를 치면서 좋아하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그녀는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카레닌의 죽음을 통해 토마시와의 관계를 재발견하고 춤을 추러 가는 장면은 그를 무엇보다 확실히 보여준다.

사비나

소설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작가의 작품관을 표현하는 듯한 사비나의 예술관이었다.

사비나는 배신이 목표인 여자였다. 프란츠에게 사비나의 배신은 그녀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정도이다. 그녀의 그러한 배신은 처음에는 모든 것에 대하여였다. 조국을 도망나온 뒤 조국을 침략한 세력에 관해서도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끝에 가서 사비나는 그녀의 배신은 키치에 대한 배신이라 했다. 사실 아직 키치가 어떤 것인가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나름 짐작으로는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 좋다고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불행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보통의 관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런 삶은 극적이게도 그가 바란 키치에 둘러싸여 끝나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상류층으로 그녀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가식적인 문화에 스며들어가는 것으로 그녀는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녀의 삶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부정하려하지만 이미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프란츠

프란츠는 엄친아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없는 것을 동경했고 그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진흙탕으로 뛰어들어갔다. 예쁜 부인, 안정적인 직업, 소득, 사회적 지위를 다 버리고 사비나라는 자신과 전혀다른 존재를 추구하며 새로운 자신을 찾으려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그러한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가 믿었던 대장정은 결국 허구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된다. 대장정은 허울뿐이었고 어떠한 사람도 대장정에 진심인 사람은 없었다. 단지 구호만을 외치고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운동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모순을 죽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현대에도 여전히 진행중이 대장정의 모순과 위선을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가 프란츠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후 그의 의사와는 상반되게 그는 결국 자신이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은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사비나가 배신했던 곳이다.

시몽

토마시의 아들이라는 시몽은 매우 신기한 캐릭터다. 마지막에 가서는 겉으로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안정을 찾은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동경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 아버지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고 아버지를 신성시하며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기자를 도우며 사회운동을 했고 아버지의 사회운동에 대한 미참여를 보고 사회운동에 대한 혼란을 느끼며 결국 사회운동을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며 살게된다.

시골에 가서 살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상상에 기반하여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접점을 만들고자 했다. 어찌보면 시몽은 너무나 이해가 되는 캐릭터이다. 어린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부풀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시몽은 인물 중 사비나와 함께 살아남는다. 이를 그가 젊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시몽은 진정한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시골로 돌아간 토마시-테레자와 달리 시골에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찾으려 했기에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였다. 사비나 또한 모순된 일상 속에서 혼란을 여전히 겪고 있었다.

카레닌

개인적으로 카레닌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동물보다 못하다. 동물보다 복잡하지만 결국은 동물과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멀리 돌아오는 존재이다. 개의 삶은 인간보다 훨씬 짧다. 짧은 카레닌의 삶은 단순히 반려견이라기 보다는 모든 주인공의 삶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계인이 본다면 우리의 삶 또한 매우 짧을 것인데 왜 우리가 개와 다른가. 창세기 구절로 시작한 챕터에서 인간의 특별함을 지우며 인간과 개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결국 모든 주인공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일생을 살아왔지만 카레닌과 같이 안정을 추구한다. 카레닌은 극 중 초반부터 안정된 상태로 그 상황에 적응하여 살아왔지만 극 중 인물들은 매우 복잡한 삶을 살다가 결국 카레닌과 같은 안정을 찾고 곧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개와 사람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일한 목적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이다.

주인공들은 정말 말도안되게 커다란 혼란을 고민한다. 키치에 대한 배신이 그러하고 대장정에 대한 회의가 그러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본질, 사회의 본질과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 모두 거대한 혼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의 끝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조그만 카레닌과 같다. 삶의 모습이 어떤 방식이든 그 사람이 추구한 이상이 무엇이든 결론은 사과 나무 아래 네모난 흙더미가 그의 마지막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정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것 같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 같은 모습으로 끝이 나기에, 끝에 가서야 이를 깨닫는 존재이기에 그러한 거 같다.

그럼에도 사람은 위대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명예를 쌓아도 이는 말일 뿐 끝을 바꿔주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나누며 전해왔다. 그 결과가 이 세상이다. 21세기의 발전한 문명이 그 증명이다. 물론 여전히 혼란스럽고 갈등하며 결론을 못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진 않는다. 한 개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혼란은 전해지고 발전한다. 그것은 위대한 것이다. 유한한 삶에서 영원한 혼란을 낳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잊혀질지 몰라도 어떠한 과거의 가벼운 존재가 떠올린 생각, 혼란은 남아 세상에 전해진다. 그렇기에 인간은 개와 다르고 가벼운 존재지만 동시에 위대한 존재가 된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5-6년 전이다. 당시 참여 중이던 독서모임의 발제도서였고, 항상 그래왔듯 다소 억지로 읽어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처음 책을 구입하면서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가끔 헷갈리는, 그 당시의 최대 궁금증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말장난일지도 모르지만, 책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어느 하나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무방하지 않나싶다. 만약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라면 그때 이미 천재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 틀림없다. 그 당시에는 독서량도 지금처럼 안정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거 자체가 곤욕이었기 때문에 어떤 책이든 읽기 어려웠던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모임 날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테레자, 토마시 등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하면서 결국에는 우리의 삶과 사랑으로 대화가 흘러갔던 것 같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까지 읽은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나는 분명 어떠한 지적호기심이나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번 지정도서로 결정되고, 오랜만에 낡은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서 첫 장을 넘겼을 때 스쳐 지나간 그때의 감상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스스로를 상처 많고 여린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이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자존감 낮은 피해망상자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였다. 아마 5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좁은 시야와 단호한 자기주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1년의 1권의 책을 읽을까말까 하다가 우연을 계기로 독서를 습관화하면서 매년 꾸준하게 어느 정도의 독서량을 유지하게 된 후에는 소설, 수필, 고전문학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판단하건데, 정독보다는 속독을 추구하고, 옛날 문체가 잘 읽지 않는 나에게 이런 책들은 젬병이었고, 그것은 내공의 부족이고 내가 ‘멋’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이나 취미생활보다는 ‘지적호기심’을 채우는 수단이고, 공부의 일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도서의 대부분은 경제경영, 인문사회, 창업투자 혹은 재테크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며, 최신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베스트셀러를 탐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잠시 머리를 쉬어가는 여정이자, 보다 흥미로운 책이기를 바랬다. 물론 두 번째 독서였지만, 그래서 더 재미없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이 책을 펼쳐놓고 다른 책을 읽었을까.

인류가 사랑한 작가와 세계가 인정하는 고전문학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작가의 특유의 문체와 현대의 드라마 같은 사건구조로 우리의 삶과 ‘사랑’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사랑은 유치하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불편하면서도 유치하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흠칫 놀라면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에 메모들이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나는 책에 생각을 정리하거나, 혼자만의 질문들을 적어놓곤 했는데 지금 보니 웃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마시’를 ‘테레자’를 대입하면서 읽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주인공들의 상황과 생각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려고 한 노력들이 엿보이며 동시에 치를 떠는 부분들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러쿵저러쿵해도 나의 그때의 연애와 그이후의 연애사에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얼마 전 팟캐스트를 듣다가, 스타트업과 흥미로운 아이디어제품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자신의 운동기록을 피드할 수 있는 스마트헬스케어제품에 대해 진행자가 인간의 돈과 시간은 대부분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쓰이는 것’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며, 그런 점에서 ‘나를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와 같은 질문이나, ‘내가 하반신불구가 되어도 내 옆에서 변함없이 사랑할거야?’라거나 ‘재벌3세 미녀가 대시를 해도 흔들리지 않을거야?’와 같은 질문은 필시 질문 그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욕구가 표출된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내가 그런 질문을 너무 공대생적인 마인드로 대처했기 때문에 사소한 언쟁과 다툼이 있었고, 아직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선한 거짓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욕구가 표출된 장면들이 여럿 있었는데, 결국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욕구들은 결국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생존’을 위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만들어낸 집념일까?

진화심리학에는 ‘자살’을
번식과 진화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태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보는 ‘견해’가 존재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테레자는 끊임없이 토마시의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확인받고 싶어하고, 토마시는 그런 테레자를 부담스러워하고, 버거워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망하고 그녀에게 되돌아간다. 전반적으로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바라는 수동적인 존재이면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고 보살피지만 상대방에게서 모성애적인 사랑을 바라는 것처럼.. (마치 남자는배 여자는항구?와 같이) 묘사되었다고 느꼈는데 그러한 시각이 불편하면서도,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의 특색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을 또 한 번 읽으면서 든 확인한 생각은 인연, 운명적인 사랑은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도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어 하고, 상대방에게서 나의 존재와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 어느 정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점 그리고,

‘결국 자존감과 자기이해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된다는 점’

– 인상깊은 글귀 –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시점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대답 없는 질문들이란 바로,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표시하고 우리 존재에 경계선을 긋는 행위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약 7시간을 무척 아깝게 느끼는 것을 밝힌다.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로 이 책을 펼쳤지만, 이 책을 덮은 지금도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내 귀한 7시간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7시간 동안 뭔가 얻어야만 했다. 이게 내 독서 방식이고, 내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7시간 동안 이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 글을 왜 썼는지 하물며 왜 이 책이 4판 15쇄까지 찍혔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한 것은, 내 서평을 읽으면 내가 왜 이 책에 별점 0점을 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거다.

독서 방법론

지금껏 내 블로그에 200개 가까운 서평을 썼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추구하는 독서, 독서 방법론에 관해 논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또한, 독서에 관한 취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내 관점에서 이 책은 책이 아니다. 내게 책이란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만 한다. 또한 그 정보는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고, 내 삶과 닿아야 한다. 정보 전달, 내가 원하는 정보, 내 삶과 닿아야 하는 등 이 3가지 관점 중 이 책은 그 무엇도 갖추지 못했다.

첫 번째, 정보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주인공이 각자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정보라면, 내가 생각하는 정보와 개념이 다르다. 주인공이 겪는 사상 전쟁에서의 갈등이 정보라면, 글쎄. 이는 내가 생각하는 책의 관점 중 두 번째에 해당하겠다. 현재로서는 관심이 없다.

2개 정보 외 다른 것이 숨어있다면, 내 문해력이 부족한 탓이겠다. 내 문해력을 탓하면 된다. 나는 내 문해력을 탓하는 만큼 작가의 필력을 탓하겠다.

두 번째, 내가 원하는 정보다. 이 책은 공산주의 사상 전쟁이 나오는 시대로 내 시대와 거리가 멀다. 이는 내 세 번째 개념과도 일치하는데, 내 삶과 닿지 않는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정보도 아니다.

주인공의 방탕한 삶은 그다지 내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여자 200명과 잤으며, 매일 저녁 머리카락에 스며든 다른 여자 성기 냄새를 부인이 맡게 한다는 것 자체는 도저히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 평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내 삶에 1cm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이다.

세 번째, 내 삶과 닿아야 하는 것. 체코 전쟁, 주인공 4명의 사랑 이야기 등에서 내 삶에 뭘 엮어야 할지 모르겠다. 작가는 독자에게 뭘 원했을까?

내 독서 관점 중 가장 큰 것은 정보 전달이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고,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책이 아니다.

타인에 관한 관심

나는 이 책을 책이라 생각지 않는다. 때문에 별점을 0개 부여한다.

하지만, 책이 아닌 어떤 글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느낀 것을 말해보겠다. 타인에 관한 내 관심이다.

나는 술자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굳이 듣고 싶지 않은 타인의 필터 없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술기운을 빌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거나, 속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다음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하거나, 술 취해서 그랬다며 방패를 만드는 굉장히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술자리를 이런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내 삶에서 추방한다.

또한, 내 시간을 안주 삼는 것을 혐오한다. 그저 넋두리를 늘어놓는 거라면 나를 찾지 않길 바란다. 나는 타인의 넋두리를 듣고 싶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타인이란 내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생각하는 내 사람을 제외한 모두다.

나는 많은 이와 어울리지만, 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빠듯하다. 이는 그들이 덜 중요해서기 보다는, 더 중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명확하고, 내 능력이 미천하기에 그 범위를 한정한다.

늘 부족함을 느끼고, 시간에 허덕이는 내게 하찮은 넋두리 따위로 내 시간을 안주 삼는 것을 혐오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은 내 삶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편이다.

나는 철저히 내게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것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내 범위를 한정한다. 그 범위에 있는 타인에게만 한정된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는 더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것 그리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니 이 글은. 내게 넋두리를 늘어놨고, 나를 술안주 삼았다. 때문에 나는 이 글을 혐오한다.

내가 학창 시절 공부를 못했던 이유

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느낀 적은 드물었고, 딱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게 내가 어떤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충분한데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왜 학창 시절 공부를 못 했는지, 아니 안 했는지 느꼈다. 나는 이런 게 재미가 없다. 또한, 나는 재미가 없으면 하고 싶지 않다. 난 학창 시절에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은 나를 학창 시절로 돌려놨다. 매일 아침, 이 글을 읽으며 시간이 아까웠다.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어떤 등장인물의 불륜 이야기를 내가 왜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불륜 대상을 사랑한다며, 잡아두는 인물은 더 한심했다.

이런 한심스러운 삶을 아침마다 읽는 것은 굉장한 곤욕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모임에서 정한 지정도서이기에 억지로 읽긴 했다만, 아마 학창 시절 과제였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류 이야기를 혐오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일까?

마무리

이 책이 많이 읽힌다는 사실을 들었다. 영화화가 되기도 했고, 우리 모임에서 이 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작가도 유명하다.

책을 다 읽고 그동안의 7시간이 아까워 유튜브에서 책 해설을 찾아 틀었다. 1분 정도 보다가 껐다. 이 책이 이해되버릴까 두려워서다. 7시간을 할애해 읽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고작 10분 영상으로 이해한다면, 내 문해력에 자괴감이 들 것 같았다.

책 속 주인공 4명이 각자 인생을 살았듯, 나도 내 인생을 살련다. 내 인생에 한동안 이런 류 글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으며 음미하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어림없다.

다음 주 STEW 독서소모임에서 부디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한줄평 ☆☆☆☆☆

3류 아침 막장 불륜 드라마.

인상 깊은 문구

  •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토마시를 테레자에게 데려가기 위해 여섯 우연이 연속적으로 존재해야만 했고,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테레자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에 덜 불안해했다. 또한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 독학자와 학교에 다닌 사람의 차이 점은 지식 폭이 아니라 생명력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정도 차이다.
  • 앞은 파악할 수 없는 거짓이었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그들이 만난 직후 처음 호감을 드러낸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는 미남이며 학계에서도 출세가도의 정상에 서 있어서 심지어 전문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그가 보여 주었던 고차원 지식과 자기주장은 동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그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매일 되풀이 해야만 할까?
  •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100만 분의 1의 상이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오로지 섹스에서뿐이다. 왜냐하면 섹스란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을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참을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된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설정한 미덕 중 하나가 참을성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모든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규율을 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참기만 하고 살겠는가?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분출하는 과정이 있기에 인간이 인간적이다.

이 책은 프라하의 봄, 소련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외치던 체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 모든 열망을 참으면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기에 주인공들의 철학적 고뇌는 더욱 진지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영원성이라는 무거움과 일회성이라는 가벼움 사이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지는 않았다. 인간과 역사의 모든 순간은 일회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에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4명의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갈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상황이기에, 조금은 과장되고 민망한 이야기가 많음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야만 한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래야만 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어떤 무거움으로 인해 인생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항상 고뇌한다.

토마시의 연인인 테레자는 사랑과 육체의 대상은 동일해야 한다는 Muss es sein을 인생의 당연함으로 생각하기에,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연인 토마시의 외도 행위로 인해 괴로움 속에 살다가 도망친다. 그리고 토마시의 사회적 추락으로 인해 시골의 트럭 운전사가 되는 과정에서 평안함을 느끼면서도 자책한다.

프란츠는 고리타분한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온 지식인이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정조를 으뜸의 덕목으로 생각해왔고, 부인에 대한 존중은 여자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부인에게 내재한 여자, 즉 어머니였다. 하지만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사비나를 만나면서 배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무거움과의 배신을 택한다.

내 삶 또한, 나를 위해 살아가자 생각했지만, 결국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사회가 이상적으로 만든 이미지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이미지의 말과 행동을 하며,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내 안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이런 무거움에 허덕이며 살지는 않는다. 무거움이 있기에 가벼움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표면적으로는 존재의 무거움이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시간이 있다. 나 또한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정신이 가벼워지는 행위를 한다. 이 밸런스가 있기에 자아는 성숙해지는 것 같다.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Muss es sein과 반대되는,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인간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행동들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은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

토마시는 외과 의사의 Muss es sein인, 사물의 표면을 열고 들여다보는 행위를 넘어서고 싶어 했고, 그 욕망이 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별개로 생각하게 하여 수많은 여자에 대한 육체적 탐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곁에 있는 한 여자 테레자에게 Muss es sein을 느낀다.

사비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살았다. 그랬기에 사비나에게는 배신, 즉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불렀고 이 끝나지 않는 배신 끝에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가장 완벽한 연인이었던 프란츠 또한 배신한 사비나에게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N극과 S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하면서 행복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괴롭다. 이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단어는 인간이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게 하는, 삶에 대한 의지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간은, 연인은 서로를 밀고 당기는 자석과 같다. 자석은 같은 극은 서로를 밀어내지만 다른 극은 서로를 당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봤을 때, 사랑이 실패하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나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누군가이다.

이 책에서 토레시와 테레자 / 사비나와 프란츠는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와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을 욕망하지만, 다르기에 괴로워한다. 이 모순이 사랑의 매력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도 같은 논리인 것 같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갈망하고, 가벼움은 무거움을 원한다.

책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존재라는 단어 자체는 무거움을 뜻하고, 참을 수 없다는 말은 두 단어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뜻 아닐까?

리허설뿐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리허설뿐인 한 편의 연극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하고, 연극은 계속 이어져야 하기에 또다시 나아간다. 리허설이기에 인생의 무의미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연극보다는, 리허설이 주는 실패 속의 깨달음, 피와 땀이 주는 쾌감, 가벼움 속의 무거움, 무거움 속의 가벼움이 주는 시간 또한 아름다운 것 같다. 끊이지 않는 다음 리허설을 위해.

참을 수 없이 어렵지만,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책

인상 깊은 문구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a,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 p13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 p17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 p87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재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 p93

꿈은 커뮤니케이션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없는 것을 희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다 – p105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34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 p143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브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야기하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 p157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 사비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아 자기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어둠은 무한성이 아니라 다만 그녀가 보는 것과의 불화,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 보는 것의 거부만을 의미했다 – p161

삶이 잔인했기에 공동묘지에는 항상 평화가 감돌았다 – p174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 p226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17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마시는 이 100만 분의 1을 발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으며, 그의 눈엔 이것이 바로 그의 여자 집착증이 지닌 의미였다… 따라서 그를 여자 사냥에 내모는 것은 관능의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지상에 머무는 육체를 메스로 개봉하고자 하는)하려는 욕망이었다. – p321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 p358

그는 자신이 언제라도 행복의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언제라도 꿈속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떠나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여섯 우연에서 태어난 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 자기 사랑의 “es muss sein!”을 배신할 것을 알았다 – p385

그러므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부른다 – p399

테레자의 꿈은 키치의 진정한 기능을 고발한다. 키치는 죽음을 은폐하는 병풍이다 – p410

그녀는 이 노래에 감동하지만 자신의 감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p415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다… 정치 운동은 합리적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하다… 좌익인사를 좌익 인사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저런 이론이 아니라 어떤 이론이라도 대장정이라 불리는 키치 속에 통합하는 능력인 것이다 – p417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p439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p455

사람들에게는 힘 있는 자들 중에서 범인을 찾고 약한 사람들 속에서 무고한 희생자를 찾는 경향이 있다… 테레자의 약함은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아 그녀 품에서 토끼로 변할 때까지 매번 그에게 타협을 강요했던 공격적인 약함이었다. – p502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승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

2020년 9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0년 9월 6일 오전 10시
  2. 장소 : 강남역 스터디 카페
  3. 도서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4. 저자 : 밀란 쿤데라
  5. 발제자 : 고대승

(Brainstorming) 이 책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명언이다. 가장 공감됐던 문장과 그 이유는?

1. (감정이입) 토마시 / 테레자 / 사비나 / 프란츠 / 기타 중 가장 공감 했던 등장인물 또는 가장 이해가 안 됐던 등장인물은? 그리고 여러분이 그 등장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2. (Muss es Sein vs Einmal ist keinmal) “그래야만 한다” vs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고뇌이다. 책에 나오는 위의 문장이 전자는 무거움을, 후자는 가벼움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하나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장에 기울게 되는가?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3. (존재의 가벼움) 책의 주인공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만들어나갔다. 우리 또한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낸 무거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추구할 때가 있다. 여러분이 충동적으로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무엇인가?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17

3. (키치) 책에 자주 등장하는키치라는 단어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단어이다. 여러분이 이해한키치 의미는 무엇이며, 여러분은 어떤키치 가지고 있는가?

키치(Kitsch)의 사전적 용어: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키치는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 잡는다. 권위를 상실한 키치는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p415

4. (시선) 439p에서 저자는 우리는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인간을 범주로 나누었다. 자신은 어떤 범주에 속하며, 이로 인해 행복할 때와 행복하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다면 자신이 생각한 자신의 범주는 무엇인가?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무엇도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 군중을 염두해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p187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p439

5. (자유 토론) 

요새 코로나19 덕에 경제가 요동쳐서인지 주식 시장에 자꾸 눈이 갑니다. 목돈 마련을 위한 적금 만기도 아직 몇 달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그러던 중 의대 친구 놈이 열심히 주식 공부를 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예전엔 막연히 돈벌이가 되기 전까진 열심히 커리어나 쌓자 싶었었는데… 그 바쁘다는 의대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엄청난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한테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하나 문의를 하게 되었는데요. 일반적인 주식 공부 책이 아닌 엄청 얇은 한 블로거의 책을 추천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경제 블로거 오박사님이 쓴 <자본주의 생존 공략집>이었습니다.

오박사님의 유튜브 채널입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실질적인 주식 부분이 짧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 뻔했는데요. 마지막엔 오히려 더 본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살아남기 위한 기술적인 접근보다는 올바른 마인드셋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몇몇 좋았던 부분을 같이 공유해볼까 합니다.


주변이 아닌 핵심을 봐라

제 학부 전공은 경제였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거시 경제에 더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주식 공부를 처음 마음먹었을 때부터도 으레 큰 그림부터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가령 한 업체를 분석하기보다 그 전체 산업, 혹은 더 크게는 그 국가를 봤던 것이죠.

지금도 와레버스라는 블로그를 좋은 분들과 운영하면서, 경제 전반에 관한 공부는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박사님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시더라고요. 시장 상황, 경제 상황보다 투자하려는 기업, 그 자체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 매일매일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참 에너지 빠지는 작업 같습니다. 그냥 간단히 체크하면 되는데, 솔직히 요새 보면 하나같이 대한민국에 거시 경제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오박사

주식에서는 좋은 주식이라면 실적이 계속 좋아지기 때문에 거시 경제랑 크게 상관없이 가므로 장기 투자적으로 거시 무시

오박사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 뉴스 수십 개를 확인하고 큐레이션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녔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이 정보가 산업에 어떤 파급효과를 거둘지는 제가 아닌 전문가라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1일 1큐레이션 도전하고 있는 와레버스

물론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건 제가 좋아서 계속하겠지만서도 이것 때문에 투자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기업에 소홀했던 제 모습에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팔 물건이 아니라면 오늘 바로 이 시점의 현재 가격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품질이겠지요.

오박사

기업이 어떤 상품을 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투자는 정말 위험합니다. 심지어 그 잘나간다는 IT업계도 승자와 패자가 있는 마당에, 산업이 좋다고 무작정 돈을 넣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 돈이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길 잘했다…라고 생각한 첫 번째 “A-ha Moment”였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 주식, 부동산, 사업

자본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자본주의가 뻗치지 못한 곳이 전 세계에 거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이념입니다. 세계적인 학자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자본주의를 종교에 비유하기 까지 할 정도입니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자연적 질서와 불편의 법칙을 믿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유발 하라리
언제나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를 놀랍게 만드는 유발 하라리

다만 자본주의는 가격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데요. 시장에서 도태한 사람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정글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무기를 골라야겠죠. 오박사님이 말한 자본주의에서의 무기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저는 일찍이 자본주의 시스템상에서 태어났으면 주식/부동산/사업 중에서 한 가지 주무기를 정해야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박사

실제로 제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3가지를 다 커버하고 있었습니다. 경제 공부하면서 주식이라는 무기를 제련하고 있고요. 법무법인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부동산이 주력 상품인 P2P 대출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 콘텐츠 사업을 하겠다며 블로그 키우기에도 여념이 없습니다.

워낙에 나무처럼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은 저였기에 이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정글에서 스위스 나이프처럼 용도가 다양한 도구가 유용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오박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하나의 주무기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3개 다 동시에 도전하려고 보니, 이거 학교 다시 시작했다가는 스케줄 관리가 힘들어지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도 뭐에 먼저 집중해서 마스터를 할지에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우유부단한 성격 덕에 아직까지 정하지 못하겠지만, 오박사님이 예지력이 있으신지 여기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에 집중해서 사회로부터 얻는 결과물을 극대화해야 합니다(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보상은 돈이겠죠.)

오박사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성공을 인정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첫 번째겠고요. 두 번째로는 내가 바로 그 ‘원래 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오박사

아직 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 비교우위는 어떤 영역인지 모르는 것이 함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블로그를 채워나가다 보면 그걸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요?


마무리

이외에도 자본주의에서 가지고 있을 유용할 팁과 마인드셋으로 책이 꽉꽉 차 있었습니다. 특히 글의 흐름상 서평에는 비중 있게 다루기를 포기했지만,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었던 “애자일 경영” 부분은 거의 챕터 통째로 밑줄 칠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빠른 피드백의 힘을 알게 되어 그런가 봐요. 하루, 아니 심지어 한 포스팅에서도 꾸준한 실험을 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절반 이상을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좋았습니다. 워낙 글을 잘 쓰시는 분이 핵심만을 딱딱 던져주시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요.

오박사님을 몰랐지만, 이 책을 계기로 오히려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요. 써왔던 글이 벌써 1,800개가 넘으셨더라고요. 그 짬을 보면서 블로그 측면에서나 투자 측면에서나 좋은 롤모델을 찾은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인상 깊었던 문구

  • “사람들이 원하는 걸 팔아야 하는구나.”
  • ‘금융’과 ‘투자’ 분야에 대해서는 나이와 축적 간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듯합니다. 어리고 젊더라도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금융과 투자 분야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레벨 이후에는 성실성보다는 자본주의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일의 종류는 불법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차라리 그 20대 초반 때부터 경쟁이 없고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곳에 먼저 들어가서 선점을 하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고는 합니다.
  • 사업 혹은 투자로 결국 돈을 벌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사업과 투자에 대한 공부, 사색, 안목이 아니라 일 잘하는 법부터 배워야 함
  • 자본도 없고 아이템도 없고 그렇다고 투자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나 훌륭한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 저는 왜 유튜브 오박사TV에서 영상마다 ‘자본’을 외치는 걸까요. 이 말은 단순히 돈을 벌자가 아니라, 곧 우리들의 시간을 확보하고 지키자는 뜻입니다. 그 확보한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데 쓰는 것이죠.
  • 일단 일을 잘해서 사회로부터 얻은 대가, 즉 몸값을 높이고 꾸준하게 현금 흐름을 발생시키는 사람만이 투자할 자격이 생기게 됩니다.
  • 하나라도 제대로 파고들어 가면 모든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먹고 시도한 일이라면 극한을 맛보고 결국 성과를 얻어야 합니다.
  • 저는 일찍이 자본주의 시스템상에서 태어났으면 주식/부동산/사업 중에서 한 가지 주무기를 정해야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본인의 상황을 냉철하게 잘 분석해서 세운 목표치에 맞게 매월 나가는 고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존 초기의 기본 스킬입니다.
  • 현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금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당연한 자본주의의 생존 방식이다.
  • 누군가의 메시지 정리
    • 1. 공부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 2. 이젠 바뀌려면 뭐라도 해야 하는 세상
    • 3. 모든 것은 경험이고 실패하더라도 젊었을 때의 실패는 나에게 밑거름이 된다.
    • 4. 무엇인가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친구들이 많다.
    • 5. 공부의 부족, 경험의 부족
    • 6. 자산 증가에 방해되는 습관들은 버리기로 했다. 자산 증가에 방해가 안 되는 취미들을 즐기려 하고 있다.
    • 7. 1가구 1주택에서는 내 집 거주 안정성이라는 무형의 가치 때문에 거시 경제 무시해라
    • 8. 거시 경제 예측하려는 분들도 많고 무시하려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예측보다 무시가 맞는 것 같다.
    • 9. 주식에서는 좋은 주식이라면 실적이 계속 좋아지기 때문에 거시 경제랑 크게 상관없이 가므로 장기 투자적으로 거시 무시
    • 10. 자기 돈을 지키면서 종잣돈을 모으는 느낌, 소비하지 않으려는 억제, 소액으로라도 투자의 경험,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기 위한 여기저기 발품 등 이 모든 것이 경험이다.
  • 사람 역시 주식처럼 최소 5년~10년 흐름을 봐야 합니다. 이분은 제가 처음 본 2009년 말~2010년 당시부터 뭔가 언행을 일치시키는 삶을 결과적으로는 계속 살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는 초기값과 그 이후 펼쳐지는 첫 나비 효과가 시간이 흐르며 점점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 지금 당장 팔 물건이 아니라면 오늘 바로 이 시점의 현재 가격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품질이겠지요.
  • 한국의 주식 시장은 기본적으로 메인 미드필더들이 경기 순환주들이라 난이도가 높은 시장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무리하지 않고 꾸준하게 힘을 모아야”하는 것입니다.
  • 주식 투자를 함에 있어 매일매일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참 에너지 빠지는 작업 같습니다. 그냥 간단히 체크하면 되는데, 솔직히 요새 보면 하나같이 대한민국에 거시 경제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생태계란 1)투자 공부/기록 프로세스일 수도 있고 2)인적 네트워크일 수도 있으며 3)유튜브/블로그 구독 리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 당신이 투자하려는 그 주식/부동산의 제일 중요한 투자 사유는 무엇입니까?
  •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를 계속 기록하는 회사보다는 꾸준히 양의 영업 활동 현금 흐름을 기록하는 회사를 찾으세요. 왜냐하면 돈을 받고 일하느냐, 일하고 돈 받느냐 이건 꽤 큰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 중요한 것은 ‘미리미리’ 해당 자산에 대한 계산과 조사를 미리 잘 계산을 하여 견적을 잘 잡아놓는 것이다. 애초에 투자에 적절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 아무도 저점을 알 수 없기에 저희는 주식을 살 때 철저하게 ‘분할’로 나누어 사야 됩니다.
  • 빅3 중소형 주의 매도는 마치 토트넘 구단주가 ‘손흥민, 루카스 모라, 델리알리’가 잘하고 있는데 다소 몸값이 비싸졌다고 해서 다름 팀에 이적시킨 꼴이죠.
  • 우리는 각자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에 집중해서 사회로부터 얻는 결과물을 극대화해야 합니다(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보상은 돈이겠죠.)
  •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성공을 인정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첫 번째겠고요. 두 번째로는 내가 바로 그 ‘원래 강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 체면을 중요시하는 것의 문제점은 바로 유연해지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 한 번에 빅픽처를 그리기 힘든 사회로 가고 있으니 그래서 짧은 주기의 반복 실행을 통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펴야 합니다.
  • 왜냐하면 금융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변화가 극심해졌습니다.
  • 일단 작게 시작하고 계속 상황을 주시하며 때로는 새 시나리오를 적용해 가면서 결과를 최적의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진로를 찾을 때 던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자주 생각해보곤 했었는데요.

그러나 이내 저는 부질 없음을 느끼곤 했습니다. 도대체 돈 걱정 없이 직업을 어떻게 고르는데?

딱 그 시점에 제 유튜브 추천 영상에 뜬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경제적 자유(Financial Freedom)와 수동적 수입(Passive Income)에 관한 영상이었는데요. 실제로 돈 걱정 없이 직업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걸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거의 처음 접했던 경제적 자유 관련 유튜브였습니다. 토니 로빈스 아저씨가 너무 멋있어보였죠.

30대에 이미 은퇴하고 쉬는 그런 인생. 내가 꿈꾸는 인생이 가능하다니…

한동안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바닷가에서 여유를 즐기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냈죠.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요? 바로 다음 주에 있었던 파이널 시험공부에 곧 30대 은퇴와 바닷가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엠제이 드마코의 책, <부의 추월차선>이 다시 다가왔습니다.

다시 한 번 경제적 자유를 꿈꾸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지금의 제가 유튜브를 보던 대학생 저와 다른 시각을 가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예전의 로망이 불타오르면서도 드마코에 반박도 하는 나름의 성장 아닌 성장을 한 것 같아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왜 직업을 가지려고 할까?

이 책의 저자 드마코는 정말 강한 어투로 책을 썼는데요. 번역된 책임에도 그 강한 어조가 묻어났는데, 원본은 더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성공에 큰 자부심이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인지 그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필터 없이 내던집니다. 직업 가지고 부의 서행차선에 진입하는 것을 한심한 짓이라고 부르면서 말이죠.

서행차선을 벗어나 부와 자유를 빠르게 얻고 싶다면, 당장 직업을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겠다. 그 망할 직업을 버려라.

엠제이 드마코

드마코는 직업을 통해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를 늘리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말한 부의 추월차선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끄덕였습니다. 그만큼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었던 것이겠죠. 아마 대학생 때의 저였다면 드마코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입니다. 바로 수업 대신 사업하겠다면서 휴학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르죠. (등짝 스매싱이 무서워서 실천에는 못 옮겼겠지만요.)

하지만 나이 좀 찼다고, 이 책을 읽은 26살 현재의 저는 그런데도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하다니 신기하더라고요.

저자가 직업을 때려치우라고 하는 것에는 하나의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입니다. 부를 축적하고 부자 되기입니다. 즉, 부자가 되기 위한 추월차선에 직업이 장애물일 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직업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닙니다. 저에게 직업은 자기를 실현하는 데에 최적의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죠. 지금 제가 꿈꾸는 법조인도 그런 의미에서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2년간 법조인이 되겠다고 1년에 1번 있는 시험에 매달리면서 많은 좌절을 느꼈습니다. 워낙 힘들어하니 주변에서도 왜 그 고생을 하냐며 변호사가 예전처럼 돈도 못 번다고 돈 많이 버는 다른 직종을 추천해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법조인을 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 도전에 계속 있습니다. 그걸 업으로 삼으면서 제가 꿈꾸는 사회에 한 발자국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포기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는데요. 저는 부를 축적하기를 원하면서도 드마코와는 달리 그게 제 인생의 큰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대신 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위해서 노력해나갈 뿐이죠.

결론적으로 추월차선을 신봉하는 책을 읽으면서도 2020년의 저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행차선과 추월차선 둘 다 이용하고 싶다. 정답은 시스템

하지만 제가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사실이 경제적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직업을 이용하고 싶지, 그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즉, 제가 스스로 시간과 돈의 교환을 인지하면서 선택하기를 희망하는 것이죠. 서행차선과 추월차선 둘 다 포기를 못한다고 해야 하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언제나 그랬듯이….

특히 저는 제가 기여하고 싶은 부분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유,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자유와 같은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만약 돈벌이가 제 직업 목적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제 바람대로 서행차선과 추월차선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의 저자가 말해주는 서행차선의 관점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행차선에서는 당신이 직접 돌을 들어 올린다면, 추월차선에서는 당신 대신 돌을 들어 올릴 시스템을 구축한다.

엠제이 드마코

나는 스스로 살아 있는 돈이 열리는 나무가 된 것이다. 나는 하루 24시간, 한 주 7일 동안 돈을 벌어들이는 무성한 ‘돈 나무’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돈과 맞바꿀 필요도 없었다.

엠제이 드마코

정답은 시스템 구축에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굴러가고,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그런 것 말입니다. 내가 아프거나 놀거나 일을 하거나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돈벌이를 대신해 준다면 제 인생의 자유도는 급격히 나아질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스템이 사업이 된다면 가장 레버러지하기 좋겠지마는 현재의 저는 직업이 주는 메리트를 포기할 수 없겠더라고요. 다행히 사업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말이 보였습니다. 사이드허슬, 즉 사이드 비즈니스 구축에 대한 제 열정이 다시 살아난 것이죠.

사실 예전 학생 시절에도 사이드 비즈니스를 통한 수동적 수입에 관해 관심은 정말 많았었는데요.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스템 구축이 얼마나 내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할지 뚜렷하게 안 보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현재의 저는 그게 어렴풋이라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주변에 이런 동기부여를 해줄 멤버분들을 만난 건 정말 천운이었어요. 그 덕에 고민 많고 실행을 잘 못 하던 제가 사이드 비즈니스 비스므리한 것을 이미 하는 것이겠죠. 콘텐츠 사업이 바로 제 사이드 비즈니스입니다.

STEW 독서모임과 와레버스

한국에 돌아온 2018년, 저는 친한 형의 소개로 STEW라는 단체에 처음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서인지 저는 독서소모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많은 소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인연들 STEW

특히 와레버스라는 비즈니스 콘텐츠 제작 소모임에서는 특별한 애정이 생겼는데요. 워낙에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제가 아는 몇 안 되는 지식을 정리해서 올리는 활동이 너무나도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글 하나 쓰는데 6시간 넘게 걸리면서도 퀄리티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통 끝에 낙이 오는 건지, 내공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지만 글 쓰는 게 조금씩 편해지고 콘텐츠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욕심이 욕심을 낳는다고 했던가요? 정신을 차려보니 콘텐츠를 모아서 11월에 출판하기로 기획까지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점심에도 이 비를 뚫고 사당까지 가서 회의를 하면서 말이죠. 저번 주에 페이스북 페이지 600명 돌파도 욕심을 더 부르고 있고요.

이런 시기에 드마코 또한 할 수 있는 좋은 사업 중에서 콘텐츠 사업을 딱 지목해서 이야기해주니 머리에 불이 켜진 듯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제 경제적 자유를 도와줄 첫 스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죠.

콘텐츠 역시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책 한 권을 쓰는 데 몇 년이 걸렸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쓰인 책은 또다시 몇 년을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엠제이 드마코

무엇보다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주제넘어서 글을 쓰는 데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또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포맷을 조금씩 변화를 주고,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받으면서 말로만 듣던 Lean 한 접근을 해보는 경험도 하고 말이죠.

물론 와레버스는 제 사이드 비즈니스의 정말 초기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드마코는 세계적인 사업가이자 투자자인 마크 큐반을 인용하기까지 합니다.

사업에 있어서는 삼진 아웃을 몇 번이나 당해도 괜찮다고 한다. 단 한 번 맞기만 하면 되며, 그 한 번이 평생토록 당신을 먹여 살린다.

마크 큐반

즉, 한 번의 홈런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콘텐츠 사업의 매력에 빠진 이상, 더 좋은 방법으로 더 많은 독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 홈런 한 번만 쳐라!

아직 시작은 정말 미약하지만, 항상 실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저에게 사이드 비즈니스의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은 정말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서행차선과 추월차선을 원하는 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요.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가 기다려집니다.

인상 깊었던 문구

  • 부자가 되고 일을 그만두는 데 나이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 나는 스스로 살아 있는 돈이 열리는 나무가 된 것이다. 나는 하루 24시간, 한 주 7일 동안 돈을 벌어들이는 무성한 ‘돈 나무’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돈과 맞바꿀 필요도 없었다.
  • 부자를 만드는 것은 과정이며, 여러분이 익히 보고 들은 특별한 사건들은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 부는 물질적인 소유물이나 돈, 또는 ‘물건’이 아니라 3F로 이루어진다. 3F는 부의 3요소로 가족(Family, 관계), 신체(Fitness, 건강), 그리고 자유(Freedom, 선택)을 말한다. 3F가 충족될 때 진정한 부를 느낄 수 있다.
  • 부는 자유와 선택이다. 인생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다.
  • 이 책은 부의 3요소 가운데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가 보장되어야 건강과 관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만이 당신의 자유를 정의 내리고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다.
  • 평범하다는 것은 생존 경쟁에 놓인 현대판 노예라는 뜻이다.
  • 천천히 부자 되기 전략의 원동력은 시간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과 시장에 투자한 시간이다. 당신이 기다리는 빛나는 내일은 40년 후에나 올 수도 있다….(중략)…당신의 빛나는 내일은 당신이 73세 치매 노인이 되어 냄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쯤 올지도 모른다.
  •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 서행차선이 불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직업을 잃으면 서행차선 계획은 실패다. 주식으로 모은 돈의 50%를 잃어도 계획은 실패다. 주택 시장의 위기로 1년 만에 부동산자산의 40%를 손해 본다면 계획은 실패다. 그 계획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요소들에 근거해서 짜여 있으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계획을 믿고 수십 년간 충실하게 번 돈을 투자하고서 결국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 서행차선 계획은 한마디로 위험하고 부실하다.
  •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의 인생을 돈과 맞바꾼다면, 당신은 인생 그 자체로부터 눈을 감은 채 붐비는 기차역을 좀비처럼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인생은 금요일 밤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 서행차선의 지도를 전략으로 삼았다면 5대 2 거래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신은 5일간의 노예 생활을 2일간의 자유와 맞바꾸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위해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다.
  • 시간당 급여를 받는 근로자라면 하루 최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이다. 이 한계치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 시간은 부를 얻는 중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하루 24시간, 평생 50년이라는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평생 살 수 없는 한 시간과 부의 관계는 견고하지 못하다. 시간을 팔아 버리는 것은 곧 부를 팔아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서행차선에서는 당신이 직접 돌을 들어 올린다면, 추월차선에서는 당신 대신 돌을 들어 올릴 시스템을 구축한다.
  • 기억하라. 소수만이 부자가 되고, 당신은 이 소수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자의 사고방식을 먼저 지녀야 한다.
  • 컴퓨터는 놀라운 발명품이자 돈이 열리는 나무로 자라기 좋은 튼튼한 씨앗이다. 인터넷은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일하면서도 근무 환경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하지 않는다.
  • 콘텐츠 역시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책 한권을 쓰는 데 몇 년이 걸렸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쓰인 책은 또다시 몇 년을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 콘텐츠는 여러 번에 걸쳐 판매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판매가 이루어질 때마다 투자시간 대비 소득이 늘어나므로 효율성은 계속해서 증가한다.
  • 돈은 당신의 군대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다.
  • (로버트 베넷)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선택의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면면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데서 오는 자유를 만낄할 수 있다.
  • 당신이 25세 이하라면 선택의 마력은 최고치에 오른 상태이며, 굉장한 화력을 내뿜을 것이다. 내가 20년보다 전에 했던 단순한 선택이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오늘은 남은 인생을 시작하는 첫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당신이 걱정하던 바로 그 내일이다… 중략… 과거에 매어 있으면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앞을 보고 있지 않으면 미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있거나 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점에 있어서 모두가 공평하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하루 24시간을 소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시간은 공정하다.
  • 빈곤의 복잡한 뿌리 뒤에는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자유 시간에 대한 엉성한 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잃는 사람들’은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당신은 신체적 재능을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어느 분야에서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 그러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헌신적으로 추구하는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적용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완벽한 타이밍을 기대한다. 하지만 완벽한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언젠가는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지금이다. 일주일은 오늘이 7일 합쳐진 것이고, 한 해는 365일의 오늘이다. 오늘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전부다.
  •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사람들은 당신의 사업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 생산자로서 성공하려면 당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의 이기심에 초점을 맞추어라.
  • 진입 장벽이 낮은 사업은 열등한 길이다. 진입이 쉬우면 경쟁이 치열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많으며 이들 모두 하나의 파이를 공유한다. 통행량이 많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 (마크 큐밴) 사업에 있어서는 삼진 아웃을 몇 번이나 당해도 괜찮다고 한다. 단 한 번 맞기만 하면 되며, 그 한 번이 평생토록 당신을 먹여 살린다.
  • “경쟁은 어디에나 있어. 그냥 시작해. 더 잘하면 돼.” 친구는 옳았다. 경쟁이란 사업의 주요 항목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아이디어는 폐쇄 도로가 아닌 개방 도로가 되었다.
  • 추월차선의 목표는 당신의 인생에 자유를 더하여 행복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재정적 부담으로부터의 자유, 여행할 자유, 상사와 알람시계와 2시간씩 걸리는 통근으로부터의 자유, 나쁜 숫자들로부터의 자유이자 세상을 놀이터 삼아 즐길 수 있는 자유 말이다.
  • 당신의 머릿속에 갇혀 있는 아이디어는 배터리가 다 되어 차고에 틀어박혀 있는 초고성능 자동차와 같다.
  • “당신 서비스에 돈을 내고 싶지 않아”와 같은 불만들은 무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려 하다 보면 당신만 괴로워질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 발병 초기에는 전 세계가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점차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느새부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다루는 언론과 서적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책들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보여준 인류의 대서사시, <사피엔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왜 이 책에 손이 갔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하라리 아저씨가 책 중반부에 친절하게 대신 답해주셨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발 하라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겸손 덕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필연적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제도, 종교, 체제 등 모두 과거 인류들이었다면 이게 뭔지 들으면서 기겁했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필연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무언가들을 인류가 창조하게 된 동력에 주목하였습니다. 바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왔는지 역사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상상력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상의 힘

저는 제 자신을 공상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제 MBTI는 정말 좋은 증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는 지구 어느 동물보다도 공상적인 동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처음 맞닥들였을 때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이렇게 26년 인생동안 공부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오직 상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니. 하라리 아저씨가 제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려는게 아닌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패닉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실 허구를 창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 종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인류가 지구 최고 포식자 위치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형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허구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유전자를 뛰어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사회가 이에 대한 증명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렇게나 거대한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뭉쳐서 협력을 시작한 인류는 아주 재미난 허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도 이에 해당되죠. 특히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핵심 개념들 또한 허구라고 하라리 아저씨는 이야기합니다.

수십억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는 물론이거와 자본주의와 같이 현대사회을 이루는 핵심 룰들도 모두 허구입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믿고 자유라고 외치는 개념들도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상호 주관적” 개념으로 분류가 됩니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유발 하라리

이렇게 온 세상이 허구가 가득한데, 실재만을 바라보는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안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러한 허구 만드는 것에 동참하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허구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우리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과학혁명들과 이를 뒷받침해준 허구적 사회구조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규범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인권과 평등으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까지도 자유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였다는 점인데요. 생각에 대한 자유와 이를 표출한 자유는 모든 인류에게 각자의 허구를 만들어줄 권리를 쥐어줬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칼 마르크스는 왕이 아닙니다. 성공한 재력가는 더더욱이 아니었구요. 이런 일반적인 동네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공산주의라는 허구는 20세기 후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근대 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일반인은 허구를 만들어낼 시간조차 부족했으니까요.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는 미국 국민의 2%도 안되는 인구만이 농업인구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90%가 얽메였던 과거가 더이상 아니라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98%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허구를 만들어낼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심지어 농업인구인 2%마져도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저녁엔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도 더욱 더 빨리 변화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허구가 허구를 낳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사회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라리 아저씨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성을 “끊임없는 변화”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의무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2020년 7월의 STEW 서평

도서: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작성자 : 김동영

한줄평: “사피엔스가 가장 모르는것은 사피엔스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든 사피엔스

1. 언어

사피엔스가 이토록 발전하게된 이유는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사피엔스는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7만년 전에 탄생한 ‘인지혁명’은 지금 우리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술을 먹고 깊은 대화를 하며, 책을 읽고 만나 토론도 한다. 아무도 우리에게 이러한 행동을 시키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사피엔스는 이렇게 진화했고, 이것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편견

“1865년이 되자 백인들뿐 아니라 많은 흑인들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객관적으로 지능이 낮고 폭력성이 높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게으르며 개인적 청결에 관심이 적다고 말이다. 따라서 흑인은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의 원인이었다.”

백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만들어낸 흑인의 편견을 흑인들 조차 믿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인들을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한 듯 하다. 사실 흑인들에 유전자와 문화에 폭력, 절도, 강간, 질병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은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다. 우리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의 힘에 굴복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3. 돈

예수도 부처도 칼 마르크스도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공을 이룬 큰 정복자가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 신’을 숭배한다. ‘이 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라고 믿으며, ‘이 신’을 위해서 땀과 눈물을 흘린다. ‘이 신’에 대한 믿음은 지구 대부분의 퍼져있는 보편화된 것이며,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별보배고둥 껍데기와 달러화의 가치는 우리의 공통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가치는 조개껍데기나 종이의 화학적 구조, 색상, 형태 속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행복을 찾는 사피엔스

1. 기술의 활용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이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은 돈을 더 벌면 행복할거야, 집이 있으면 행복할거야, 좋은 직장에 다니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복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마치 사막의 한 사피엔스가 오아시스를 영원히 쫓는것 처럼말이다.

그런 오아시스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오아시스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한국은 GDP 기준으로 세계 20위 안에 드는 부유한 국가이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면, 그들은 아주 행복해야 한다.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정확히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70년의 과거를 뒤돌아 보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북한 국민보다 행복하다고 입증하는 근거를 찾지는 못 했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지도자를 투표할 수 도 있으며, 며칠에 한 번 쯤은 주말에 침대에 누워 유투브를 봐도 아무도 나를 강제하지 못 한다.

지금부터 70년 뒤에 이 같은 감정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술을 개발하는것 만으로는 굉장히 부족하다. 칼은 나무를 잘라 집을 지을 수도, 고기를 잘 라 먹을수도 있게 하지만 학살에 사용될 수 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과 윤리의 발전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기술과 함께 기술을 활용하는 법에 배우고 공부하고 이야기하는것이 필요할것이다. 칼은 학살에 사용되는 것보다 집과 음식에 사용되는것이 사피엔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중세까지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인지하지는 못 했던듯 하다. 그리고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도 또 다른 기술에서 그 차이를 모른다.

2. 아체족

이 책에서 나오는 아체족은 아무런 기술도 가지지 못 했지만 행복을 다루는 기술 하나만큼은 현대 사회인들 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3. 부처

종교는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 종교로 나뉠 수 있다. 현재 거대한 종교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중에서 불교는 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연법칙 종교이다. 불교에서 따르는 것은 후세에 부처라고 불이는 고타마라는 인간이다. 고타마는 기원전 500년경 히말라야에 있던 작은 왕국의 후계자였다.

“고타마는 29세에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고 한밤중에 왕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집 없는 방랑자로 인도 북부를 구석구석 떠돌았다. 완전한 해방의 길을 찾을때 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번뇌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과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따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처 이야기는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행복’에 대한 글과 이어진다.

4. 연구

이 책에 후반부에 나오는 중산층 쌍둥이 가상연구가 있다. 이것은 복권 당첨이나 다리 절단 같은 크지만 일시적인 사건들은 장기적인 행복에서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그것들 보다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 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가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사피엔스는 원래부터 무언가를 이루면 더 높은것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는듯 하다. 몇몇 사람들은 취업을 하여 연봉이 4000만원이 되면 고과를 잘 받아 5000만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몇 개월 이내에 행복감은 사라지고 6000만원이 되기를 원하는 무한 고리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행복감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른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는데 6월 STEW에서 읽은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이다. 이 책에서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욕구를 줄일수록 행복은 증가한다.”

SAMSUNG CSC

<폴 사무엘슨의 행복공식>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한 말은, 고고학자 유발 하라리가 행복에 대한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로 말한것과 동일하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소유를 늘리면서 욕망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할까? 소유를 늘리겠다는 마음이 곧 욕망이다. 행복해지기위해서 소유를 늘리려 할 수록 빛의 속도로 욕망이 늘어난다. 욕망이 늘면 소유가 욕망을 따라가는데에는 훨씬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 스님은 이런말을 하셨다,

무소유

<무소유 , 법정 스님>

무소유는 소유를 0으로 만들어 행복을 0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니다. ‘무소유’는 해석하면 공교롭게도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욕망’이다. 불필요한 것을 원하지 않아 욕망을 줄이고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은 3000년 전 부처라 불리는 사나이의 가르침이다.

3000년 전의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얼슨, 법정 스님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모두 다른 문장으로 같은 의미를 이야기 했다. 이 들은 서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며, 고타마와 법정스님을 제외하면 각자의 분야도 모두 다르다.

이 들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들의 생각과 함께 할것이다.

<김우빈의 운동 전과 후>

이렇게 신체도 노력으로 충분히 단련할 수 있는데, 좋은 신체에 좋은 마음이 깃든다는 말도 있는 마음을 여전히 단련할 수 없다고 믿는가?

5. 앞으로

수렵채집인들과 자본주의자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이 책을 읽기전에는 수렵채집인 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수렵채집인이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와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한 수십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그건 모른다”로 바뀌었다. 두 사피엔스 중 누가 더 행복할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똑똑한 과학자에게 맡겨두고, 나는 현재 자본주의자가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것이 더 좋을것 같다. 그리고 누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여기에 너무 많은 논쟁과 고뇌를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의 삶도 지금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일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나와 내 주변사람들의 안녕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데 노력을 하는게 좋겠다.


책임을 져야하는 사피엔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윤리와 책임보다 앞서 나간다면 이것은 분명히 큰 문제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원숭이에게 원자폭탄을 터트릴 수 있는 스위치를 선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를 몰기 전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과 운전 법률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 또한 가르쳐야 한다. 군인들에게 총을 다루는 법과 포를 쏘는 법 뿐만 아니라, 군인이 존재하는 이유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면 기술을 무턱대고 사용하기 전에, 기술의 역할과 이것이 가져올 부작용 그리고 책임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문제에 ‘관심’을 갖는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인용

  1.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 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수렵채집 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사람은 보통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3.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기독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4.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5.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6.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7.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많일 그렇다면, 2백 개에 가까운 독립국가는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인, 인도네시아인, 나이지리아인이 똑같은 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단일 세계정부가 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겠는가?
  8.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진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9. 과거 뉴에이지 세대의 유명한 구호만큼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또 없다.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성형수술, 아름다운 집, 높은 자리는 우리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적 행복은 오로지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에서만 온다.
  10. 또 다른 가능성은,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11.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직한 시련이다.
  12. 우리가 중세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다면, 이들은 주관적 행복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세 조상들이 행복했던 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집단적 환상 속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환상에 구멍을 뚫어 파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을리가 없다. 우리가 아는 하나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3.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자의 복제에 좋은 행동을 선택하게 만든다.
  14. 행복에 대한 불교의 접근방식은 생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의 측면에서 일치한다.
  15.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16.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17.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18.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이라는 종이 역사적으로 유일무이 하나뿐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만들어낸 인간 신화일 뿐, 사실 우리는 사피엔스라는 여러 인간 종 중의 하나가 번식한 결과이다. 오히려 왜 호모 중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지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인지혁명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인간 역사적으로 가장 첫번째로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임 안에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 등을 언어로 교류하며(결론적으로 서로 가십을 하며)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을 높였다. 저자는 이것이 근본적인 언론인의 목적임을 이야기한다. 미디어학부생으로서 언론과 뉴스에 대해 공부하며 배운 것은, 어떤 것이 뉴스 거리가 되냐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 등 부정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것이 가장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누가 질서를 해치는가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사회를 보호한다 할 수 있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객관적 실재와 가상의 실재.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가상의 실재’를 믿는다는 능력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실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부재하는 것을 긍정하는 신기한 능력을 인지혁명 기간 동안 획득했고,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저자가 언급한 ‘푸조’가 부재하면서도 모두의 인지 속에 실재하듯, 인간에 대한 당연한 사실 대다수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농업혁명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사실 농업혁명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어떤 동물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 혁명이라는 것은 평생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농업을 시작한 인간은 잉여식량으로 인해 인구수는 늘어날 수 있었지만, 수렵채집 때보다 삶의 질은 곤두박질쳤다. 그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1. 더 많은 시간 일했으며 2. 특정 작물의 생산에 의존하며 오히려 더 높은 굶주림의 위험에 놓였고 3. 전염병의 위험 또한 높아졌으며, 4. 수렵채집에 맞게 진화해온 인체가 농업이라는 노동을 통해 고통받으며 디스크 등 각종 질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들의 경우에도, 가축화되면서 종의 개체수 자체는 늘어났지만 그 삶의 질 자체는 결코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본문에 사진과 함께 나와있듯, 송아지는 어미와 떨어져 자기 몸만한 우리에서 평생을 보낸다. 근육이 생기면 육질이 질겨지기 때문에 평생 자유롭게 뛸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육질이 좋은 최상급의 고기를 고가의 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하며,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수요가 넘쳐나니 공급 또한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송아지를 그 우리에 가둔 건 우리고, 결국 저자의 말대로 농업혁명의 승리자는 ‘밀’ 뿐이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

인류의 통합

“한편으로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돈과 상업의 이동을 막아온 공동체라는 댐을 기꺼이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와 종교와 환경이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아줄 댐을 건설한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후 물물교환이 등장했을 때, 화폐는 물물교환의 교환율 단점을 극복했다. 또한 부동산 등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재산의 거래 및 물리적 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해,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할 수 있었다.

은과 금을 바탕으로 한 화폐 시스템이 곳곳에서 발생하며, 근대 말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가 단일 화폐권역이 되었다. 지금의 미국 달러 같은 통화를 기반으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공통의 신념과 의사소통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돈은 공동체 밖의 사람과도 원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하지만, 비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결국 세상을 하나의 비정한 시장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과학혁명

우리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시장이 결국 고용인, 피고용인, 모두에게 WIN-WIN 전략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지인이 다니던 회사는 직원 2명에 인턴 14명으로 팀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적인 자유시장 이론에 따르면, 회사는 인턴을 회사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으로 길러내어 많은 수의 인턴보다 적은 수의 loyal한 직원으로 굴러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결국 고용주는 그보다 값싼 인턴을 대량 고용해 반년마다 갈아치워버린다.

기원전 8500년의 사람은 농업혁명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지만 농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농업혁명 파트에서도 저자는 ‘돌아가는 다리가 끊어졌’기에 우리는 농업생활 이전 오히려 더 풍요로웠던 수렵채집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농업은 커녕 수렵채집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지언정 그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리 없다. 하지만 이를 자본주의에 대입하니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용하고 비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더 이상 자본주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은 폭력과 체제의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결말에 대해 긍정적이고 어두운 관점을 모두 제시한다. 그 중 어떤 관점이 현실이 될지는 결국 두고봐야 할 것이다. 마치 사피엔스의 인지, 농업, 과학혁명의 결과를 그 후손인 우리가 돌아보고 있듯이.

“둘 중 어느 쪽이 사실이었든, 네안데르탈인(그리고 여타의 인간 종들)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만일’의 소재다.”

‘만일’이라는 질문은 인간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현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싶다는 욕망이자, 개선을 위한 노력의 시작이다.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지만… 사피엔스의 첫 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생태적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과거의 농업혁명과 지금 누리고 있는 편의성의 인과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농업혁명이 인간을 위해 가장 중요한 혁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인간의 삶의 질은 점차적으로 떨어지고 대다수 육지 동물의 그것은 곤두박질쳤다. ‘만약’ 농업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인간이 수렵채집의 삶의 방식을 계속 영유했다면 삶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궁금하다. 결국 역사의 어느 시점에는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말았을까, 아니면 인간은 수렵채집을 하며 또 다른 방식의 삶의 양식을 개발시켰을까. 우리 모두 세상 당연한 것에 만일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