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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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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핵심은 신용

당신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타인을 얼마나 믿습니까? 만일 길가다가 한 사람이 너무 급하다며 당신에게 돈을 5만원을 빌려달라는 사람에데 당신은 5만원을 그냥 빌려줄 수 있습니까?

위의 대답은 곧 신용의 위력을 보여준다. 한국과 같은 신뢰가 바닥을 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없기에 매우매우 다양하고 귀찮은 과정들을 통해 신뢰를 담보한다. 최근 없어진 공인인증서가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신뢰, 신용을 구축하려 할까? 거기에 첫번째 챕터의 답이 있다.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편에서는 빚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빚을 내주고 있는 은행 또한 악덕 기관이 아니다. 그들의 거래는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은행이 돈을 빌리고 지정한 기간까지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은행의 이익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그를 통해 시장이 커지고 산업이 발전한다는 외부효과를 고려할떄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 더 크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신용이다. 그리고 은행은 신용을 담보로 빚을 내어준다.

자본주의의 신용거래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키우는데 최적인 제도이다. 과거에는 신용이 없었기에 사람 간 거래는 요원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급자족 외에는 매우 좁은 금전관계를 가지며 살아갔다. 상업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신용을 담보하는 다양한 방법이 발생하였고 그 결과가 은행이었다. 은행은 자신의 이익과 돈을 굴린다는 목적에 맞추어 운영되면서 점차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였고 그 결과가 보험이었다. 또한 대출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산업과 기업에 투자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결국 금융상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근거에는 신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진도 분명 이를 이해한다. 하지만 도입부에 은행은 모든 사람의 예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기라는 논조로 흥미를 끈다. 사람의 관심은 살 수 있겠지만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소비 마케팅에 현혹당하는 것이 잘못인가?

마케팅의 시대다. 개인 맞춤형 광고는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전방위적으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고 있다. 매 회마다 어이없는 ppl을 가져오는 모 드라마는 낮은 시청률에도 ppl이 화제가 되는 수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소비마케팅들이 사람을 현혹시키고 바보만드는 것처럼 묘사한다. 과연 진짜 그러한가?

소확행, 가심비라는 말은 소비마케팅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책에서 나오듯 자신이 아는 범위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다. 상품 구매에 있어서도 필요만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대다수이다. 현대의 마케팅을 그 지점을 핀포인트로 공략한다. 무의식에 호소하기도 하고 철지난 B급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여전히 스타 연예인을 통한 마케팅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며 사람들은 아직도 광고에 충동구매를 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 마케팅은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모세혈관이다. 앞서 말한 신용과 신용을 기반으로한 금융상품들이 자본주의를 돌아가게하는 심장이라면 마케팅은 모세혈관으로 모든 사람에게 자본주의의 혜택을 전해주고 동시에 모두에게 자본을 사용하게 한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이 과하면 사람들은 반발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속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커다란 마케팅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개인이 얼마나 신중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가이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나만 나쁜 결과를 얻었다며 게임의 룰을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다. 행정학을 공부한 나에게 복지는 하나의 보조기구이다. 시장도, 정부도 실패한다는 전제에서 복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보조기구이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세금퍼주기 라는 인식이 생겨있다. 물론 현재 복지 정책이라 부르는 것들이 앞으로 환경변화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철학을 담기보다는 그냥 국민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 진행하는 것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는 절대 퍼주기가 아니다.

국가가 운영되면서 빈곤문제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방치할 수는 없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복지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지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목적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의도치 않은 희생자를 다시 자본주의 사회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복지 정책은 포퓰리즘이 된다. 당장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을 주지만 조금만 지나면 국세를 보충하기 위해 다음 세대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것이 포퓰리즘 정책이다. 복지와 포퓰리즘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복지는 퍼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비용을 지게 한다.

용두사미의 구성

시작은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후의 내용은 대책없이 단조롭다. 첫 챕터에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보다는 교양적 수준의 이해를 일깨우는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인터뷰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다. 같은 변호사가 몇번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단점은 많지만 한번정도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단, 이 책만을 읽고 자본주의를 다 아는 듯 신념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

레이 달리오는 승계에 실패할 것이다.

레이 달리오는 브릿지워터스의 수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를 운영한다. 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선물을 활용한 헤징, 지수펀드와 같은 개념을 그는 그 시작부터 보아왔고 직접 발전시킨 펀드의 새로운 개념도 많다.

이런 대단한 업적은 사실 위인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이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결정되었을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레이달리오라는 사람에게는 큰 실망을 했다. 그가 말하듯 그는 셰이퍼이다. 세상을 바꾸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셰이퍼를 길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벌써 10년이나 승계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레이달리오의 문제이다. 그는 한국말로는 꼰대이고, 영어로는 boomer이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성공적인 승계에 실패할 것이다.

레이 달리오 평범한 투자자들에 대한 조언 -

꼰대 레이 달리오의 Latte is Horse~

레이 달리오는 실제로 헤지 펀드 운용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온 사람이다. 헷징을 통해 많은 돈을 벌기도 했고 많은 국가 기관들, 지도자들이 그의 인사이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는 대체불가한 사람이다. 보통 대체불가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긍정적인 찬사이지만 레이달리오의 경우 현재 그가 성공적인 승계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대체불가한 레이 달리오는 그가 말하듯 10대시절부터 주식투자를 했고 성공도 실패도 겪으며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었다. 그는 그가 말하듯 원칙을 공유하지 않다가 브릿지워터스의 직원들에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 공유를 했고 이제는 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그의 원칙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개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목적론적으로 생각하고 목적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그가 말한 것처럼 셰이퍼 혹은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말하듯 이타적인 동기보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사실 이를 권장할만한 요소는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 책 ‘원칙’이다.

책에서 그는 그의 성공과 실패이야기를 하면서 원칙을 세우고 이를 따라온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원칙을 공유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강요하는 모습도 나온다. 그러면서 과거에 모든 일은 발생했었고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기에 원칙이 의미가 있으며 원칙에 맞추어 생각하고 원칙을 지속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그가 성공했기에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그의 성공담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과거가 일치할 수 없고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감을 줄 수는 있어도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부 그가 자신의 인생담을 이야기하면 원칙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개인적으로는 “아…. 700페이지 짜리 자기 자랑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맞았다.

“원칙”의 오만함

‘원칙’은 보통 과학 이론에서 언급된다. 사회학에서는 원칙보다는 경향성이라는 용어로 순화하여 표현한다. 이는 과학과 사회학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과학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A라면 B라는 명제가 발생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변수를 통제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고 특히 돌발 변수가 많아 원칙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에는 예외가 너무 많기에 경향서이라는 말로 예외를 근본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사회학의 측면에서 볼때 Principle, 원칙이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오만함의 상징인 것이다. 물론 그가 정한 원칙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두가 투명하게 약점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경쟁적 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대명제에 기반한 것이고 자세한 원칙은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20세기의 사람들과 21세기의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미국의 부머현상과 한국의 90년대생 현상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사회 구성원의 성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 달리오는 20세기에 성공했던 이야기를 가지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이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회사에서 회사생활 잘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왕년의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부장님 같이 말이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이 있을 것

이 책은 저자의 힘으로 잘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브릿지워터스라는 지난 반세기를 풍미한 헤지펀드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새로운 후계자를 찾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새로운 후계자 대신 그를 대신할 체제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만 그의 원칙은 체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와 달리 다른 셰이퍼들은 그와 같이 목적론적이고 경쟁적인 자세로 성공했지만 그의 조직은 열린 조직을 만들어 갔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잃고 혁신을 잃어가고 있지만 내부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할 수 있는 열린 조직을 만들었다. GE나 노키아와 같은 기업도 실패를 겪고 보다 열린 조직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 워터스는 여전히 레이가 없는 브릿지워터스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여전히 공동 CEO로 자신의 그림자를 짙게 조직에 드리우고 있다. 떠나야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발을 들이고 뒤에서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를 대신할 새로운 대담한 후계자가 등장해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면 이루어내지 못한다. 이는 원칙이 조직을 얽어 매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금융권은 원래 그렇다는 말로 이를 두둔할지도 모르겠다. 한번의 거래에 수천억원이 오갈 수도 있는데 그런 위계질서나 엄중함이 없다면 유지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 과거를 고집하기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 과거의 대명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조직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한 사람이 오랜 세월 세운 원칙보다는 모두가 함께 논의하여 정한 원칙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변동성에 대응해 새로운 헷징 전략을 만들어 혁신을 이끌어 온 20세기 레이달리오와 같이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 한다.

요즘에는 티끌모아 티끌이라는 말은 한다. 실제로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어 성공하는 사례는 이제는 불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아주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티끌을 모아 태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일정한 방식으로 티끌을 모아야지 티끌이 태산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티끌모아 티끌?

당신이 매년 새로운 것을 다짐하지만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이 주는 교훈에 비추어 행동하는 것은 둘째라고 해도 우선 내가 해본 수많은 일 중 성공했던 것과 실패했던 것의 차이를 알기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 또한 매일매일 하나씩만 새로운 것을 더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목표 하에 벌써 28년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나는 내가 바란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대답은 “노(NO)”다.

솔직히 내가 계획한만큼 내가 나은 사람이 되진 않았다. 정말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었겠지…… 다만 나는 모든 계획을 실패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퍼센트로 따지면 약 60%는 달성하면서 산 것 같다. 성공 했던 목표도 실패했던 목표도 모두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동일했지만 결과는 극명했다. 

물론 실패 이후에도 달성하지 못한 40%를 채우고 싶어서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해왔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얻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답을 찾았다. 습관에 관한 목표에 관한 이 책의 인사이트는 놀랍다. 

목표 달성 프로세스는 누구나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왜 누구나 달성할 수 없는가에 관해 그는 정말 단계단계 자세히 써두었다. 자기계발서를 보고 보통 쓸모없는 책, 잘됐으니까 쓰는 책 정도로 평가 절하했는데 이 책은 다르다. 작가 본인의 경험에다가 치밀한 분석과 체계화를 거쳐 “목표 달성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이연복 셰프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연복 셰프가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하는 이유

“알려줘도 어짜피 할 사람만 해요”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를 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책 읽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방법을 알아도 하는 사람만 한다. 그런데 왜 그럴까에 대해 고민해본적은 없다. 그냥 웃어 넘기고 뭐 그런거지 하고 넘어갈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걸 분석했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변화를 만드는 사람의 정체성에서 시작해서 습관을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 마음가짐 등을 서술한 책을 꾸준히 따라 읽어가면 어느새 우리는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공했던 습관이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 배우고 실패했던 습관에 왜 실패했는지 배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책은 훌륭한 자기 반성을 이끌어 낸다. 

개인적으로 이 자기반성이 이 책을 작가가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자기 반성만 이끌어 내어도 그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이 후에 행동은 필수가 아니고 더군다나 책이 의도한 것은 아닐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결국 알려줘도 할 사람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자기 반성을 하고 책의 인사이트를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이는 결국 성공적인 습관 만들기의 허들을 낮춘 것일 뿐 허들을 넘어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들 프린트 미리보기

결국 거기서부터는 독자의 영역이다. 독자 스스로 책을 적용해 자신을 바꾸겠다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 책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사소해보이는 습관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독자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묻는 책이다. 물론 독자 모두가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 자체도 허들이다. 실제로 현대 한국인의 48%가 1년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우리 STEW 독서소모임 회원들은 이미 엄청난 허들을 넘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의 허들을 낮춰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허들을 넘을 것 인가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다. 

당신은 허들을 넘었는가? 대답은 10년 후 자신이 들려줄 것이다.

나는 미국 시트콤을 좋아한다. 작년 종영한 빅뱅이론, 이번 여름 팬들을 위해 특별한 에피소드로 돌아온다고 하는 프렌즈, 캐나다의 한인편의점 이야기를 다룬 김씨네 편의점 등등 많은 미국 시트콤을 보는 편이다. 한번 보고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를 꾸준히 듣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보는 편이다. 집중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 보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정도로는 스토리를 이해하며 보는 편이다.

[How I met your mother] 테드 모즈비

최근에 다시 본 미국 시트콤 중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How I met your mother)]라는 작품이 있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떠도는 테드 모즈비라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재밌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서 책의 주인공이 테드 모즈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에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지속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소설이 쓰여진 방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하는 것이었다. 책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고 메꾸어버리면 넘어간다. 드라마 속 테드 모즈비도 비슷하다. 로빈이라는 캐릭터와 첫 만남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이후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본인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여 파혼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하며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편해하게도 만든다. 물론 시트콤이기에 갈수록 과장이 포함된 것은 알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랑에 대한 매우 이기적인 자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나의 이런 이야기에 대해 드라마나 소설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철학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속의 이야기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단순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호르몬이나 페로몬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단순히 어느 날 마주친 인상 때문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성적인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저 본능에 맡기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하다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할 수 는 있다. 하지만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낭만을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고 그 사람과 한번더 만나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단어로 자신의 쓰레기 같은 행위를 철학적으로 두둔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위선적이다. 이미 금이 간 그릇을 들고 사랑을 고민하는 것 조차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시멜로한다”라는 말로 이를 멋지게 대체한 것을 보이지만 이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 관계에 커다란 금이 갔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후 찾아온 이별 또한 이미 예정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인은 처음 상대의 호의를 자신의 이기적인 철학으로 포장한 주인공 본인에 있다.

테드 모즈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소설 속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테드 모즈비가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처럼 나타내지만 나는 갈수록 로맨틱보다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맨틱하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데만 집중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감정을 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나의 평소 지론에 비춰보면 테드 모즈비는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던지고 만 있는 것 같아서 였다. 특히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감정을 던지는 것이 아닌 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전략의 영역이다.

이쯤 읽으면 사랑은 단순한 것이라는 처음의 말과 사랑은 감정을 전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모순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과 교류하는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가지가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상대와 사랑을 하는 것은 교류이므로 그에 따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읽기 힘들었다. 단락단락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며 애써 어렵게 표현하려는 문단 문단이 힘들었고 그 조차도 내용이 잘 전달안되게 번역되어 어렵지도 않은 내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 읽으면서 몇번이나 쉬어야 했다. 거기다 주제 자체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라 더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읽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했다. 한번쯤 자신이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한줄평 ★★

이기적인 사람의 이기적인 사랑에 대한 변명

종교는 보통 구원을 약속한다. 믿음을 주고 그 대가로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모여 구현화된 것이 보통의 종교이다. 이런 종교 중에서도 불교는 굉장히 특이한 존재이다. 불교는 구원이 아닌 수행을 이야기하고 수행의 끝에 삶의 연기를 깨달으라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근거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맹신하지 말고 자신 안의 진리를 구하고 깨달으라는 불교의 주요한 요지는 결국은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음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결국에는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겸손해지고 지난날을 후회하게 된다. 하지 못했던 선택을 후회하기 하고 하지 못했던 말을 후회하기도 한다. 후회로 어짜피 점철된 인생이라면 지금 순간순간 자신을 믿고 흔들리지 말고 자신은 용서하라고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라고 한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옳바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감동도 없다.

세상이 너무 힘들다보니 모두가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너무 잘 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아마도 많은 인기를 끌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질려한다. 서점가를 점령한 베스트셀러들이 위로를 건네는 책들인 요즘에야 이런 책을 다시 읽어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게 오히려 정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야기할만한 부분은 있다. 이 책의 저자의 이력과 사례가 모두 의미있는 것이고 실화라는 점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이야기를 하는 책이어서 지금의 내가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래서 뭐?’ 였다. 너무 냉소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책을 읽는 설 연휴기간 내내 그 생각만 들었다.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해골물을 먹고도 꿀물처럼 달았다는 원효의 일화처럼, 결국 이 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굳이 이 책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현대의 모든 문제는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기 보단 마음의 여유를 가질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맹장에 무항산이 무항심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재산이 없으면 마음이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재산이 없으므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어 현실이 힘든 사람들에게 원인인 재산이 없을을 해결하기 보다는, 어짜피 너 죽으니까 중간 과정인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만 하는 게 과연 말인가, 방구인가 싶다.

한줄평 ★★☆☆☆

배부른 사람의 잠꼬대

한 줄 평

IoT 입문 오리엔테이션

서평

사물인터넷, IoT, 유비쿼터스 이미 많은 이름으로 알려진 기술에 대한 입문서다. 물론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특히 IoT로 인해 산업 전반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가치는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은 미완성이고 무언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하지 않아 후속편이 있을 것 같은 책이다. 특히 순환기업의 파트가 그러하다.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지멘스와 GE라는 오래된 기업들이 신기술의 적용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동력을 얻고 있다는 부분은 흥미롭다. 실제 사용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항상 많이 하던 기술인데 책을 읽으면서 데이터라는 것의 활용례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5G라눈 무선 통신 기술이 나왔을 때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이 주로 그 수혜자가 될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지금보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한번의 비행으로도 몇 백 테라의 데이터가 나오는데 차량주행이나 개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의 양도 그에 못지 않게 대단할 것이라 생각하지 5G기술의 효용이 보다 확실히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던 중 정말 흥미로운 문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초기 비용을 바탕으로 가격을 책정하지만, 앞으로는 제품의 생애가치를 평가해 책정할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적 개념을 다시 쓴다는 말로 나에게는 들렸다. 비용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예상하는 말인데 처음에는 응? 했지만 곰곰히 책을 읽다보니 오히려 앞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애주기에 맞춰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행정학을 배우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도 생애주기 소득을 고려하여 연금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연금이나 보험에서는 주로 이야기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도 이제 이런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앞으로의 사회는 보다 더 개인 맞춤이 될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개인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이를 보다 압축하여 정말로 개인에 딱 맞춘 서비스와 제품이 앞으로는 시장에 나올 것 같다. 과거 현대 사회에서는 다품종 소량생산,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제품군이 특징이라 배웠는데 IoT 기술의 발전은 아마도 그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추가하여 책을 읽다보니 지난해 읽었던 ‘콘텐츠의 미래’가 생각났다. 콘텐츠의 미래가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분석을 치밀하게 담은 글이었다면 이번 ‘초연결’은 네트워크 효과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 기술에 대한 글이었다. 이 책이 콘텐츠의 미래처럼 좀더 자세하고 많은 근거와 사례가 있었다면 더 좋은 책이었을 것이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읽게 된 동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히 읽을 기회는 없었던 책이지만, 2019년 마지막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한 줄 평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서 얻은것, ……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정의에 대하여 다루지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가 무엇인지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정의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뒤,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답을 내리는 것을 유보시킨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목적론적 사고의 주장을 사례와 함께 다루면서 각자의 논리에서 각자의 변호를 들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은 다른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의를 정의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대와 계층의 변화와 함께 정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며 이런 자신의 강의와 같은 논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들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의 정의에 관한 사례들은 현재에도 통용된다. 한국의 경우 징병제 모병제, 올바른 대입선발제도, 소수우대정책, 빈부격차 문제 등은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한 토의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다. 이런 논의에서 철학적 논쟁은 보통 기저에 깔려있을 뿐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는 경우는 없다. 거기에 더해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참여를 통한 논의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의 논리로 치환되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한적 논쟁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모든 제도가 금방 부작용을 드러내었고 해결되었다는 생각보다는 갈등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항상 이러한 한국의 정치 방식에 불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정치논쟁에는 기본이 되는 철학이 부족하고 참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게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껏 압축적 성장을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철학적 논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개인을 넘어 사회적, 도덕적, 목적론적 관점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논쟁을 막고 있으며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재 한국의 가장 이슈 중 하나인 대입제도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제도의 변화에 따른 그 효과성에 대한 논의만 할 뿐 진적으로 대입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고 대입의 공정이 무엇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을 하지는 않는다.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사례에서 보듯 각 대학의 목적성에 과한 논의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부는 해결책을 발표한다. 신문에서도 자극적으로 그 결과에 대하여 나누기만 할 뿐 사람들 사이 건전한 공론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이야기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모든 현상의 텔레스, 목적을 중시하였고 이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킬 수 있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에 대한 부분이 한국사회에서는 분명 부족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낸 국가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논쟁없이 다수의 의견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일견 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소화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분명 글로써는 이해를 하지만 그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쓰고 있는 서평이 더욱 의미가 있다. 책을 덮은 뒤 24시간도 되지 않은 현재에 내 생각과 이해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후에 책을 다시 펼치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읽게 된 동기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다가 전광판에 지나가는 기사 중 김영란 대법관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가서 사게 되었다.

한줄평

사법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법관이라도 답할 수 없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는 STEW의 2019년 마지막 지정도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과 정의’라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리고 덮는 순간까지 머리 속에 머무르는 의문이다. 누가 정의이고 누가 부정인가? 사법의 판단은 언제나 옳은 것이고 그는 영원한 것인가? 등, 저자이자 전 대법관인 김영란 작가는 대법원의 유명한 판례(그 중 일부는 본인도 참여하였다)를 중심으로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인 것 같지만 답이 아닌 글들을 읽으며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

사법부의 판단이, 대법원의 판단이 정의인가? (사적 단체와 헌법의 적용범위)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작가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각 판례를 분석하면서 대법원의 판단의 논리와 자신 혹은 소수의견의 논리를 모두 분석한다. 이 책의 재미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판결을 접한다. 그 판결은 보통 무혐의, 집행유예, 기소 처분, 불구속 기소 등 결론만으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판결과 정의’는 그 판례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그 판례에 사용된 법리, 채택되지 못한 법리를 분석하면서 과연 사법부의 판결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예를 들어 3번째 목차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종중에 여성회원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재판을 보면, 예전 판결에서는 종중에 여성회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적 자치의 영역이므로 허용이 되었다. 하지만 05년 대법원의 판결은 이는 잘못된 것으로 위헌적이다고 판단하였다. 두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에는 사적 자치와 평등 가치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두 재판의 결론은 달랐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과거의 논리와 현대의 논리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현재 판결이라는 정의가 바뀌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대의 논리의 충돌, 혹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논리의 충돌을 설명해 주는 것을 통해 기사 한 줄로 표현되던 판결을 독자들이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법이란 올바른가? (성인지 감수성에 관하여)

법은 정의를 가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존재한다. 하지만 법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한때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는 법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도 분명 존재했고 판결에도 반영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작가 본인은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지만, 법학자 누스바움의 말을 빌려 해당 사안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편성을 기본적인 원리로 하는 법의 해석에서도 그 보편성 떄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개별적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감수성은 늘 필요하다. 누스바움 식으로 말하자면 ‘비대칭성에 대한감수성’이다.”

법은 평등한가? (갑의 책임)

법은 분명 평등하다. 누구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누구나 정당한 판결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법은 평등한가?

저자는 이러한 법의 특성을 가르켜 형식적 평등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과 결부될 때 법의 판단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을 보호하면서 형식적 평등을 통해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때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KIKO 옵션계약상품과 같이, 혹은 최근 DLS 투자상품의 실패와 같이 일반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일어나도 매번 계약서의 내용이나 충분치 않은 고지를 이유로 법의 심판이 약하게 이루어진 사례는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법의 판단의 기반이 되는 법이 정말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판사는 과연 사회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하는가? (직업법관제)

대한민국의 판사는 현재까지 직업법관제를 따른다. 영미계 판사가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하다가 임용되는 것과 다르게 직업법관제 하에서는 처음부터 판사이고 검사로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제한적이다. 물론 이는 법관 개인의 의견보다 보다 엄정한 법리 해석에 집중하게 하여 보다 동등하고 평등한 판결을 받게 한다는 장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법 실용주의자 포스너가 말했듯이 직업법관제 하에서 법관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현실을 고려하기 보다는 법리적 해석에만 치중하여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판결이 많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직업법관제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의 기둥이 되어줄까 아니면 사회에 맞지 않는 이상주의적인 판단의 근원이 될까?

물론 최근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로 바뀌며 앞으로는 판사를 영미식으로 변호사로서 오랜 기간 활동한 후에 법관이 되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 최소 10여년 간 현 체제가 유지된다고 할 때 과연 직업법관제는 사회에 알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법의 정치화

얼마전 패스트트랙을 막으려는 야당의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를 당했고 최근 해당 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그와 별개로 책은 사법의 정치화에 대해 다룬다. 판결은 본래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당파성을 지니고 주관적이다. 이를 작가는 사법의 정치화라고 칭하고 이에 대하여 김영란 작가는 이를 받이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판사도 사람이기에 완전히 중립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법은 정치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를 극복하기위해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럴 수 없다고 하여 포기하는 것과 지속적으로 방법을 찾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의는 어렵다. 하지만 계속 찾아가고 이야기하여야 한다.

판결과 정의에 정의는 없었다, 판결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올바름이라는 것에 대한 인류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공정가치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관해 개인의 생각을 나누고 진정한 의미의 공정, 정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달 지정도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와 관련한 토론이 기대된다. 정의에 관한 유명한 강의를 통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모임 10월 지정도서

한 줄 평

질문에 답하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에 대한 경종

서평

어릴 적부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답을 하는 것에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고 매 시험을 잘 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최면을 아주 어릴적부터 받아온다.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그러한 경향은 정점을 찍고 대학 혹은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정말 아쉽게도 대학 혹은 사회에서도 질문은 금기시 된다. 질문 보다는 질문하는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고 친구의 감정에 맞춰주어 소위 사회적 스킬이라는 것을 익히며 살아가게 된다. 그게 보통의 한국인의 삶 속 질문의 위치가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그래서 한국인은 질문에 미숙하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외신과 달리 질문이 소극적이며 질문에 능숙하지 않아 어색해하는 언론인의 모습이 뉴스에 종종 비추어 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이 책이 신선했다. 질문을 하라고 한다. 그것도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기분나쁘게도 하라고 한다. 상대에게 답을 끌어내기 위해 그에게 공감하는 척도 하라고 한다. 그야말로 상대를 불편하게 하면 안되며 답을 기다려야는 것이지 끌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DNA에 박힌 뿌리 깊은 유교적 성향에 위배하는 글이다. 하지만 그래서 흥미롭고 그래서 이 시점에 중요한 책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 게시판이 되었고 언론은 연일 새로운 소식을 전하며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시민단체는 제각각 새로운 이슈를 던지며 여론을 모으고 있고 청년들 또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일지 질문을 던진다. 그야말로 질문을 던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아니다. 많은 질문이 있지만 광화문의 연단에 나가 당당히 던질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 일에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소서의 문항문항, 면접관의 질문 하나하나에 어떻게 대처할지 답을 상상하고 공부하는 것에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 질문에 관한 이 책은 선천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후련함을 느꼈다. 특히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은 큰 경중을 주었다. 내가 준비하고자 하는 취업 과정의 인터뷰에서는 매우 특이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질문이 없이는 인터뷰 자체가 진행이 안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질문을 적절하게 던지는 일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고 매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는데, 이 책을 이를 매우 쉽게 풀어 놓았다. 사실 내용 자체가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다른 책에서는 매우 어렵게 설명하고 외우고 익혀서 사용해야할 과제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냥 너무나 당연한 질문의 연속처럼 표현하여 받아들이는데 너무 편했다.

그래도 완벽한 책은 아니다. 특히 공강하는 질문에 관한 챕터는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안되었다.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을 속여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는 사기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걸 책에서 대놓고 가르치면 이제 사람들이 이런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생각도 들 정도 였다. 그 다음 챕터가 바로 대립하는 질문이여서 앞의 고구마를 뚫어줄 사이다가 되어 주어 그래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질문에 답할 일이 더 많고 질문을 당할 일이 더 많은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덮으며 아쉬운 것은 이렇게 질문이 도움이 많이 되는데 왜 난 지금까지 질문을 못 했을까 였다. 내 스스로의 기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질문의 부재로 내가 겪은 많은 비효율이 존재할 것 같아 매우 아쉬움을 남겼다.

[읽게 된 동기]

가격이 매우 싸서 사게 되었습니다.(5500원)

[한줄평 및 별점]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감성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에는 인스타 감성이 유행인가 봅니다.

★★★ ☆ ☆ 3점, 개인적으로 공감도 안 가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제가 감성이 부족한 탓도 읽고 작품을 보는 눈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고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작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평]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은 7개이고 모두 짧은 단편소설이다.
짧아서 쉽게 읽힌다는 점에서는 분명 플러스 요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내용 자체가 공감이 가지 않아서 그렇게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이 책이 일종의 현재 소설의 트렌드를 드러내는 지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소설의 트렌드는 나랑 맞지 않다. 너무나 형이상학적이고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 중에서 재밌게 읽었던 것은 이우석 작가의 메밀꽃 필무렵이다. 사실 그 내용 자체만 보자면 결코 공감 하기 어려운 막장 드라마급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책의 어휘 구절, 그리고 밤길을 걷으며 마주하는 풍경에 대한 묘사들이 너무나 와닿아서 그 소설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상 수상작들 중에서는 솔직히 2개의 소설을 제외하고는 내게 와닿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특히 1등 상을받은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그 소재도 공감이 가기 어려운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 묘사나 대사가 일부러 독자가 쉽게 이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또, 김봉곤 작가의 ‘데이 포 나이트’의 경우에도 스토리 구조가 참신하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스토리 이해를 해친다. 특히 그 안에 주인공의 내면의 흐름을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내가 재밌게 읽은 이야기가 2개나 존재한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공의 기원, 김희선

축구공 – ‘공의 기원’의 중심 소재

축구공의 가상 역사에 관한 소설이다. 과거 조선 말기 제물포에서 시작된 축구공에 과한 김희선 작가의 뻥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를 유발한다. 뻥을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직 하면서도 동시에 믿기지 않는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것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끝날까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한대로 음모론을 펼쳐대는 샤말란 감독의 이야기 같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소설이 개구쟁이 요정 하나가 눈 앞에서 나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잘 녹여내어서 의외로 사회비판적인 모습도 잘 보여준다. 마치 건포도가 중간중간에 박힌 쿠키를 먹는 것 같다(개인적으로 건포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분위기의 이야기 속에 훅훅 박혀있는 사회비판적 요소는 결국에는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이를 더 있음직한 이야기로 믿게한다. 그 덕에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내가 한 행동은 네이버 검색창에 ‘토마스 굿맨’을 검색하는 거이었다.

공이라는 소재로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확장해난 김희선 작가의 역량이 보인다.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우리들, 정영수

해방촌 – ‘우리들’에서 정은과 현수의 아지트가 있는 곳

우리들은 말그대로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나’로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일을 했었고 비극적인 이별 뒤에 상하이로 꿈을 쫓아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지 안되었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후 하루하루 회의에 가득찬 희망 없는 날들을 보내는 그에게 어느날 정은과 현수가 나타난다. 둘은 연인으로 자신들에 관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 정은과 현수는 매우 사람을 다루는데 능숙한 사람으로 ‘나’는 그들을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할 정도이다. 그들은 매우 모범적인 연인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잘 맞는 그야말로 진짜 어른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정은, 현수는 ‘해방촌’에서 만나 소설을 쓰고 함께 어울린다. 그들 3명은 함께 어울리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 또한 그 시간들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나는 정은과 현수에 비추어 자신의 지난 연애를 회상한다. 연경과의 길었던 연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이 상하이로 갔던 것은 사실 도망을 갔었던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소설의 중반 무렵 나는 정은과 현수의 진실을 알게 된다. 우리들이 함께 보낸 좋은 시간들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마주하고 그때부터 ‘우리들’을 깨어지기 시작한다(너무 중심이 되는 반전이라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그렇게 그들의 짧은 관계는 깨어지고 연경과의 연애에 대하여 쓰던 글을 멈추게 된다.

”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우리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자 부질없이 과거에 아쉬움을 되새기며 과거를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글 속의 나는 연경과 오랜 시간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끝내지 못했다. 결국에는 나 스스로 상하이에 꿈을 쫓아 도망간 뒤에도 되돌아와 연경을 추억한다. 하지만 글 속 ‘나’는 정은과 현수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과거라는 것은 추억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꺠달으며 소설은 끝난다.

종종 우리는 과거를 미화한다. 힘든 일도 추억으로 치환하고 당시 느꼈던 고통도 작은 행복감으로 덮어버린다. 과거를 미화하고 추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만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소설 ‘ 우리들’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꼽은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다. 나는 원래 가볍고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또한 나 스스로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다. 이 두가지를 반영한 나의 소설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진 문화적 취향이 현재 소설의 트렌드와는 다소나마 차이가 있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괜찮은 것 같다. 어짜피 소설도 영화도 드라마도, 무슨 상을 받고 누가 호평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느냐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내가 좋자고 읽고 보고 하는 것들 아니겠는가?

그냥 가격이 싸서 고른 책에서 의외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원래 잘 찾아 읽지 않는 분야의 책에서 의외로 많은 것을 얻어 이번 한달의 책읽기도 보람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