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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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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소감.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을, 그것도 남자가 그렇게 섬세한 사랑할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왜 나는 사랑을 하면 여자만 상처받을 거란 이상한 피해망상에 사로 잡혀 있었던 걸까? 사랑하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했는데 결국 남자는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버렸다’ 라는 클리셰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마 한국식의 섹스에 관한 잘못된 교육을 받은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받다 보면, 사랑은 섹스가 전부가 아닌데, 다른 모든 요소를 제외하고 그 문제에만 사로잡혀버리는 잘못된 두려움이 심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모든 남자들이 알랭 드 보통 같은 사랑을 하진 않을 터이지만, 꽤나 가슴 저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 것을 알게 되어서 한 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사랑에 대한 나름의 고찰

클로이는 이별을 말하며, 너는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별을 말해서 너무 미안하다며 펑펑 운다. 클로이처럼, 이별을 고할 자격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랑을 주는 상대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같이 하면서도 혼자 하는 것 같다. 사랑에 빠졌을 땐,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랑이 식은 후엔, 자신을 위해 결국 이별을 고하지 않는가.

서로 그렇게 사랑했는데, 결국 이별하는 둘을 보며, 클로이가 경험한 작가와의 사랑은 어땠을 지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정말 헤어질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클로이와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책을 읽어도 그 소감은 달랐다는 말을 한다. 사랑 또한 같지 않을까? 서로 같이 사랑을 했지만, 경험은 둘 다 달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더더욱 혼자만의 경험이란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잔인하다. 영문도 모르고 이별 통보를 받는 상대방에게도 그럴 터이지만, 이별 통보를 하는 사람 또한 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벌을 주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이처럼 상대방이 아플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길을 택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는 엄청 절절한 사랑을 했지만, 그 시간은 1년 남짓이었을 뿐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엔 너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가? 사랑으로서 받을 수 있는 아픔을 최대한 감수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더라도 지속하기가 힘든데, 요즘에는 너무 쉽게 사랑을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애매한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울까?

다시 얘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지만, 누군가를 사귀게 될 때 그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확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 걸까?

며칠 전 친한 언니와 카톡을 하다가 언니가 소개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로 마음에 들어하는 느낌이라며 좋아하길래 응원하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서로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연애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목적이 분명한 만남인데, 사귀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의 명확한 기준이 있고 잘 숙지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관계를 시작하고 끝맺음에 있어 아픔과 실수흫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무리와 기억에 남았던 점

연애 소설은 재밌기 마련인데, 전혀 재밌음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작가 또한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읽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남의 사랑 이야기다. 알지도 못한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뒤섞인 찬양을 어떻게 하품 없이 읽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꼬아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의 멋이라 생각한 내 허영심 때문인 것 같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아메바 얘기였다. 저자는 클로이를 완전히 이해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지만,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그녀의 인격에 대해 아메바 같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다) 비유할 수 있다.

사랑은 어떤 느낌일까? 사랑에 관한 예술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 작품들 또한 항상 상상 가능한 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바라는 예측 불가의 형태로 자신이 사랑을 할 때의 느낌을 구불구불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창의적이었다.

작가가 한 사랑의 방식이 정석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게 뭘까? 라는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한 줄 평: 읽으면 도움되는 남의 사랑얘기

★★★☆☆

사랑은 어렵다. 모든 인간관계가 어렵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는 특히 더 그러하다. 연인은 가장. 가까운 옆에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종종 제일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되곤 한다.  만약에 주위 환경적인 요소가 첨가가 되면 온전히 둘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실망도 하고, 때로는 불안해 하는 등의 다양한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주인공인 ‘나’와 ‘클로리’의 사랑의 일상을 봐도 그렇다. 989.727분의 1의 확률로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클로이와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 회의주의, 테러리즘 등 다양한 생각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생활에 철학적인 색채를 겸해서 표현해낸 ‘나’의 연애 이야기에 모순되는 감정이 많지만 오히려 생각할 부분들이 많아서 공감이 된다.

사랑의 크기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도록 그녀를 사랑했다.’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있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각각 자신의 마음속에 크기가 다른 감정을 키워내고 있었다. 서로 다른 크기이기 때문에 시소에 비유하자면 다른 한쪽이 계속 짓눌리고 그 과정이 오래 기간 길어지다보면 상대방이 힘들어 미리 떠나버리게 된다.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난다. 그러다가 무심코 정신 차려 보면 나는 상대에게 나를 사랑해줘 라고 요구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더 많은 사랑을 하는게 과연 잘못 된것일까…

나는 나를 떠나게 되어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이 줄수 없음을 아파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쳐하지 않지 않고 받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 말이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후회없이, 마음껏 사랑할 것이다. 

성숙한 사랑에 대해서

클로리’와 헤어진후,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기 혐오 및 ‘클로이’에 대한 부정인 생각으로 헤어진 현실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자기가 사랑한 여자에 대한 존재가치를 최대한 부정하지만…클로이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말이다. 

성숙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것을 받을 만한 때에 주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또 자신에게 속하고 또 거기서 끝내야 할 감정과 나타난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킨 사람에게 즉시 표현해야 할 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최근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다. 후회하지 않을려고 최선을 다한 사랑을 하였지만, 책을 읽고 나니 성숙하지 못한 사랑이 된거 같은 느낌에 마음이 아프다.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현실적인 고민에 자유로웠다면 라는 가정이 계속 생각난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그 순간이 생각나기에 힘들기도 하였다. 책의 ‘나’가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것 같아서 여러번 읽고 싶다. 다양한 고민을 하게 되면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 가 싶다. 

새로운 시작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로리’와 헤어진 후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인 된 ‘나’는 다시 ‘레이철’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기 시작 했다. 더 이상 상처 받는것에 두려워서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아픔에도 사랑이 주는 가치가 더 크기때문에 다시 한번 기다리게 된다. 

인상 깊은 문구

  •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덜 복잡하기 때문일것이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 나한테 하지 못할 말이 있다면, 당신 혼자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당신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무비판적이고 너그러운 감정, 조건이 없고 경계도 설정하지 않고, 구두까지도 모두 사모하는 사랑,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랑.
  • 사랑에 고통이 없을 수 없고, 사랑이 지혜롭지 못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 나는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크게 이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 이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망간은 내가 한떄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꺠워주는 것이엇다. 

<2020年 2月 서평>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날짜:2020-02-29

한줄평: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연애 한 번을 한 것이다.

인용구 와 내 생각:

  1.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 30p
    • 이 책에 나오는 연애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연애와 다를게 없다는 느낌에 들어서게 해준 문장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느낌을 많이 받은적이 있을 것이다.
  2.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줄 줄 아는 사람이다.” -33
    • 우리는 흔히 밀당을 잘 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바로 이 말 아닌가? 보통도 밀당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란다.
  3. “두 사람은 똑 같은 기대를 안고 사귀어야 해요. 서로 똑같이 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말이에요. 한쪽은 그저 한번 즐기고 싶어하고 다른 쪽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면 안 된다는 거죠, 거기서 모든 괴로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37
    • 그렇다. 서로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다르다면 그 연애는 괴로운 연애가 된다. 요즘에는 전체적으로 연애가 좀 빠르게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인간관계의 무게가 낮아진 것일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 상대방과 내 마음을 신중히 공유하고 만나는 것은 사귀기전 가장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4.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39
    • 읽으면서 정말 웃겼던 문장이고, 공감됐던 문장이다. 근데 정말로 왜 그럴까?
  5. “그때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키스가 시작 되었다.” – 51p
    • 자신에게는 언제나 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가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아름다운 키스다.
  6.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59p
    • 실제로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몇 번 보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대방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사랑을 얻으니 그 사람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 나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치사하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사랑을 원한거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게 아닌가?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7.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이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70
    •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도 공감하는 생각이다. 내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면 멋있어 보이고, 함께 있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역경이와도 잘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8. “서양 사상의 오래되고 우울한 전통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보답받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상호 간의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면 소진되어 버린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이런 관점을 따르면 연인들은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그런 갈망을 없애고자 하는 바람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이 글을 읽고 조금 우울해졌다. ‘사랑의 실체는 이런 것 일까?…’ 라고 생각할 뻔 했지만 무조건 믿지는 않기로 했다. 이 절에 나오는 사랑은 원함, 집착, 갈망에 가까운 사랑인 것 같다. 연애 중반 까지 있는 그런 감정을 말하는게 아닐까. 그런 사랑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랑도 있다.
  9. “함께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 함께 싫어하는 것을 욕하는 친밀함에 비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136
  10.  “라이트모티프들이 만들어낸 친밀성의 언어는 클로이와 내가 둘이서 하나의 세계 비슷한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11.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아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윤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12.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중략)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마음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새겨두고 있는 사람의 품에서, 시야에서 사라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발견한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정체성도 없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주변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13.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남들이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간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격은 우리 주변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 OO해.” “아 나는 정말 OO하구나.”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중요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 에게 항상 좋은 말을 해주자.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그렇게 되어갈 확률이 더 커질것이다. 나쁜 말은 웬만하면 하지 말자, 그러면 그 사람이 나빠지고 나에게도 나쁜 말을 할 것이다.
  14.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 “누가 나를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잘생길 가능성이 높다.”
  15. “몇 년 전 클로이는 런던 대학교의 학자와 한동안 사귀었다. 분석철학자였던 그 학자는 책을 다섯 권이나 썻고 많은 학술지에 기고를 했는데, 그녀에게 하나의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녀의 정신적 능력이 완전히 낙제점이라는 느낌이었다.  …(중략) 결국 그녀는 철학자가 믿는 딱 그만큼 멍청한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 우리는 우리의 주변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하나의 행동을 이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배웠다.
  16. “나는 앨리스가 말을 하고, 꺼진 촛불을 켜고,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고, 얼굴에 흘러내린 금발 한 가닥을 손으로 빗어넘기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제대로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젖는다. 다른 사랑의 이야기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사랑을 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하지 못 함을 아쉬워하는 주인공,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인가?
    •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바람이 불때마다 이리저리 휘청이는 것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또 바뀌어 버릴 테니까. 강한 바람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하자.
  17. “나는 상상 속에서만 클로이를 배반했던 것이 아니다, 종종 따분하기도 했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한동안 나는 클로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을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녀는 내 삶의 일상적인,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되어버렸다.
  18.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이성에 따른 삶을 옹호하고 이성의 이름으로 욕망에 의한 삶을 비난해왔다면, 그것은 이성이 지속성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철학자는 낭만주의자와는 달리 자신의 관심의 방향을 클로이에서 앨리스로, 거기서 다시 클로이로 미친 듯이 바꾸지 않는다. 안정된 이유들이 그들의 선택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에서도 충실하고 지속적일 것이며, 그들의 감정은 날아가는 화살의 탄도처럼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19. “클로이를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부분적으로는 내 행복의 원인이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연인들은 단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랑의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너무 사랑해서 힘들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 “내가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 것 때문에 너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나는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화가났다는 더 폭넓은 [그러나 말로 할 수 없는] 메시지를 상징한다.
    • 살다보면 말을 할 수 없는것들이 이렇게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구나. 정말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도 이유는 있었다. 겉으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숨은 의미로는 합리적인 것들.
  21. 클로이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내 상처는 표현하기가 무척 힘든 것이었다. 열쇠하고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그 문제를 꺼내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다. 결국 나의 분노는 지하로 밀어넣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미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22. 낭만적 테러리스트들은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중략) 테러리스트는 결국 불편한 현실, 사랑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213
  23.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 – 223
    • 사랑을 받기위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사랑을 주기위해 사랑을 주는 것이 도덕적인 사랑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24.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략) 그러나 내가 너의 사랑 없이는 살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다오.
    • 사랑을 얻기위한 마지막 강력한 몸부림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라 그런지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한 남자가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나 약 1년 간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너무나도 흔하고, 어떻게 보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단순한 “공감” 때문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 사랑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평생 되풀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비이성적이면서도 인간에게 상당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언제나 탐구의 대상이 된다.

운명적 만남

클로이와의 첫만남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이는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는 첫 회가 가장 재미있는 것, 그리고 친구의 연애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어떻게 만났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흥미로운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남자는 클로이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늘어놓으며,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더해, 그녀를 만날 확률을 수식을 동원해 계산까지 하며 “운명적 만남”에 대한 집착도 보인다. 사실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 원래부터 사랑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말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이성적 판단에 공감이 되었던 이유는 나 역시 평범한 만남에 “운명”이라는 틀을 씌워 특별함을 강조하고자 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감이 주는 사랑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첫만남과 같은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책에 이런 부분이 있다. 남자와 클로이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위선을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며, 그들만의 무엇인가를 공유하며 즐거워한다. 이는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된 이후의 안정적인 연애에서 비롯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내밀한 모습, 거짓이 가미되지 않은 날 것의 생각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것은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클로이의 고향을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알던 그녀와의 대립에 당황하는 모습이 공감이 되었다. 상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나와의 관계 이전에, 그리고 이후에도 유지될 다른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결정적인 계기는 클로이의 바람이었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의 관계는 이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사랑의 고갈이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헤어짐 이후, 그가 보인 최초의 반응은 자기혐오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자기 방어적 태도로 상대방을 증오하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공감이 많이 되었던 부분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모두 그가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잊는다는 것은 상대와 관련된 것을 생각하거나 체험하더라도, 무감각해지는 순간일 것이다.

특별한 사랑의 의미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남과 짧은 시간동안 가족보다도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 그러나 그 관계는 아주 쉽게 깨질 수 있다. 남자가 클로이와 있던 중에 과거의 여자친구를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것과 같이, 오히려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연애”라는 것은 평범하고 흔하게 전개될지라도, “사랑”이라는 것은 전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누구보다도 평범한 서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서도 성격이 다르고,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매일 상대방을 사랑하는 정도에 다른 점수를 매기는 것처럼 말이다.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부분도, 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부분도 모두 현실감 있게 다가와서 그런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에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있는데, 화자의 철학적인 사색과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줄 평 ★★★★☆

평범한 연애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본 특별한 사랑의 의미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저번 달 지정 도서였던 ‘인생 수업’에 이어 이번 달 도서까지 평소에 읽지 않는 책들이라 좋았다. 어쩌면 나에게 두 책은 비슷한 생각이 들게 되는 책들이다. 특히, 이번 책은 제목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맞게 주인공인 ‘나’와 ‘클로이’의 사랑의 일생? 을 보여준다. 나는 언어능력이 썩 뛰어나지 못하다. 여자친구와 작은 말다툼을 하게 되어도 내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와 실제 나의 사랑 이야기를 같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 내가 예전에 그리고 지금 그리고 나중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저자는 절묘하게 표현해놓았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우리가 운명이라 이야기하는 것을 재미난 발상으로 수치로 계산하여 보여주는 식이다.

누구에게나 생각만 하면 포근해지는 그런 추억들이 있을 거다. ‘나’처럼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그 모든 모습들이 미화되어 한편의 짧은 영상으로 기억에 남아있을 거다. 이런 기억들이 ‘나’와 ‘클로이’의 모습들을 보며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철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부분은 특히 결혼, 연애에 관한 이야기에서 두드러진다. 혹자는 연애에 수많은 조건들이 있고 그런 조건이 우연히 맞아 연애를 하게 된다고 해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있고 그 관계가 성장해 결혼을 하는 데에도 조건들이 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하고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상대편의 부모님의 종교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한다면 그 다른 것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서로만 정말 좋다면 원룸에서 같이 살아도 나는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사랑의 종착지는 결혼일까?라는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결혼에 회의적이다. 아름답던 사랑이 결혼을 함으로써 종말이 오는 것 같다. 평생 함께하는 사람은 상대방인데 그밖에 많은 ‘조건’들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연인들의 관계는 틀어지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못하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일종의 자물쇠를 채워둔 샘이다. 나는 그런 모습들이 사랑에 자신이 없는 모습들 같다.

사랑은 어렵다. 저자가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뚫고 운명으로 만남을 시작하더라도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수치로 관계를 이어나기 힘들다. 나도 몇 번의 사랑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예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갈망한다. 저자가 설명해 놓았듯 사랑은 은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주고 반대로 둘 중에 한 명이 관심을 잃어가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면 어렵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 속에 해답이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쉽지만 어렵다. 그냥 마시멜로 하자!

인상 깊은 문구

  •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가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는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리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니”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바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이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 일단 한쪽이 고나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구애와 마찬가지로 떠나느 일도 과묵이라는 담요 밑에서 고통을 겪는다.
  •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오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 마음은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물러나 환희, 사랑, 웃음이 가득했던 묵가적 시절에 대한 환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벌어져서 나는 클로이가 없는 현재로 거세게 내동댕이 쳐지곤 했다.

현대인은 누구나 작은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작은 우주가 온 우주인 양 행동하는데, 사건에 따라 크게 좌절하기도, 크게 자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이란 우주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 커리어 이야기는 온라인에 정말 많이 적지만, 내 사생활 중 적지 않는 것이 있다. 정말 친한 친구나 가족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중 사랑은 정말 개인적인 것이기에 온라인에 글을 많이 쓰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 주제가 온통 그것인 만큼 조금은 이야기 하는 게 맞겠다.

나는 연애를 많이 한 편은 아니다. 워낙 이리저리 재는 타입이라 시도하고 실수를 경험하는 것보다, 시도하기 전 실수를 거르는 것을 선호했다. 아마 유년기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였을 거다. 덩치가 작았을 뿐, 내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적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자신 있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된다.

그럼에도 몇 차례 연애를 경험했다. 이리저리 재지 않았다면 적지 않은 연애를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연애가 가장 좋으니 큰 결핍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타인의 연애에 큰 관심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것인데, 내가 무슨 상관인가?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주인공

STEW 멤버 중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이번 도서도 그 친구 덕에 선택됐다. 원래는 사피엔스가 선택됐는데, 재투표를 하더니만 이 책이 됐다. 그때 재투표를 막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남자 주인공 1인칭 시점 때문인지 책을 다 읽은 지금, 주인공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 클로이만 기억난다. 역시 난 남의 연애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읽는 내내 내가 왜 이걸 읽어야 하나, 내가 왜 이걸 궁금해해야 하나, 그래서 이들의 결과는 어찌 됐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주인공은 찌질함을 보여준다. 사실 연애에 찌질함이 어디 있겠나. 사랑하면 좀 더 바라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적절한 선은 모두가 다르기에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연애를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은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른 것을, 경험이 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이 타인을 견디는데 익숙해진다는 말로 이해된다. 아니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맞는 사람을 고르던가.

주인공은 연인 클로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사이사이 나오는 철학 이야기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인듯 싶다. 그런데 난 이게 거슬렸다. 쓸데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읽는 내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를 외쳤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왜 안 하고 빙빙 돌리기만 했을까?

사실, 찌질한 건 저자가 아닐까?

타인의 이야기, 취향, 비즈니스

얼마 전 한 친구가 내게 링크를 보내왔다. ‘대중 공감성’이 없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링크였다. 부들부들했지만, 크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넷플릭스도 보지 않고, TV 역시 보지 않는다. 무려 스마트TV가 있지만, 주로 축구를 보는 용도다. 아, 유튜브는 가끔 본다.

책에서는 클래식이며, 가요며, 책이며, 그림이며 취향에 관해 논한다. 글쎄, 나는 그런 취향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할 자신이 있다. 나는 늘 웃고, 내 주변 역시 웃는다. 재미라는 게 그들이 말하는 ‘취향’을 의미한다면, 크게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생산성 소프트웨어를 말하라면 꽤 긴 시간 말할 수 있다. 취향이 꼭 오프라인에 있어야 하나?

이런 취향 때문인지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이야기엔 도무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이런 취향을 이해해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되겠다. 하지만 이런 비즈니스는 B2C에 해당한다. 기업에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 파는 B2B는 그런 감성은 오히려 적이다. 기업 담당자를 만났는데, 사랑 타령을 할 시간이 어딨겠나?

교양, 현실과 그 어디쯤

매달 책을 읽고 서평을 쓴 건 무려 10년째다. 모임에서 매달 서평을 쓴 건 2년째, 그리고 올해는 매달 만남을 갖게 된 첫 번째 해다. 물론 이 책 모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기됐지만, 어쨌든 우리 멤버들은 만남을 준비하고 책을 읽고, 썼다.

지정 도서를 정하고, 모두가 그 책을 읽기에 전부터 책 선정에 관한 반발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는 월 1권 이상을 읽는 모임이지, 월 1권을 읽는 모임이 아니다. 이것도 읽고, 읽고 싶은 것도 읽어라’고 답했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답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지난달 인생수업을 읽으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과연 교양이 이렇게 끌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채운다고 채워지는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야 파티에 갈 수 있다면, 그 파티는 내게 어울릴까?

평범하다 못해 재미없는 허구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 귀한 주말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가 싶었다. 교양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된, 중요한 책이 되겠다.

읽게 된 동기


STEW 독서소모임 2020년 2월 도서

한줄평 ★☆☆☆☆


자극적이지 않은 아침드라마의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

인상 깊은 문구


  •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그 꿈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만나게 될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지 못할까?
  •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과했을 때 나는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따.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은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 걱정 마, 나는 너한테 화나지 않았어. 나는 네가 그 끔직한 것을 입고 있어서 기뻐. 만일 네가 나 하라는 대로 했다면 나는 네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 어떻게 나의 인생으로 걸어들어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이런 구두에 끌릴 수 있을까?
  • 의학사를 보면 자신이 달걀 프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의 사례가 나온다. 그가 언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찢어질까봐’ 아니면 ‘노른자가 흘러나올까봐’ 어디에도 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내 어떤 의사가 미망에 사로잡힌 환자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늘 토스트 한 조각 가지고 다니라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이 환자는 늘 토스트 한 조각을 가지고 다녔으며, 대체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황당한 문장이라 적음)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쫓는 일은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왜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나는 심플하다.

이제는 심플함의 대명사가 된 영화 <기생충>의 조여정(나는 이정도로 심플하진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성격 덕에 정말 낙천적이다. 때론 너무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주변 친구는 답답해하지만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좋았다. 그랬기에 이 심플함을 굳이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좋다고 이렇게만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남과 교류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복잡한(혹은 성숙한) 사고 과정을 거치는 사람과 만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수년 전, 나와 타인의 차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혹은 다른 생각 구조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느냐고 이해심 깊기로 유명한 친구에게 물어봤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겐 뜻밖에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소설책 읽기였다.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다 현실세계에서 모티브가 된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작가들이 묘사해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 구조 또한 볼 수 있다고 조언해줬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언이 정말 들어맞았음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분명 진부한데… 왜 신선하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은 주인공 “나”와 그의 연인 “클로이”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다가, 이내 시들어가는 둘의 사랑. 내용 자체만 보면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다. TV 프로그램으로 상영된다면 작가의 귀가 간지러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게 축약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주인공 “나”는 정말 입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과를 졸업해서인지 몰라도, 그의 페르소나인 “나”는 복잡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극히 일상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물음까지 던진다. 그런 시점으로 사랑을 경험해보니 진부하다고 느낄 틈이 없어졌던 것 같다.

대충 봐도 철학가 관상을 가진 글쓴이, 알랭 드 보통

물론 읽으면서 이런 “나”가 피곤하게 다가온 적도 있었다. ‘아니, 상대가 나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있지. 무슨 마르크스주의니 뭐니 하면서 왜 그 상대의 자질을 의심하지?’ 등과 같은 생각 말이다. 또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철학자의 이름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 나아가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플한 사고를 가진 나이기에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가끔씩은 불편하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나”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나에게 다가온 게 아녔을까?’ 하는 순간을 몇 번 겪을 수 있었다.

적당히 복잡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 걸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와 그 책의 주인공 “나”가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분명 비슷한 사건을 읽고 경험하는데도 말이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인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입체성 덕분에 동일한 것을 목격했을 때에 느끼는 바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어? 뭔가 이상한데?’ 싶었지만 쉬이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는 말로써 풀어냈고, 독자인 나에게 그 감정을 이해시켰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적당한 입체감도 필요할 것 같다는 당위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이 만들어낸 주인공 레벨의 입체성까지는 잘 모르겠다. 반 오십여 년을 무념무상으로 살아온 심플의 대명사 나한테는 그 생각이 과도하다 느낄 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항상 심플하게, 세상 걱정 없이 살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난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타인과 교감할 때에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들뜬 희망감에 기대가 된다.

결국 공부인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는 어떤 것이 나라는 자아에 입체감을 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의 조언대로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속마음을 들춰보는 것이 전부이려나. 아니면 이 참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처럼, 혹은 알랭 드 보통처럼 철학책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읽으신 지식인 분께서는 나에게 입체감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준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나는 미국 시트콤을 좋아한다. 작년 종영한 빅뱅이론, 이번 여름 팬들을 위해 특별한 에피소드로 돌아온다고 하는 프렌즈, 캐나다의 한인편의점 이야기를 다룬 김씨네 편의점 등등 많은 미국 시트콤을 보는 편이다. 한번 보고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를 꾸준히 듣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보는 편이다. 집중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 보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정도로는 스토리를 이해하며 보는 편이다.

[How I met your mother] 테드 모즈비

최근에 다시 본 미국 시트콤 중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How I met your mother)]라는 작품이 있다.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떠도는 테드 모즈비라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재밌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서 책의 주인공이 테드 모즈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랑에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지속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소설이 쓰여진 방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하는 것이었다. 책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상상하고 메꾸어버리면 넘어간다. 드라마 속 테드 모즈비도 비슷하다. 로빈이라는 캐릭터와 첫 만남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이후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입장이 아니라 본인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여 파혼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하며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편해하게도 만든다. 물론 시트콤이기에 갈수록 과장이 포함된 것은 알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랑에 대한 매우 이기적인 자세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나의 이런 이야기에 대해 드라마나 소설의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철학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속의 이야기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단순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호르몬이나 페로몬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단순히 어느 날 마주친 인상 때문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성적인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그저 본능에 맡기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하다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할 수 는 있다. 하지만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낭만을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고 그 사람과 한번더 만나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단어로 자신의 쓰레기 같은 행위를 철학적으로 두둔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위선적이다. 이미 금이 간 그릇을 들고 사랑을 고민하는 것 조차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시멜로한다”라는 말로 이를 멋지게 대체한 것을 보이지만 이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처음 만났던 그 순간 관계에 커다란 금이 갔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후 찾아온 이별 또한 이미 예정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인은 처음 상대의 호의를 자신의 이기적인 철학으로 포장한 주인공 본인에 있다.

테드 모즈비에 대한 나의 생각도 소설 속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테드 모즈비가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처럼 나타내지만 나는 갈수록 로맨틱보다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맨틱하다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데만 집중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감정을 전하는 것은 어렵다는 나의 평소 지론에 비춰보면 테드 모즈비는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던지고 만 있는 것 같아서 였다. 특히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감정을 던지는 것이 아닌 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전략의 영역이다.

이쯤 읽으면 사랑은 단순한 것이라는 처음의 말과 사랑은 감정을 전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모순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 사랑을 상대방과 교류하는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가지가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상대와 사랑을 하는 것은 교류이므로 그에 따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읽기 힘들었다. 단락단락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며 애써 어렵게 표현하려는 문단 문단이 힘들었고 그 조차도 내용이 잘 전달안되게 번역되어 어렵지도 않은 내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 읽으면서 몇번이나 쉬어야 했다. 거기다 주제 자체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라 더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읽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했다. 한번쯤 자신이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한줄평 ★★

이기적인 사람의 이기적인 사랑에 대한 변명

얼마전 SNS에서 ‘한국에서 가장 과대평가 되는 것’ 두 가지로 연애와 외국 여행을 뽑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두 가지만이 인간으로써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고 온 나라가 소리치는 느낌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는 이 글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연애는 행복하고 특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고,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쓰러운 눈빛이 돌아간다. 20대 초반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 행복해 보이는 연애를 하길 바랐다. 멋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썸을 타는 또는 연애를 하는 방송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고, 특별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연애는 일상이었다. 매번 특별할 수도, 매일같이 행복할 수도 없었다. 또한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에 집중한 연애의 끝은 불행했다. 이제는 일상에 스며드는 연애가 주는 소소한 행복을 중요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평범한 한 커플의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시작을 다루고 있다. 극소수의 구구절절하고 특별한 연애가 아니라 대부분이 경험할 수 있는 연애담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철학을 담아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연애란 과대평가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소소하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상적인 것으로 사고가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막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 소홀해지는 사건을 마르크스 주의로 설명한다. 사람의 모순성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이는 연인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 인 듯하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믿음이 생기면 오히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우울해 한다. 하지만 이 모순성을 깨닫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인생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데 굳이 나를 싫어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클로이의 구두로 인해 말다툼이 발생하는 부분이였다. 클로이의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주인공은 클로이에게 영수증은 받아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그녀는 본인의 이상형이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결함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보통 친구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라면서. 이건 나도 연애를 하면서 수도 없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만약 그냥 지인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을 남자친구에게는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듯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기독교적인 사랑은 없는 것 같다. 사랑의 과정에는 상대를 자신의 이상형에 더 가까이 끌어들이려는 시도들의 연속이 존재하며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사소한 모습들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바꾸고 싶은 면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다만 이 때 서로의 이상형이 되어 가는 과정이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맞는다면 건강하고 발전적인 연애일 것이고 아니라면 다툼이 계속되는 불안정한 연애일 것 같다.

이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공감했던 내용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기억에 남는게 많이 없다. 아직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 탓인 것 같다. 앞으로 두 세 번은 더 읽어야 연애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인 생각들을 좀 더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두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철학을 담아 표현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본인의 첫 작품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썼다는게 굉장히 대단하다. 읽으면서 알랭드 보통이 정말 천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모든 일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가끔씩은 이런 철학적인 생각들이 인생에 대해 더욱 많은 사고를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냥 본인의 일상에 충실하고 현 순간을 즐기며 사는게 최고 인 것 같다.

서평


 알랭 드 보통.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에, 감히 현 21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라 말하겠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20대 초반, 한창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유치한 감상과 진지한 고민을 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책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 공감돼서 흥분의 도가니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 공감하는 감정보다는 딱딱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는 내 모습은 나이를 먹어서일까?

마지막 역자 후기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책은 저자가 25살에 쓴 초기작이라는 것이다.

최근 두 권의 책을 1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같은 글 같은 장면에 대해, 내 삶의 흐름과 함께 그 느낌 또한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당연한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10년의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깨닫는 것은 참 값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 생각에 대해 달라진 내 태도에 조금 놀랐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성숙이지만, 부정적으로 말하면 때가 많이 붙었다.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우연이라는 상황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끼던 때가 언제였을까? 계획적인 삶을 강요받는 시대이다. 유치원 때부터 학부모들은 계획적으로 자식의 삶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은 모든 것에 계획적으로 다가가는 게 성공의 원칙으로 생각한다. 불행한 것은 감정 또한 계획하게 된 것이 아닐까?

10대, 20대 자그만 우연에도 행복해하며 운명론적 사고를 했던 소소한 순간들이 있다. 저자 또한 본인 20대의 우연과 운명적인 사랑을 기초로 이 책을 썼다.

나를 돌아보며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아직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순간들에 우연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굉장히 감상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낭만적 실존주의나 금욕주의 같은 이성적인 해결책으로 사랑에 접근하지 않기에 행복과 고통의 조화 속에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마르크스주의

참 공감되는 장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가벼운 멜로 소설에 딱딱한 철학적 내용을 잘 조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의 25살 현학적인 태도가 오히려 사랑을 더 심오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읽기 어려우면서도 더 오기를 가지고 읽는 것 같다.

저자는 (부족한)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소름 끼치는 문장이다. 이기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나도 그랬고 내 주변에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싸운 커플들이 많다.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 없던, 또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부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같은 것이고, 이 다름이 맞기에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 평온한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유치한 생각으로 트집을 잡고 이상한 생각을 할까. 이 행복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불안에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 이 기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는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 사이에 균형에 달려있다고 한다.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내가 상대방을 통해 어떤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 않는다

 너무 슬픈 문장이다. 이 책에서는 결국 클로이가 주인공 친구 윌과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는 너무 잔인했다.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사랑하면서 다른 남자를 선택했다. 주인공 또한 책 중간쯤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다.

사랑하면서 상대방을 알아간다. 그 앎을 통해 더 상대방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앎의 욕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향하는 욕심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지 않을까 멋대로 판단해본다. 인간의 앎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일까.

몇 번 이런 연애 상담을 해 본 적이 있다. 지금 여친, 남친을 사랑하는데 다른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난 냉정하게도 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 마음이 결국에는 너와 연인에게 상처를 주고 좋지 않은 결말을 가지고 올 거라고. 뭐 나도 그렇게 차인 적이 있기도 하다.

어렵다

참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20대 초반에는 쉽게 읽으며 쉽게 공감했지만, 지금은 너무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다.

‘사랑하기 가장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은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 20대 후반이 되면 연애를 할 때 많은 것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변에서 가르친다.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평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따짐이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이 외에도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지만, 글로 표현하기에는 끝이 없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 또 나에게 많은 교훈과 숙제를 주었다.

한줄평 ★★★★


아름다운 멜로디, 기분 좋은 리듬, 생각을 만드는 가사가 자아내는 한 편의 인생 노래

인상 깊은 문구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 p39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 p48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 p52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 p59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 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p70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 p110

사랑은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회에 의해서 구성되고 규정된다 – p111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 p122

그녀에 대한 나의 지식은 나 자신의 과거를 통해서 여과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 p154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61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p161

연인들은 단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랑의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 – p186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 p191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p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