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라는 평범치 않은 책을 읽게 된 것은 엑스맨 때문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엑스맨 영화를 재밌게 보았고 그 영향으로 대학을 온 뒤에도 엑스맨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았다. 그 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보면 파리 평화회의라는 것이 나온다. 영화 속 파리 회의에서는 베트남인과 미국인이 함께 만나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왜 저런 회의가 발생했고 그 결과가 어떤 결과를 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네이버에 파리 평화회의를 검색하게 되었고 그를 통해 헨리 키신저라는 미국의 현실주의적 외교관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거기까지만 인식하고 넘어갔었다.

그러다 작년 8월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서 추천 리스트와 관련한 어느 신문의 사설에서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를 추천하는 글을 보았다. 세계 리더들의 필독서라고 표현한 것에 혹해서 그날 바로 저녁에 책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 나서 훈련소에 들어가서 책을 한번 읽었다. 당시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날만큼 대충 읽었고 모르는 부분은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책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고 언젠가 한번 제대로 마주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제대로 된 마주침을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나에게 강제한 것인데…. 의도와 달리 다른 멤버들에게 고통을 시간을 준 것 같아 죄송하다.

[서평]

단 하나의 옳은 질서란 없다.

책의 앞 부분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위와 같을 것 같다. 각 문화권이 가진 세계질서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유지되었는가를 읽다 보면 그들의 맥락 속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질서가 무조건 틀리지도 맞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슬람이 말하는 단 하나의 종교 문화권 아래의 세계질서도 어떻게 생각하면 통일된 문화를 통해 전쟁의 가능성을 영구히 없앤다는 인식 자체는 잘 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이 주창하는 베스트팔렌의 체제는 겉보기엔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은 매우 평화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실상은 균형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익을 위한 판단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수도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권의 질서는 조공질서로 겉보기에는 매우 굴욕적이지만 실제 적용은 실용적인 가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국가 간 갈등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도의 포용주의적 세계질서는 모든 것을 융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인데 너무 유약하며 전체로 확장하더라도 질서가 되기 보다는 여전히 갈등을 방관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결국 올바른 세계질서란 없다. 당장에 알맞은 질서가 있을 순 있으나 영원한 것은 아니며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겉과 속은 다른 모순적인 미국

책은 뒤로 갈수록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 각 국과의 외교를 설명한다. 헨리 키신저라는 사람 자체가 지독한 현실주의자로 유명하고 그에 걸맞게도 그는 이상주의의 이상을 낮추어 본다. 그러면서도 현실주의자로서 이상주의적 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어떤 사람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바른 명분을 가지고 와서 국익을 위한 판단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외교활동은 근본적으로 모순적이다.

앞서 세계의 다양한 질서를 논의했지만 결론은 어떤 세계질서도 하나만 추구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를 해야한다는 사실 하나만이 절대적이라는 그의 결론은 수긍이 가면서도 너무 냉철하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이끌어 미국의 장병과 자원을 아꼈다. 또, 키신저 본인도 이 업적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종전 후 베트남은 다시 일어난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 나는 이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 안한다. 개인적으로 국익을 우선한다는 개념도 이해하지만 그와 동등하고 소중한 것이 이 지구 어디의 국가라도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세계 기구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에 맞춰보면 미국은 유엔을 만들었고 유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지만 동시에 가장 왜곡되게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중 무역전쟁과 미소 항공우주기술 전쟁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은 과거 핵미사일을 완성을 시도한 소련을 대상으로 나토를 발족시켰고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 달 착륙을 목표로 미국에서는 생소한 국가주도 기술 발전을 시도했다. 이 과정을 직접 참여하고 계획하기도 한 헨리 키신저의 설명을 읽다보니 자동적으로 현재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압도적인 기술격차를 보여주어 상대를 굴복시켜 세계 제일의 국가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모습은 너무나도 닮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미소간 항공 우주 기술 경쟁은 지도자는 가장 진보적인 인사인 존 f 케네디에게서 시작되었고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으며 시작되었고 현재 미소 무역전쟁은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통령에 해당할 도날드 트럼프에게서 시작되었고 전세계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 내 여론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겠다.  책 속 키신저의 생각을 적용해보면 이렇게 양상이 비슷한 미국의 행위가 전혀 다른 지지를 받는 이유는 트럼프의 행위는 국익을 위한다는 현실주의적 관점에는 맞지만 이상주의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부족한 것이다.

이란과 미국, 끝없는 갈등

이란과 미국의 갈등은 매우 흥미롭다. 미국은 이슬람 국가를 무조건 배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항상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란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미국은 이란이 이슬람 테러를 지원하고 있고 이를 통해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혐의를 받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체제 속에 잘 편입되어 우방국의 하나로 인식된다. 이 또한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올바른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이 그럴 듯 했더라도 실제 미국이 이슬람세계에 한 짓은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질서와는 매우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상호 인정을 기본으로 하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세계경찰을 자처했지만 리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 후 그들이 시도한 질서 유지책은 미국적 질서의 일방적인 강요였다.

보통 이란을 악의 축으로 보는 것이 세계적 여론이지만 이러한 맥락을 보다보면 이란이 정말 나쁜 놈일까하는 의문이 생기게 하는 대목이다.

동아시아 현대 질서의 축, 미국

동아시아 현대 질서를 논하면서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태평양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현대에 와서 미국은 동아시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보통 한미일 동맹의 축과 북중러 동맹의 축이 대립하는 형태를 보이는 동아시아 질서에서 미국은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이를 놓지 않으려 한다. 북핵문제에서 그러했고 중국과의 수교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 과정 속 행위자는 주로 미국과 중국이다. 거기에 더해 세계질서를 논하며 일본의 역사와 외교전략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현대의 논의에서는 미국과 중국으로 귀결된다. 특히 대한민국의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키신저가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현재 미국 모두가 이렇게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키신저라는 사람이 미국의 외교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생각할 때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어렵지만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분명 어렵고 읽기에 가벼운 책을 아니다. 나도 2번이나 읽어서야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절반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절반만 이해한 책의 의미가 너무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직후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쓴 ‘거래의 기술’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와 같이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는 미국이 바라보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혼란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한가운데서 날뛰고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국민으로써 미국을 이해하고 나아가 예전 조공외교에서 중국을 상대로 소를 희생해 대를 얻었듯이 미국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책을 읽고 서평까지 써주시느라 고생하신 독서소모임 멤버들 감사하고 미안합니다.ㅜㅜ 다음 번엔 꼭 가벼운 책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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