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동기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다가 전광판에 지나가는 기사 중 김영란 대법관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가서 사게 되었다.

한줄평

사법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법관이라도 답할 수 없다.

서평

정의란 무엇인가?

이는 STEW의 2019년 마지막 지정도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과 정의’라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리고 덮는 순간까지 머리 속에 머무르는 의문이다. 누가 정의이고 누가 부정인가? 사법의 판단은 언제나 옳은 것이고 그는 영원한 것인가? 등, 저자이자 전 대법관인 김영란 작가는 대법원의 유명한 판례(그 중 일부는 본인도 참여하였다)를 중심으로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인 것 같지만 답이 아닌 글들을 읽으며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

사법부의 판단이, 대법원의 판단이 정의인가? (사적 단체와 헌법의 적용범위)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작가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각 판례를 분석하면서 대법원의 판단의 논리와 자신 혹은 소수의견의 논리를 모두 분석한다. 이 책의 재미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판결을 접한다. 그 판결은 보통 무혐의, 집행유예, 기소 처분, 불구속 기소 등 결론만으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판결과 정의’는 그 판례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그 판례에 사용된 법리, 채택되지 못한 법리를 분석하면서 과연 사법부의 판결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예를 들어 3번째 목차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종중에 여성회원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재판을 보면, 예전 판결에서는 종중에 여성회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적 자치의 영역이므로 허용이 되었다. 하지만 05년 대법원의 판결은 이는 잘못된 것으로 위헌적이다고 판단하였다. 두 사건의 핵심 쟁점은 결국에는 사적 자치와 평등 가치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두 재판의 결론은 달랐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과거의 논리와 현대의 논리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현재 판결이라는 정의가 바뀌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대의 논리의 충돌, 혹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논리의 충돌을 설명해 주는 것을 통해 기사 한 줄로 표현되던 판결을 독자들이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법이란 올바른가? (성인지 감수성에 관하여)

법은 정의를 가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존재한다. 하지만 법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한때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는 법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도 분명 존재했고 판결에도 반영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작가 본인은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지만, 법학자 누스바움의 말을 빌려 해당 사안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편성을 기본적인 원리로 하는 법의 해석에서도 그 보편성 떄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개별적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감수성은 늘 필요하다. 누스바움 식으로 말하자면 ‘비대칭성에 대한감수성’이다.”

법은 평등한가? (갑의 책임)

법은 분명 평등하다. 누구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누구나 정당한 판결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법은 평등한가?

저자는 이러한 법의 특성을 가르켜 형식적 평등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과 결부될 때 법의 판단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을 보호하면서 형식적 평등을 통해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이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때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KIKO 옵션계약상품과 같이, 혹은 최근 DLS 투자상품의 실패와 같이 일반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일어나도 매번 계약서의 내용이나 충분치 않은 고지를 이유로 법의 심판이 약하게 이루어진 사례는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법의 판단의 기반이 되는 법이 정말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판사는 과연 사회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하는가? (직업법관제)

대한민국의 판사는 현재까지 직업법관제를 따른다. 영미계 판사가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하다가 임용되는 것과 다르게 직업법관제 하에서는 처음부터 판사이고 검사로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제한적이다. 물론 이는 법관 개인의 의견보다 보다 엄정한 법리 해석에 집중하게 하여 보다 동등하고 평등한 판결을 받게 한다는 장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법 실용주의자 포스너가 말했듯이 직업법관제 하에서 법관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현실을 고려하기 보다는 법리적 해석에만 치중하여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판결이 많아진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직업법관제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의 기둥이 되어줄까 아니면 사회에 맞지 않는 이상주의적인 판단의 근원이 될까?

물론 최근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로 바뀌며 앞으로는 판사를 영미식으로 변호사로서 오랜 기간 활동한 후에 법관이 되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 최소 10여년 간 현 체제가 유지된다고 할 때 과연 직업법관제는 사회에 알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법의 정치화

얼마전 패스트트랙을 막으려는 야당의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를 당했고 최근 해당 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주목받았다. 그와 별개로 책은 사법의 정치화에 대해 다룬다. 판결은 본래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당파성을 지니고 주관적이다. 이를 작가는 사법의 정치화라고 칭하고 이에 대하여 김영란 작가는 이를 받이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판사도 사람이기에 완전히 중립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법은 정치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를 극복하기위해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럴 수 없다고 하여 포기하는 것과 지속적으로 방법을 찾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의는 어렵다. 하지만 계속 찾아가고 이야기하여야 한다.

판결과 정의에 정의는 없었다, 판결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올바름이라는 것에 대한 인류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공정가치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관해 개인의 생각을 나누고 진정한 의미의 공정, 정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달 지정도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와 관련한 토론이 기대된다. 정의에 관한 유명한 강의를 통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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