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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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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플하다.

이제는 심플함의 대명사가 된 영화 <기생충>의 조여정(나는 이정도로 심플하진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성격 덕에 정말 낙천적이다. 때론 너무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주변 친구는 답답해하지만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좋았다. 그랬기에 이 심플함을 굳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좋다고 이렇게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남과 교류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복잡한(혹은 성숙한) 사고 과정을 거치는 사람과 만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수년 전, 나와 타인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혹은 다른 생각 구조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느냐고 이해심 깊기로 유명한 친구에게 물어봤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겐 뜻밖에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소설책 읽기였다.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다 현실세계에서 모티브가 된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작가들이 묘사해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 구조 또한 볼 수 있다고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언이 정말 들어맞았음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분명 진부한데… 왜 신선하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은 주인공 “나”와 그의 연인 “클로이”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다가, 이내 시들어가는 둘의 사랑. 내용 자체만 보면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다. TV 프로그램으로 상영된다면 작가의 귀가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게 축약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주인공 “나”는 정말 입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과를 졸업해서인지 몰라도, 그의 페르소나인 “나”는 복잡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극히 일상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그런 시점으로 사랑을 경험해보니 진부하다고 느낄 틈이 없어졌던 것 같다.

대충 봐도 철학가 관상을 가진 글쓴이, 알랭 드 보통

물론 읽으면서 이런 “나”가 피곤하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아니,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있지. 무슨 마르크스주의니 뭐니 하면서 왜 그 상대의 자질을 의심하지?’ 등과 같은 생각 말이다. 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철학자의 이름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플한 사고를 가진 나이기에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가끔씩은 불편하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나”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나에게 다가온 게 아녔을까?’ 하는 순간을 몇 번 겪을 수 있었다.

적당히 복잡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 걸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와 그 책의 주인공 “나”가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분명 비슷한 사건을 읽고 경험하는데도 말이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인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입체성 덕분에 동일한 것을 목격했을 때에 느끼는 바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어? 뭔가 이상한데?’ 싶었지만 쉬이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는 말로써 풀어냈고, 독자인 나에게 그 감정을 이해시켰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적당한 입체감도 필요할 것 같다는 당위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만들어낸 주인공 레벨의 입체성까지는 잘 모르겠다. 반 오십여 년을 무념무상으로 살아온 심플의 대명사 나한테는 그 생각이 과도하다 느낄 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항상 심플하게, 세상 걱정 없이 살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타인과 교감할 때에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들뜬 희망감에 기대가 된다.

결국 공부인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는 어떤 것이 나라는 자아에 입체감을 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의 조언대로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속마음을 들춰보는 것이 전부이려나. 아니면 이 참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처럼, 혹은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책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읽으신 지식인 분께서는 나에게 입체감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읽게 된 동기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못 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어느 집이든 이 책은 꽂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끝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 나조차 한국어판과 원서 둘 다를 구매해놓고서도 중반부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2019년이 지나기 전에 그 명저를 읽어보자는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한 줄 평


복잡한 세상에서 날 지탱해줄 신념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든 책

서평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에 압도된 채 살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인간이 그것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어 어느 정보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속된 말로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인간이 내려야 하는 결정 또한 매우 많아졌다는 점이다.

결국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선택을 내리던 매우 짧은 시간밖에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마음 가는 것을 고르기만 해도 여전히 많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다.

하지만 과연 직관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이 얼마나 완벽할까? 더 나아가 그런 결정을 어느 비슷한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내 직관과 신념은 믿을 만한가?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도덕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문제를 과감히 건든다.

그렇다면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먼저, 독자에게 일반적인 상황을 주면서, 흔히 직관적으로 사용하는 신념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그런 직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역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이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갑자기 돌변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어 보이던 신념들이 곤란해지는(혹은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독자들 앞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틀어 무한 반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한 신념이 바르다고 확신이 들려던 찰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직관적 판단이 얼마나 줏대 없는지 증명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책이 아녔다면 앞으로도 줏대 없이 살지 않았을까?

마이클 샌델과 간접적으로나마 갑론을박을 하며, 나는 드디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의는 무슨 색일까?

정의.

법조인을 꿈꾸는 나에게 있어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으로 핵심적인 단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단어를 정의 내리기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례로 로스쿨 면접 준비하면서 나에게 가장 난해했던 질문도 정의에 관한 것이었다.

“정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 것 같은가요?”

로스쿨 빈출 면접질문

나는 많은 망설임 끝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파란색”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정의는 주관적이고, 파란색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최소한 나는 정의를 파란색이라고 정의한 나의 답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자면 각자 개인만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단순히 내 최애 색깔을 고른 것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내가 추구할 삶의 기준, 더 나아가 정의를 설정할 생각에 들뜰 뿐이다.

인생 기준을 찾기 위한 나만의 여정

나는 열린 결말을 질색한다. 분명 해답을 찾으려고 읽기 시작한 것인데 더 많은 질문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그 순간 오는 찜찜함이 최악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대부분도 열린 결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어려운 책을 여태껏 안 읽기 딱 좋은 핑계였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생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단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 책은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의, 혹은 포괄적으로 인생의 기준은 자기만의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처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단어를 정의하고자 한 뒤로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하나의 답으로 추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그 지역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옳은 정보를 통해 계획하는 것은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무척이나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 기준을 찾아가는 것도 일생일대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매우 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이 책은 나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잘 추려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직 2019년이 한 달이 남은 지금, 이 책과 함께 일생일대의 여정을 떠나보지 않겠는가?

2019년 12월 지정도서 – 정의란 무엇인가

발제 요약

  1.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다양한 철학자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철학 이론은 자신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각자가 삶을 살면서 ‘이것만은 지키자!’고 여기는 본인만의 신념이 있나요? 만약 없더라도,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여길만한 점을 공유해보도록 합시다.
  3. 책 뒷부분에 “서사적인 인간”에 대한 논의가 나옵니다. 각자 자신이 어떤 공동체, 혹은 어떤 소속에 속해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서사 속에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합시다.
  4. 저자는 “무엇이 정의인지,” 또한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사회가 이러한 것에 대한 논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5. 징병제를 채택한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모병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병제와 징병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해봅시다.

[읽게 된 동기]

로스쿨 면접 추천 도서로 읽기 시작했다. 스테디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였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책이었기 때문에 한껏 부푼 기대와 함께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한 줄 평]

인간을 신의 영역에 가깝게 만드는 생명공학 기술이 어떤 위험성을 지니는지 일깨워주는 책.


[서평]

언제나 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찬사를 보내왔다. 과학의 발전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랬기 때문에 기술에 규제하는 것에 있어 한결같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어차피 기술 앞에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기술의 양면성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내가 가지던 기술에 대한 긍정적 관념에 의문을 품게 했다. 윤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학의 발전에만 따라 변화한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대통령 생명윤리 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빠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전공학은 치료 목적으로 발전되어왔다. 아픈 이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도의 과학기술은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효과적이었다.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기존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체와 기억력을 강화하는 것은 점점 일상이 되어간다. 또 가까운 미래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별은 물론 성격과 외모까지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끼고 있을 왠지 모를 불안감과 불편함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이클 샌델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생이라는 선물

한 생명의 탄생은 보통 하늘에서 내린 축복 내지는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나는 공감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도 하늘의 선물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합할까?

마이클 샌델은 과감히 그 또한 선물의 일부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행복한 출생만을 선물로 여기는 것과 달리 그는 모든 인간의 삶이 포함될 정도로 개념이 넓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여부를 떠나서 태어났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우연히 주어진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성향, 재력,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태아는 우연히 자신에게 정해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이를 통해 인간은 그에 기반하여 인간사회는 개인의 성공을 우연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겸손한 태도를 배우고 사회적 빚을 지게 함으로써 연대감을 강화해왔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생명공학의 위험성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기존의 사회 기반이 되었던 겸손과 연대감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불행은 “잘못된” 선택을 고른 개인의 실패로 치부된다. 이러한 사회는 사회적 빚이라는 개념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근간이었던 겸손과 연대감이라는 가치를 오염시킬 것이다.

시험과 애더럴의 추억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유학 시절 시험 기간만 되면 애더럴을 찾았던 학생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애더럴은 원래 ADHD를 치료할 목적으로 발명된 각성제이다. 하지만 탁월한 각성효과로 인하여 잠을 일시적으로 깨워줄 뿐만 아니라 높은 집중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유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과제가 있는 날이면 애더럴을 구하기 위해 약국을 가는 학생들을 봐왔다. 오죽 미국에서 유행하면 한국에서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졌을까 싶을 정도로 반응은 좋았다.

그리고 꾸역꾸역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했는데도 애더럴을 복용하고 폭발적인 집중력을 보인 친구보다 성적이 낮을 때마다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은 매우 컸었다. 나도 모르게 복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욕구까지 들었던 생각까지도 이어졌다. 물론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한번 시도는 해볼 걸 이라는 아쉬움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나 자신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고, 이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약을 먹지 않음으로써 떨어졌던 기억력과 나의 집중력은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된 사실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료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애더럴은 이제 비의료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데에 있어 학생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었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 기술 도입에 무조건적인 찬성을 보내왔던 나의 관점을 재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이 대두될 사회적 문제에 윤리적 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인간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생명공학의 발전은 도입 전후로 하여 통합적인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공감이 되니 이 책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런데도 5점 만점을 부여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그에 대한 해답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이클 샌델의 책들의 큰 특징이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부로 해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생각할 공간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도 좋지만, 그의 개인적인 해결방안 또한 같이 정리되었다면 덜 찜찜한 느낌으로 책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서평

요즘 들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항상 불안감이 존재했다. 잠을 자려고 눕기만 하면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법은 과연 맞는 길인지,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맞는 선택인지, 내년에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답 알기를 무서워서였을까? 바쁘다는 핑계을 대며 대답을 애써 외면했었다.

그랬기에 이 책이 처음 지정 도서로 선정되었을 때 나도 모를 거부감이 들었었다. 나는 아직 자문자답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을 덮은 지금, 나는 다시금 용기를 내보려 한다.

책과의 첫 만남

로스쿨 준비를 1년 더해야 할까 고민을 할 때 즈음, 이 책이 독서 소모임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철학, 과학 분야의 책 같이 어려운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점이기에 마음을 다잡고 이 책을 시작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 걸렸다.

그렇게 시작한 책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책의 제목이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서였다. 제목을 보고는 질문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유명 언론인인 저자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질문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자기 자랑을 만들려고 만든 개인의 에세이 수준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이 책의 원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원제목은 “Ask More,” 즉 “많이 물어봐라”였다. 질문의 질도 중요하지만 질문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독려하는 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니 저자가 나열했던 모든 사적인 이야기가 목적에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처음으로 돌아가 넘겨 지났던 사례를 하나씩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나에게 어떠한 철학책들보다 필요한 책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정말 단도직입적이다. 바로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 많은 양의 질문을 하기를 저자는 강조한다.

나는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실제로 여전히 많이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을 파악했을 때만 해도 “맞는 얘기지. 질문은 정말로 중요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이 유산형 질문을 보면서 그 질문을 받는 객체가 꼭 타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남들에게 누구보다 많은 질문을 쏟고 이해하려고 했던 나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도 나 자신이니까 대충은 나의 선호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정작 주인공인 나 자신에 대한 인터뷰는 까먹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성공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후세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직 대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렇게 나에게 자문자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림이 예전보다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매력적인 사람

요즈음 자기소개서를 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존경할만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부류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뚜렷한 목표 의식과 실행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의 의견과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줏대가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판을 바꾸는 질문>은 항상 새로운 걸 갈구하면서도 그들과는 달리 끝맺는 힘이 부족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을 대답해주었다. 나 자신에게 더 관심 갖고 더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만의 목표의식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그것을 향해 정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 20대의 절반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인생이 큰 폭으로 변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급해질 수도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질문으로 인해 약간 지체되는 것 같아도, 이것이 나의 목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단계라는 것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열심히 질문해서 나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아보자. 그렇게 되면 더욱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읽게 된 동기]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폭발하여 충동구매한 책이다.

그들을 지칭하는 것이 누구인지, 또 어떤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제목 지은 사람 칭찬해야 한다.

[한줄평 및 별점]

★★★★★ (5점 / 5점)

4년 동안 배운 경제학을 뒤집어버린 신선했던 책.

[서평]

나는 경제학도이다.

물론 석사나 박사의 지식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4년간 나름으로 열심히 경제 기본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닌가? 이런 나라에서 배운 경제학은 꽤 정확한 도구겠거니 하는 믿음과 그것을 배운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을 쓴 장하준 박사는 비주류 경제학자라고 본인을 지칭한다. 현재 경제학의 주류인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시장을 신봉하고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파로 1970년대 이후 경제학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학파가 주목받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그 결과 경제 위기 때 신자유주의 학파의 위기론이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경제학은 주로 신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 또한 진보적인 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제학 수업 대부분은 그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내가 4년 동안 배워왔고 믿어왔던 경제학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콕 짚어준다. 이 책을 쓴 장하준 박사는 비주류 학파임에도 불구하고 2013년의 World Thinkers Top 20안에 들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가이다. 총 23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장마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경제 상식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저자는 주제 하나하나마다 단호한 어조로 강하게 반박한다.

그 반박들은 주로 자유주의자의 이론이 주장하는 현상에 대해 반증을 하는데 이 중 인상적인 부분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1.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

이 부분은 행동경제학과 같은 대안 경제학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항상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의 핵심 전제인데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실 좀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모두 철저한 계산 속에 살았다면 헬스 산업은 손님 부족으로 진작에 망했을 것이며 개인의 파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매년 모든 사람의 새해 목표에 다이어트는 빠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에서만 매년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계산 오류”로 파산 신청한다. 결정적으로 2008년 경제 위기는 경제주체가 모두 합리적이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재앙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발생하고 말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책에선 자본주의의 국적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21세기를 이야기하면서 국제화는 빠질 수 없는 화두이다. 그때 나온 새로운 개념은 바로 초국적 기업이다. 우리나라도 삼성과 현대와 같은 우수한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수출을 하고 생산도 해외에서 한다. 이런 사례를 수업에서 다루다 보니 국경이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통계를 통하여 저자는 내 의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초국적 기업은 허상이라고 말이다.

그는 기업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의 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신자유주의자에 따르면 기업은 지극히 합리적인 존재로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수익 창출이다. 수익이 된다면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한다는 의미이다. 즉, 이익을 제외한 모든 것은 기업에 합리적인 판단에 대한 변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초국적 기업이라고 불리는 대부분 기업의 본사와 핵심부서는 원래 국가에 남아있다. 또한, 회사를 평가하는 일반 시민조차 애국심이라는 심리, 즉 이익과는 전혀 관련 없는 감정을 토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자유주의는 점점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에 당황해하고 있다. 합리성에 대한 전제에 나도 배우면서 잠깐 회의감을 가지긴 했었지만, 막상 그것으로 인해 설명되지 않는 사례를 직접 맞닥뜨리니 회의감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다음 공유될 장하준 박사의 주장은 더욱더 파격적이다.

2.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를 규제 공화국이라고 일컫는다. 실제로 나 또한 한국에 귀국한 뒤 그런 점을 강하게 느껴왔다. 암암리에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사고를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식 경제 교육을 받는 나에게 시장을 믿지 못하는 정부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장하준 박사는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선진국의 과거를 과감히 파헤치면서 여기에도 정면으로 반박한다. 현재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미국과 영국이 가장 큰 무역 보호 국가였다는 점을 밝히면서 말이다. 과거 미국이 처음 산업을 키우려고 할 때 매겼던 관세는 우리가 현재 고관세라고 비판하는 개발도상국의 관세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그리고 저자가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오히려 본인이 성장한 방법을 각종 규제로 남이 쓰지 못하게 막는다는 표현을 했을 때 강한 충격을 얻었다. 선진국의 발언권이 강한 WTO와 IMF 등은 분명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하며 많은 개발도상국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가? 또한 오히려 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는 적절한 보호무역과 같은 규제를 통하여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가 오히려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사뭇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질이지 양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완벽한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시장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라고 한다. 노예들의 생산성이 바뀐 것도 아닌데 노예 거래가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러한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하여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런 주장들에 대한 근거가 있다 보니 꽤나 타당하게 들린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장하준 박사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난 신자본주의이다. 사실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많다. 하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일종의 학파로 인해 발생한 것일 뿐이지,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학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해서 실패하고 있는 체제가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에 낙관적인 그의 결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마음을 풀기에 충분했다.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 시스템이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합리적이지 못한 우리들은 이러한 “안도감”이라는 감정을 통해서도 효용이 달라지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것이다.

최근 <넛지>를 읽고 나서 심리학을 가미하고 있는 대안 경제학의 일종인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커졌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하여 대안 경제학이 나오게 된 배경, 즉 현재 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에 관해 시작할 수 있어서 큰 수확이 있던 책이었다. 앞으로 어떤 학파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지,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 상식을 어떤 학파가 깨줄지 벌써부설레온다. 새로운 지적 충격이 있던 모든 이에게 신선함을 주는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심화해서 보고 싶은 책들

  • 리처드 탈러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대니얼 카너만 <생각에 관한 생각>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 마이클 센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김현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읽게 된 계기]


STEW에서 선정되어 읽은 책.

 

[한줄평]


음모론이라는 흥미로운 재료를 망친 과도한 MSG

 

[서평]


음모론

사회는 정말 복잡하다.

복잡해진 사회를 이해하기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가 다양화되는 속도에 맞춰 정보를 획들할 수 있는 속도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졌을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식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알려진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공식적인 매체가 전해주는 내용에 의문을 던지고 숨겨진 실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펼치는 주장은 흔히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음모론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공언한 사건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실체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라는 전제로 사건을 바라본다. 실체의 존재라는 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건을 재조명하다보니 가끔 황당하게 복잡한, 즉 끼워맞추기 식의 설명을 할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한다.

 

흥미로웠던 설정과 도입부

우리나라 경제학자이자 소설가로 알려진 우석훈의 작품 <모피아>도 한국 경제에 대한 음모론을 글의 기초로 삼는다.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재무부 출신 인사를 뜻하는 모피아는 엄청난 부를 사용하여 사회를 본인들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어마무시한 사람들로 이들은 막대한 금융자산을 이용하여 주요 재계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또한 이를 이용해 대통령까지도 본인들의 영향력 내로 끌어들여 대통령은 사실상 경제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한국은행 팀장 출신인 주인공 오지환은 소위 “경제 쿠데타”라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을 도와 이들을 상대한다는 내용이다.

돈 많은 자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음모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주장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그렇기에 제목과 처음 부분에서 나는 순조롭게 흥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경제용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건 전개를 이해하는데 경제학자라 그런지 용어가 사건 전개를 이해할때 크게 어렵지 않게 잘 풀어서 설명하였다. 영화 <빅쇼트>를 보면서 수많은 경제적 사고에 고통받았던 뇌 때문에 사건 파악을 위해 몇번을 돌려봤던 것을 생각하면 순조롭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긍정적인 요소였다.

또한 그들이 주장한 금융 엘리트들이 계획한 삶에 살고 있다는 음모론은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 살면서 이런 의문을 한 번도 안 던져보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각종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금융의 힘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 쑹훙핑의 책 <화폐전쟁>이 큰 인기를 누린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우석훈 작가가 정한 기본 설정에 큰 부담을 안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기본 세팅을 맞추고 사건이 전개될 복선들을 보며 흥미를 느낀 나는 이러한 도입부를 하루만에 읽을 수 있었다. 모피아의 수장인 이현도가 대통령을 찾아가 방패가 되어줄 주인공 오지환을 친히 추천한다는 설정이 고개를 갸웃하게 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나중에 설명이 될 큰 그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소설의 주요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소설에도 과유불급이 있구나..

중반부부터 음모론이 강력하게 폭발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강력해서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오지환을 필두로 대통령을 지키고자 하는 측과 경제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모피아 측의 싸움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물론 우리나라 지정학적 특성상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에서 완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가 전세계 금융계의 중심이 되어간다는 설정은 읽는 나로 하여금 다소 과도한 MSG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MSG를 살짝 맛본 것에 불과할 줄 누가 알았을까?

대통령이 경제 쿠데타에 대한 대응으로 가지고 나온 통일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소설에서 정말 지체없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쉽게 통일을 위해 나가는 모습은 지난 70여년 간 크고 작은 대립이 끊임없었던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또한 중국과 미국이 한국의 금융내전의 이해관계자로서 제주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진격시키는 모습에서 초반에 잘 쌓아놓은 나의 흥미가 무너지게 되었다. 국내 경제에 대한 음모론을 큰 주제로 시작되었던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나에게 항공모함이 대치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장르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가 의도한 긴장감은 잘 표현되었지만 한국의 금융전쟁이 타국가의 이해관계에 얽히게 되어 초강대국 두 나라가 대치하는 것은 너무나도 과하게 나간 설정이 아닌가 하는게 내 짧은 생각에서 나온 의견이다.

전임 대통령과 과거 사건들을 언급하며 사실감을 높이려고 하였던 작가의 노력은 설정의 과도한 확장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려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확실했던 교훈

중간에 너무 과도한 설정의 연속으로 소설에 대한 실망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의 마지막을 맞이하였을때 작가가 <모피아>를 통하여 의도하고자 하는 싶었던 이상향은 확실하였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민주화였다. 특히 마지막에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전진하는 모습에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메시지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작가가 의도한 점이 경제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것이었다면 이 글은 소기의 성공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성공에는 힘 약한 많은 이들이 대적할만한 상대, 즉 모피아를 음모론을 통하여 창조해냄으로써 극적으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모습을 연출한 작가의 노련미가 묻어난다.

하지만 그렇기에 중반부에 쳐진 과도한 MSG이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독자들을 혼동시킨 것 같아 더욱 아쉽다. 그런 아쉬움때문에라도 그의 작품을 다시한번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때는 좋은 원재료를 망치지 않는 적절한 시즈닝이 되길 기대해본다.

[읽게된 계기]

변호사라는 글자에 혹해서 읽게 된 책이다.

 

[한줄평]

인생은 이론이 아닌 실전이다. 실전에서 우리가 변호사로부터 배워야 할 논쟁 승리 제1법칙은 바로 마음가짐이다.

 

[서평]

변호사 하겠다며 매일 같이 문제집을 뒤적이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다. 정신 없이 하다보니 벌써 내 인생 제일 큰 시험까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개념이 없어질만큼 정신이 없다가도 더이상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때 밀려오는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았다.

‘맘 편히 쉬지도 못하니 도움 될만한 책이라도 읽자’ 하면서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 <변호사 논증법>이다. 논리 교양서라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이 책을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것에 몇 배는 불려서 받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논리학의 기본원리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논리적 사고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한 자비로운 마음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우리가 보통 변호사를 생각해보자 하면 대부분은 냉철한 판단력과 논리를 앞세워 법정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쉽게 떠올린다. (수많은 법정드라마의 힘인 것 같다.) 물론 빠른 판단과 사고력은 중요하다. 논리력이 부족하다면 법정에서 패소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적인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법정에서의 승리는 도구적인 의미로, 그들의 본연적 의무는 자신의 의뢰인의 편에 서서 그들이 법적으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임무를 뛰어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고력이 뛰어난 것으로 능사는 아니다. 그 성공의 핵심은 논리력이 아닌 의뢰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관점에서 정확히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그에 맞는 논리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변호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자비심”이라고 주장한다. 의뢰인의 관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는 공감은 변호사로 하여금 어떤 주장과 근거가 그의 입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작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토론과 자비로운 해석

정말 흥미로웠던 점은 저자가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의뢰인에서 확장하여 일반적인 논쟁 상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 것에 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논쟁에서 무슨 이해와 자비심이 필요한 거지?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쟁과 토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토론하면 생각하는 것은 나의 주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끔 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토론의 정확한 정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토론은 본질적으로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그리고 좋은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의견 교류는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소통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논쟁상황에서 더욱이 “자비심과 관심”을 강조해야 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지만 논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즉, 내 주장을 먼저 펼치기 보다 상대의 주장을 듣고 자비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할때 비로소 그에 대한 효과적인 논리적 전개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채 본인의 의견만을 관철하려는 것은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생산적인 결론은 얻지 못한 채 감정에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는 오늘날 법정을 제외하고서도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서로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우기며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는 고려도 하지 않은채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헐뜯기 바쁜 그런 장면말이다. 매일 같이 사회가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 같다.

우리가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부터 서로를 듣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책과 함께 변호사로부터 자비로운 해석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우리 모두 배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읽게 된 동기]


공부를 하던 중 “내가 왜 이런 공부를 하고 있지” 라는 어마어마한 현타가 오면서 눈에 확 들어와버린 책.

얇은 두께와 팩폭 제목에 이끌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한줄평 및 별점]


★★★★☆ (4점 / 5점)

공부 자체가 목적인 공부, 호흡 깊은 공부 실천해보자.

 

 

[서평]


지난 25년 간 기억이 나기 시작한 이후 내 기억 속에 공부를 아예 안했던 순간은 없는 것 같다.

학교 들어가기 전엔 빨간펜과 윤선생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땐 내신에 SAT에.

대학에 들어서도 전공과 교양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졸업할 수 있었고 졸업 후인 지금도 법학적성시험을 준비 중에 있으며 다시 공부 중이었다.

쉼 없이 공부하다보니 공부에 대한 무지막지한 회의감이 올라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난 25년간 공부는 한 것 같은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고 그 날 하루종일 그 생각에 휩싸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2019년 봄에 갑자기 찾아온 현타에 나는 답이 필요했고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있던 이 책은 내 개인 상담치료사가 되주기를 기꺼워했다.

 

한 일본 공부대가의 고민

이 책의 저자는 메이지대학교 인문학 교수 사이토 다카시로 그는 본인만의 공부 철학을 통하여 많은 일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초반부에 본인이 큰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도 공부를 한 인물이라고 본인을 밝혔고 그 문구를 읽는 도중 솔직히 책을 덮을뻔했다.

이 사람은 애초에 공부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의 공부에 대한 조언이 내 상황과 맞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덮기 직전 그가 젊은 시절 했던 고민을 고백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니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p.40)

 

이 문구를 보니 정말 뜨끔하였다.

나름 꾸준히 공부하고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자부했던 내가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이유가 이것이 아녔을까?

정말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꽤 쓸만한 지식을 습득해왔지만 정작 그렇게 쌓아온 지식을 통해서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그의 고백을 듣고 나니 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내가 공부를 즐기면서 성취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을까?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

사이토 교수는 공부가 목적이 되는 공부를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공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순간 성적과 성과와 같은 것에 중점이 되어 호흡이 짧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내가 언제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를 한 적이 있나 의문이 든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경제나 흥미로웠던 교양수업조차도 나중에는 시험으로써 평가를 받는다는 압박감에 그리 즐기면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수단을 위한 공부를 하다보면 나오는 가장 큰 단점은 흥미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생기는 현상을 많이들 경험했을 것이고 공감할 것이다.

이런 이유는 시험이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목적 달성 후 공부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공부를 제대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하다보면 질문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공부로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공부인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생기고 본인만의 목표가 생겼을때에 진정한 지식의 확장이 있고 그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사이토 교수는 역설한다.

그렇기에 성적이 목적이 된 우리들은 학교가 짜놓은 커리큘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기보다 한 수업 한 수업 듣기에 급급하다보니 공부가 지치는 활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현실적인 문제 상 (입시 준비 중) 성적을 아예 던질 수는 없기에 내 여가시간에라도 사이토 교수가 주장한 호흡 깊은 공부법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가 말한 호흡 깊은 공부법은 뭐냐고?

한 번 알아보자.

 

 

호흡 깊은 공부법

그가 말한 호흡 깊은 공부은 다름 아닌 순수학문 공부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하여 공부를 수단으로 사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수단으로 여기는 이 태도로 인하여 깊은 사유를 하기 보다는 눈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닥치는 순간 쉽게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문제해결 도구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이토 교수는 어떤 연유로 순수학문을 공부하라는 말을 했을까?

여러 순수학문에서 쌓은 내공은 나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순수학문에는 정확한 끝이 없는 무긍무진한 영역이고 어느 정도 공부했다고 자신이 무언가를 증명할 수 없을만큼 깊은 학문이다.

그렇기에 당장의 성장에 눈이 멀지 않고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 자체에 매료되어 한 걸음씩 나가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내공이 쌓이고 영역 각자의 문제해결 도구를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순수학문에 대한 사유의 힘을 통해서 막막한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렇듯 호흡 깊은 공부를 끊임 없이 하다보면 누군가가 쉽사리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지식체계, 즉 나만의 아우라가 생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한 현상을 나무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공부는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과 같다. 어떤 학자가 쓴 책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고 세계관을 공부하면, 나의 내면에는 그 학자의 나무가 옮겨 심어진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무의 종류도 각양각생일 것이고 숲의 면적도 넓을 것이다. (p.47)

내 자신의 흥미에 쫓아 공부를 나만의 공부플랜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나만의 아우라가 생긴다니, 공부할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공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겨지고 싶다고 얘기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 공부가 즐겁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나도 공부를 즐기고 싶다라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내가 해야하는 현실적인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도 소홀히 하면 안되지만 정말 나의 마음 가는대로 물 흐르듯 공부 자체를 즐기는 공부를 해보는게 어떨까?

사이토 교수가 제시한 이 길을 통해 성숙한 성장을 이룰 그 날이 기대된다.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모임의 두 번째 지정도서.

그 전에도 개발과 디자인, 그리고 기획까지 도맡아 하는 엘리트 후배의 강력 추천을 받았던터라 읽게 되었다.

 

 

[한줄평 및 별점]


★★★★★ (5점 / 5점)

21세기에 사업을 하고 싶다면 과감히 치킨 한마리만 덜 시키고 이 책에 투자하자. 

 

 

[서평]


나는 예전부터 이맘때에 미래 예측 관련 이야기에 매료됐었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지 않던 나의 책장에 항상 꽃혀 있던 것은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였을 정도였다.

특히 최근 들어, 티비를 틀때마다 기업, 정부, 개인을 가릴 것 없이 4차 산업 혁명에 대하여 토론하며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변할 것임을 예측하기 바빴고, 나도 질세라 새로운 신기술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열심히 인터넷을 통해 접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책에서 펼쳐왔던 SF와도 같은 예측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세상을 발견하였고, 그로 인한 실망감은 나로 하여금 한동안 제목에 “미래”가 들어간 책을 멀리 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추천 받았을때는 읽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여태껏 20여년 간 배워온 지식보다 이 한 책에 있는 지식이 더 많다며 이 책을 비즈니스계의 바이블이라 칭송하던 친한 후배의 말을 속는셈 치고 들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금 책을 덮자마자 서평을 써내려가는 나는 그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밥이라도 사줘야하나…)

 

 

디지털 물결을 대처하는 자세

디지털 물결은 어마무시하다.

여태껏 많은 기술이 그래왔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시작된 이 변화의 물결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빠른 변화는 우리의 삶과 생각하는 데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 기업의 앞날과 기업가의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매일 퀄리티 좋은 콘텐츠와 제품을 쏟아내고 정보는 범람하는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교수이자 이 책의 저자인 바라트 아난드였다.

 

 

<콘텐츠의 미래>의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예측이 재미있지만 동시에 소모적이라며 나와 비슷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둘의 차이가 있다면, 그는 그 회의감을 호기심으로 승화시켰고, 결국 그는 21세기 비즈니스를 운용하는 사람이라면 가슴 속에 새겨야할 중요한 통찰에 이르게 된다.

 

“연결 관계”는 오늘날 디지털과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p.36)

 

그는 자신의 통찰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근거로 삼았다.

넷플릭스, 아마존, 텐센트, 애플, 이코노미스트 등 오늘날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들을 담은 이 자료는 비슷한 산업에서 상이한 전략으로 맞써싸웠다가 패배한 타 기업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이 차이를 공통적으로 만든 원인을 찾게 된 것이다.

 

 

콘텐츠의 함정과 연결관계

“Everyone’s a Publisher”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모두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을 거라는 이 격언은 2019년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유명 개인 미디어를 주축으로 창출된 인플루언서 산업은 2020년 추산 약 11조 원에 육박하는 가치가 생성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인은 물론 기업들이 너 나할 것 없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모름지기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차별화”가 되어야 소비자의 눈에 띄고 선택 받아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기업가들은 더욱 질 좋은 콘텐츠를 제작함으로써 차별화되기를 바라며 콘텐츠의 질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바라트 아난드는 저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콘텐츠의 함정에 빠진, 즉 연결관계를 간과하고 저지르는 실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물결이 넘치는 21세기에서 하드웨어적, 제품적인 우월성은 들어간 비용은 높은 동시에 비용을 상쇄할 만큼 이익을 얻는 시간이 장시간 유지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기술의 발전과 많은 경쟁자로 인하여 퀄리티로 승부보기에는 모방이 그만큼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제품 자체에 대한 우월성을 대신하는 방법으로 확실한 차별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거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연결관계이다.

 

 

그가 말하는 연결관계는 크게 3가지로 아래와 같이 나뉜다.

1. 사용자 연결 관계 – 여러 고객을 하나의 대상으로 관리할 때 발생하는 연결 고리를 파악하라.

2. 제품 연결 관계 – 기존 제품을 방어하는 대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 창출의 기회를 찾도록 하라. 중요한 것은 지키기 위해 확장하는 것이다.

3. 기능 연결 관계 – 기업의 결정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맥락에 맞게 일관성 있는 선택을 하라.

 

자세한 이야기는 워낙 방대하여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저것과 같다.

사용자 간, 자사의 제품 간, 그리고 의사결정 간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잘 조합하여 잇는 순간, 함부로 다른 이들이 모방할 수 없는, 이른바 제대로 차별화를 이룰 수 있게 될 거라는 것이다.

특히, 이 메시지가 오늘날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에 큰 힘을 발휘했던 제품 퀄리티 자체의 우월성이 디지털 물결에 대항하여 더 이상 기업을 보호할 수 없기에 어떻게 하면 기업을 타사와 비교해 눈에 띄게 할 수 있는지 답을 제시해주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차별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the well 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이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개인의 삶에서 연결관계가 안 보이는 것과 같은 것들을 이어내는 것이 인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책에서 언급된 차별화를 위한 최선의 전략, 연결 관계의 구축과 강화와 일맥상 통하는 점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연결 관계를 통한 기업의 성공전략이 연결 관계를 통한 개인의 성공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때 나는 마음 가는대로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을 접하고 활동도 언뜻 연관 없어보이듯이 폭넓게 했기에 대학생활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활동과 전공 하나하나가 그 당시 나의 고민과 열정을 기록해주었고 지금의 나의 가치관과 관심이 있을 수 있게 나를 이끌었다.

물론 현재는 아직 점을 더 진하게 칠하고 더 많이 뿌리는 시기이기에 점들을 다 잇지 못하였지만,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차별화”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21세기 사회 속에서 과거의 경험들은 언젠가 하나의 길로 이어져,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독자적 브랜드를 가지게 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남들과 달라지려고 하는 용기”를 발휘하여 나만의 점을 찍어나가야만 하고 그러한 연결 관계들을 찾아내어 잇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