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된 동기]

책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는 수필을 읽는다.

[한 줄 평]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서평]

수필을 읽다.

회사에 팀원이 한 명 줄면서 일이 많아졌다. 매일 나는 피곤했고, 아침 커피와 함께하던 독서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여러 책을 뒤적 거려도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게다가 회사에선 정해진 시간 보다 더 일찍 다니라는 말도 나오니 아침의 여유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꼭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던 관성이 줄어들 때가 있다. 굴러가던 공이 마찰에 의해 운동 에너지가 줄어들 듯 다양한 요인들로 신경을 빼앗기고, 관심을 빼앗기면서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기도 한다. 작년에도 한 창 열심히 읽다가 두 세달 그냥 건너뛰었던 것 같다.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의무감에 펼져 보아도 잠깐일 뿐이었다.

나는 책에서 멀어진다 싶을 때 잠시 손을 놓는다. 그러다 다시 독서를 시작할 때 수필을 집어든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시도하다 보니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됐다. 본인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쓴 수필은 작가와 한 층 가까운 상태에서 책을 만나는 것 같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하면 더할나위 없이 반갑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 숨어있었네.’ 싶다. 나는 라디오에서 사연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도 비슷한 맥락같다. 쉽게 접하기 쉬운 상황이 많고 쉽게 공감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일들로 이뤄지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위주로 듣고 생각을 하면된다. 책에 잠시 흥미를 잃은 것은 감정을 다른 곳에 많이 소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정보만 가득한 책일지라도 곧바로 쓰임이 있거나 알던 지식 중에 사소하지만 독특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즐겁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치여 지내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나눌 감정이 부족해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이번 수필을 읽으면서 이런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가 조금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삶의 정상을 향해 가던 의사의 내리막

“의사 선생님께서 곧 오실거에요”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주인공은 신경외과 의사였다.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이었기에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생물학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복수전공을 했고, 신경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MRI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의학도가 되었다.  학비가 부족해 비어있는 기숙사 방에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 살기도 했다.

그는 여러 병원에서 러브콜이 올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레지턴트 생활을 마치고 교수가 되어 그 동안 갈고 닭은 실력을 펼쳐야할 타이밍이었다. 서른 여섯살에 폐암에 걸릴 확률은 0.0012% 밖에 되지 않지만 그는 폐암에 걸려 내리막을 걸어야 했다.

그동안 그는 의사로서의 본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하며 지식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올바른, 즉 지혜로운 판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깊이 고민할 줄 아는 의사였다. 또한 뇌를 다루는 의사였기 때문에 뇌수술 자체가 대체로 환자와 그 가족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수 있고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오게 된다.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위 질문의 요점은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요새 무기력함이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시체놀이 하기가 바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이러려고 일하는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도 주어진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생각해 열심히 하다가 보면 힘들어 지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수필을 읽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유한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정말 멋있었다.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살아있는 순간에는 살아있음을 느끼겠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대하는 멋진 태도가 아닐까 싶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까지도 펜을 놓지 않고 글을 써내려간 작가에게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다시 수필로 돌아가서

수필이 주는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한 번으로는 족하지 않아서 비슷한 장르의 책을 한 권 더 읽었다. 나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을 때까지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

 

[감명깊은 문장]

어느날 밤 루시와 나는 내 아파트의 소파에 앉아 심전도 파형을 공부했다. 그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치명적인 부정맥을 정확히 짚어냈다. 갑작스럽게 뭉클해진 루시는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연습용 심전도가 누구의 것이든, 그 환자는 살아남지 못할 운명이었다.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인상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 관계적 측면, 즉 ‘인간의 관계성’ 이다.

루시와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울었다.  CT 촬영 결과는 여전히 컴퓨터 화면에 떠 있었고, 의사로서의 내 정체성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암은 여러 내장 기관들에 침투해 있었고 진단은 명확했다. 병실은 조용했다. 루시는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앗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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