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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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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

12월 STEW 지정 도서


[ 한줄평 ]

도덕과 정의, 그리고 이들의 적용의 50가지 그림자


[ 서평 ]

올해 2월 첫 STEW 독서 소모임 정기 모임에서 도덕성을 주제로 논의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내가 했던 발언 중 하나는, 옳은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 또는 그런 사람을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에 들었던 예시다. 한 부부가 있다고 가정하자. 일반성을 잃지 않고, 한 쪽은 상대방을 죽을 때가지 매우 사랑하며 절대적으로 헌신했으며, 다른 쪽은 한 번도 들키거나 심지어 의심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사랑꾼 행세하며 지속적으로 바람을 폈다고 가정하자. 헌신한 쪽은 자연사할 때까지 동반자 덕분에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았다 느끼며 행복했다면, 바람핀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수가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내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로마인들의 공리주의부터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고향 마을 공습까지, 저자 마이크 샌델은 다양한 견해들이 맞부딪치는 사례들을 제시하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안다고 믿는 이들에게 다시 생각해보길 제안한다.

기술의 발전과 도덕성

몇 년 전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면서, 재조명받은 역사적 난제가 있다. 바로 ‘트롤리 딜레마’다.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가 있는데, 선로 중간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열차의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전환기가 있는데, 바뀔 선로에는 인부 한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맞을까?

“자율 주행 자동차가 누군가를 죽이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 (Why Self-Driving Cars Must be Programmed to Kill)” 논문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현되기 위해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주행 자동차 앞에 갑자기 여러 사람이 끼어드는 등 피치 못할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한, 앞에 있는 사람들을 치거나 갑자기 방향을 바꿔 운전자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중 선택을 해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자율 주행 기술이 나와도 상용화하기는 어렵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은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한 가지 예시 답안을 제시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사고가 날 것을 판단하는 순간, 해당 차량은 탑승자와 주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각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가치값이 작은 쪽을 치도록 알고리즘이 짜여져 있다.

이는 사람의 가치를 타인이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상대방의 가치를 판단하는 권한은 누가 쥘 수 있는 것일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가 일어나기 전 미리 범죄를 예견하는 기술을 활용하여 범죄자들을 잡는 사회를 그린다. 실제로 범죄율은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얼핏 들으면 치안이 좋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에 헛점이 있거나 생길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주인공에게 함정으로 작용한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 억울한 소수가 생겨도 괜찮은 것일까? 이러한 시스템이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의 졸라 알고리즘처럼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을까?

드론 배송을 한다는 아마존 프라임 에어는 몇 년 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서비스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술이 기존 산업과 흥미로운 접점을 만들어내기도, 이전엔 없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적용에는 필연적으로 위와 같은 윤리적 딜레마들이 따른다.

앞으로의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처럼 다양한 관점들을 고려하고 생각을 서로 맞부딪치며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읽게 된 동기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와 기차 이야기를 해주어서 알게된 책. 그때 그 친구가 빌려준 책이 아직도 내 책장에 있었다.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게 됐다. 이제 돌려줘야 겠다.

한 줄 평

내 안에만 갇혀있던 도덕과 정의에 대한 관념을 바꿔버린 책.

서평

나는 공리주의자 였다.

나는 공리주의자 였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 집단의 행복이 가장 커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선택을 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어떤 모임의 장이었을때의 일이다. 모임의 식사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의 선호가 높은 것을 찾으러 애를 썼다. 열심히 후보지를 찾고, 그 후보지를 투표에 올리기도 했다. 그럴때, 나는 내가 모임의 장이라는 큰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 결정하는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했다. 이것이 권력으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것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한가지 생각이 있다. 나는 나의 행복을 조금 줄이더라도, 집단 전체의 행복을 더 크게 늘릴 수 있다면 그런 행동을 기꺼이 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게 좋은사고방식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 집단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항상 사람들이 더 행복할 테니까. 이 사고방식이 정의로우며 존중받아야 하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바란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할 테니, 다음에는 너가 양보하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집단 전체로 보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도 공리주의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다음에 자신이 바랄 이익을 기대하면서, 양보하는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쾌락이나 이익을 위한 행동을 도덕적 가치가 없는 일이며, 의무적으로 하는 행동이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일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상대방에게 배려와 양보를 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내가 하는 만큼의 배려와 양보를 기대해왔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의도가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나의 미래의 호의를 바라며 또는 어떤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이렇게 하는것이 나쁜 행동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간혹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다. 사실, 내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었어도 상대방이 다음에 내게 호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는 없다. 만약 그런 의무가 있다면 내가 베푼것은 호의가 아니다. 나는 호의가 아니라 미래의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던것 같다. 상대방에게 다음의 호의를 바라며 호의를 베푸는 행동은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칸트의 말에 따르면, 조건이 붙는 행동인 가언명령이다.

정의로운 행동이라면’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 인간을 위해 내가 세운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깝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모든 행동을 합리화 할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모든 행동을 합리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반의 학생들이 모두 동의하여 한 명의 학생을 왕따시키는것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또 한 예로, 한 나라의 최고 부자가 한 명 있다. 그 부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동의한다고 해도, 한 나라의 최고 부자에게 재산의 일부를 모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남의 재산을 빼았는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법의 우선순위.

정의와 법이 항상 같은곳을 바라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 개념일까. 한 상황을 고려해보자. 자신의 아이가 굶주려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했을 때, 어느 상점의 빵을 훔쳐 아이에게 주었다면 이것은 생명을 구했으므로 정의로운 행동인가, 타인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정의롭지 않은 행동인가? 나는 생명이 재산의 소유권보다 높은 단계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행동은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 문구

  • 인간은 단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은 목적이 되어야 한다.
  • 권리가 공리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권리의 도덕적 근거는 무엇일까? 여기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개인은 타인의 행복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자기소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내 삶, 내 노동, 나라는 인간은 내게, 오직 내게만 속한다. 사회가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 나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인간은 목적이라는 공식이다.
  • 그러므로 나를 존중하지 않는것도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로 용납될 수 없다.
  • 칸트가 생각하는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상대가 어디에 살든, 우리기 상대를 얼마나 잘 알든, 모든 사람이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 이 말은 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한다면 누구나 똑같은 결론에, 유일한 정언명령에 이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유의지와 도덕법에 따른 의지는 똑같은 하나다.
  • 보편화하는 것은 강도 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 하려는 행도잉 다른 사람의 강도 높은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춰, 내가 하려는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지 점검하게 한다.

< 읽게 된 동기 >

‘STEW지정 도서

< 한줄평 및 별점 > ★★ ★ ★ ☆ ( 4점/ 5점 )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의

<서평>

정의에 대한 갈망이 큰 한국사회였던 만큼 처음 이 책이 소개되었을때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기껏해야 수십만권이 팔렸는데 한국에서는 이백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정의에 대한 관심에 더해 책 제목 선정과 마케팅의 성공이다. 뒤에서 설명하지만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때와 이후 몇 번이고 읽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이번 기회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트롤리의 딜레마 철도 사고 실험만 여러번 보았던 것 같다. 이번에 처음으로 끝까지 읽고 또 마이클 샌델이 생각하는 정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날 정의와 관련된 대부분의 논란은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 책에서는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행복, 자유, 미덕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학자들의 정의에 대한 해석들을 설명하며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의 정의라는 공리주의적은 입장에서부터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입장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시민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깨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도덕적 딜레마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고 실험들과 실제 사례들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세 제시하는 사고 실험들에 더해 영화들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공리주의 관련 파트에서는 아이로봇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초반부에 윌스미스가 교통사고로 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지게 된다. 이때 나타난 구조로봇이 각 인물의 생존확률을 계산하여 생존율이 가장높은 성인인 윌스미스를 구하게 된다. 기존의 가치들을 정량화해서 계산하는 공리주의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공지능이 많은 것을 계산하며 판단할때 생기게 될 많은 문제점들을 시사한다. 자유주의 관련 부분에서는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과 파란약을 선택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장면은 영화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곤 하는 딜레마이다. 빨간약을 먹고 괴로운 현실을 인지하고 그 속에서 살지, 아니면 파란약을 먹고 가짜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지 말이다. 마지막 미덕부분에서는 34번가의 기적의 산타재판이 떠올랐다. 산타의 존재를 증명하는 재판에서 미국 1달러 지폐에 있는 In God We Trust 를 근거로 미국정부 또한 공식적으로 신앙을 인정하기에 시민들도 같은 방식으로 산타를 믿을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의식이 우리 주위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이런한 정의에 대한 고민이 기술이 급속히 변해가는 우리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얼마전 타다 도입과 관련된 이슈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는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읽게 된 동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히 읽을 기회는 없었던 책이지만, 2019년 마지막 STEW 독서소모임 지정도서여서 읽게 되었다.

한 줄 평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서 얻은것, ……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정의에 대하여 다루지만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가 무엇인지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정의란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뒤,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답을 내리는 것을 유보시킨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목적론적 사고의 주장을 사례와 함께 다루면서 각자의 논리에서 각자의 변호를 들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은 다른 입장에서 제기하는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의를 정의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대와 계층의 변화와 함께 정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며 이런 자신의 강의와 같은 논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용되는 이야기들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책의 정의에 관한 사례들은 현재에도 통용된다. 한국의 경우 징병제 모병제, 올바른 대입선발제도, 소수우대정책, 빈부격차 문제 등은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한 토의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다. 이런 논의에서 철학적 논쟁은 보통 기저에 깔려있을 뿐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는 경우는 없다. 거기에 더해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참여를 통한 논의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의 논리로 치환되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한적 논쟁은 분명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모든 제도가 금방 부작용을 드러내었고 해결되었다는 생각보다는 갈등을 그냥 덮어두고 지나갔다는 생각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항상 이러한 한국의 정치 방식에 불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정치논쟁에는 기본이 되는 철학이 부족하고 참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게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껏 압축적 성장을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도 많은 시간을 할당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이 철학적 논쟁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개인을 넘어 사회적, 도덕적, 목적론적 관점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논쟁을 막고 있으며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재 한국의 가장 이슈 중 하나인 대입제도만 해도 그렇다. 모두가 제도의 변화에 따른 그 효과성에 대한 논의만 할 뿐 진적으로 대입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고 대입의 공정이 무엇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을 하지는 않는다.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사례에서 보듯 각 대학의 목적성에 과한 논의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여론조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부는 해결책을 발표한다. 신문에서도 자극적으로 그 결과에 대하여 나누기만 할 뿐 사람들 사이 건전한 공론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이야기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모든 현상의 텔레스, 목적을 중시하였고 이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발전시킬 수 있는 폴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에 대한 부분이 한국사회에서는 분명 부족하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낸 국가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논쟁없이 다수의 의견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일견 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소화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분명 글로써는 이해를 하지만 그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쓰고 있는 서평이 더욱 의미가 있다. 책을 덮은 뒤 24시간도 되지 않은 현재에 내 생각과 이해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후에 책을 다시 펼치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읽게 된 동기
처음 시작은 멋지니까 들게 된 책, 다시 만나다.

한줄 평
정의로운 인간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서평
철학은 흥미롭다. 인간을 단순한 동물 그 이상의 존재가 되게 해주는 데에는 이성을 담당하는 뇌가 그 기능을 한다고 했던가. 이성을 담당하는 뇌가 인간 다운 삶을 위해 추구하는 바르고 곧은 생각, 그것을 정의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고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평등,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라고 말했고 롤스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함을 강조했다. 센델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

센델은 정의란 무엇이다. 라고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전형적인 스터디 방식인 여러 케이스 분석을 통해 독자들이 다양한 답을 찾아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가치관을 정립하는데에 있어서 일정한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사고라는 것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서 얻는 것이다. 철로를 이탈한 전차에서 철로를 바꿀것인가 기차를 멈출것인가 라는 딜레마 상황에서,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행복을 추구하므로 다수를 살리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공리주의자의 선택을 인간 개개인의 권리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은 것 아니냐고 비판할 것이다. 중요한 도덕적 문제가 어떻게 양적으로 측정될수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생각도, 모든 선택이 생각보다 늘 자유롭지는 않으며, 자유지상주의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도 있다는 의문을 남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칸트는 중요한 것은 동기라고 말한다.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자기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동기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편 롤스는 정의로운 선택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한다고 한다. 첫번째는 차등의 원칙이다.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가는 경우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두번째는 공리주의를 거부하고 모든 시민이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을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과, 재능있는 사람을 격려해서 그 재능을 개발하고,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 칸트와 롤스의 철학은 좋은 삶에 대한 다른 시각적 차이들 중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정의와 권리의 기본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공동성을 고민하는 의견 그 어떤 것도 모든 상황에서 맞는 절대적 선은 없다. 상황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철학에 따라 생각과 선택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자라면 통찰의 힘을 키울 수 있어야 하고, 통찰력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한번쯤 고민해 보았던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해보고 싶다.

인상 깊은 문구

*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 가격 폭리에 대한 분노는,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도덕적 주장의 표현이다. 분노는 자격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다. 다시 말해, 부당함에 대한 화다.

*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 *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적절한지 찾아 내야 한다.

읽게 된 동기

철학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stew 마지막 독서모임을 토론으로 불태워보자. Let’s Fire!!

한줄 평

철학은 삶의 방향이고, 뼈이며, 살이다. 쉬운 철학 이야기들을 통해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책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분명 이 물음을 들은 사람들은 “왠 뜬금없는 소리냐” 할것이다. 정의는 나에게 밥과 빵을 주지 않고, 반찬도 주지 못한다. 밥과 빵은 현대에 빡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며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때, 이것이 ‘이득인가 아닌가‘가 아닌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정의로운가, 아닌가‘로 한번쯤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철학 내용등을 재미나고 쉬운 사례들로 같이 대화하고 토론해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한때 공동선, 절대선에 매우 빠져있었다. 왜냐하면 역사를 매우고 인문학을 배우는 대학교때 내가 누리는 권리들이 소수의 리더들과 다수의 피를 통해 이루어진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부유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녔지만 당일 먹어야 할 식비를 걱정하며 살지는 않았다. 그 하나만으로 엄청난 행운인 것이고 컴퓨터, 휴대폰, 지하철, 버스 등 다양한 현대 기기를 별 생각없이, 어려움 없이 지금까지도 편히 사용하고 있다.

이것들이 가능한 이유들이 난 정의라는 이름 또는 무엇이 더 옳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들이 이룬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는 사회제도가 없어진지는 채 수백년이 되지 않은것 처럼 말이다.

정의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오늘 또는 내일 막 필요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점차 복잡해지고 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정의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한번쯤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위 10% 국가 전체 분의 70%(정확히는 66%) 가량을 보유 하고 있다. 하위 50%는 전체 자산의 약 2% (정확히는 1.5~1.7%)를 보유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상위 1% 약 25% , 부의 1/4 을 가지고 있다. 즉 100명의 사람으로 봤을때 1명이 가진 자산이 50명이 가진 자산을 다 합친것을 아득히 넘어 10배 이상 가지고 있다.

지금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정의롭게 사는것이 의미가 있는것인가? 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 꼭 공동의 선을 추구해야 하는가? 누군가 나의 권리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침범할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범해도 되는것인가? 무엇이 옳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이 책은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 줄 것이다.

인상 깊은 문구

  • 선한 의자가 원래 의도를 널리 퍼뜨릴 힘이 매우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 그것은 그 자체로 충반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 내 의지는 결코 일차원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원인의 결과이자 이런저런 충동이나 끌림의 도구가 된다.

읽게 된 동기


5년전 쯤, 온라인을 통해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강의를 들은적이 있다. 그 때 당시 샌델은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하며 학생들에게 어떠한 방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는 당시 강의의 바탕이 된 책이다. 책보다 강연을 통해 내용을 먼저 접근했지만, 이번에 독서 서평을 쓰면서 다시한번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한 줄 평

읽을수록 더 어려운 책


서평

많은 철학책들을 보다보면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정의란 ~~것이야, 왜냐하면 ~~ 때문이지”와 같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작가의 생각을 전달한다. 이 책이 다른 철학책과 다른점이 있다면, 샌델은 자신의 생각을 처음부터 뚜렷하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을 독자에게 제시하며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요?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 방법인가요?”라고 묻는다. 독자는 책을 읽을수록 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샌델은 ‘정의’를 규정하는 요소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의 사고를 제시한다. 공리주의는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록 정의에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는 시민의식을 고찰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많은 딜레마적 요소를 제시하며 각 주의마다 어떤 답을 내리는지를 보여준다.

도덕적 딜레마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안락사, 장기 매매, 성매매 등이 허용될 수 있을까

#열차 안,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서 선로 밖에 있는 5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정의로운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후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가 등.

이런 다양한 딜레마 요소를 물어보며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 끊임 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사실, 거창하게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공리주의’ 등으로 표현했지, 이런 딜레마적 상황은 우리 삶 곳곳에서 보인다. 특히 지난 정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부터 우리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공정과 정의였다.

여기서 잠깐 퀴즈..

Q1. 부잣집 딸로 태어나 다양한 입시 교육을 받고 예체능 활동을 하며 , 심지어 조작된(?) 상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한 아이는 공정성을 해쳤을까?

Q2.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국회의원, 아버지 몰래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 나는 아무런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기업측에서 내 입사원서에 후한 점수를 주어서 결국 입사에 성공했다. 나는 정의로운가?

Q3.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을 올렸다. 목적은 선의로 가득 찼지만, 오히려 자영업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은 고통의목소리를 냈다. 이 상황은?

이렇게 살다보면 마주치는 많은 문제들의 이면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공리, 공동체, 자유의 문제가 얽혀있다. 책 마지막에 샌델은 롤스의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무지의 베일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어떤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의 사회적, 선천적 조건들을 가림으로써 어떠한 대안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모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 베일을 통해 특수한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가장 정의로운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센델의 제시한 개념에 백번 공감하고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베일을 씌운다고 사회적 조건과 제약상황이 가려지지 않는다. 공정과 공정을 외치고 들어선 정부라도 못하고 있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로워지기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해야한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촌지가 대놓고 남발됐던 시기다.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적하고, 고민한 끝에 우리사회는 점차 공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질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던 사례들이 지금은 ‘갑질’이란 이름으로 뉴스에 오르락 내린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어떤 것이 정의와 가장 부합하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샌델이 말한 무지의 베일 역시 사회에 쉽게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가 정의로워지고 건강하기 위해선 사회 불편러가 되어 누구나 할 말을 하고 개선을 하면 되지 않을까싶다.

감명깊게 읽은 문구

  • 모든 취향은 동등하게 계산된다. 벤담은 이 쾌락이 저 쾌락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이 쾌락이 저 쾌락보다 더 고급이라거나, 더 가치있다거나, 더 고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자부심과 수치심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로부터 나오는 도덕 감정이다.
  •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어떤 통합이나 일관성을 염원하는 서사적 탐색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열렬히 지지한다고 해도, 다수가 특정 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읽게  동기 ]

대학생 시절, 허세를 위해 읽었지만 허세로 남았던 책.

Stew 독서소모임 덕분에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

한줄평 ]

내가 생각하던 가치에 대해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달고 싶다면?

서평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가치관에 대한 의문점을 품게 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판단할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타인은 나에게 같은 생각을 품을 것이다. 모든 생각에는 정의에 대한 서로의 다른 판단이 들어있다.

대학생 시절, 철학에 빠져있던 적이 있다. 매 학기 철학 교양을 들으며 철학 책을 읽고, 교수님에게 질문하던. 철학이 주는 세련됨과 허영심이 막 사회에 나온 나에게는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생각해보면 얕은 철학적 지식으로 내 생각을 포장하고, 남의 생각을 속으로 비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읽었던 책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다.

30대가 된 지금 이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20살 세상을 너무 몰랐기에 책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됐다면, 지금은 조금은 책의 내용이 이해가 된다

저자는 책에서 다양한 철학 이론으로 여러 사례에 접목하여, 각 철학적 판단이 가져다 주는 타당함과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풀어준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세 가지 단어로 정리 한다.

행복, 자유, 미덕

  1. 행복 – 공리주의

제러미 밴담이 주장한, 도덕의 원칙은 사람들의 공리를 극대화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

가장 비판과 반박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철학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집단이 중심이 되는 현 사회 시스템에서 쉽게 내세우는 논리이다. 정치인들이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다수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논리의 정책을 입안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특히 세상은 점점 사람이 아니라 금융과 숫자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숫자는 사람과 다르게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숫자로 판단하는 세상에서는 소수의 존엄이나 권리보다는 다수의 행복 극대화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많은 함정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공리주의에 기반한 정책들이 사회의 기반을 형성한 이 후에, 여기서 발생하는 소수에 대한 문제점들을 개별적 정책 입안으로 보완하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편견이 들어간 단어일 수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어떤 가치 판단을 할 때 피해를 볼 수 있는 소수를 먼저 생각할 것인지, 다수의 행복을 우선할지 물어본다면 어떤 통계치가 나올까?

  • 자유

자유는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단어다. 발전과 비례하는 단어인 자유.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단어임에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무서운 단어이다. 모든 정의에 대한 판단을 인간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순간 이 세상은 무법지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이 있다.

특히 책에서 문제 삼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가장 큰 반박 점은, 자유로운 합의의 뒤에 강압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신장을 파는 행위는 자유로운 계약이지만, 돈이 없다는 강제적인 상황이 자유를 뒷받침 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정의에 대한 단어 중에 가장 옹호하지 않는 철학이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동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를 옹호하는 칸트의 철학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칸트의 철학은 읽다 보면 긍정하고 있지만, 난해한 내용들이 많아 생각하기가 어렵다.

칸트는 인간은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이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기에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자체가 목적이며 도덕인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가치의 기준은 결과 (공리주의) 가 아닌, 동기라 말한다.

가장 공감 갔던 철학 이론은 존 롤스의 평등 이론이다.

모든 원칙은 모두가 평등한 상황을 전제 하에, 무지의 장막 뒤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자기가 우월적 위치가 아닌, 힘든 상황에 처한 소수일 수 있다면? 아마 현재와 같은 사회시스템 보다는 발전이 늦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중 받는 사회일 것이다.

존 롤스의 이론에 가장 공감 가는 것은, 모든 개인의 상황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타고난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 또한, 노력하는 능력도 상황에 의해 길러진 것이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롤스는 ‘차등 원칙’을 주장한다. 환경에 의해 가지게 된 대가를 일부 공동체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이와 비슷한 논리이다.

  • 미덕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할 것을 받는 것이라 정의한다. 텔로스라는 목적에 의해 모든 정의의 분배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텔로스에 맞게 시민의 삶을 미덕으로 인도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 말한다.

어려운 대목이다. 책에 나오는 사례를 통해서는 공감가는 부분이 있지만, 목적을 정하는 인간이 불안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초래하고 자유를 억압할 수 있기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 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정의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의는 단순히 어떤 철학적 잣대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기에 정의는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라 말한다.

어쩌면 저자의 마지막 말이, 이 책의 다양한 철학적 논제들과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들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하면서도 나와 다른 가치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 또한 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정의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읽은 책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다 읽은 날짜 : 2019년 11월 27일

< 읽게 된 동기 >

‘ STEW독서소모임’ 지정 도서

< 한줄평 및 별점 > ★★ ★ ★ ☆ ( 4점/ 5점 )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정의’라는 공기.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서술한 책이다. 답을 딱 내리기 어려운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철학자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이 제시된다. 작가에 따르면 정의는 세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목적 그 자체의 자율적인 행동으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시민의 깨어있는 사고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 정리하면서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옆자리 동료가 어느 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ㅇㅇ님 정의란 무엇일까요?” 내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이거 무슨 상황인 거지 생각하고 그 의도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직장인이 되고서 누가 얼마를 벌고 어떤 것을 샀는지에 다들 민감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가 되었다. 나 또한 내년 연봉 협상이나 궁금하지(오를 거라 믿습니다) 지금껏 정의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나의 최초의 도덕적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도덕 시간에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도박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친구의 돈을 잠시 훔쳐도 되는 걸까요?

아마 목적만 옳다면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도덕 선생님은 “동기가 중요하더라도 돈을 훔치는 것은 범죄니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별 생각 없이 지나간 것 같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헌법 시간에 정의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나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불법만 아니면 괜찮다는 전형적인 법대생 마인드가 내 인생의 근간을 이룬 셈이다. 직장인이 되고서 따로 정의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조직과 개인 사이에 윤리의 균형점을 찾는 데 노력했다. 조직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개인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개인은 조직을 통해 자아 실현할 수 있는가? 어찌 보면 이 사회의 정의를 생각한 것이다.

정의가 법전에 쓰여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正義는 단번에 定義할 수 없다. 작가는 정의의 여러 관점을 반론하고 연대 의무를 지는 정의를 말한다. 개인은 사회의 일원이며 시민으로서 토론하고 실천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론은 없는 것인가? 작가는 시민은 그 사회에 특별한 의무가 있고 국내산 소비를 장려하거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 사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이 되어 사회에 해만 입히는 사람과 시민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 타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이 정말 정의인가 생각해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 손해를 끼치는 현실은 이미 존재한다.

나는 ‘중요한 것은 동기다’라고 말하는 이마누엘 칸트의 주장에 가장 설득이 됐다. 칸트는 인간은 생각하는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제시했고, 이는 현재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잘났든 못났든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 주장은 최근 나에게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만약 로봇이 인간처럼 생각한다면 그리고 인간처럼 권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인간의 이성과 로봇의 이성의 차이를 설명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로봇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가 올 것이다. 그전까지 칸트의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보편적 권리의 주체다.

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한다. 이 업계에 왜 오게 된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다는 선구자적 우월의식도 있었지만, 사회에 신뢰를 구현하는 새로운 합의 시스템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도 사실이다. 결과야 어찌 됐든 칸트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동기’가 아니겠는가! 정의를 따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작가의 말마따나 공동선을 추구하는 중이다. 평소에는 열심히 일하고(범죄자를 잡아 사회에 기여도 하고) 필요한 소비를 하고 세금을 내고, 청소년 교육을 위해 기부를 하고 정당의 권리당원으로서 의제에 투표도 하고 국민적 공분이 생기는 사건이 생기면 촛불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시민으로서 떳떳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자연스럽게)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이 책을 당신의 책장으로 선물해주고 싶다. 나에게 책을 사달라고 요청해보라! 물론 나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인상 깊은 문구>

  • 허리케인 찰리가 지난간 뒤에 일어난 가격폭리 논쟁은 도덕과 법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재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연 재해를 이용해, 시장이 견디기만 한다면 어떤 가격을 불러도 상관없는가? 이때 법이 조금이라도 힘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가격폭리 금지가 구매자와 판매자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할지라도 주정부는 가격폭리를 금지해야 하는가? 16p
  • 그러나 가격폭리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지각없이 성을 내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도덕적 주장의 표현이다. 분노는 자격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다. 다시 말해, 부당함에 대한 화다. 18p
  • 이처럼 가격폭리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다들 자격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을 때 분노하며,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는 탐욕은 포상이 아닌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법을 만들어 미덕을 심판하려 할 때는 우려를 표한다.
    이 딜레마는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 하나를 드러낸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 20p
  •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가격폭리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상이군인훈장과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여러 주장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아냈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이상은 정의를 고민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암시한다. 33p
  • (한 아이를 가두고 비참하게 사는 대가로 행복해진 도시 이야기를 그린 책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인용하며) 이 조건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인간의 기본권 존중을 내세워 벤담의 공리주의에 반박하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조건으로 시 전체가 행복해진다 해도 그렇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명분 아래 죄 없는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잘못이다. 63p
  • 밀은 저서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어권 세계의 고전이다. 이 책의 요지는,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의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개인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유일한 행동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라는 게 밀의 주장이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내 “독립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개인은 자신에 대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주권을 갖는다”. 74p
  •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규제 없는 시장을 옹호하면서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데, 그 명분은 경제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우리들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도 똑같이 존중한다면, 우리 소유물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다. 89p
  • 아이를 출산하는 행위와 전쟁을 수행하는 행위만큼이나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인도의 대리 출산과 앤드루 카네기가 남북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가를 생각하도 보면, 정의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게 하는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 143p
  • 칸트는,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자율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이성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이 있으며, 이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167p
  •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 결과를 낳아서가 아니다”라고 칸트는 말한다. 그것은 널이 인정받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로 선하다. “비록 (…) 이 의지가 원래 의도를 널리 퍼뜨릴 힘이 매우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ㅔ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158p
  • 칸트식 존중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우리 모두에게 비차별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존중이다. 그렇기에,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와 똑같이 용납될 수 없다. 또 그렇기에, 칸트의 존중 원칙은 보편 인권 원칙과도 통한다. 칸트가 생각하는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상대가 어디에 살든, 우리가 상대를 얼마나 잘 알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173p
  •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다. 국가의 목적은 “상호 방위를 위해 동맹군을 파견하거나 (…) 경제 교환을 수월하게 하고 경제 교류를 증진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정치는 그보다 숭고한 행위인 좋은 삶을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게 만드는 것, 즉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272p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도덕적 행위자로서 목적과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자발적 존재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310p
  • 매킨타이어는 젊은 독일인의 예를 제시하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1945년 이후에 태어났으니, 나치가 유대인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든 현재 자신과는 도덕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믿는다. 매킨타이어는 이 예에서 도덕적 천박함을 발견한다.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자아를 서사적으로 보는 관점과 명확히 대조되는 입장이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다.’ 312p
  • 만약 도덕적 행위자로서 서사적 개념에 더 끌린다면, 정의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을 고민할 때 우리 정체성의 근거지인 공동체의 선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면, 중립을 갈망하는 태도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336p

읽게 된 동기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못 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어느 집이든 이 책은 꽂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끝까지 읽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 나조차 한국어판과 원서 둘 다를 구매해놓고서도 중반부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2019년이 지나기 전에 그 명저를 읽어보자는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한 줄 평


복잡한 세상에서 날 지탱해줄 신념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든 책

서평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에 압도된 채 살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인간이 그것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어 어느 정보든 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속된 말로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인간이 내려야 하는 결정 또한 매우 많아졌다는 점이다.

결국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선택을 내리던 매우 짧은 시간밖에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마음 가는 것을 고르기만 해도 여전히 많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다.

하지만 과연 직관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이 얼마나 완벽할까? 더 나아가 그런 결정을 어느 비슷한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내 직관과 신념은 믿을 만한가?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도덕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는 문제를 과감히 건든다.

그렇다면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먼저, 독자에게 일반적인 상황을 주면서, 흔히 직관적으로 사용하는 신념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그런 직관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역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이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갑자기 돌변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어 보이던 신념들이 곤란해지는(혹은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독자들 앞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틀어 무한 반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한 신념이 바르다고 확신이 들려던 찰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직관적 판단이 얼마나 줏대 없는지 증명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책이 아녔다면 앞으로도 줏대 없이 살지 않았을까?

마이클 샌델과 간접적으로나마 갑론을박을 하며, 나는 드디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 기준을 적용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의는 무슨 색일까?

정의.

법조인을 꿈꾸는 나에게 있어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으로 핵심적인 단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단어를 정의 내리기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례로 로스쿨 면접 준비하면서 나에게 가장 난해했던 질문도 정의에 관한 것이었다.

“정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 것 같은가요?”

로스쿨 빈출 면접질문

나는 많은 망설임 끝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파란색”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정의는 주관적이고, 파란색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최소한 나는 정의를 파란색이라고 정의한 나의 답변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자면 각자 개인만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단순히 내 최애 색깔을 고른 것에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내가 추구할 삶의 기준, 더 나아가 정의를 설정할 생각에 들뜰 뿐이다.

인생 기준을 찾기 위한 나만의 여정

나는 열린 결말을 질색한다. 분명 해답을 찾으려고 읽기 시작한 것인데 더 많은 질문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는 그 순간 오는 찜찜함이 최악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대부분도 열린 결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어려운 책을 여태껏 안 읽기 딱 좋은 핑계였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생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단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 책은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의, 혹은 포괄적으로 인생의 기준은 자기만의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처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단어를 정의하고자 한 뒤로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하나의 답으로 추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그 지역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옳은 정보를 통해 계획하는 것은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무척이나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 기준을 찾아가는 것도 일생일대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매우 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이 책은 나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잘 추려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직 2019년이 한 달이 남은 지금, 이 책과 함께 일생일대의 여정을 떠나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