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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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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소감.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을, 그것도 남자가 그렇게 섬세한 사랑할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왜 나는 사랑을 하면 여자만 상처받을 거란 이상한 피해망상에 사로 잡혀 있었던 걸까? 사랑하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했는데 결국 남자는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버렸다’ 라는 클리셰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마 한국식의 섹스에 관한 잘못된 교육을 받은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받다 보면, 사랑은 섹스가 전부가 아닌데, 다른 모든 요소를 제외하고 그 문제에만 사로잡혀버리는 잘못된 두려움이 심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모든 남자들이 알랭 드 보통 같은 사랑을 하진 않을 터이지만, 꽤나 가슴 저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 것을 알게 되어서 한 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나름의 고찰

클로이는 이별을 말하며, 너는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별을 말해서 너무 미안하다며 펑펑 운다. 클로이처럼, 이별을 고할 자격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랑을 주는 상대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같이 하면서도 혼자 하는 것 같다. 사랑에 빠졌을 땐,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랑이 식은 후엔, 자신을 위해 결국 이별을 고하지 않는가.

서로 그렇게 사랑했는데, 결국 이별하는 둘을 보며, 클로이가 경험한 작가와의 사랑은 어땠을 지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정말 헤어질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클로이와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책을 읽어도 그 소감은 달랐다는 말을 한다. 사랑 또한 같지 않을까? 서로 같이 사랑을 했지만, 경험은 둘 다 달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더더욱 혼자만의 경험이란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잔인하다. 영문도 모르고 이별 통보를 받는 상대방에게도 그럴 터이지만, 이별 통보를 하는 사람 또한 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벌을 주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이처럼 상대방이 아플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길을 택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는 엄청 절절한 사랑을 했지만, 그 시간은 1년 남짓이었을 뿐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엔 너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가? 사랑으로서 받을 수 있는 아픔을 최대한 감수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더라도 지속하기가 힘든데, 요즘에는 너무 쉽게 사랑을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애매한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울까?

다시 얘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지만, 누군가를 사귀게 될 때 그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확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 걸까?

며칠 전 친한 언니와 카톡을 하다가 언니가 소개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로 마음에 들어하는 느낌이라며 좋아하길래 응원하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서로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연애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목적이 분명한 만남인데, 사귀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의 명확한 기준이 있고 잘 숙지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관계를 시작하고 끝맺음에 있어 아픔과 실수흫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무리와 기억에 남았던 점

연애 소설은 재밌기 마련인데, 전혀 재밌음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작가 또한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읽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남의 사랑 이야기다. 알지도 못한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뒤섞인 찬양을 어떻게 하품 없이 읽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꼬아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의 멋이라 생각한 내 허영심 때문인 것 같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아메바 얘기였다. 저자는 클로이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그녀의 인격에 대해 아메바 같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다) 비유할 수 있다.

사랑은 어떤 느낌일까? 사랑에 관한 예술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 작품들 또한 항상 상상 가능한 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바라는 예측 불가의 형태로 자신이 사랑을 할 때의 느낌을 구불구불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창의적이었다.

작가가 한 사랑의 방식이 정석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게 뭘까? 라는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한 줄 평: 읽으면 도움되는 남의 사랑얘기

★★★☆☆

.

소설도 아니고 특정한 스토리도 없는 책을 이토록 집중해서 읽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마 저자가 하는 말들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깨달음이 더 명확해지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 갔거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들도 많았다. 아마 그 이유는 그 내용들에 공감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감을 못한 이유는 경험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하지만, 삶을 살면서 얻은 경험이 많아질수록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 또한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30대가 되어서도 40대 50대 그리고 할머니가 되서도 내가 애용하는 책장에 꽂아 놓고 한 번씩 꺼내 읽고 싶다.

인생수업은 총 10가지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그 10가지의 챕터가 기승전결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필수요소 10가지에 대해 다룬 것 같았다. 때문에 책을 통틀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을 평가하는 글은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토대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39p

(1). “대부분의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 간의 사랑도 각자의 기대와 요구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기대와 요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현실의 사소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몽의 씨앗이 되고 우리는 결국 사랑 없는 관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2020 새해를 맞으며 1월 3일쯤에 작년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동안 내가 얻은 배움 중 하나는 효녀가 되기 위해 효도를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자식을 평가하는 모든 척도는 공부였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은 성실성과 정직성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집안일을 열심히 돕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잘 해드리고 믿음직한 딸로서 행동하려고 해도 부모님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계속 노력해도 항상 도돌이표(공부 하나도 제대로 못해냈는데 너가 뭘 잘할 수 있겠니, 그렇게 기대했는데도 만족 못 시켰으면 사소한 거라도 잘해야지 라는 식의,,)보니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생각하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했던 모든 행동들에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론 내가 원해서 하는 행동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꿨다. 이렇게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거야. 라는 조건을 붙이기 보다는 그냥 나는 이렇게 행동하고 싶고 그러면 기분이 좋을 거 같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부모님이 생각하는 내 부족함을 효도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위의 구절이 인상 깊었던 이유

부모님은 물론 나를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시지만, 더 사랑해주는 것에 있어서는 대학이라는 조건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작년은 그런 조건적인 사랑을 깨닫는 시기였고 그랬기에 심리적으로 많이 상처가 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위의 내용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 마음에 들면 어떻고 안 들면 어떻습니까? 그들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마침내 상대방의 가슴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열린 내 자신 또한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최근에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부모님은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는 것을 강조 하시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강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늦잠을 자는 걸로 그 사람의 인성과 생활습관을 모두 평가해버린 다는 점이다. 늦잠을 조금 잤다고 게으르고 아직 철이 덜 들었고 부모님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 취급되어버리면 짜증나는 걸 넘어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덤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내가 없으니 일찍 일어나질 않는구나, 운동을 안 한 너희 탓이 아니라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다. 내가 미안하다 하는 푸념까지(심지어 8시 반에) 덤으로 들으면서 말이다.  

일어날 때는 정말 짜증이 났지만, 같이 아침운동을 하고 났더니 화가 사라졌다. 아빠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니, 피곤 하셨을 텐데도 우리와 마주칠 기회가 많이 없어 일부로 기회를 만드신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애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일단 화가 났고 항상 우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것 같아 짜증 났지만, 그게 또 아빠만의 사랑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니 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

위의 구절이 인상 깊었던 이유

이해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에 따라 우리를 통제하고 판단하는 아빠에게 화가 났지만, 어떨 때는 아빠의 그런 모습 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경험에서 인상 깊었다. 또한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 마음에 들면 어떻고 안 들면 어떻습니까? 그들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라는 구절은 기회가 된다면 아빠에게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에 인상 깊었다.

(3). “용서는 미움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자신을 위해 상처를 떨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공감보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상대방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 상대방은 사과를 할 마음이 전혀 없다면, 또 아무렇지 않게 계속 행동을 한다면, 그에게 계속 화가 나고 심리적으로 너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내 속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 때의 해결책은 용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용서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용서라는 의미를 이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 인 것 같다. 나의 상처는 극복되지 않았는데 왜 내가 남 좋은 일을 해야 하냐는 생각처럼 말이다. 책에서는 용서를 하는 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신에게 맡기라는 말을 한다. 책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기에 남을 위한 용서가 아닌 나를 위한 용서는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서가 나를 위해 상처를 떨어버리는 일이란 것에서는 매우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고민은 말하지 않고 깊이 생각할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속으로 생각만 했을 때는 심각하게 느껴졌는데, 쓰면서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살짝 부끄러워질 정도로 별거 아닌 고민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나는 이런 식으로 내 상황에 일일이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고 책의 저자와 심리치료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된 것은 매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책 읽는 내내 마음이 매우 편안했고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발제자분께 감사하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읽을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 책에 있는 모든 말들에 공감을 하고 배움을 얻고 한 번 배움을 얻은 내용도 다른 경험에 비추어 보아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한 줄 평

인생을 살면서 계속 되새겨 보고 싶은 책

 ★ ★ ★ ★ ★

인상 깊은 문구

 “배움을 얻는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 나는 누구인가? 나는 경험 자체인가? 경험하는 자인가, 나는 내가 자란 과정의 결과물인가?” -삶을 살면서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고 그 경험 속에 얻은 배움들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 씩 떼어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 즘에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그 애를 사랑하는 기분은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았거든요.”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받는 것에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관계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지루해 한다는 뜻이겠죠. 아니면 내가 지루한 사람이거나.”

“축적된 상실의 경험은 삶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대신 이만하면 충분해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그것으로 충분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내심의 열쇠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믿음, 신뢰를 키우는데 있습니다.”

“우주가 왜 당신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면 우주는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 때문에 불행하다면 당신의 힘으로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선 순응하고 그 상황이 주는 배움을 얻을 것.”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용서의 첫 단계는 그들을 다시 인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우리에게 준 상처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삶이 승진, 결혼, 퇴직, 치료 등의 큰 사건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큰 사건들 사이사이에서도 삶은 일어납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많은 것이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 있습니다.”

한줄 평: 20% 아쉬운 책

별점:★★★★

4차 산업혁명 산물로서 새로 개발된 기술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잘 예측도 되지 않고 크게 관심도 없다. 왜냐하면, 제일 훌륭한 기술이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술이라고 하는데, 내가 현실적으로 겪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인공지능 시리나 빅스비처럼 불편하고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점이 점차 개선된다면 편리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현재까지 신기술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앱이나 제품들은 사용 시 고객들을 편리하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지만, 굳이 편리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편리하게 해주거나, 너무나 세부적이고 복잡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을 통해 고객이 즉석으로 옷을 제작할 수 있는 가게라던가, 전신피팅 거울이라던가, 온라인상 자신 만의 아바타에게 옷을 입혀볼 수 있는 쇼핑몰이라던가, 아주 세부적인 정보까지 제공해주는 Health care 앱이든지 말이다.

학생부종합전형 때문에 면접을 준비하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던 적이 있었지만 모두 중도 포기했다. 왜냐하면 서사가 없이 객관적인 정보들만 수두룩하게 나열되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혁명을 말하고 싶다.

초연결은 책이 나온 시점이 제 4차 산업혁명에 비해 훨씬 최근이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신기술이 어떠한 변화를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윤곽이 잡혔다는 것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항상 4차 산업혁명 관련 이슈들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관련업계 종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책이 제공한 정보들이 얼마나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불가하다. 하지만, 일단 감지기를 통해 빅데이터를 수집 및 응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품을 만들고 이를 신사업으로 도입하는 것이 21세기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는 길이라는 작가의 주장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어서 내가 읽었던 4차 산업혁명 관련 책 중에 2번째로 마음에 들었다.( 첫 번째로 마음에 든 책은 일본은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었는데, 모노츠쿠리 정신의 정의와 역사에 대해 다루고 이를 4차 산업혁명과 적용했을 때 어떠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에 관해 서, 본, 결론이 명확히 드러난 책이었다)

하지만, 목차를 1부 혁명 ‘선점할 것인가, 바라만 볼 것인가’ 2부 선구자들 ‘디지털 기업이 되든가, 망하든가’ 3부 혁명이 끝난 뒤 ‘연결될 것인가, 고립될 것인가’ 이렇게 거창하게 써 놓은 것에 비해 각 내용이 대부분 흥미로운 사례제시나, 비슷한 사례의 반복이 계속되고, 내용을 다 읽고 나서도 왜 각 목차의 제목을 저렇게 정한 것인지 잘 연결이 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비교적 1부와 2부는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왔던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들은 신기하기만 할 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1부에서 소개된 감지기를 통한 제품들은 모두 필수적이고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기 엔진에 감지기를 설치하여 예측 보수를 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한다던 지, 쓰레기통이나, 석유저장통에 감지기를 설치해 정기 검진이나 수거가 아니라, 예측 검진과 수거를 한다던 지의 사례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또 그러한 기술로 절감되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기업에 LOT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자동차 리콜 문제에 있어서 LOT 가능 이전 시대에 도요타 같은 경우는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 모든 자동차를 무상 수리해주고 기업 신뢰도를 얻을 수 있었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한 번으로 (그것도 새벽에!!) 모든 자동차를 무상수리 했으며, 도요타에 상응하는 고객 신뢰도를 얻었다는 점에서 LOT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오세용 팀장님의 서평을 읽었기 떄문에 작가가 말하는 LOT의 정의가 맞는 것인지 잘 확신이 되지 않지만, 감지기를 통한 빅데이터 수집 및 응용을 Internet Of Things의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은 완전 이과 분야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항상 거부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 책 분야를 찾아보니 경제경영 도서라는 것에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기업의 본질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있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텐데 이과적 영역이라 생각했던 4차 산업혁명 분야 책이 경제경영 필수도서가 된 것을 보면, 수익창출의 패러다임이 4차 산업혁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디지털 쌍둥이 기술을 매우 강조했는데, 일단 엄청 편리해지기는 하겠지만, 나는 이 기술을 접하고 나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쨰는 디스토피아적 관점에서 프라이버시가 있을 수 없는 세상이 될 것 같아 조금 거부감이 들었고 둘째는 이러한 디지털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과적 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이 과연 보편화될까?에 대해서 였다.

작가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기술들을 사용하기 위해 고객은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을 갖추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기술인데 그 기술들이 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한다면 너무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기술이 발전되는 만큼 그 기술을 어떻게 보편화 평등화 시킬지에 대해서도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역사가 있는 대기업들이 어떻게 시대에 맞춰 기업을 혁신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 내용이었다. 주로 사례를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자원들 (기업 신뢰도나 무수한 고객들)을 잘 이용하여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새로운 수익창출 기회를 마련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책을 가장 아쉽게 만들었던 것은 3부였는데, 혁명이 끝난 뒤 연결할 것인가 고립될 것인가라는 부제는 내용과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았을 뿐 더러 비슷한 사례와 잡다한 사례의 나열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1부와 2부로 끝내고 작가의 생각을 담은 마무리 글을 3부에 간략하게 썼더라면 책도 더 얇고 더 완성도가 높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혹과 조종의 기술

★ ★ ★ ★ ★

최소혁

읽게 된 동기

저번 달 ‘Ask more’를 읽고 나서, 다음 달 자유도서는 이 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sk more는 한마디로 상대방으로부터 +α의 답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질문법에 대해 논하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상황별로, 질문하는 방법들이 소개되어있었지만, 가지치기 질문으로 핵심 답을 얻는다는 것이나,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유도 질문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목표로 하는 바로 가도록 유혹하고 조종하는 기술 중 하나로 보였기 때문에, 저번 달 토론 내내 이 책이 생각났다.

제목만 본다면,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겠지만, 저자가 얘기하고 있는 유혹과 조종의 기술은 전혀 ‘sexualism’에 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다음과 같다.

-새 신발이 필요할 때면 나는 절대 떼를 쓰지 않았다. 엄마보단 나를 더 귀여워 해주는 아빠 손을 잡고 내 신발 앞으로 가서는 신발이 어느 부분이 헤졌고 이런 신발을 신고 다닐 경우,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결과 5분도 안 가서 나는 아빠와 새 신발을 사러 매장에 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간식으로 과일을 준비해 두셨는데, 나는 내 간식이 과일인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간식으로 과자를 먹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나의 밝은 인사성과 귀여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어르신들이 매우 많았다. 골목에 앉아계신 어르신들께 항상 밝게 인사를 하고 다니자, 나는 동네 최고 인기쟁이가 되었는데, 인사 한 번씩 하면서 골목 한 바퀴만 돌아도 한 아름의 과자를 얻을 수 있었다.

책을 보고 안 것이지만, 이러한 방법들도 저자가 말한 유혹과 조종의 기술 중 하나였다.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목표를 성취했기 때문에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내 설득의 방식을 더 레벨업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5번 정독한 책이자,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됐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서평

책의 가장 첫머리엔 ‘보이즈 클럽’이라는 용어 설명이 있다. 보이즈 클럽이란, 남자들의 가치관과 행동, 성적 유머가 난무하는 남자들의 세계를 의미한다.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29살 카피라이터를 시작한 저자가, 철옹성같은 보이즈 클럽의 유리천장을 뚫고, 미국 최대 광고회사 중 하나인(지금은 모르겠다..) 멕켄 에릭슨의 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얻은 그녀만의 유혹과 조종의 기술들을 여러 경험담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유혹과 조종의 기술은 미모와 눈물로 유혹하고 조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특화된 능력인 공감 능력, 분위기 파악능력, 배려하고 인내하는 능력을 통해 상대방을 유혹하고 조종하라는 것이다. 물론 배려윤리가,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더 극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 것처럼, 작가의 이러한 주장 또한 같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능력들은 보편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나타날 뿐이지, 저러한 능력이 특화된 남성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처음에는, 어떻게 위와 같은 능력으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조종할 수 있으며, 다른 방법들도 있을 테지만, 굳이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내세운 것일까? 의문을 품었지만, 책에 다음과 같은 답이 나와 있었다.

나는 내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날 도와줄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날 해칠 사람에게도 두루 베풀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또한, 내가 유혹하고 조종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그들의 직업선택 면에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테레사 수녀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더 사심 없이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더 쉽게 내 편이 되어준다.”

유혹없는 조종은 경멸과 분노만을 낳으며, 조종없는 유혹은 한동안 즐겁지만, 결국엔 걱정거리만 안겨준다. 나는 그것을 광고로부터 배웠다.”

사람들은 절대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하라. 감정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는 보이지 않는 설득은 항상 논리보다 강력하다.”

즉 비즈니스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날 싫어하는 사람조차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능력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유혹과 조종의 기술이 무엇일까?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엔, 미묘한 부분이 많아서 책을 직접 읽어봐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그러한 유혹과 조종의 기술을 통해 저자가 깨달은 바를 발췌해 보았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신중해져야 한다. 그리고 더욱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준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변화를 시도하라. 관계된 사람들이 상처 입지 않도록 최대한 보듬어주고 보호해주면서, 절대 내 말을 들어달라 강요하지 마라, 그저 조종하라

(저자가 새 직장의 리더로 가서, 여러 명의 임원급 남성 직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시도했을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행동에 감동한 직원들은 든든한 그녀의 편이 되었다.)

비즈니스계에서 절대 감정을 내보이지 마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떤 이유로, 얼마만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라면 더욱 거침없이 표현해도 좋다. ‘감정표현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때를 알고 익힌다면 아주 특별한 무기가 될 것이다.”

-(버라이존의 광고 피치에서 눈물을 통한 진심으로 6800억원의 광고를 따냈을 때)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당당하게 성공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면, 먼저 안전한 테두리를 벗어나라. 남자들은 모험을 감수하는 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설사 그 모험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서로를 용서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근성을 가지고 대범한 결정과 과감한 실행으로 실패와 실수를 감수하며 나아가라. 근성 있는 자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성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영향력은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는 힘이며,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가늠하는 척도다. 영향력은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온갖 불쾌한 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준다. 사익추구가 아니라 현명하고 고결하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여자들은 왜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요..라는 말은 이제 머릿 속에서 지워버려라. 더욱 더 뻔뻔하게 칭찬을 받아들이고,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라

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해석할 줄 아는 여자들의 능력은 매우 유용하면서도 결정적이며 성별의 차이이다.”

용감하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용기는 남자들만이 가진 것일까? 가슴속에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되뇌어라. 용기와 베짱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경험과 훈련으로 갖출 수 있다. 남자들도 우리와 똑같다. 단지 두렵지 않은 척 한 것일뿐. 용감한척 하는 것도 훌륭한 무기다.”

책의 첫 장에 작가의 시어머니는 작가를 가리켜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오지랖 넓은 사람의 의미는 남자들의 세계에 은근슬쩍 끼어든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미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35년간 의료직에 종사하신 분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사회경험이 무척 풍부한 분이었지만, 결국 여자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하고,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중역회의실의 상석은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보이즈 클럽이, 무한한 경쟁 속에 있기에, 여자로선 발 딛고 설 틈이 없이 첨예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여자이기에 더 유리하다는 저자의 주장과 경험담은 매우 논리적이고 희망적으로 생각되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우리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남자들의 세상의 무질서함을 평정하기 위해 반드시 아빠 같은 엄마가 필요하다. 때론 강한 카리스마로 상황을 지배하고 때론 절대적인 이해심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워줄 엄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리하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기술만 배운다면 이 모든 것은 충분하다.

작가는 오랫동안 ”직장은 서로 챙겨주는 친절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공감과 활력, 감수성이 특징인 그런 문화는 마초적 경쟁심이 팽배한 환경보다 더 생산성이 높고 일하기 즐거운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실제로 사랑이 넘치는 직장 내 환경이 엄격한 분위기 보다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한 가장 훌륭한 사례가 있다, 바로 멕켄 에릭슨에서 진행한 ‘마스터카드의 광고’이다. 책을 읽으면서 매우 놀랐는데, 이는 경영학 수업시간에도 교수님께서 잘 만든 마케팅의 예시로 보여주신 사례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광고의 성공 요인을 기존의 남성적인 전통을 깨고 ‘협력’‘관대함’‘감정이입’이라는 세 가지 여성적 특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당시의 마스터 카드는 ‘미래화폐’라는 포지셔닝을 요구했으며, 마스터 카드의 소비자들은 조사결과 좀 더 의미가 있는 일을 위해서만 큰 돈을 지출하는 고객들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저자의 팀 전략은 ‘중요한 물건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는데 priceless라는 제목의 광고 켐페인을 제작했다. 팀원 중 남자였던 조나단과 여자였던 조이스의 광고카피를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나단)

당신이 여섯 살 때

난생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그 기쁨과 만족감

우리가 그 기억을 되돌려드릴 순 없지만,

두발 자전거를 사실 수 있게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에는 마스터카드가 있습니다.

(조이스)

28달러

핫도그2개 팝콘2개 음료수218달러

사인받은 야구공 45 달러..

그리고.. 열한 살ᄍᆞ리 아들 녀석과의 진정한 대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외에 모든 것에는 마스터 카드가 있습니다.

마스터 카드, 미래화폐

이 캠페인은 마케팅의 역사가 되었으며 110개의 시장에서 50개의 언어로 방송되는 유례없는 성공사례가 되었다고 한다.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항상 청유형을 쓰게 되는 상황이 있다. 나는 그게 특히 택시를 탈 때였는데, 내 말을 상대방이 전혀 존중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번 남친과 같이 택시를 탔던 적이 있다. 그 때 기사님은 내 말은 들리지 않으신지 남친 말에만 대답해주셨는데, 그러한 분위기일수록 나는 더 위축됨을 느꼈다. 아직 학교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성적 외에, 이성과 대놓고 경쟁을 한 적도 없고, 그들이 작정하고 나를 배척한 경험도 없다. 하지만, 간혹가다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남녀 차별을 사회에서 대놓고 받게되는 상황이 될 때 나는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서평의 전체적인 부분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자이기에 더 어려움을 느낄 수 있고,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에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이 책은 나에게 꽤 유용했다.

책이 나온 시점은 2008년도 이기에 11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들 또 친구들과 진로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비교적 집안일과 병행하기 쉬운, 공기업, 공무원 등의 직업들을 논하며, 그러한 직업 추천을 옛적 사고방식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지금 상황에선, 이 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버지의 자리 서평

참고

(la place)인데 ‘아버지의 자리’ 였다가, 지금은 남자의 자리로 번역이 바뀜.

작가:Annie Ernaux(아니 에르노)

별점:★★★★★

읽게 된 동기

우리 집에는 모든 벽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다. 한 책장이 모두 1980~1990년대에 구매된 아빠의 책들로 채워져 있는데, ‘아버지의 자리’도 그곳에 있던 책이었다. 아빠는 어떤 생각으로 그 책을 산 걸까? 하는 궁금증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내가 아는 것 외의 다른 유형의 ‘아버지의 예시’를 알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한 줄 평: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것을 통한 사색시간.

서평

“소설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얼마 안 된다. 가난에 굴복한 인생을 설명하는데 있어, 우선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또 뭔가 열정적인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만들려고 애쓸 권리도 내게는 없다. 아버지가 한 말들, 몸짓들 그의 취향들, 그의 일생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들, 나 또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들을 한 데 모을 것이다.”

내가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그런 노력으로 인한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였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책에서 한 방식을 고수하여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는데, 작가의 아버지 사례를 내 아버지에게 대입시키기에는, 다른 점들(성장 과정, 교육 수준, 사회의 수준 등)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본 목적은 이루지 못하겠단 생각으로 책을 읽었지만, 아버지의 딸로서가 아닌, 제3 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의 성장배경, 거쳐 온 직업, 생활습관, 사고방식 등 여러 객관적 지표들을 모아 아버지를 한 남자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한 작가의 시도는 내게 유익한 경험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의문은,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그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해가 아버지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였다.

작가는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에는 계층의 차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루에 딱 3마디만 나눌 정도로 대화가 단절된 부녀였다. 시골 부농의 짐수레꾼의 아들로 태어나 짐수레꾼-공장 직공-식료품점 주인으로 신분 상승을 마친 그의 아버지는 그의 딸이 자신이 속하고 싶었던 사회(브루주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단 자부심에 세상을 살았지만, 이미 자신을 무시한 그 사회의 일원이 된 딸과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전혀 없었다. 청소년기, 그 당시 부르주아 계층으로 진입할 유일한 수단이었던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작가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먼 거리감이 생겨났고, 그것은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됐다.


작가는 책 후반 부에 이런 말을 했다.

“ 아버지는 나를 당신의 자전거에 태워 집에서 학교까지 데려다 주셨었다. 비가 오나 해가 짱짱하나 아버지는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나는 이 말을 통해서 나의 첫 번째 의문 “작가는 이 작업(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객관적인 지표를 한 데 모으는 것)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에 “예스”라고 답할 수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13살이나 돼서 스스로 밥값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상으로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으로 작가의 가족은 생계가 위협받을 정도의 가난은 벗어날 수 있었고, 작가에게 최소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브루주아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했던 작가로서는 의식주가 갖추어진 환경이 너무 당연했을 것이다. 게다가 공부를 시작함으로써 생긴 아버지와의 정신적인 대화의 단절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더 강화시켰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뱃사공’으로 정의를 내렸다. ‘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아버지는 내게 뱃사공 같은 존재였다’ 라는 생각의 전환은 아버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조합을 통한 이해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전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다시 작가는 아버지를 사랑했을까? 라는 추가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한 노력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전제되었다면 ‘작가는 아버지를 사랑했다’라고 볼 수 있지만, 책 마지막 옮긴 이의 서평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의 자리’는 자기가 태어난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이주한 자, 비록 그것이 자기 부모들의 바라는 바였기는 하지만 자기 태생을 배반하고 그 세계의 이방인이 된 자가 의식적으로 그것을 다시 찾아 인정하는 작업이다. 또한 이것은 작가가 지배계급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그 문밖에서 버려야 했던 소외계층의 세계 유산을 낱낱이 밝히고자 하는 작업이며, 그것은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궤적을 통하여 자신의 뿌리를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했고, 그 일환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의 아버지의 존재를 정의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두 가지의 의문에 나름의 답을 내렸음에도, 계속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그 사람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일단 이해를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한다.(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위해선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오면 대게 찾아오는 감정은 분노다. 애정은 있지만,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분노만 쌓였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애증이 된다.

나는 칭찬 10마디보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나의 부모님은 말을 세게 하시는 편이라, 갈등 상황이 있을 때마다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 점에 대해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에 서운한 점들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행동하셨는지 이해되는 부분들도 생겼다.

만약 내가 부모님의 상황이나, 사고방식, 성장배경 등을 고려해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화난 부분들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애증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객관적인 이해는 사랑을 이어갈 수는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정리하기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본 내용은 그의 아버지의 삶에 대한 내용 뿐 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책 속에서 어떠한 자신의 주관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고, 작가 아버지의 삶을 관조하면서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의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

책 뒤에 실린 서평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전기도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아마 문학,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의 그 무엇일 것이다.” 문학이라 함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삶에 대한 진실의 추구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며 언어가 아닌 그 다른 무엇으로도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라 함은 이 두 작품이 사르트르나 시몬느 드 보브와르가 살았던 바로 그 시대에, 소외된 계층은 아직도 ‘중세’와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산 증언이며 또한 자기 부모와 자기 사이에 이루어진, 무산계급에서 중산계급으로의 사회적 상승의 산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부모님의 신분은 가난한 농부-공장직공-식료품점 주인으로 상승하며, 노년에는 사회보장제도의 보급으로 편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신분 상승을 단지 그들만의 노력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그 시기에 산업화가 되지 않았다면, 이브토라는 시골까지 공장이 보급될 리가 없었을 것이고,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주었던 군복- 즉 아버지가 군대에 징집되지 않았다면, 그는 세상에 눈을 뜨지 못한 채 짐수레꾼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즉 국가의 발전에 따라 변해가는 한 가족의 생활상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옮긴 이는 서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양(프랑스)와 동양(한국)을 구별하는 경계를 찾을 수 없을 만치 우리와 친근한 우리 주변에서 항상 듣고 볼 수 있는 이 이야기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애잔한 감동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말에 공감할 수 없었는데, 책의 출판 시기가 1980년대인 것을 고려하면,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모님 세대의 생활상이 작가와 작가의 부모세대의 생활상과 비슷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아빠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던 것은 아마 옮긴 이와 같은 이유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빵 위에다 십자가 표시를 하는 것 미사, 부활절, 청결이 그러하듯이 종교도 품위를 주었다. 일요일엔 그들은 나들이옷을 입고 부농들과 같이 크레도를 불렀으며 헌금 접시에다 동전을 놓았다. 아버지는 성가대원이었는데 성체를 들고 신부를 따라가는 일을 좋아하셨다. 그들이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벗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솔직하고 담담한 문체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문체는 책 읽는 내내 너무 매력적이었다. 아니 에르노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보고 싶은 덕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