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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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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 발병 초기에는 전 세계가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점차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어느새부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다루는 언론과 서적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책들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는데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보여준 인류의 대서사시, <사피엔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왜 이 책에 손이 갔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하라리 아저씨가 책 중반부에 친절하게 대신 답해주셨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유발 하라리

그렇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겸손 덕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필연적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제도, 종교, 체제 등 모두 과거 인류들이었다면 이게 뭔지 들으면서 기겁했을 것입니다.

대신 저는 필연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무언가들을 인류가 창조하게 된 동력에 주목하였습니다. 바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왔는지 역사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상상력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상의 힘

저는 제 자신을 공상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제 MBTI는 정말 좋은 증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저는 지구 어느 동물보다도 공상적인 동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개념은 처음 맞닥들였을 때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이렇게 26년 인생동안 공부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오직 상상 속에서나 있는 것이라니. 하라리 아저씨가 제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려는게 아닌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패닉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실 허구를 창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 종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인류가 지구 최고 포식자 위치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형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허구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유전자를 뛰어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사회가 이에 대한 증명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이렇게나 거대한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뭉쳐서 협력을 시작한 인류는 아주 재미난 허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도 이에 해당되죠. 특히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핵심 개념들 또한 허구라고 하라리 아저씨는 이야기합니다.

수십억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는 물론이거와 자본주의와 같이 현대사회을 이루는 핵심 룰들도 모두 허구입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믿고 자유라고 외치는 개념들도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상호 주관적” 개념으로 분류가 됩니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유발 하라리

이렇게 온 세상이 허구가 가득한데, 실재만을 바라보는 삶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안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러한 허구 만드는 것에 동참하는 것 뿐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허구를 만들 수 있는 사회

우리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과학혁명들과 이를 뒷받침해준 허구적 사회구조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규범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인권과 평등으로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생각까지도 자유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였다는 점인데요. 생각에 대한 자유와 이를 표출한 자유는 모든 인류에게 각자의 허구를 만들어줄 권리를 쥐어줬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칼 마르크스는 왕이 아닙니다. 성공한 재력가는 더더욱이 아니었구요. 이런 일반적인 동네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공산주의라는 허구는 20세기 후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근대 전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일반인은 허구를 만들어낼 시간조차 부족했으니까요.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는 미국 국민의 2%도 안되는 인구만이 농업인구라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90%가 얽메였던 과거가 더이상 아니라는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98%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허구를 만들어낼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심지어 농업인구인 2%마져도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저녁엔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도 더욱 더 빨리 변화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허구가 허구를 낳기에 너무나도 최적화된 사회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라리 아저씨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성을 “끊임없는 변화”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하는 것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로운 의무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날라리 경제학도입니다. 분명 경제학으로 졸업하였지만, 매 학년 전공을 바꿔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진학한 대학원마저 부전공이었던 국제관계학을 살린 정치학인데요. 이런 걸 보면 대학생 때의 경제 수업은 나와의 궁합이 그리 좋지 못했나 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달려들었던 각종 함수랑 친하지 못했던 것이 패인인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막상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경제학에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학 생활 4년을 보내면서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경제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 현대인은 좋으나 싫으나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제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돌아가는 법을 알고 싶었고, 더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게임의 룰을 파헤치고 싶었던 것이 컸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집어 든 이 책은 자본주의라는 경기의 룰을 보다 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쓴 책이다 보니 복잡한 수학 공식을 써내려 나가지 않았는데요. 제가 읽으면서 이 룰은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JP모건

돈을 잃고 싶다면 저축을 해라.

먼저 이야기할 부분은 금융 부분입니다. 금융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자본이 가지고 있는 힘이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에, 금융의 룰을 숙지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자본주의>는 앞으로는 절대로 저축만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을 하였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오히려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인데요. 그만큼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금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은행 이자율이 2%를 넘는 상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이번 한 은행의 프로모션으로 출시한 이자율 5% 상품이 단 일주일 만에 132만 명의 고객을 끌어모았습니다. 그에 반해 물가는 계속 상승하다 보니 오히려 물가 상승률이 은행 이자율을 넘기게 됩니다. 결국, 은행에 돈을 맡기면 돈을 잃게 되는 것이죠.

이 불황에 이자 8만원이 어디냐" 은행이 미어터졌다 - Chosunbiz > 금융
지난 2월 연 이자율 5% 적금 상품에 신청자 수 폭발했던 KEB하나은행

저축을 하면 돈을 잃는다니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이제는 부모님 세대의 성공을 위한 룰이 더는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묵묵히 일해서 예금만 잘하면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죠.

금융 공부 한번 해보실래요?

그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금융지능 키우기”입니다.

저축만 하면 오히려 돈을 까먹는다니… 피땀 흘리며 노력해서 번 돈을 잃어버리는 악몽이 현실로 다가오길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각종 금융상품에 대해서 지식을 무장해야 할 때가 온 것이죠.

물론 전문적으로 나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좋은 회사들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회사가 좋은지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금융상품과 시장에 관한 공부는 필요합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돈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본인에게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본격적인 금융 공부에 앞서 금융에 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은행이 주는 안정감에 이끌리기 십상입니다. 다시 한번 본성에 이끌려 돈을 잃으러 은행에 가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다행히 금융상품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느끼면서 자라지 않은 행운이 따랐습니다. 아무래도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의 구분이 없는 학부 시스템 덕에 주변 친구 중 금융권에서 종사하는 친구들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최소한 “언젠가 공부해야지” 하면서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석투자연구소
???: 너네는 주식하지 말아라…

하지만 막상 주변을 보면 저와는 사뭇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TV에선 주식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말리면서 나오는 연예인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은 기본이고요. 돈을 잃는 것이 같은 금액을 버는 것보다 두 배 이상 고통스럽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주식으로 잃어본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부감을 이겨내고 공부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보다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도 꾸준히 강조하듯이 금융은 이제 자본주의의 가장 거대한 축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의 활성화 덕에 “슈카월드”, “존 리” 등 금융권에서 잔뼈 굵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요.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금융,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를 통찰력 있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도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최근 재미있게 봤던 유튜버 “슈카월드” 님의 영상

마무리

워낙 금융 관련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어서인지 서평이 편향된 것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우리가 살면서 알아가야 할 자본주의의 기본을 쉽지만 폭넓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 한 권만으로 절대 재야의 고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건 정말 욕심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경제를 너무 공부하고 싶은데 맨큐의 경제학 보기는 싫다, 경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얻고 싶다” 하는 분들이 있다면 고민 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 같습니다. 편한 표현들과 각종 예시로 무장되었기에 이보다 더 잘 준비된 기본 설명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플하다.

이제는 심플함의 대명사가 된 영화 <기생충>의 조여정(나는 이정도로 심플하진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성격 덕에 정말 낙천적이다. 때론 너무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주변 친구는 답답해하지만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좋았다. 그랬기에 이 심플함을 굳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좋다고 이렇게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남과 교류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복잡한(혹은 성숙한) 사고 과정을 거치는 사람과 만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수년 전, 나와 타인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혹은 다른 생각 구조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느냐고 이해심 깊기로 유명한 친구에게 물어봤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겐 뜻밖에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소설책 읽기였다.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다 현실세계에서 모티브가 된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작가들이 묘사해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 구조 또한 볼 수 있다고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언이 정말 들어맞았음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분명 진부한데… 왜 신선하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은 주인공 “나”와 그의 연인 “클로이”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다가, 이내 시들어가는 둘의 사랑. 내용 자체만 보면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다. TV 프로그램으로 상영된다면 작가의 귀가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게 축약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주인공 “나”는 정말 입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과를 졸업해서인지 몰라도, 그의 페르소나인 “나”는 복잡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극히 일상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그런 시점으로 사랑을 경험해보니 진부하다고 느낄 틈이 없어졌던 것 같다.

대충 봐도 철학가 관상을 가진 글쓴이, 알랭 드 보통

물론 읽으면서 이런 “나”가 피곤하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아니,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있지. 무슨 마르크스주의니 뭐니 하면서 왜 그 상대의 자질을 의심하지?’ 등과 같은 생각 말이다. 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철학자의 이름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플한 사고를 가진 나이기에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가끔씩은 불편하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나”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나에게 다가온 게 아녔을까?’ 하는 순간을 몇 번 겪을 수 있었다.

적당히 복잡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 걸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와 그 책의 주인공 “나”가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분명 비슷한 사건을 읽고 경험하는데도 말이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인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입체성 덕분에 동일한 것을 목격했을 때에 느끼는 바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어? 뭔가 이상한데?’ 싶었지만 쉬이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는 말로써 풀어냈고, 독자인 나에게 그 감정을 이해시켰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적당한 입체감도 필요할 것 같다는 당위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만들어낸 주인공 레벨의 입체성까지는 잘 모르겠다. 반 오십여 년을 무념무상으로 살아온 심플의 대명사 나한테는 그 생각이 과도하다 느낄 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항상 심플하게, 세상 걱정 없이 살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타인과 교감할 때에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들뜬 희망감에 기대가 된다.

결국 공부인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는 어떤 것이 나라는 자아에 입체감을 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의 조언대로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속마음을 들춰보는 것이 전부이려나. 아니면 이 참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처럼, 혹은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책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읽으신 지식인 분께서는 나에게 입체감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읽게 된 동기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못 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어느 집이든 이 책은 꽂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끝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 나조차 한국어판과 원서 둘 다를 구매해놓고서도 중반부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2019년이 지나기 전에 그 명저를 읽어보자는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한 줄 평


복잡한 세상에서 날 지탱해줄 신념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든 책

서평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에 압도된 채 살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인간이 그것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어 어느 정보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속된 말로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인간이 내려야 하는 결정 또한 매우 많아졌다는 점이다.

결국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선택을 내리던 매우 짧은 시간밖에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마음 가는 것을 고르기만 해도 여전히 많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다.

하지만 과연 직관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이 얼마나 완벽할까? 더 나아가 그런 결정을 어느 비슷한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내 직관과 신념은 믿을 만한가?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도덕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문제를 과감히 건든다.

그렇다면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먼저, 독자에게 일반적인 상황을 주면서, 흔히 직관적으로 사용하는 신념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그런 직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역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이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갑자기 돌변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어 보이던 신념들이 곤란해지는(혹은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독자들 앞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틀어 무한 반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한 신념이 바르다고 확신이 들려던 찰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직관적 판단이 얼마나 줏대 없는지 증명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책이 아녔다면 앞으로도 줏대 없이 살지 않았을까?

마이클 샌델과 간접적으로나마 갑론을박을 하며, 나는 드디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의는 무슨 색일까?

정의.

법조인을 꿈꾸는 나에게 있어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으로 핵심적인 단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단어를 정의 내리기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례로 로스쿨 면접 준비하면서 나에게 가장 난해했던 질문도 정의에 관한 것이었다.

“정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 것 같은가요?”

로스쿨 빈출 면접질문

나는 많은 망설임 끝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파란색”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정의는 주관적이고, 파란색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최소한 나는 정의를 파란색이라고 정의한 나의 답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자면 각자 개인만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단순히 내 최애 색깔을 고른 것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내가 추구할 삶의 기준, 더 나아가 정의를 설정할 생각에 들뜰 뿐이다.

인생 기준을 찾기 위한 나만의 여정

나는 열린 결말을 질색한다. 분명 해답을 찾으려고 읽기 시작한 것인데 더 많은 질문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그 순간 오는 찜찜함이 최악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대부분도 열린 결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어려운 책을 여태껏 안 읽기 딱 좋은 핑계였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생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단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 책은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의, 혹은 포괄적으로 인생의 기준은 자기만의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처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단어를 정의하고자 한 뒤로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하나의 답으로 추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그 지역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옳은 정보를 통해 계획하는 것은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무척이나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 기준을 찾아가는 것도 일생일대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매우 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이 책은 나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잘 추려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직 2019년이 한 달이 남은 지금, 이 책과 함께 일생일대의 여정을 떠나보지 않겠는가?

2019년 12월 지정도서 – 정의란 무엇인가

발제 요약

  1.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다양한 철학자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철학 이론은 자신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각자가 삶을 살면서 ‘이것만은 지키자!’고 여기는 본인만의 신념이 있나요? 만약 없더라도,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여길만한 점을 공유해보도록 합시다.
  3. 책 뒷부분에 “서사적인 인간”에 대한 논의가 나옵니다. 각자 자신이 어떤 공동체, 혹은 어떤 소속에 속해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서사 속에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합시다.
  4. 저자는 “무엇이 정의인지,” 또한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사회가 이러한 것에 대한 논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5. 징병제를 채택한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모병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병제와 징병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해봅시다.

[읽게 된 동기]

로스쿨 면접 추천 도서로 읽기 시작했다. 스테디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였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책이었기 때문에 한껏 부푼 기대와 함께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한 줄 평]

인간을 신의 영역에 가깝게 만드는 생명공학 기술이 어떤 위험성을 지니는지 일깨워주는 책.


[서평]

언제나 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찬사를 보내왔다. 과학의 발전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랬기 때문에 기술에 규제하는 것에 있어 한결같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어차피 기술 앞에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기술의 양면성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내가 가지던 기술에 대한 긍정적 관념에 의문을 품게 했다. 윤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학의 발전에만 따라 변화한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대통령 생명윤리 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전공학은 치료 목적으로 발전되어왔다. 아픈 이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과학기술은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효과적이었다.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기존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체와 기억력을 강화하는 것은 점점 일상이 되어간다. 또 가까운 미래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별은 물론 성격과 외모까지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끼고 있을 왠지 모를 불안감과 불편함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이클 샌델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생이라는 선물

한 생명의 탄생은 보통 하늘에서 내린 축복 내지는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나는 공감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도 하늘의 선물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합할까?

마이클 샌델은 과감히 그 또한 선물의 일부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행복한 출생만을 선물로 여기는 것과 달리 그는 모든 인간의 삶이 포함될 정도로 개념이 넓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여부를 떠나서 태어났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우연히 주어진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성향, 재력,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태아는 우연히 자신에게 정해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이를 통해 인간은 그에 기반하여 인간사회는 개인의 성공을 우연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겸손한 태도를 배우고 사회적 빚을 지게 함으로써 연대감을 강화해왔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생명공학의 위험성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기존의 사회 기반이 되었던 겸손과 연대감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불행은 “잘못된” 선택을 고른 개인의 실패로 치부된다. 이러한 사회는 사회적 빚이라는 개념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근간이었던 겸손과 연대감이라는 가치를 오염시킬 것이다.

시험과 애더럴의 추억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유학 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애더럴을 찾았던 학생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애더럴은 원래 ADHD를 치료할 목적으로 발명된 각성제이다. 하지만 탁월한 각성효과로 인하여 잠을 일시적으로 깨워줄 뿐만 아니라 높은 집중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유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과제가 있는 날이면 애더럴을 구하기 위해 약국을 가는 학생들을 봐왔다. 오죽 미국에서 유행하면 한국에서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졌을까 싶을 정도로 반응은 좋았다.

그리고 꾸역꾸역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했는데도 애더럴을 복용하고 폭발적인 집중력을 보인 친구보다 성적이 낮을 때마다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은 매우 컸었다. 나도 모르게 복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욕구까지 들었던 생각까지도 이어졌다. 물론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한번 시도는 해볼 걸 이라는 아쉬움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나 자신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고, 이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약을 먹지 않음으로써 떨어졌던 기억력과 나의 집중력은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된 사실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료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애더럴은 이제 비의료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데에 있어 학생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었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 기술 도입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보내왔던 나의 관점을 재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이 대두될 사회적 문제에 윤리적 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인간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생명공학의 발전은 도입 전후로 하여 통합적인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공감이 되니 이 책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도 5점 만점을 부여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그에 대한 해답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이클 샌델의 책들의 큰 특징이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부로 해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생각할 공간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도 좋지만, 그의 개인적인 해결방안 또한 같이 정리되었다면 덜 찜찜한 느낌으로 책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서평

요즘 들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항상 불안감이 존재했다. 잠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법은 과연 맞는 길인지,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맞는 선택인지, 내년에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답 알기를 무서워서였을까? 바쁘다는 핑계을 대며 대답을 애써 외면했었다.

그랬기에 이 책이 처음 지정 도서로 선정되었을 때 나도 모를 거부감이 들었었다. 나는 아직 자문자답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을 덮은 지금, 나는 다시금 용기를 내보려 한다.

책과의 첫 만남

로스쿨 준비를 1년 더해야 할까 고민을 할 때 즈음, 이 책이 독서 소모임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철학, 과학 분야의 책 같이 어려운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점이기에 마음을 다잡고 이 책을 시작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 걸렸다.

그렇게 시작한 책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책의 제목이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서였다. 제목을 보고는 질문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유명 언론인인 저자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질문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자기 자랑을 만들려고 만든 개인의 에세이 수준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이 책의 원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원제목은 “Ask More,” 즉 “많이 물어봐라”였다. 질문의 질도 중요하지만 질문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독려하는 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니 저자가 나열했던 모든 사적인 이야기가 목적에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처음으로 돌아가 넘겨 지났던 사례를 하나씩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나에게 어떠한 철학책들보다 필요한 책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정말 단도직입적이다. 바로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 많은 양의 질문을 하기를 저자는 강조한다.

나는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실제로 여전히 많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을 파악했을 때만 해도 “맞는 얘기지. 질문은 정말로 중요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이 유산형 질문을 보면서 그 질문을 받는 객체가 꼭 타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남들에게 누구보다 많은 질문을 쏟고 이해하려고 했던 나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도 나 자신이니까 대충은 나의 선호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정작 주인공인 나 자신에 대한 인터뷰는 까먹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성공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직 대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렇게 나에게 자문자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림이 예전보다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매력적인 사람

요즈음 자기소개서를 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존경할만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부류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뚜렷한 목표 의식과 실행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의 의견과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줏대가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판을 바꾸는 질문>은 항상 새로운 걸 갈구하면서도 그들과는 달리 끝맺는 힘이 부족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을 대답해주었다. 나 자신에게 더 관심 갖고 더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만의 목표의식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그것을 향해 정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 20대의 절반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인생이 큰 폭으로 변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급해질 수도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질문으로 인해 약간 지체되는 것 같아도, 이것이 나의 목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단계라는 것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열심히 질문해서 나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아보자. 그렇게 되면 더욱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읽게 된 동기]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폭발하여 충동구매한 책이다.

그들을 지칭하는 것이 누구인지, 또 어떤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제목 지은 사람 칭찬해야 한다.

[한줄평 및 별점]

★★★★★ (5점 / 5점)

4년 동안 배운 경제학을 뒤집어버린 신선했던 책.

[서평]

나는 경제학도이다.

물론 석사나 박사의 지식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4년간 나름으로 열심히 경제 기본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닌가? 이런 나라에서 배운 경제학은 꽤 정확한 도구겠거니 하는 믿음과 그것을 배운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을 쓴 장하준 박사는 비주류 경제학자라고 본인을 지칭한다. 현재 경제학의 주류인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시장을 신봉하고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파로 1970년대 이후 경제학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학파가 주목받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그 결과 경제 위기 때 신자유주의 학파의 위기론이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경제학은 주로 신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 또한 진보적인 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제학 수업 대부분은 그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내가 4년 동안 배워왔고 믿어왔던 경제학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콕 짚어준다. 이 책을 쓴 장하준 박사는 비주류 학파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의 World Thinkers Top 20안에 들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가이다. 총 23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장마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경제 상식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저자는 주제 하나하나마다 단호한 어조로 강하게 반박한다.

그 반박들은 주로 자유주의자의 이론이 주장하는 현상에 대해 반증을 하는데 이 중 인상적인 부분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

이 부분은 행동경제학과 같은 대안 경제학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항상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의 핵심 전제인데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실 좀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모두 철저한 계산 속에 살았다면 헬스 산업은 손님 부족으로 진작에 망했을 것이며 개인의 파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매년 모든 사람의 새해 목표에 다이어트는 빠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에서만 매년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계산 오류”로 파산 신청한다. 결정적으로 2008년 경제 위기는 경제주체가 모두 합리적이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재앙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발생하고 말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책에선 자본주의의 국적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21세기를 이야기하면서 국제화는 빠질 수 없는 화두이다. 그때 나온 새로운 개념은 바로 초국적 기업이다. 우리나라도 삼성과 현대와 같은 우수한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수출을 하고 생산도 해외에서 한다. 이런 사례를 수업에서 다루다 보니 국경이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통계를 통하여 저자는 내 의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초국적 기업은 허상이라고 말이다.

그는 기업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의 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신자유주의자에 따르면 기업은 지극히 합리적인 존재로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수익 창출이다. 수익이 된다면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한다는 의미이다. 즉, 이익을 제외한 모든 것은 기업에 합리적인 판단에 대한 변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초국적 기업이라고 불리는 대부분 기업의 본사와 핵심부서는 원래 국가에 남아있다. 또한, 회사를 평가하는 일반 시민조차 애국심이라는 심리, 즉 이익과는 전혀 관련 없는 감정을 토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자유주의는 점점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에 당황해하고 있다. 합리성에 대한 전제에 나도 배우면서 잠깐 회의감을 가지긴 했었지만, 막상 그것으로 인해 설명되지 않는 사례를 직접 맞닥뜨리니 회의감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다음 공유될 장하준 박사의 주장은 더욱더 파격적이다.

2.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를 규제 공화국이라고 일컫는다. 실제로 나 또한 한국에 귀국한 뒤 그런 점을 강하게 느껴왔다. 암암리에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사고를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식 경제 교육을 받는 나에게 시장을 믿지 못하는 정부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장하준 박사는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선진국의 과거를 과감히 파헤치면서 여기에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현재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미국과 영국이 가장 큰 무역 보호 국가였다는 점을 밝히면서 말이다. 과거 미국이 처음 산업을 키우려고 할 때 매겼던 관세는 우리가 현재 고관세라고 비판하는 개발도상국의 관세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그리고 저자가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오히려 본인이 성장한 방법을 각종 규제로 남이 쓰지 못하게 막는다는 표현을 했을 때 강한 충격을 얻었다. 선진국의 발언권이 강한 WTO와 IMF 등은 분명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하며 많은 개발도상국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가? 또한 오히려 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는 적절한 보호무역과 같은 규제를 통하여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가 오히려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질이지 양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완벽한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시장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라고 한다. 노예들의 생산성이 바뀐 것도 아닌데 노예 거래가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하여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런 주장들에 대한 근거가 있다 보니 꽤나 타당하게 들린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장하준 박사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난 신자본주의이다. 사실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많다. 하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일종의 학파로 인해 발생한 것일 뿐이지,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학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해서 실패하고 있는 체제가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에 낙관적인 그의 결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마음을 풀기에 충분했다.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 시스템이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합리적이지 못한 우리들은 이러한 “안도감”이라는 감정을 통해서도 효용이 달라지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것이다.

최근 <넛지>를 읽고 나서 심리학을 가미하고 있는 대안 경제학의 일종인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커졌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하여 대안 경제학이 나오게 된 배경, 즉 현재 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에 관해 시작할 수 있어서 큰 수확이 있던 책이었다. 앞으로 어떤 학파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 상식을 어떤 학파가 깨줄지 벌써부설레온다. 새로운 지적 충격이 있던 모든 이에게 신선함을 주는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심화해서 보고 싶은 책들

  • 리처드 탈러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대니얼 카너만 <생각에 관한 생각>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 마이클 센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김현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읽게 된 계기]


STEW에서 선정되어 읽은 책.

 

[한줄평]


음모론이라는 흥미로운 재료를 망친 과도한 MSG

 

[서평]


음모론

사회는 정말 복잡하다.

복잡해진 사회를 이해하기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화되는 속도에 맞춰 정보를 획들할 수 있는 속도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졌을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식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알려진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공식적인 매체가 전해주는 내용에 의문을 던지고 숨겨진 실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펼치는 주장은 흔히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음모론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공언한 사건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실체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라는 전제로 사건을 바라본다. 실체의 존재라는 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건을 재조명하다보니 가끔 황당하게 복잡한, 즉 끼워맞추기 식의 설명을 할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한다.

 

흥미로웠던 설정과 도입부

우리나라 경제학자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우석훈의 작품 <모피아>도 한국 경제에 대한 음모론을 글의 기초로 삼는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재무부 출신 인사를 뜻하는 모피아는 엄청난 부를 사용하여 사회를 본인들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어마무시한 사람들로 이들은 막대한 금융자산을 이용하여 주요 재계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또한 이를 이용해 대통령까지도 본인들의 영향력 내로 끌어들여 대통령은 사실상 경제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한국은행 팀장 출신인 주인공 오지환은 소위 “경제 쿠데타”라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을 도와 이들을 상대한다는 내용이다.

돈 많은 자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음모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주장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그렇기에 제목과 처음 부분에서 나는 순조롭게 흥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경제용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건 전개를 이해하는데 경제학자라 그런지 용어가 사건 전개를 이해할때 크게 어렵지 않게 잘 풀어서 설명하였다. 영화 <빅쇼트>를 보면서 수많은 경제적 사고에 고통받았던 뇌 때문에 사건 파악을 위해 몇번을 돌려봤던 것을 생각하면 순조롭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긍정적인 요소였다.

또한 그들이 주장한 금융 엘리트들이 계획한 삶에 살고 있다는 음모론은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 살면서 이런 의문을 한 번도 안 던져보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각종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금융의 힘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 쑹훙핑의 책 <화폐전쟁>이 큰 인기를 누린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우석훈 작가가 정한 기본 설정에 큰 부담을 안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기본 세팅을 맞추고 사건이 전개될 복선들을 보며 흥미를 느낀 나는 이러한 도입부를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다. 모피아의 수장인 이현도가 대통령을 찾아가 방패가 되어줄 주인공 오지환을 친히 추천한다는 설정이 고개를 갸웃하게 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나중에 설명이 될 큰 그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소설의 주요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소설에도 과유불급이 있구나..

중반부부터 음모론이 강력하게 폭발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강력해서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오지환을 필두로 대통령을 지키고자 하는 측과 경제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모피아 측의 싸움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지정학적 특성상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에서 완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가 전세계 금융계의 중심이 되어간다는 설정은 읽는 나로 하여금 다소 과도한 MSG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MSG를 살짝 맛본 것에 불과할 줄 누가 알았을까?

대통령이 경제 쿠데타에 대한 대응으로 가지고 나온 통일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소설에서 정말 지체없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쉽게 통일을 위해 나가는 모습은 지난 70여년 간 크고 작은 대립이 끊임없었던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또한 중국과 미국이 한국의 금융내전의 이해관계자로서 제주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진격시키는 모습에서 초반에 잘 쌓아놓은 나의 흥미가 무너지게 되었다. 국내 경제에 대한 음모론을 큰 주제로 시작되었던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나에게 항공모함이 대치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장르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가 의도한 긴장감은 잘 표현되었지만 한국의 금융전쟁이 타국가의 이해관계에 얽히게 되어 초강대국 두 나라가 대치하는 것은 너무나도 과하게 나간 설정이 아닌가 하는게 내 짧은 생각에서 나온 의견이다.

전임 대통령과 과거 사건들을 언급하며 사실감을 높이려고 하였던 작가의 노력은 설정의 과도한 확장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려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확실했던 교훈

중간에 너무 과도한 설정의 연속으로 소설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의 마지막을 맞이하였을때 작가가 <모피아>를 통하여 의도하고자 하는 싶었던 이상향은 확실하였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민주화였다. 특히 마지막에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전진하는 모습에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메시지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한 점이 경제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것이었다면 이 글은 소기의 성공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성공에는 힘 약한 많은 이들이 대적할만한 상대, 즉 모피아를 음모론을 통하여 창조해냄으로써 극적으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모습을 연출한 작가의 노련미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렇기에 중반부에 쳐진 과도한 MSG이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독자들을 혼동시킨 것 같아 더욱 아쉽다. 그런 아쉬움때문에라도 그의 작품을 다시한번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때는 좋은 원재료를 망치지 않는 적절한 시즈닝이 되길 기대해본다.

[읽게된 계기]

변호사라는 글자에 혹해서 읽게 된 책이다.

 

[한줄평]

인생은 이론이 아닌 실전이다. 실전에서 우리가 변호사로부터 배워야 할 논쟁 승리 제1법칙은 바로 마음가짐이다.

 

[서평]

변호사 하겠다며 매일 같이 문제집을 뒤적이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다. 정신 없이 하다보니 벌써 내 인생 제일 큰 시험까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개념이 없어질만큼 정신이 없다가도 더이상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때 밀려오는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았다.

‘맘 편히 쉬지도 못하니 도움 될만한 책이라도 읽자’ 하면서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 <변호사 논증법>이다. 논리 교양서라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이 책을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것에 몇 배는 불려서 받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논리학의 기본원리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한 자비로운 마음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우리가 보통 변호사를 생각해보자 하면 대부분은 냉철한 판단력과 논리를 앞세워 법정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쉽게 떠올린다. (수많은 법정드라마의 힘인 것 같다.) 물론 빠른 판단과 사고력은 중요하다. 논리력이 부족하다면 법정에서 패소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적인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법정에서의 승리는 도구적인 의미로, 그들의 본연적 의무는 자신의 의뢰인의 편에 서서 그들이 법적으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임무를 뛰어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고력이 뛰어난 것으로 능사는 아니다. 그 성공의 핵심은 논리력이 아닌 의뢰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관점에서 정확히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그에 맞는 논리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변호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자비심”이라고 주장한다. 의뢰인의 관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는 공감은 변호사로 하여금 어떤 주장과 근거가 그의 입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작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토론과 자비로운 해석

정말 흥미로웠던 점은 저자가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의뢰인에서 확장하여 일반적인 논쟁 상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 것에 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논쟁에서 무슨 이해와 자비심이 필요한 거지?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쟁과 토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토론하면 생각하는 것은 나의 주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끔 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토론의 정확한 정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토론은 본질적으로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그리고 좋은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의견 교류는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소통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논쟁상황에서 더욱이 “자비심과 관심”을 강조해야 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지만 논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즉, 내 주장을 먼저 펼치기 보다 상대의 주장을 듣고 자비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할때 비로소 그에 대한 효과적인 논리적 전개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채 본인의 의견만을 관철하려는 것은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생산적인 결론은 얻지 못한 채 감정에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는 오늘날 법정을 제외하고서도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서로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우기며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는 고려도 하지 않은채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헐뜯기 바쁜 그런 장면말이다. 매일 같이 사회가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 같다.

우리가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부터 서로를 듣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책과 함께 변호사로부터 자비로운 해석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우리 모두 배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