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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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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안입니다

2. 한줄평 의견 수렴 후 내용 수정 가능 / 실명이 아니라 원하시는 이름으로 수정 예정 (OO 전문가 등등)

3. 수정이나 보완 원하는 부분은 맘 편하게 소모임 할 때 의견 수렴하겠습니다 (모두가 만들어가는 STEW 잡지입니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

– 눈먼 자들의 도시 –

 

2015년 출범해 어느덧 5살이 된 뜨거운 청년들의 모임 STEW 독서소모임에서 우리들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 첫 번째 주제는 사라져가는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선정됐습니다. 주제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람에게 익히 알려진 책으로서, 독자들이 사회 발전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자신 돌아보고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명저입니다.

책의 시작은, 치료제가 없는 백색 실명 전염병이 발병하며 감염자들을 한 곳에 수용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한 여성만이 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상황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보이지 않기에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성이 사라진 여러 상황과 이들을 대처하는 사회 권력들의 태도입니다. 

STEW 독서소모임에서는 몇 가지 주제들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눴습니다.

 

<질문1> 주인공은 혼자만이 볼 수 있기에 사람들을 도와주고, 어떤 상황 속에서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합니다. 과연 이것은 희생이었는가? 의무였는가?

–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특별 하다는 게 알려지면 힘들어지기에 주인공의 행동은 희생이다.

–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의무는 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의무 없이 희생한 것이다.

– 동기가 무엇이든, 내가 하지 못할 일을 누군가 대신해줬다는 자체가 희생이라 생각한다.

VS

–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자기만이 볼 수 있는데 지켜볼 수만도 없을 것이다.

– 희생인 면도 있지만, 내가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 나가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 사고방식은 희생이다. 하지만 사회적 의무라 생각해야 덜 괴롭고 사회가 발전한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가 더 뛰어난 것을 나눠야 한다. 그렇기에 의무라 생각한다.

 

<질문2> 극한의 상황에 직면할 때도 인간은 그 속에서 권력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권력은 필요할까요? 권력은 무엇이며, 권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 권력이 필요한가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누군가는 권력을 쥔다.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공권력 때문이다.

–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인간과 사회를 조율하려면 권력은 필요하다. 책임감 있는 권력이 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 권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권력은 스카이캐슬 마지막에서 장면에서 나오듯이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 권력은 내가 하는 일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점차 권력이 분산되고 있고 더 배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권력의 부패함을 보며 권력의 필요성을 의심한다.

– 권력이 올바르게 쓰이게 하는 게 다른 구성원들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 권력은 Power. 별거 아니라 생각한다. 카페 가서 돈 주고 커피 받으면 그것도 권력이다. 권력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저자는 눈이 먼 상태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에 대해 말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눈이 멀어가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필요하다.

 

<질문3> 책의 실명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책임 없고, 이기적인 추악한 모습들에서 인간의 성악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성악설에 동의하나? 

–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의 희생도 자신의 만족 때문이라 생각한다.

– 충돌과 피해가 생기다 보니 악하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교육하는 것. 교육을 통하지 않고 착한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 원래는 성선설을 믿고 남을 도와주고 봉사하면 살았는데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게 나의 만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에 성악설이라 생각한다.

– 주어진 재화가 한정적이어서 이기적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생각해도 나의 추위를 위해서 나무 죽여서 불 피우는 모든 면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증거다.

– 의사의 아내는 볼 수 있어서 인간성을 유지했던 거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악해진다고 생각한다. 

VS

– 인간은 악한 게 아니라 자유로운 동물이다. 최초 인류는 자유롭게 살아왔는데, 법과 제도가 생기면서 거기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 악하다는 평가를 한다고 생각한다.

– 인간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결혼한 부부에서, 남편이 평생 부인에게 사랑을 줘서 부인은 행복하게 죽는다. 그런데 남편은 항상 다른 여자와 외도를 했다. 과연 남자는 악한 건가 선한 건가?

– 사람은 악하다 선하다 나눌 수 없다. 이기적인 존재도 아니고 합리적인 존재다. 사람을 찌르고 뺏는 것도 나에게 이득이 되기에 그러는 거다. 여기에서 교육의 역할이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게 하는 것.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 살면서 옷 다 벗어도 뭐라 안 한다. 사회에서 하면 통념상 미친놈이 된다.

 

<글쓴이의 눈>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눈먼 자들의 도시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려고 한 모든 주제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하는 한 마디에 압축됐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는 책을 읽으며 마치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사회 때문에, 바쁜 일상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등 ‘때문에’라는 핑계만 대며 나 또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저자가 말한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쓴이가 내린 결론은, 나부터 돌아보자 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나에 대한 ‘앎’ 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STEW 한 줄 평>

  • 나의 이름을 속여 말할 수 있지만, 나의 이름을 걸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많다. 나에 대한 믿음과 내가 행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만 나를 알릴 수 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최보승
  • 갑이라고 해서 모두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며 갑 중에서도 선한 갑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선한 갑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 김지훈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눈이라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뇌가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면 우리는 같은 걸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즉 착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 소윤지
  •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저자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나 씁쓸했던 것은, 과연 나라고 별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아니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욕구는 ‘생존’이다. 이러한 생존 욕구는 다른 모든 욕구보다 우선하며,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 달랐을 거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누구도 쉽사리 욕을 할 수가 없었다. – 이윤석
  • 얻는 삶은 행복이고, 잃는 삶은 불행일까? 많은 것을 갖게 됐지만, 갖기 전에는 행복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오세용 
  • 둘 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인간의 양면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혼란스럽게 발전하는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 고종국
  • ‘이름’=‘나’라는 묻고 따지지도 않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는 이 표현은 이름도 껍데기인 뿐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던 것인가 – 이민아
  •  이 과정 내내 저자는 사회가 지속하는 데에 치안 관리와 같은 동력과 사회의 안정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그리고 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사회는 사실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어렵사리 형성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 장준혁
  •  인간성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특성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인간성은 타고난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들은 그것을 따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는 그런 나의 이상적 믿음에 강한 반박을 가한다. – 오형진

[ 읽게 된 동기 ]


STEW 2019년 1월 도서

[ 한줄평 ]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나는 얼마나 보고 사는가를 생각하게 만든 책

 

[ 서평 ]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이다. 제목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눈먼 자 라니..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 어쩌다 티비에서 방영되는 이 영화를 보았는데,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새하얀 방 안에서 눈이 보이지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찌나 참혹한지 결말이 어찌되었든 나는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게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번째, 문장부호가 없다.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문체였다. 문장부호가 없다보니, 대화가 이루어지는 부분에 있어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담담하지만 강단있게 흘러갔다.

  두번째, 등장인물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중간에 몇번 이름을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바로 나다 라는 말로 대체하였다. 모두에게 ‘백색 질병’이 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외국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렵게 느껴지는 나로써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름’=‘나’ 라는 묻고따지지도 않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는 이 표현은 이름도 껍데기인 뿐 이라는 생각이 깃들여 있던 것인가.

  아 그나저나, 정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눈이 멀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책에서는 너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모습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여 긍정적으로 측면으로 접근해보았다. 그런데 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으로 다가와버렸다. 아! 만일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배려심 넘친다면 그들만의 체계 하에서 오손도손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경쟁은 사라지고 탈문명화가 시작되며 자급자족의 문화가 형성될 것 같은데.. 하지만 존엄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사가 아닌 서로를 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백색 실명’으로 모두가 눈이 멀어 정말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우리네 세상에서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경우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며 사는가?

 

[ 인상 깊은 문구 ]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0p
  •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오,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더니 덧붙였다, 그냥 눈먼 사람, 여기에는 그런 사람밖에 없으니까. 185p
  • 눈이 빛을 잃으면 우리를 인도하는 염치라는 마음도 잃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233p
  • 누구든 항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자를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소. 왜요, 원을 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물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지옥에서, 우리 스스로 지옥 가운데도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지금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의 굴로 찾아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275p
  • 그녀는 아주 작은 글씨들을 훑어보았다. 위로 아래로 춤을 추는 문장들, 종이 위에 기록된 말들, 실명 상태에서 기록된 말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오,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가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들이었다. 의사의 아내는 작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작가는 두 손을 잡더니 천천히 자기 입술 위로 들어올렸다. 이윽고 작가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414p
  •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삶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지도 몰라요, 삶은 우리에게 지능을 준 뒤에 자신을 우리 손에 맡겨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이 우리가 그 삶으로 이루어놓은 것이에요. 418p
  • 당신은 여전히 볼 수 있잖아. 점점 안 보이고 있어요, 설사 내가 시력을 잃지 않는다 해도, 나를 봐줄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나도 점점 눈이 멀어갈 거에요. 448p

[ 읽게 된 동기 ]


 

STEW 2019년 1월의 도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감이 강해지는 책.

[ 한줄평 ]


공포앞에서 인간과 사회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 서평 ]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던 남자를 시작으로 원인불명의 실명현상이 전염병 처럼 퍼져나간다.

처음 병동에 수용된 사람

무질서해지고 더러워 짐

점점 불어나는 인원으로 무질서해지고, 더러워지는 병동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

이 소설에서 안과의사의 아내는 어떤 역할일까? 인간의 선한 면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녀는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돕고 남편을 돕는다.

한 무리의 불량배들 질서를 무너뜨린다.

불량배들은 그 음식을 강탈하고, 물건을 요구, 여자를 요구

안과의사의 아내는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를 아무도 몰래 죽인다.

불량배 위축, 다른 이들의 사기는 올라간다.

한 여자가 병동에 불을 지르는 사건 발생. 모두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미 세상 모두도 눈이 멀어 버렸다.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 인간이 쌓아올린 사회구조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 남자가 원인불명으로 갑작스럽게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감기마냥 무서운 속도로 전염된다. 사람들은 원인도 모르는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상태가 되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 ‘백색 실명’은 인류가 공들여 쌓아올린 사회를 밀물 앞의 모래성 마냥 단숨에 붕괴시킨다.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을 크게 두개로 나눴다. 첫째로, 인간이 얼마나 잘 포장된 동물이었는지다. 사람들은 보통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서 말하곤 한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인간에게만 생명의 존엄성을 매우 크게 둔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든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이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위협과 공포앞에서 인간 역시 얼마나 나약하고,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추악함을 드러내는 동물인지를 드러낸다.

 

둘째로,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규율이 더이상 지켜질 수 없고, 의미가 없어지면서 사회는 붕괴한다. 인류는 생존의 안전망으로써 사회를 만들었고, 국가로 까지 발전했다. 이 소설에서는 ‘백색 실명’하나로 온 사회가 초토화가 된다. 사회가 우리의 생존을 절대적 보장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적 안전망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이런 위기가 왔을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오.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에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읽게 된 동기>
2019년 Stew 독서 소모임 대망의 첫 번째 책!
<한줄평>
눈먼지 모르는 눈먼 자들을 위한 팩트폭행
<서평>
읽기 시작했다. 어? 돌아가서 다시 봤다. 어? 형광펜을 들고 왔다.
이 책은 단순 소설이 아니 구나… 철학책이구나…
저자는 이 한권의 책을 통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너무 심오한 내용들이 많아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지 참 난감하다
주요 키워드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이기 (利己)
나는 개인적으로 성악설에 동의한다. 악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 의하면 사람은 결국 궁지에 몰리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의 모습이 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이 우후죽순 나오면서 국가 수뇌부들은 수용소 내에서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까 고민한다. 이 때 한 사람이 말한다.
“아직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을 내쫒아버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미 눈먼 사람이 자기네 쪽으로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사람들을 이끌고 통제한다. 결국 위 말처럼 수용소 통제는 인간의 이기에 의해 자연적으로 통제되어진다. 특히,  이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집단에 속하게 되면 집단 이기주의에 쉽게 휩쓸리는 것 같다.
*두려움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상황들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을 의심하고, 공격한다. 나는 책에 나오는 위 말이 저자가 책의 소재로 눈 먼 자들을 택한 근본적인 이유라 생각했다.
  세상이 발전하고, 가진게 많아질수록 인간의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다. 가진게 많으니 잃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려움이 혼자만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 타인에게 악영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권력
현실비판을 다루는 책에서 권력은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인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권력을 형성하는 모습이 나온다. 권력은 집단이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것처럼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가져오는지는… 너무 어려워서 Pass
*리더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내가 봐야만 하는 걸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에요”
리더의 덕목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 책의 리더인 의사의 아내는 희생형, 이타적 리더이다.  의사의 아내는 개인적인 사람들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라 계속적인 내적 갈등에 놓여있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렇다면 집단의 안위를 위한 살인은 정당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에 의해 집단의 생존이 위험하다면 살인이라는 죄는 정당방위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인간의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내용이 많다.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쓸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고민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쉽게 쓰질 못하겠다
너무 심오한 내용들이어서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마감 시간이 촉박한 부분도 인정…^^)
못다한 이야기는 오프라인 모임에서 해야겠다ㅎㅎ
<인상 깊은 문구>
사실 기쁨과 슬픔은 물과 기름과는 달리 섰일 수 있는 것이니까 – p91
P114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거야 – P190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p419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모임에서 선정되어서 읽게 된 도서.

독서모임에서의 첫 책인만큼 다 읽은 지금 애착이 간다.

 

 

[한줄평 및 별점]


★★★★☆ (4점 / 5점)

우리가 굳건하게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과연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서평]


소설책과 거의 담을 쌓고 살다가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뒤 좋은 소설을 찾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침 독서모임을 통해 이 책을 추천 받게 되어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말과 말을 반점과 온점으로 구분하면서 인물의 이름은 물론 장소에 대한 언급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 소설의 속도감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그런 간결한 표현과 빠른 전개와 호흡은 나로 하여금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어느샌가 책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다.

줄거리의 큰 줄기는 제목 그대로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통증과 이상도 없이 눈이 멀게 만드는 전염병이 도시에 퍼지기 시작한다. 단, 한 여자를 제외하고… 그 여성은 눈이 멀어버린 자신의 남편의 곁을 지키기 위해 눈 먼 사람의 행세를 하며 눈 먼 자들의 무리에 동행을 하게 됨으로써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자의 눈을 통해 시각의 부재가 도시에 끼치는 영향들을 설명해준다. 도시 전체가 실명의 늪에 빠진 상황은 말 그대로 절망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은 커녕 배정 받은 침대에 조차 남들의 도움 없이는 네 발로 땅을 기며 입구부터 하나씩 세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눈이 멀어버린 그들의 생활공간은 그들의 배변이라는 생리적 욕구에 의해 삽시간에 악취로 뒤덮히지만 눈이 멀어버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극단적인, 하지만 동시에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지만 않는 설정에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등장인물들을 등장 시키면서 작가는 인류가 지난 몇천년간 만들어왔던 질서와 사회기반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며, 그것들을 잃었을때의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덤덤하게, 하지만 동시에 여과없이 보여준다. 특히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해진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하나 둘 포기하는 모습에서 다가오는 공포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선할까 악할까?>

일반적인 사회에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의 끝은 아니다. 아직 잃은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은 불편함은 있지만 약간의 도움과 함께라면 여전히 살 날들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눈을 멀게 된 세상에서 그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먼 자들은 시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소중하고 많은 것들을 잃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분실리스트에 인간성을 포함하게 되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성”은 이 극단적인 사회에서 도전받게 된다. 인간성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특성을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인간성은 타고 난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들은 그것을 따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는 그런 나의 이상적 믿음에 강한 반박을 가한다.

서로가 힘을 합쳐도 헤쳐나가기 힘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거짓말한다. 거기에 독재자의 등장이 이어지게 되고 몇몇은 획득한 권력으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추악한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은 맥없이 서서히 죽어간다. 물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그 “악”과 맞서 싸우고 자신들의 안위를 지킨다. 나는 읽는 내내 선한 사람을 응원하며 그들이 이런 악랄한 사람로부터 승리를 쟁취하길 진심으로 원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그것이 실현이 되었을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불편한 마음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악”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는 것으로 알아냈고 어째서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그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에 대해 의문을 답하느라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들이 과연 시작부터 악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들로 하여금 “악”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무슨 계기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적인 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누가 저렇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말이다. 물론 그들은 절대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남들의 물건을 뺏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남에게서 남은 인간성마저 빼앗아 버렸고,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며 하물며 그들의 이 잘못된 행동이 옹호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두서 없이 찾아온 질문고리는 나로 하여금 인류가 진정 선과 악을 나눌 능력과 권위가 있을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은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거짓말은 나쁜 것이며 남들을 해하면 안된다고 배워오며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처음 조우한다. 그렇게 유아시절 체득된 기준은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보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대부분의 인간은 여기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어쩌면 금기시 되었던 그런 절대적인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나로서는 결론은 내릴 순 없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 유발 하라리가 본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거짓말로 인하여 진화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고 사는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고 하지 않는가?

나로 하여금 신선한 질문을 할 수 있게 해준 이 책을 계기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드려다보며 책과 사람들을 조우하며 자극받으면 언젠가는 이 질문에도 내가 답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첫 서평을 마친다.

 

 

[인상 깊었던 문구]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그들이 총질을 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어. 지금까지 한 일을 보면 저놈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저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으면 모두가 똑같이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니까.”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읽게 된 동기 ]


이전에도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제목이지만, 읽지는 않았다. STEW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올해의 첫 지정 도서라 이제서야 책을 들었다.

 

[ 한줄평 ]


당연시해왔던 사회의 안전망이 오늘 밤 붕괴되면, 내일의 나는 누구일까.

 

[ 서평 ]


이 소설의 설정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실명이 된다. 일반적인 빛이 안 보여 어둠에 잠기는 실명도 안타깝지만, 그런 실명과 다르게 흰색 빛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데, 마치 수술대에 누워 있는 상태를 연상시키는 듯 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이른바 ‘백색 질병’은 단 한 명의 인물인 의사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기상천외한 전염률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아무도 눈 먼 사람에게 도움의 손을 건낼 수가 없으며, 아무도 이 질병을 연구할 수조차 없다. 이 혼란 속에서 사회는 붕괴한다.

사실 우리를 포함해서 책을 살 형편이 되는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시한다. 오늘 밤 잠을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눈이 머는 둥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세상이 실제로 그렇게 안전하지만은 않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던 중 엔진 폭발로 비행기 창문이 깨져 사망한 승객은 이를 예상하고 비행기를 탈 때부터 초조했을까? 타이타닉호 탑승객들도, 세월호의 학생들도 그들의 세상이 갑자기 뒤집힐 것이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이화여대 교정 안에서도 트럭이 학생을 들이받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휴리스틱에 의존해 세상을 간단히 보는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대해 둔감해, 극심한 빈곤 상태가 아닌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내일에 대해 안일하다.

이러한 우리에게 작가 사라마구는 포비아(공포증) 노출치료인 홍수처럼 돌직구를 날린다. 재미 있는 우연이지만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지만) 세계2차대전의 시작을 알린 폴란드 전투는 독일어로 “백색 상황”으로 불렸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 온 소설 속 비현실적인 백색 질병에 대처하고 대처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정말 현실적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사회와 우리 사회는 겹쳐 보인다. 등장 인물들은 내 친구나 이웃일 수도, 심지어 나일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과정 내내 저자는 사회가 지속되는 데에 치안 관리와 같은 동력과 사회의 안정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그리고 사회가 붕괴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사회는 사실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 어렵사리 형성이 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이는 결국 사회 속 개개인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심 아닌 의심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 갑자기 내 방 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약탈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내가 보람을 느끼며 하는 많은 활동들은 사실 상 위태롭지 않은 사회가 있기에 그 의미가 있으며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사회가 없는 세상 속 개인은 무엇일까.

 

[ 인상 깊은 문구 ]


  •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이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이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 언제 살인이 필요할까, 그녀는 생각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한느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에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
  • 다행히도,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부정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럼 인간이고 뭐고 없는 거지
  •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 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 그러나 램프든, 개든, 사람이든, 누구도 또 어떤 것도 처음에는 왜 이 세상에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운생이에요.

[ 읽게 된 동기 ]

2019년 STEW 독서소모임 첫 선정 도서

(사실 제목을 보면 내용이 뻔할 것 같아서 혼자서는 안 읽었을 것 같다.

 

[ 한줄평 ]

시작은 뻔해보였지만 끝은 소름 돋았던 책.

 

[ 서평 ]

처음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을 때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눈이 안보이게 되고, 전염병이 퍼진다는 설정이 개연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소재 자체는 신선해서 초반에 기대를 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세밀한 묘사와 심리에 대한 설명이 왜 이 책이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인지 알게 해주었다.

1995년에는 놀라운 작품이었겠지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컨텐츠 (소설이든 드라마 또는 영화)가 넘쳐나는 요즘, 그 내용 자체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책을 점점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고,  다 읽고 나서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며, 읽고 나서는 환경에, 배경에,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며 다양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특히나 등장 인물을 의사, 의사아내, 검은 선글라스와 같이 부르기에 다르게 읽어보았다. 요즘은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왜 이렇게 소름끼쳤던 것일까.

환상적 리얼리즘이다고 보니 이 책의 설정과 설정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의 중요한 설정이자 은유는 인간이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지만 중요한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예측할 수도 없이 갑자기 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성을 잃고 타락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특정한 인물은 그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과 사람들의 변화들이 단순한 소설이 아닌 설득력있게 심지어는 소름끼치게 다가왔다. 지금의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이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과 같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게 여겨졌다. 인간의 문명은 이렇게 크게 발전했고  좀 더 신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 능력을 넓혀가고 있지만 언제든 싶게 잃을 수 있는 능력들이다. 즉, 소설에서의 상황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자동차, 비행기를 바탕으로 멀리가고 컴퓨터의 메모리를 이용하여 많은 내용을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더 작은 것을 더 멀리있는 것을 보고 기록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러한 능력들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당장 스마트폰이 없어져도, 아니 당장 인터넷만 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고 불편해하지 않는가. 그렇게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러한 기술과 능력들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기에, 더욱이 그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에, 언제든지 사라진 수 있다. 언제든지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이 상황이 걷어갈 수있다. 소설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갑작스럽게 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소름끼쳤던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서로 다른 모습들 모두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폭력적으로 자원을 획득하고, 독점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모습들 뿐만 아니라 누구 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 있어 다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 틈에서 희생하며 헌신하는 모습 또한 설득력이 있었고 그래서 소름 돋았다.  바로  인간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하는 지점이 나온다.

둘 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 인간의 양면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혼란스럽게 발전하는 이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소설의 또 다른 역할을 알게 되었다.

 

[ 인상 깊은 문구 ]

  • 자신이 아는 것을 알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며, 나아가서 그것을 표현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 처음으로 자신이 현미경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멸스럽고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읽게 된 동기 ]


따뜻한 커뮤니티 STEW, 2019년도 첫번째 지정도서

 

[ 한줄평 ]


다 잃는다면, 나는 뭐부터 얻으려 할까?

 

 

[ 서평 ]


소설책을 평소 안 읽는 편이다.

STEW에서는 지난 12월에 처음 소설책을 지정도서로 읽었는데, 2월에 연달아 소설책이다.

덕분에 소설책을 읽는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들이 눈을 먼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나약한 존재다. 그저 눈만 멀어도 아무짝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게다가 눈은 굉장히 약한 신체 기관이다. 이토록 중요한 신체 기관이 사라졌을 때, 그러니까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쉽게 잃어버릴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래서 원하는게 뭐야>

최근 겪는 고민과 소설 내용을 함께 읽었다.

사회 생활 8년 차. 이제는 한 분야 전문가가 되거나, 다방면에 축적한 지식이 많아져야 할 시기다. 헌데, 생각보다 지나온 7년이 그다지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우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느샌가 방향성을 잃었고, 어딘가로 가고는 있지만 마지못해 가는 것이다. 헌데 가고 싶은 곳도 잘 모르겠다. 그토록 걸어왔는데, 어떤 길이 좋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눈이 먼다면 이런 기분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눈이 먼 것과 다름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에게 기대하는 눈먼 자들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음식과 위생을 바란다. 길잡이는 당연히 그녀 몫이다.

과연 그녀에게 그 많은 것을 맡기는 이유는 그녀가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아등바등하며, 움직여 봤자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가 볼 땐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가?

음식을 얻지 못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행동은 의미가 없는 걸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가 의미 없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는 걸까?

 

<잃는다는 것>

어느새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게 됐다.

 

학창시절 갖고 싶었던 맥북을 가졌다. 아이패드도 가졌고, 얼마 전엔 애플워치도 샀다.

어렸을때 로망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도 샀다.

 

좋은 코트도 샀고, 가방도 샀다.

가끔 차를 빌려 타기도 하고, 피곤하면 택시를 타기도 한다.

 

도전을 하고 싶어 창업을 해보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이 궁금해 커리어도 바꿔봤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얻은 걸까?

잃은 걸까?

 

하나 둘, 내 주머니에 들어왔기에 얻은 것일까?

내 호기심과 버킷리스트, 만족감, 기대감 등이 사라졌기에 잃은 것일까?

얻는 삶은 행복이고, 잃는 삶은 불행일까?

 

얻으면서 잃고, 잃으면서 얻었다면

그건 잃은 걸까? 얻은 걸까?

 

<살아야 하나>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눈이 보이는 의사 아내일까? 눈이 보이는 아내를 가진 의사일까?

새로운 보호자와 함께한 사팔뜨기 소년일까? 젊은 미녀를 얻은 노인일까?

눈이 보이기 시작해 집을 되찾을 흥분감에 젖은 첫 번째로 눈먼 남자일까?

수십 명과 쾌락을 즐긴 깡패 두목일까?

어쩌면, 가장 먼저 죽어버린 자동차 도둑일까?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하루하루 배달되는 음식에 연명하며, 할 수 있는게 없어 그저 먹고 자며,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계속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뭘까?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무엇을 상상하든>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만나는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특히, 깡패 두목이 여자를 노예로 만드는 과정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주변에서 내가 읽는 부분을 보진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덮어버렸다.

어느새 감정을 이입한 나 역시 그들처럼 삶을 위해 이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왜 살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것을 갖게 됐지만, 갖기 전에는 행복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어떠냐는 질문을 해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눈이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눈은 행복의 기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가진 전부 중 행복의 기준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행복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도 중요치 않다.

어쩌면 살면서 기적을 만드는 것도 의미 없을지 모른다.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굴까?

 

끝나지 않는 재귀함수 속에서

기적이 아닌, 기적을 기다리며

 

눈을 뜨기 위해,

눈을 감아본다.

 

 

[ 인상 깊은 문구 ]


  •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을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이이 될 수 있어요.
  •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여기 있겠소. 동이 트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해가 알려주겠지, 해의 온기가. 날이 흐리면 어쩌려고. 어차피 이제 불과 몇 시간 안 남았소, 곧 낮이 될거요. 많은 사람들이 지쳐서 땅에 주저앉았다.
  •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 아마 인류는 눈 없이도 살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인류라고 부를 수 없을 거에요, 그 결과는 분명해요.
  •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 부호를 생략하며 직, 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읽게 된 동기 >

2019년 STEW 독서모임 첫 번째 지정도서. 몇년 전 영화화 되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 하고 예전에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 한줄평 및 별점 >

★★★★☆ (4점 / 5점)

본능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고발.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하였을 지 끊임 없이 성찰하며 읽었고, 우리 ‘눈’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서평 >

<눈먼 자들의 도시>. 몇년 전에 영화화 되면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에 진작 전자책을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STEW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선정되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작년 상반기 ‘해리포터’ 이후 간만에 보는 소설이라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운전을 하며 신호를 대기하던 중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후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이 ‘백색 질병’은 전염병이 되어 천천히 온 도시를 집어삼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인간성 상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며, 소설을 읽으며 만약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스스로 끊임 없이 되물으며 읽었다. 또한 눈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용이 이렇다 보니, 소설을 읽는 내내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우리 몸에서 단 한 부분,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저자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나 씁쓸했던 것은, 과연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아니 모든 생명체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욕구는 ‘생존’이다. 이러한 생존 욕구는 다른 모든 욕구보다 우선하며,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 달랐을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소설 곳곳에서는 인간성이 상실된, 여러가지 인물들이 등장한다. 눈이 먼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차를 훔쳐 달아난 남자, 전염을 막기 위해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폐 정신병원에 격리 조치부터 하고 보는 정치인들과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군인들, 병동 내에서 폭력을 앞세워 약탈을 일삼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리들, 일부 사람들이 마트를 점거하고 먹을거리를 독차지하자 거기에 불을 지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먹을거리가 발견되자 지하실로 몰려가다가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 등등. 소설을 읽으면서 당연히 머리로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러한 인간성 상실 외에도, ‘눈’을 잃자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모든 시스템이 붕괴한다. 소설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수 천년에 걸쳐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진다. 실명은 우리가 평소에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 가령, 집에 도착해서 불을 켜고 손을 씻는 행위 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결국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사와 그의 아내는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바로 이 말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사실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비인륜적인 장면들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 인륜적인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 범죄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며,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역시 종종 보도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를 외면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먹고 살기 바쁘니까’ 등등 변명거리는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 눈먼 도시에서는 이러한 범죄가 일상이 되고, 그 범죄가 나한테까지 미치자 사람들은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저자가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또 우리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얻는 수많은 이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수도와 전기가 있었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높은 건물에 올라갔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이 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 아내의 말처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희망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눈먼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이다. 본인 눈은 멀쩡한데도 남편을 따라 정신병동으로 들어와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끊임없이 희생을 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폭력배 두목을 가위로 찌른 장면이었다. 본인은 폭력배들에게 끌려가 인권을 유린 당해도, 같은 병동 사람들의 식량을 얻기위해 꾹 참았지만, 같은 범죄가 다른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모습을 보자 결국 외면하지 못하고 폭력배 두목을 살해한다. 이외에도 늙은 노파와 따라다니는 개를 위해 소중한 식량을 나누어주고, 남편보다 어린 아이를 먼저 챙기는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는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같은 병동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소설 내내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주인공들이 비가 오자 빗물에 샤워를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바로 이 장면이 동물과는 다른,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늙은 남자는 아무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혼자 씻고 싶어한다.

이처럼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저자는 ‘인간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모든 도시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폭력과 살인, 무질서가 난무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로 대표되는 병동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평소 눈이 보이는 것에 감사하고 그 동안 외면했던 다양한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자신의 잘못을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낡고 황폐한 건물 어딘가의 은신처에서는 도둑들이 예기치 않게 두 배, 세 배로 늘어난 식량으로 차갑긴 하지만 우유를 섞은 커피와 비스킷과 마가린을 바른 빵으로 배를 불리고 있을 텐데, 예의를 존중하려던 사람들은 그 이 분의 일이나, 삼분의 일, 심지어 그것조차도 안 되는 양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반면 저 바깥 도시에 있는 눈먼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 정말 괴로울 것이다. 길을 가다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고, 모두들 그를 보기만 하면 달아날 것이고, 그의 가족은 공황에 빠져, 그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자식의 사랑, 그런 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조직이다. 첫 번째가 먹을 것이요, 그 다음이 조직이다. 둘 다 사는 데는 불가결한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소, 모든 병실을 개방하는 거요. 그렇게 되면 보균자들이 맹인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는데. 어차피 보균자들은 조만간 눈이 멀 가능성이 아주 높소,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 모두가 감염될 판이오.”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이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군은 늘 모범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소.”

“아, 잊기 전에 하나 이야기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사격이 공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승합차 운전사 하나가 눈먼 재소자들과 함께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 눈은 아주 잘 보인다고 항변했다. 그 결과, 삼초 뒤, 죽으면 눈도 먼다는 보건부의 이야기가 증명이 되고 말았다.”

“오후 네 시였다. 그러나 사실 기계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시계는 일에서 십이까지 움직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일 뿐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버스 사고에 대해서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사실 그 사고는 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나 일어난 사고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에는 바로 그런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꾸로 사고 버스의 운전사가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곳에 있으면 악당들의 불의의 행동으로 그의 정직한 마음에 적개심이 불타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동시에 이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금번 격리 조치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나머지 구성원들과의 연대에 기초한 것임을 명심하고, 정직한 시민들로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눈에 그런 표정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례인데, 사실 이런 표현은 근거가 없다. 눈에는, 엄격히 말해서 눈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알을 뽑아냈을 때도, 그것은 그저 아무런 활력이 없는 두 개의 둥그런 물체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시각적 웅변과 수사를 전달하는 것은 눈꺼풀, 속눈썹, 눈썹이다. 사람들은 보통 눈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요,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우리는 기생충처럼 사모님 피를 빨게 될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을 때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어.”

“그러나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아래층의 노파는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기가 그런 감상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떠났다. 거의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이곳을 떠나버렸다. 노파는 기뻐해야 마땅했다. 이제 닭과 토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는 기뻐해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예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 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만일 그 눈마저 언젠가 소멸해 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 우리와 인류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끊어지고 말겠죠, 그렇게 되면 마치 허공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영원히, 모두 눈이 먼 채로.”

“어쨌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대를 이으며 계속되어 온 일이다.”

“불행이 모두에게 닥쳐도, 늘 남들보다 더 심하게 그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읽게 된 동기]

20대 초반에 읽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워낙 인기있는 소설이기도 해서 책을 빌리자마자 냉큼 다 읽어버렸다. 눈이 멀어버리는 내용이라 소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줄 평]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과 이기심을 적나라게 드러내 불편했지만 반성하게 만들었다.

 

[서평]

눈에 상이 맺힌다고 해서  본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눈이라는 기관으로 보는 것은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뇌가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하면 우리는 같은걸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즉 착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는 경고 메시지

나는 평소에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일회용품을 마구 사용하고 버리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대량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상황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공간을 눈요기하러 보러 가면서도 이를 위해 깎이고 버려진 자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정작 내가 환경 보전을 위해 큰 일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조금이라도 덜 훼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금 노력을 할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초기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수용된 정신병원 시설이 수용자들의 배설물,  시체, 먹고 남은 그릇과 음식물 등으로 오염되가는 모습이 인간이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오르면서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농업의 발달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지구의 파괴 속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편리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만든 도시는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 지구가 생겨나면서 이뤄좋은 생태계가 파괴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훼손과 오염을 보지 않고 외면한 채 멋지게 구조화된 도시를 동경하며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건 우리가 눈이 먼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이 멀어버렸다

소설 속의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정작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더듬거리고 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본능에 충실해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 성적 욕망을 채우고, 불편한 뱃속을 비운다. 우리는 본능적인 모습을 잘 차려진 음식으로 둔갑시키고,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적이거나 숨겨진 공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고, 배설물을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즉시 잊어버린다. 그리곤 우아하고 품위있게 행동한다. 더럽고 추악한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짓밟고 착취를 하지만 이를 정당화 시키려는 구실을 찾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양심마저 눈이 멀어버렸다

내가 환경 오염을 불러 일으키는 행동을 하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양심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안과 의사의 아내는 우리의 마음 속 양심과 같다. 인간의 본능에 의한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듯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양심은 봐야할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면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의사의 아내는 이내 눈이 멀어버린다. 양심이 눈이 멀어버린다면 과연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제대로 보고있을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환경 말고 또 내가 보고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게 또 뭐가 있을까.

 

[인상 깊은 문구]

나도 데려가야 할 거에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어쩌면 눈이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하야 해요.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나는 보고 싶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 가지고 눈을 뜰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아가씨가 이제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이 아리는 거지요.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건가.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몬 사람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