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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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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향연이다. 나의 무지에 감사하다.

모든 책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가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작게는 역사라는 객관적 지식에서부터, 크게는 인간이라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놀라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세계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리고 저자는 인간을 고발했다. 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지배하는 지구라는 세계의 존재를 당연시했다. 인간이 지배하지 못했다면 지배당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이 본성은, 지구에 대한 지배가 끝나자 인간 내부에서 서로 지배하게 한다. 저자는 이 당연함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관점으로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의문점은 단순한 물음표 라기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타당하다.

저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방대한 책의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아직 내 습득이 미미하기에, 일부분을 늘여보려 한다.

너무 약한 그들

저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잠깐 해보려 한다. 사피엔스. 사실 우리는 동물이다. 그것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힘이 세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너무 약한 동물. 아마 그 당시에는 먹이사슬 아래쪽에서,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를 상위 포식자를 두려워하다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가졌던 두 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뇌가 예외적으로 크고 직립 보행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기는 몇 년간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나약했다. 결국, 이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생존해야 했기에.

뇌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쓰면 쓸수록 뇌의 기능은 발전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생존하기 위해 모인 사피엔스는 자신들만의 소통법을 만들고, 다양한 자연법칙들에 대해 배워가게 된다. 불을 다루게 되고, 협력 체계를 갖추게 되자 이들의 먹이사슬 순위는 급등한다.

사피엔스의 욕심이 여기서 멈췄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떨까? 상위 포식자로서 자연과 공생하며,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으로 멸종했을까? 결국, 사피엔스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실타래를 풀었다.

너무 불쌍한 그들

농업혁명. 점점 자연을 이해하게 된 그들은 밀을 재배하면 이동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자연재해에 의해 농업의 결과는 달라진다. 지금도 이런데 단지 씨앗을 심으면 자라서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지식만을 가졌던 그들은 어땠을까? 수렵채집만을 하며 살았고, 그에 맞춰 발달한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재해가 오면 굶어 죽게 되고, 농사에 의지한 나머지 수렵채집을 하던 때보다 다른 영양소는 부족해졌다.

그리고, 경작지와 축적된 농작물이라는 사유재산이 생겼다. 사유재산은 침략이라는 행위와 지배, 피지배 계급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인간은 앞만 보고 달리는 동물이기에 악순환은 커졌다.

진보라고 생각했던 착각은 스스로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배 계급과 침략에 성공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끊이지 않는 혁신으로 지금의 우리는 안전과 편리함을 누리며 산다. 우리는 행복할까? 저자는 책 중간중간 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기 때문에 진보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이 만들어낸 현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을까? 대부분의 현대인은 현재의 매 순간을, 미래의 매 순간을 걱정과 함께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돈의 노예라 생각한다.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종교가 만들어낸 소비지상주의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안정된 지금, 소비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마약이 되어 끝없는 불행의 터널로 인도하고 있다.

매년 전세계에서 나오는 통계 중,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통계가 있다. 행복 지수이다. GDP와 행복 지수는 대체로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이다.

너무 잔인한 그들

저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통해 인간 진보의 주요점들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인간 진보의 가장 큰 원동력은 지배계급의 탄생인 것 같다. 그 순간을 만든 원인은 꼬리를 물고 있으며,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서 하나로 좁힐 수 없지만 말이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신화와 종교를 만들었다. 믿음만큼 강력한 통치체제는 없기 때문에. 이 믿음은 나와 너를 구별하게 했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인간 역사를 살육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십자군 전쟁은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지배 계급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문화는 계급 사회를 공고히 했고, 피지배 계급의 관심을 권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렸다.

권력의 원동력은 부의 창출이기에, 피지배 계급뿐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닭, 돼지, 소, 양 등 공생자였던 그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처참한 도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과학혁명은, 현재의 자유와 평등 시대에 새로운 계급 구조를 만들려 한다.

인간의 역사는 99% 피지배 계급의 피와 눈물로 만든 1% 지배 계급의 기록이다.

너무 나가는 그들

과학 혁명이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저자의 예측은 너무 소름 끼쳤다.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되었듯이, 사피엔스는 사피엔스가 만든 초인류로 인해 멸종할 수 있다는.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들을 봤을 때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는 나올 수 없는 수백 년 후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하늘을 비행하는 자동차, 민간인의 우주여행, AI 등…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세상에 나오고 있다.

가장 무서운 분야는 유전자공학이다. 2020년 7월 26일 오후 7시 인터넷에 유전자공학을 입력했더니, 우리나라에서 노화 속도를 늦추는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봤다. 게놈프로젝트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평균 수명은 30살도 안 됐다고 한다. 3배가 늘어난 지금, 100년이 흐른 뒤 인간의 수명은 어떻게 될까?

유전자 변형으로 생명도 취사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아기의 성별을 고르고, 원하는 외적 모습을 만들어내는 등. 이제 빈부격차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 것이다. 부자들의 자식은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모두가 연예인 같은 모습과 운동선수 같은 건강, 아인슈타인과 같은 뇌의 명석함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다. 과거의 계급 사회와는 차원이 다른 계급 사회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엄청난 혁명의 소용돌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더욱 미래가 무섭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한 끗 차이다.

책의 파트별로 읽을 때도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가 말한 사피엔스 역사의 많은 객관적이며 모순적인 내용이 머리에 모이자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한줄평

‘인간’이라는 당연한 단어가, 당연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책

인상 깊은 문구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예외적으로 크다…인간의ㅡ 또 다른 이례적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 p26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 p29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 p48

인지혁명 이 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 p60

이야기들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P62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p66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 p83

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인류를 생태계의 연쇄살인범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 p108

사피엔스의 첫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 p115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p124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밀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p126

수천 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 p128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오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 p129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외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34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p135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 p143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 p148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정되었다…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 p152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 p153

164~165P

상상의 질서란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p166

  •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 p211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 p225

모순이 없는 물리법칙과 달리,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내적 모순을 지닌다. 문화는 이런 모순을 중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과정이 변화에 불을 지핀다 – p236

중세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한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음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음악작품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듯이,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 p238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 문화가 하나도 없다 – p244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 – p256

신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왜 금융 시스템이 우리의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 시스템과 그토록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준다 – p259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 p268

설령 우리가 더 이전에 존재했던 진정한 문화를 재건하고 지키려는 희망에서 잔인한 제국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하더라도, 보나마나 그때 우리가 지키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덜 야만적인 제국의 유산에 불과할 것이다 – p293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298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 p301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 p314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 p357

과학은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할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상 과학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해야 마땅한지를 안다고 허세를 부릴 수는 없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뿐이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 p38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 p399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 p425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 p439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 p442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정말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 p446

신용대출은 새 발견을 할 자금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했으며, 수익은 신뢰를 만들어냈고,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 p448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할 수 없다. 속임수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할 경찰, 법원, 교도소를 설립하고 지원함으로써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할 일이다 – p465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 p468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 p493

윤리의 역사는 아무도 그에 맞춰 살 수 없는 훌륭한 이상들로 점철된 슬픈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불교도는 부처를 따르는 데 실패했으며, 대두분의 유생들은 공자를 울화통 터지게 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윤리가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내놓은 조건은 부자는 계속 탐욕스러움을 유지한 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 그리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의 고삐를 풀어놓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구매할 것이다. 이것은 그 신자들이 요청받은 그대로를 실제로 행하는 역사상 최초의 종교다 – p494

2002년… 전쟁 사망자 17만, 폭력 범죄 56만, 자살 87만 – p518

첫번째.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 p527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 p581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나, 너, 남자, 여자, 사랑, 미움- 이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 말이다. 그 지점을 넘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 p582

그럼에도 역사상의 위대한 논쟁들은 중요하다. 적어도 이 신들의 첫 세대만큼은 인간 설계자들의 문화적 아이디어이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이미지에 따라 창조될까? 자본주의? 이슬람? 페미니즘?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그들이 가는 길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 p585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 p586

<사피엔스>, 이 책은 불편하다.
불편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고 추적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는 어렴풋이 짐작하던 사실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있다.

이 책은 이제는 명실상부 지구상의 지배자로서 자리매김한 지극히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종’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에 대한 자기고백이고, 자아성찰이다.
분명한 건 ‘사피엔스’는 지구 최악의 종으로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들을 억압하고 멸종시켰으며 필요이상으로 파괴해왔다는 점이고,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문제인식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와서 환경 등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단순히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그것은 절대로 범지구적인 사랑이나 그것을 초월하는 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생존과 정복을 위한 도구고 수단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상, 종교, 국가 등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태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것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왜’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되는데, 지배층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닌 듯 하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사상들이 생겨나면서 집단은 통일된 생각과 방식을 추구하게 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사상’이라는 미명하에 통치하기 쉬워졌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종교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듯 착각을 하며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획일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는 사회적 합의로써, 국민들을 위해 국민들에 의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고, 개별 국가들은 거대한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숨긴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는 등 국민과 국가의 관계가 주객전도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사상, 종교, 국가가 세상을 통치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것은 ‘돈’의 지배 하에 있다. 화폐가 등장하면서 빈부격차는 가속화되고 자본주의 등장으로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의 우월함이 입증되었고, 모든 인간들을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아래 통합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모든 행위와 가치에 대한 기준이 ‘돈’이라는 환산가능한 가치로 전이되면서 서열화되고 경중을 따지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이루어온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돈’ 역시 사회적인 합의에 지나지 아니하며 모두의 공통된 합의, 즉 약속없이는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가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돈의 종속되기를 자처하며 모두가 제로썸 게임에 동참하고 있다. 그것은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을 파괴하며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상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체계화시켜온 것인데, 이러한 상상의 비약들이 결국은 사피엔스 종족 내에서도 서로를 파괴하며 그것을 성장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피엔스가 무지하고 욕심많은 신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들이 누구보다 연약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결핍과 생존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 하여금 소통하고 기록하게 하였고, 그러한 과정들이 수많은 우연과 필연들을 거쳐서 지금의 사피엔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속에서 있었던 불편한 진실과 잔인하고 비열한 역사들은 승자들에 의해 재편집되고 왜곡되었을 것이다. 우리 개개인만 보더라도 각자의 과거와 과오에 대해 재편집하고 왜곡하지 않는가, 그렇게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 되어가고 그 기록의 저편에는 수많은 희생과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는 그 어떠한 것도 당연하지 않고, 떳떳하지 않을 수 있다.

<지리의힘>에 느꼈듯, 우리가 노력과 성장의 결과라고 생각해온 것들은 사실은 필연에 기반하여 우연히 발생한 사건들이 모여서 이뤄낸 산물이고,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것들을 취하고 향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는 오롯히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자만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쉬운 점이나 불만들은 차치하더라도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으면서 의식주와 교육의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지금 책상앞에서 졸린눈을 비비며 서평을 쓰면서 제일 먼저 드는 걱정이 ‘출근’이라는 점은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끝으로, 사피엔스의 ‘결핍’처럼 나에게도 ‘결핍’은 나의 노력의 원천이고, 성장에 대한 동력이었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려왔고, 그것에 대한 감사함들을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나의 ‘결핍’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약탈과 폭력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없으며, 현재의 사피엔스들은 서로가 평등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하고 냉소스러운 현실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결국에는 나아갈 것이고, 조금씩 변화속에서 더 좋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변화를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지않은 것들을 당연하다고 했을 뿐이고,
그러한 행위들을 해온 당연하지 않은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서평은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하며 한편으로 무책임한 나에 대한 기록이자 자기반성의 글이다.

2009년부터 쓴 서평이 어느새 190개가 됐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200번째 서평을 달성한다. 그리고 그 중 2회 독은 딱 한 권이 있었다.

한국의 기획자들은 내가 2010년 대학생 때 읽고, 2016년에 다시 읽은 책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고, 서평을 쓴 것은 이게 유일하다.

6년 만에 읽은 이 책은 다 읽고 나서야 읽었던 책임을 깨달았다. 그만큼 읽은 내용을 많이 잊고, 그만큼 새롭게 읽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피엔스는 두 번째로 2회 독을 마친 책이다.

2회독, 변한 건 나다.

STEW 독서소모임에서 이 책이 결정되고 살짝 실망했다. 이미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정보를 읽고, 배우기 위해 나는 늘 새로움을 찾았다. 때문에 이미 읽은 책은 내게 흥미 없는 종이였다.

어쨌든 사피엔스를 다시 펼쳤지만, 1회 독처럼 역시나 속도가 나지 않아 짜증도 났다. 할 일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데 같은 내용을 다시 읽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사피엔스는 2017년에 전자책으로 읽었다. 3년 만에 다시 전자책을 열자 몇몇 밑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 밑줄이 얼마나 신경 쓰이던지, 내가 읽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에 30분씩, 그렇게 며칠 읽었을까? 세상에, 내가 이 책을 읽었었다고?

밑줄을 의식해서인지, 아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부분에 밑줄을 쳤는지, 또 다른 부분은 왜 밑줄을 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STEW 독서소모임의 장점으로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점’을 꼽는데, 3년 전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밑줄 친 분량 자체도 달랐는데, 3년 전에는 81개 밑줄을 친 반면, 이번에는 280개 밑줄을 쳤다. 3배가 넘는 곳에서 배웠으니 3년 전에 제대로 읽은 건가 싶었다. 분명 그때도 정독했는데 말이다.

글을 시작하며, 서평 190개를 자랑스럽게 적었는데 190권 중 과연 얼마나 소화했을까 싶다. 190권을 다시 읽어서, 190권 모두 새로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책을 안 사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변한 내가 다행스럽기도 하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래, 그게 더 한심스러울 것 같다.

이 정도 깊이 책을 2회독 하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시 3년 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내 변화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정독을 2회 하고 나니 책값이 정말 아깝지 않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

책은 크게 4파트로 나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 등이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이 워낙 임팩트가 커서 인지혁명으로 많이 요약된다. 나 역시 1회 독 때는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2회 독에는 과학혁명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최근 관심을 두는 ‘자본주의’를 재밌게 봤는데 이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아무튼 사피엔스가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왔다는 것에 스스로를 되돌아봤고, 적절한 시기마다 과학의 힘이 성장을 증폭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한 점에서는 내 커리어가 떠올랐다. 3년 전 나는 꽤 무거운 도전을 했다. 내가 독립할 수 있을지, 내가 비즈니스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사람으로 홀로 설 수 있는지. 즉, 나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했고, 싸웠다.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만 ~ 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

현재 내 캐릭터를 만든 것은 3~4년 전이다. 그때 배움으로 현재 모습이 됐고,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니, 다시 무지를 인정하고 성장을 위해 몸을 던질 시기가 곧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지를 인정하려면, 무지해져야 한다. 때문에 나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스스로를 무지의 늪으로 던진다. 새로운 사람을 보며 자극받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작아진다. 그렇게 늘 불편함으로 나를 몰며, 성장을 향해 걸어왔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아이디어는 곧 경제용어로 번역되었다.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스스로 ‘꽤 괜찮은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는 나태한 발언을 하는 지금, 사피엔스는 적절한 도서였다. 지금보다 무지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고, 지금 얻게 된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다.

성장을 위해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꽤 적절한 시기다.

사피엔스 성장 동력, ‘자본주의’

최근 내 관심사 중 하나는 ‘돈’이다. 내 자산을 분배하고, 투자하는 등 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큰 자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관심을 둬야 하는 것에 공감했다.

STEW에서 투자소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있다. 이제 어떤 사건을 보면, 자본주의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했다.

인류의 경제는 근현대 기간 내내 어찌해서든지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는데, 이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이 몇 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발견이나 장치를 들고 나온 덕분이었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 내연기관, 유전자 복제 양 같은 것을. 은행과 정부는 돈을 찍어내지만 궁극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사피엔스 역사에 자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농업혁명으로 밀과 함께 정착하면서부터 인류는 자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일 걱정을 하지 않던 인류가 내일을 걱정하게 됐다는 것에서 자본의 함정에 빠졌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를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난 산으로 들어가긴 싫거든.

자본주의를 깨닫고 나니, 지난 30여 년 간 어째서 늘 곁에 있던 이것을 몰랐을까 싶다. 심지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만 9년을 향해 가는데, 너무 늦었다 싶기도 하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사피엔스 역사는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더 행복한 방향으로 왔냐는 질문에 그렇다 답할 수 없는 게 슬프긴 하지만, 역사를 바꿀 수 없으니 미래를 만드는 것을 택해야겠다.

마무리

책을 읽는 내내 유발 하라리는 나를 무수히 많은 역사 속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내게 묻는다. 뭘 원하냐고. 아니, 뭘 원하고 싶냐고.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3년 전 그 물음에 ‘내 이야기’를 만들겠다 답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내 이야기’를 만들었냐고 물으면, 만들고 있다고 답하겠다.

이제 무엇을 원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더해서 ‘무엇을 원했는지’를 물을 차례다. 원했던 것을 얻었냐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해야겠다.

이제 나는 나에 관한 무지를 인정할 수 있다.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했던 것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나를 몰랐다 인정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장했다. 이제 나는 다시 성장할 자격을 갖췄다.

3년 뒤 내게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3년 뒤에도 무지를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줄평 ★★★★☆

사피엔스의 성장 동력은 ‘자본주의’다.

인지 혁명

이 책은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대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믿었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그 이론을 완전히 부정한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공존했으며 그들은 서로의 부족을 죽임을써 더 강한 종족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생태계를 교란시킬만큼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간은 약한 종족이었다. 우리의 큰 뇌는 쓸모없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뇌가 소모할 많은 에너지를 찾아야 했고, 큰 뇌는 우리의 근육을 퇴화시켜 다른 종족들보다 약한 몸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맛좋은 부위를 다 먹은 후 남은 것들을 가져와서 먹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점점 그 단계를 높여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로 언어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상상력에 있다고 한다. 동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며 서로간의 친밀성이 커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언어의 공이 크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정보를 공유했고 빠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동물들도 언어를 사용했지만 인간의 언어는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효율적이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위험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또 좋은 이야기이던 나쁜 이야기이던 뒷담화를 통해 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유대감을 키웠고, 동족을 더 빠르게 늘려갈 수 있었다. 언어와 상상력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일 수 있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강한 힘을 주었다.

농업 혁명

아직까지 정확하게 어떻게 농업이 시작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 사람들은 녹말에 중독 되었다고도 하고, 신에게 바칠 재물을 위해서 농업을 시작 했다고도 한다. 어쨋든 인류의 역사에서 농업이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축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농업은 하나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냥을 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했다. 동물을 먹으면서 단백질을, 채소를 먹으면서 섬유질을 골고루 섭취했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하면서 한정된 종류의 곡물 만을 먹게 되었고, 이는 영양소 불균형을 가져왔다. 우리는 평소 배가 고플 때 나가서 사냥을 했고, 그 이외의 시간은 자신들의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 하지만 농업 혁명 이후로 우리는 그 시간을 농사짓는 데 써야했다. 또한 날씨가 농사에 중요했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농사는 사람들을 정착하게 만들었고, 정착을 통해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또한 농사를 위해 길들인 가축들은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뜨렸고, 정착 생활은 질병을 옮기기에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과연 이것이 인간들이 자신들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해온 행동 일까. 진정으로 우리가 원했던 발전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의 통합

우리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구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비슷한 이념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통햡한 것은 언어였을까. 언어는 이렇게 많은 숫자들을 모으는 데 있어 기반을 마련했을 뿐, 더 강력한 통합의 방법으로 아래의 3가지를 꼽는다.

첫번 째는 재화이다. 첫 거래는 물물 교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사과 3개와 고기 한덩이를 교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원하는 것이 달랐다. 나는 고기 한덩이를 얻고 싶었지만, 상인은 사과가 아닌 딸기를 가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나는 복잡한 물물 교환을 통해 딸기를 얻어 다시 고기 상인에게 가야할 것이다. 이는 비효율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색을 칠한 종이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종이가 주는 가치를 신용하였고, 이를 통해 더 편리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재화가 주는 통합의 가치는 문화의 가치보다 크다. 문화는 국가적으로 한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재화는 범세계적인 통합의 수단이다.

두 번째로는 제국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들은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를 통치하기 쉽도록 문화의 망각에 밀어넣었다. 지금은 제국주의라는 것이 모욕적인 단어로 들리지만 제국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제국주의는 피지배국에게 문화적 산물을 낳았다. 피지배국은 이를 테면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 아프리카, 아랍, 중국, 망뢰족 사람들은 영어를 배웠고 인권, 민족자결의 원칙을 신봉하였으며, 서방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페미니즘 같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한다. 현재 자유주의, 인권에 대한 중요성,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받아들인 이념이다. 하지만 그 문화가 전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그 문화가 정말 모두를 위한 좋은 문화라고 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인도주의적이지 않다면, 그 행위를 가치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문화는 새로운 문화와 섞이며 다양성을 통해서 발전한다. 따라서 피지배국이 지배를 당한 후 문화가 발전된 것은 그들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피지배국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우월함과 탐욕을 위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것이 우연히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게 만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종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창조한 상상력을 얼마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지, 이러한 믿음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흥미로웠던 내용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종교가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한명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이 노하여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벌을 내리는 형식을 통해, 인간이 동물들과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또한 악마를 통해 일신교는 다신교를 믿고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신은 우리를 창조시켰고, 우리는 그 신을 믿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일신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악마라는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신이 하나 더 있다. 하지만 일신교란 하나의 신만을 믿는 종교인데, 어떻게 그 신과 동등한 악마라는 신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악마를 믿어 지옥에 가게 만든다면 신은 왜 우리는 창조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들 중 하나라고 한다.

종교에 대해서 가장 재밋 었던 부분은 바로 이념에 관련된 부분이다. 나는 항상 이념이라는 것은 종교와 완전히 분리했으며, 종교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신뢰하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념은 객관적인 생각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념 또한 종교와 같다고 이 책에서는 설명한다. 종교란 자신들이 상상한 무언가를 믿고 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 주제가 신이 아닐 뿐 이념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를 외치는 우리들도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열렬한 신봉자 일지도 모른다.

과학 혁명

우리는 무지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과학을 발전하게 했다. 처음으로 이전의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을 얻기 위해 도약했다. 우리는 그 동안 알 수 없었던 익명의 신에게 호소했던 무언가를 기술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우리는 앎으로써 힘을 얻어갔다. 그동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범위라고 생각했던 생명의 탄생과 죽음도 우리는 그저 기술적인 문제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 혁명의 부분에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과학 기술들과 공존하기 위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념과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치게 되면 법은 어떤 판단해야할까. 우리가 영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 나가야 할까. 라는 문제에 우리는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생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인간이 생태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리의 잘못을 꼬집으며, 지금이라도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앞으로를 다시 계획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중략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 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운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2020년 8월 지정도서

  1. 일시 : 2020년 8월 2일 오전 10시
  2. 장소 : 강남역 스터디 카페
  3. 도서 : 사피엔스
  4. 저자 : 유발 하라리
  5. 발제자 : 김동영

(Brainstorming)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문구 하나씩을 이야기 해보자.

  1. 인지혁명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사피엔스는 엄청난 협력망을 만들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사상이 있다. 예를 들어, 백인은 백인우월주의를 믿고 전파했다. 그리고 흑인조차 나중에는 이 편견을 믿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백인우월주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예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 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믿고 그렇게 행동해온 사상과 편견에는 어떤것이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2. 

우리는 저번 달 도서 “지리의 힘”을 읽으며 전 지구를 통합하는 보편적 질서 체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다면 세계는 지금 점점 다양해 지고 있을까, 정상 상태(더 이상 변하지 않는 상태)일까, 통일화되고 있을까. 이 저자는 세계는 통일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통일화되고 있는 것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지배적인 요소는 돈, 제국, 종교이다.

이 중 이 시대 최고의 정복자는 미국도, 기독교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바로 ‘돈’이다. 돈은 이 세상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용된다. 자본주의와 돈의 태생에 대해 책에서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장점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주의가 있을까. 자본주의도 약점을 가지고 있고, 점점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지는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자본주의가 앞으로 더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기독교와 불교처럼 오래 존속할 수 있을지, 세계 최고의 종교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3. 제국

제국은 나쁜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이미 이 세상 대부분의 것은 제국의 유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수 없다. 우리나라 또는 가까운 나라 일본,중국,북한에서 제국의 유산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 이전의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이야기 해보자. 또 미래의 지구제국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

4. 종교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 중심의 종교로 기독교, 이슬람교가 있다. 자연법칙 이데올로기로 불교, 유교, 인본주의가 있다.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주의적 인본주의 등 으로 나뉜다. 이에 연관되어 자본주의, 공산주의도 탄생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종교들을 믿는지 생각해보고, 이 종교가 각자의 생에서 하는 역할과 영향을 이야기 해보자.

(plus) 5. 행복

행복에 관한 5가지 인용문을 나열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 유발 하라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쇼핑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비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았을 것이다”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행복한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것” – 폴 새무얼슨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따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 – 고타마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스님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조건이 행복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객관적인 조건은 물질적인 풍요, 건강 그리고 좋은 공동체 등 이 있다. 주관적인 조건은 모든 개인마다 다른 행복에 대한 특질이다. 부처와 법정스님 그리고 폴 새무얼슨은 욕망을 낮추면 자연스레 편안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3000년에 걸쳐 이 들은 다른 문장으로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만약 이 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주관적 기대와 욕망으로 불리는 이 것을 변화시켜 행복해 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단순한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보편화된 인권이나 도덕, 윤리와 같은 가치 아래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예를 살펴볼수록, 지리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지정학적 안보, 힘의 논리가 현재 인류의 상황을 결정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향방 역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실감하면서 약간의 무력감, 두려움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서유럽의 이야기가 그나마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일 흥미로웠다.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을 결성하면서 지금까지 유사 이래로 벗어날 수 없었던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가장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프랑스와 독일의 생존게임과 같은 전략들이 어느 정도 숨어있기는 하지만, 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 인류애를 회복하려는 매우 고무적이고 담대한 첫 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그리스의 구제금융위기, 시리아 난민 수용의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로 견고할 것 같았던 연합이 흔들리면서 – 역시나 – 지리의 법칙에 굴복할 것인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인류의 변화는 ‘지리’라는 원초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사실을 가감없이 인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축적해 놓은 인간의 존엄성, 인류애와 같은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인 것 같다.

한줄평

지리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의지를 확인해보고 싶도록 하는 책

인상깊은 문구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p40)

STEW 2020.7월 지정도서 <지리의 힘>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30개 가까운 나라들을 다녀왔던 것 같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정작 세계지리에는 무지했던 것 같다. 이번 지정도서를 읽으면서, 지리의 힘, 자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단연 ‘미국’이다. 

미국이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강대국을 유지해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리적 축복을 타고난 것도 있지만 운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위로는 이민족의 침입이 어려운 자연환경을 가진 캐나다가 있고, 아래로는 사막이 방패역할을 해주는 멕시코가 있다. 책에서 말한다. “미국은 침략과 정복이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라고 말이다. 또한 에너지마저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미국은 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땅에 지배 당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땅의 문제만은 아니다. 강과 산, 사막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리적 이유 때문에 피해를 받았다고 하면 받은 지역이다. 수많은 산맥들이 있지만 알프스 산맥 같은 제대로 된 산맥이 있었더라면 침략을 그렇게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열린 구조였다는 것이다. 물론 침략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진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각 세계의 지도자들의 성향과 이념, 기술 말고도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일시적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산맥, 천연자원이나 식량 자원에 대한 접근 등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까지 진출해 가는 한 우주 공간에서의 정치 투쟁도 불가피해보인다. 지리의 중요성을 알기에, 우주로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 나가고자 하는 모습에서, 자연이 준 것에서 최대치를 얻어 내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이러한 도전이 빛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지리가 과거, 현재, 미래를 주시하는 만큼, 또한 앞으로 지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계 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 하는지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줄평 : 늘 그렇듯 지리적 요소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별점: ★★★★

인상깊은 문구: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그렇다. 기저에 지리가 있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왜?’ 라는 질문과 함께 끝없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간다. 지리는 정치, 외교, 종교등을 포함한 국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정학적인 요소가 이러한 모든 부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큰 요소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왜 그동안 해보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일  Fundamental 한 부분인데.. 왜 이렇게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진 못했을까? 그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첫 번째 이유는 솔직하게 관심이 없었고, 두번째 이유는 깊게 공부해 볼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고등 교육과정에서 세계지리, 한국지리 등 얄팍한 지식의 주입식 수업만 받아왔다. 대학 입시만을 바라보며 배우는 지정학 공부는 그저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뿐, 더 깊고 넓은 지식의 습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리의 단편적인 부분만 흡수 한 후 그마저도 다 잊어버린다. 이 책은 그러한 한계점을 보완하고, 더 나아가 지리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국내외적인 사건들과 시사점을 다루는 점에 있어서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과 티베트에 대한 집착

한동안 중국의 신장 지역과 티베트에 관하여 호기심을 갖게 되어 온갖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느라 밤을 지샌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는 신장 위구르족 수감자들의 모습을 담은 드론 촬영 영상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중국이 신장 지역과 티베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 지리가 자국에 가져올 위협 때문이었다.

중국은 유독 인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말라야산을 경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인도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국경에 티베트가 있고, 이 티베트는 두 국가 사이의 완충지역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더욱 포기할 수 없다. 신장지역 또한 육상무역이라는 큰 부분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독립을 외친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 중국은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한족들을 대거 강제로 이주시키고 신장 위구르족의 문화를 말살 시키려는 악랄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완강하게 무력을 사용하며 그들을 탄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반인륜적인 대처는 곧 그들의 불안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공산당의 인권탄압과 강제적 엄연한 반인륜적인 행위가 21세기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정학적 요소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어떻게 분석하고 공부하고 이용 하는지는 국가의 뜻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달려있다. 똑같은 지리적 상황을 가진 국가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국가는 중국과 정반대의 방식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결국 지리적 특성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여 바라보고 평화를 위해 고민하고 소통하는 긍정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국가가 있을 수 있는 반면, 중국은 이기적인 마음가짐으로 지리적 특성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줄평: 나라별 지리적 특성과 고유의 문화,역사 등을 연계하여 색다른 방식의 세계여행이 가능하였다.

STEW 첫번째 모임, <지리의 힘> 팀 마샬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설레임의 문장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절망과 체념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모순은 이 질문이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듯 우리는 운명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모든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부정한다. 나의 삶의 주체는 나이며, 모든 결정과 행동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가 운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서평의 화두를 ‘운명’으로 던진 것은 보통 운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환경’이 자주 회자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태어난다. 혹자는 이것을 ‘금수저’ 등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출발선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명백한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에 있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 또한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밀려난 사람들은 온전히 본인의 노력만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해야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해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듯 보인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서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 특유의 문화와 기질이 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 혹은 주어진 환경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문화와 기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견지할 수는 없다.

진화심리학 관련 책을 읽다가, 농업이 발달하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동남아나 남미처럼 기후로 인해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은 생산성 증대와 효율성 제고에 대한 니즈가 높지 않기 때문에, 혁신보다는 안정을 택하게 되고 또한 높은 인구밀도는 낮은 인건비를 야기해 산업혁명의 필연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리와 기후의 영향력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4대문명의 근원지는 큰 강을 끼고 시작되었으며, 대부분의 국가들의 국경선이 산맥이나, 강을 경계로 나뉘어져있다는 점을 볼 때, 어디에서 국가가 시작되었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좋은 교육환경과 교통의 편리함을 확보하기 위해 강남의 집값들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처럼, 비옥한 땅과 교통의 요충지를 차지하는 것이 한 국가에게는 사활이 달린 중대한 문제일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경쟁들이 분쟁이나 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한 예는 ‘독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리의 힘>을 통해서 좀 더 명확해진 것은 각 대륙별, 각 나라별 지나온 역사들과 현재 처한 상황들이 우리의 생각이상으로 ‘지리’라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과관계요소들 속에서도 유의미하고,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민으로 ‘한반도’라는 곳에서 살아오면서 어떤 영향들을 받았을까?

             1. 사계절의 영향, 봄여름가을겨울과 눈, 비 등

             2. 3면이 바다, 실질적으로 섬나라의 포지션

             3.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

             4. 과거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영향력

             5. 불교 그리고 유교

등.

결국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들이고, 그로인해 형성된 문화와 기질 그리고 현재까지의 역사라고 본다면 이 또한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우리가 타고난 재능과 환경만을 믿거나 탓해서는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없듯이, 주어진 지리적 여건 중에서도 끊임없는 선택과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가는 글로벌 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국제적인 사건에 대해서 판단을 할 때, 단편적인 모습만 보는 경향이 있고, 간단하게 정리된 이분법적인 사고를 통해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간편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과관계가 얽히기 마련이며 이 또한 그동안의 역사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들에 대한 공부와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깊은 이해를 추구해야만 한다.

지리는 언제나 운명들을 가두었다.

우리는 지리의 아래 살아가는 작디작은 인간이어라

★★★★☆

지구는 5대양 6대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에는 평야, 산맥, 고원, 빙하지대, 툰드라, 사막 등 정말 다양한 지형과 지물이 존재하는다.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지리의 힘에 지배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여름의 무더위와 습기, 겨울의 칼날같은 시베리아 기단의 한파, 대부분의 대학교가 산지에 위치하여 어느 학교나 자랑할만한 오르막길이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지리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지리의 힘]은 그러한 지리의 힘과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정치를 합친 지정학이라는 분야로 세상을 설명한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극복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지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책에서는 단순히 도덕적, 정치적으로만 생각하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국제정치적 행태에 지리를 곁들여 설득력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한반도의 산맥과 강, 지역별 특산물 등을 공부한 이후로 이 책을 읽을 때만큼 지도를 많이 본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지도를 펴놓고 고개를 무한히 돌려가며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총 10가지 지역의 이야기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중국,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지리이다

중국은 북한과 더불어 지상 최악의 인권침해국가이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는 외부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티벳과 신장, 최근에는 홍콩에 있어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티벳과 신장 지역은 오랜 기강 소요 사태도 있었으며 현대에도 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 많은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중국의 티벳과 신장, 홍콩 지역 탄압에 대해 비난하지만 중국은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사상을 주입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국제정치학의 입장에서 보면 실익은 없는데 명분만 잃는 백해무익한 행위이다. 하지만 중국의 진정한 의도는 국제정치학이 아니라 지리학을 통해 보아야 드러난다.

중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티벳은 중국의 물을 지배하는 곳이다. 중국의 커다란 세개의 강의 원류는 티벳고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티벳고원은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인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에도 유혈사태가 벌어질만큼 사이가 좋지 못하다. 물론 지리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는 소규모의 교전으로 끝나고 있지만 티벳을 인도가 장악한다면 중국이 치뤄야하는 대가는 적지 않다. 그렇기에 중국은 티벳을 그렇게 사수하는 것이다. 신장 지역도 동일하다. 중국의 한족과는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신장지역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을 잇는 지역으로 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동시에 중국 중심부를 지키기 위한 완충지로서 전략적 위치에 해당한다.

중국은 현재 해양강국을 노리고 있다. 한세기전 청나라가 양무운동을 통해 해상강국을 꿈꾸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남중국해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의 영유권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군을 육성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다오위댜오(센카쿠) 열도와 말라카 해협, 대만 등의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국가들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지난 오랜 역사동안 외쳤듯이 중화사상을 다시 되살려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형의 한계를 뛰어넘어 땅이 아닌 해양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이웃한 모든 국가들은 중국의 잠재력을 알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언제든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자 하고 있다.

미국, 사기적인 스타팅 포인트

미국의 지형은 먼저 광활하다.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다양하다. 거대한 사막에서 거대한 삼각주 지형, 평야, 사막, 협곡, 태평영과 대서양 등 정말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지정학적인 조건도 매우 우호적이다. 접하는 국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밖에 없는데 그 둘 마저도 미국에 호의적이고 의존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미국의 힘은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국가라는 것이다. 달러화는 기축통화이고 미군은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주둔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원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기술의 발달로 자국 내에서도 어마어마한 석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약점이 보이지 않는 국가이다. 그 정치체제의 자유로움이 역으로 약점이 되어 혼란이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많은 호사가들의 예측과 달리 이미 한세기 이상 지구 상 최강의 국가이다.

미국은 사실 본토보다는 앞으로 언급할 나머지 지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개입은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각 지역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서유럽, 혼돈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는 길

서유럽은 정말 오랜시간 크고 작은 분쟁을 겪어왔다. 이유도 다양했다. 허울뿐인 황제의 자리를 두고 싸우기도 했고 종교적 해석을 두고 싸우기도 했으며 가문의 원한을 두고 다투기도 했다. 수많은 국가들과 그들 사이 복잡한 국경선만큼이나 그들은 많은 혼란은 겪었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유럽은 통합을 바라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되는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브렉시트 전에는 영국도 한 자리르 차지할 수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영국은 스스로 유럽의 국가이길 바리지 않고 있어서 언급하지 않겠다.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유럽 내 최고의 입지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가 주는 축복의 힘으로 프랑스는 카를 대제 이후 지속적으로 강대국이었다. 2차 대전에서 굴욕적으로 독일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유럽 내에서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가장 잘 사는 국가였다.

그에 비해 독일은 매우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굽이치는 라인강을 따라 수많은 소국으로 나누어져 전쟁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근대에 들어 프로이센이 등장하고 독일은 처음으로 통일의 가능성을 엿봤다. 근면성실한 국민성과 프로이센의 유능한 재상, 국왕의 힘으로 독일은 마침내 통일을 했고 통일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두번의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무참히 패배했다.

세계 대전에서 2번이나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냉정시대 갈라져 반쪽짜리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은 다시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정말한 기계를 생산하고 가장 믿을만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을 부흥시키고 기업을 성장시켜 어느새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강대국이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정복을 노리고 있다. 이번에는 전쟁이 아니라 통합의 물결을 타고 독일의 유럽 제패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EU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둘은 현재까지는 자유와 정의라는 관점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지도자 간에도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와 미국 기업의 침공에 맞서 유럽의 자존심을 세우고 러시아의 독재자가 유럽 정세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 중이다.

러시아, 거대한 영토이나 기후가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유럽에서 극동아시아까지 이어진 거대한 영토는 러시아의 힘이자 장애물이다. 영토에 비해 적은 인구는 영토를 개발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영토가 기후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동항을 찾아 끝없이 남하하던 러시아 제국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유효할만큼 러시아는 기후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

푸틴이라는 독재자는 러시아를 그 어떤 지도자와 비교해도 잘 이해하고 있고 러시아의 자원을 활용해 영향력을 늘리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천연가스라는 자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강화하여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어 있던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국제 정세와 지리의 힘을 활용하여 잠재적인 적국에 혼돈을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이다. 둘 모두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강행하였고 이제는 되돌리지 못할만한 결과로 만들어 착실히 러시아의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다.

거기에 최근 온난화의 급격한 진전은 러시아에게 영구 동토의 해빙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현재까지는 활용법보다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지만, 시베리아 영구 동토의 자원을 무한정 이용하게 된다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 애증의 동맹관계

한국과 일본만큼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어디있을까? 마주보고 악수는 하고 있으나 마주보는 눈은 동맹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적국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북한이라는 ‘위험한 약자’의 존재가 있다.

한반도 문제는 한국인인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고 지리의 힘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소 지리보다는 정치에 치우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북한의 문제 있어 주변국의 선택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어느 지점까지 북한 문제에 개입할 것이며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에 대핸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일본은 통일 한국에 대해 호의적일까? 한국은 통일 비용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다양한 주제를 던지긴 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 [지리의 힘]은 명쾌한 답을 주진 않는다. 다만 지형이 한국과 일본의 민족성에 영향을 준 부분은 읽어볼만 하다.

라틴 아메리카, 속 빈 강정 같은 대륙

보통 라틴 아메리카는 아마존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실제로 대륙 전체가 지형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다.

대륙 중심부에 위치한 아마존은 사람의 개발을 허용치 않으며 물자 수송에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아마존을 둘러싸고 빙둘러 도넛과 같은 지형 활용도를 보이는 라틴아메리카를 비유하는 말로 ‘속 빈 강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하지만 동시에 라틴 아메리카 남부를 보면 평야와 함께 세계에서 손꼽을만큼 비옥한 땅이 나온다. 아르헨티나가 위치한 평야지대의 힘은 대단해서 한때나마 아르헨티나를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중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이 후 정치적인 요인으로 그때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곡창지대의 위력은 언제나 경계할만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 너무나 큰 축복, 상반되는 결과

아프리카와 중동은 모두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중동은 석유라는 현대 산업 시대의 젖줄을 쥐고 있고 아프리카는 마찬가지로 다양한 광물자원을 통해 현대 산업시대, 나아가 미래 4차 산업혁명에서도 중요성을 차지할 광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두 지역은 매우 비슷한 분쟁과정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부족을 기준으로 내전에 빠져 있고 그 격렬함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어떤 전쟁보다 격렬하다. 다만 전쟁의 종결에 있어 차이가 발생한다.

먼저 중동 국가들 중 일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원과 자치권, 보호권을 바꾸었다. 영국과 미국이 2차 대전 이후로 지속적으로 자원 확보를 위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 정세에 개입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란,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듯 분쟁과 개입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대표적인 이슬락교 종주국이지만 미국과 영국은 동맹으로서 중동 등지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면서도 사우디만은 존중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반대로 아프리카는 강대국의 개입을 통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중동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의 전략은 전쟁의 혼란을 이용해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구 선진국은 아프리카에 매우 무신경하다. 그들의 정치적 혼란에 개입하려 하지도 않고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지도 않는다. 서구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성 때문에 오늘 이순간에도 아프리카인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아프리카는 낙후된 환경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WHO 수장이 된 테드로스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는 중국 자본이 들어와 눈부신 성장을 반복했고 그 결과 세상에거 가장 오래된 이 국가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영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중국의 개입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중국은 경제적 이득 외에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내전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어도 아프리카의 광물에만 관심을 갖는다. 더구나 중국은 아프리카에 건설만 할뿐 아프리카를 발전시키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건축과정에서도 자국민을 데려와 쓰는 등의 방식으로 자국의 기술이 아프리카에 퍼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듯 아프리카와 중동은 둘다 자원을 지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된 반면 나머지 한쪽은 여전히 타국이 그어놓은 국경선 아래서 끝없는 분쟁을 반복하고 있다.

인도, 그 어떤 국가도 인도를 단일 지배한 적 없다.

인도는 정말 크다.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중국 못지 않는 인구를 자랑한다.

힌두교를 바탕으로 한 이 국가는 영국의 식민지배 이전에는 다른 국가들의 침공을 그 거대한 품으로 안아가며 성장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벌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후 오랜 시간 계속된 이슬람의 침공을 받고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단 한번도 통일된 적 없다. 거대한 인도 대륙은 언제나 몇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공생했으며 단 한번도 통일된 정치체제를 갖춘 적 없다. 영국은 이를 활용해 인도를 단일한 체제로 지배하기 보다는 그 지역 간 갈등을 이용해 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활용하는데 집중해왔다.

영국의 갈등을 활용한 식민지배는 식민지배가 끝난 후로도 커다란 분쟁을 남겼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그것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언제나 커다란 인력 피해를 낳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에 비해 방글라데시는 종교적 차이로 분열되어 있긴 하지만 인도에 비해 약한 국력으로 갈등을 표면화 못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국력에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맞서기 위해 주변 국들을 활용한다. 아프가니스탄을 끌여들이기도 하고 중국과 연대하는 등 방식으로 인도와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최근에도 유혈사태를 낳았다.

북극, 온난화가 만들어준 새로운 기회

북극은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인류가 정복한 지역이다. 하지만 북극은 바다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등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불모지라는 것이 언제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환경파괴는 북극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기회다.

북극항로는 그야말로 21세기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야 하는 대륙간 항로가 북극을 통하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러한 가치를 인지한 러시아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에 나섰고 급기야 군대를 주둔시키며 북극항로를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온건한 국가들도 나서고 있다. 북극항로 자체의 가치 외에도 북극에 묻힌 수많은 자원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각자의 군사력을 동원해 러시아의 북극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그들의 정당한 몫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알래스카를 통해 북극항로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미국은 조용하다. 온건한 캐나다, 스웨덴도 나서는 판국에 너무나 조용하다. 물론 미국은 북극 아니라도 충분한 지리적 축복과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닌 국가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극에 대해 침묵할까?

지리는 극복하는 날은 오겠지만 21세기에는 불가능할 것

자연재해를 통해 자연의 힘을 체감하는 것과 달리 지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고정된 변수로써 존재하여 그 위력을 실감하기 어려우나 분명 실재하고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고 있다.

인류는 수많은 기술을 만들어왔다. 이제와서는 화성 정복을 위해 민간, 공공 모두 달리고 있다. 항공기술은 사실 지리의 힘을 무력화하고 있고 인류의 통신기술은 지리를 뛰어넘어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21세기동안에는 인류는 지리에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이는 인류의 기술 발전이 느리거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지리의 힘이 그만큼 강대한 것이다. 홍수와 태풍과 같이 눈에 띄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평지라면 직선으로 도로를 건설하여 많은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산의 존재 때문에 수많은 비용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있는 현대의 도시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어떤 지역에서도 지리는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처음으로 인류는 지리의 힘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지리를 대상으로 한 기나긴 인류의 투쟁은 과연 인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