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시작할 때 즈음이나 읽고 난 지금이나 웬일인지 마음이 차갑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살아봤자 별 거 없더라.’, ‘구구절절 다 어디서 들었던 말들이다.’, ‘나도 이런 생각쯤은 많이 하고 산다.’ 등 책의 내용마다 근원모를 불평을 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려고 하던 사람인데 내가 왜 이렇게 차가워졌을까, 나도 참 부정적인 사람이구나.’하는 반성도 했다.

책을 다 읽고 서평 준비를 하다가 책을 읽는 내내 툴툴거리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았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도 과거의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않았던 일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주는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책에서 좋은 얘기를 해줘도 아닌 경우도 있다며 부정적인 사례들을 찾아내서 들이밀었다. 소모적이었고, 책에서 말하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자세였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고 그에 따르는 생각들을 적어나가며 읽었다. 책은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공감했던 부분들도 저마다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서평을 작성하면서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통으로 글을 쓰기보다 깊이 공감했던 내용이나 구절을 나열하고 그에 따른 생각들을 정리해서 적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p.31.

저자는 저 질문에 대답을 하면 자신의 삶에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물건을 훔치겠다고 대답한다면 충분히 갖지 못한 일을 원망한다고 해석해도 좋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시절 세상이 모범적이라고 여기는 기준을 따라 살아왔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습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삶을 너무 촘촘하게 쪼개어 살았고 규칙을 따르며 살았다. 세상의 규범을 익히기 전의 나는 무엇을 원할까?

책을 처음 읽을 때는 화가 좀 나 있었는지 독설을 하거나 화를 표출하고 싶다고 답을 했다. 책을 다 읽기 전 질문을 다시 보면서는 아무 책임감이나 부담감 없이 무위도식을 하고 싶다고 썼다. 내일의 생활을 따지지 않고 막 살아보고 싶다는 뜻이다.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위의 두 대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만 응답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에 훌륭한 질문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어차피 판이 주어져도 하지 못할 성격이다. 이후 책에서 언급되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마주할 줄 알아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찾아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보다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 안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특별히 누군가를 발견한다고 해서 인간관계나 책임감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p.69.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털어놓긴 조금 부끄럽지만 20대 중반까지의 나는 내내 누군가 내 삶을 구원해주기를 바라며 살았다. 대상은 학교나 학원 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친구 혹은 선배, 사랑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 조금만 잘해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싶으면 상대방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나름대로 충분한 사랑을 주셨지만 기질 상 예민했던 나는 좀 더 민감한 케어가 필요한 어린이였다. 가정 안에서 비롯된 결핍을 느끼며 다른 누군가 온전한 사랑을 주기를, 전적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줄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다. 허나 서로 간에 균형이 깨진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깨진 관계에서 다시 상처를 받고 내 안으로 점점 파고들었다.

백마 탄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인관계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친구 사이든 연인 사이든 둘이 서로 온전하게 서서 걸어야 건강한 관계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기대있는 모양으로는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 물론 힘들 때는 기대도 좋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지속적인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바로 서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동안 같은 자리에서 다시 넘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어제의 내가 반드시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크나큰 자유가 있습니다. 그때 더 이상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샤워를 하며 어제의 때를 씻어 내지만, 어제 느낀 감정의 찌꺼기는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는다면, 상대방과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과거의 문을 닫지 말고 가끔씩 그 문을 들여다보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p.141.

글을 시작하며 최근 기분이 다운되었다고 썼다. 현재의 기분을 좋지 않게 한 원인은 모두 과거에 있었다. 누군가가 한 행동이나 말을 곱씹으며 다시 상처받는 일을 자처했다. 내면의 공책 안에 기분이 나빴던 일들을 적어두고 틈날 때마다 들춰보며 다시 상처받았다. 얼마 전 개인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면서도 깨달았다.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사람의 기준을 마음에 새기고 무려 5년 가까이 매여 있었다.

물론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과거의 상처를 자꾸 들춰보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비롯된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고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글쓰기를 하면서 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정도는 좋지만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해 현재를 갉아먹게 해서는 곤란하다. 타고난 성격 상 현재보다 과거에 머무는 나는 더욱 신경 써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평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던 부분을 책에서 짚어주니 좀 정리가 된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샤워를 하며 묵은 때는 씻어내면서 감정의 찌꺼기는 왜 벗겨내지 않느냐는 비유가 적절했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나쁘다.’거나 ‘자고 일어나니까 어제 당한 일이 더 기분이 나쁘다.’ 등의 푸념들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씨름하는 가장 큰 역설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 그림자가 드리운 면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리의 ‘어두운 면’을 내쫓아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은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반대되는 힘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p.249.

불행의 시작은 신 혹은 천사가 되고자 하는 헛된 욕망에서 온다. 인터넷에 이름을 치기만 하면 나오는 촉망받는 종교인이 있다. 그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는 것만으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이다. 그는 글 안에서 늘 자신을 하찮게 표현한다. 겉으로만 봐서는 완벽한 사람이지만 좀 더 깊이 알고 지내며 그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정도였다.

후배에게 막말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하고, 숨도 쉬지 못하게 휘어잡는다. 곁으로 와서 조언을 해도 될 것을 부러 옥상까지 올라가 후배에게 소리를 친다.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주기 위한 처사이다. 함께 지내는 이들은 어지간한 정신으로 버티지 못한다. 심리적으로 쇠약해져 남모르게 치료를 받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가 하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보고 또 하는 행동을 오래 보면서 깨달았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이었다. 늘 흠결 없이 깨끗하기를 바랐다. 세심하게 성찰을 하고 자신을 갈고 닦을 줄만 알았다. 선이라 여기는 가치와 반대되는 것들에 지나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나머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하지 못했다.

흠결 없이 깨끗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 신 혹은 성인(聖人)이나 천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한 결벽에 대한 집착이 건강하게 발현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을 갉아먹고 공동체와 이웃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그들이 갈망하는 무결함도 신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독교의 교리로는 그렇다.

뜬금없이 특정 종교의 교리를 가지고 왔지만 귀기울여볼 법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 만화에는 꼭 악당과 천사가 등장했다. 악당은 늘 나쁘기만 하고 천사는 착하기만 해서 선한 편이 악을 물리칠 때 환호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만화 프로그램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세상에는 전적으로 선한 사람도, 전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이다. 선악이 뚜렷한 어린이용 만화영화보다는 인물의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해내는 영화가 좋다. 자신의 완벽함만을 늘어놓는 이보다 부족한 점이 좀 있는 사람이 좋다. 좀 극단적이지만 술 한 잔을 마셔도 ‘죽음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해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죽음’을 생각해봤다는 건 적어도 자신의 어둠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테다.

마무리

저자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전제하고 글을 이어나간다. 우주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신일 것이고 책의 내용으로 보아 기독교의 신일 것이다. 한때 믿는 종교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를 고수하는 나로서는 무조건 공감만 하며 읽을 수는 없었다. 책의 내용에서 앞뒤가 안 맞거나, 읽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엇나간 판단을 할 위험이 있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덱스가 가득 찼다. 찾아놓은 내용들을 곁에 두고 계속 보면 나의 삶이 또다시 불안과 부정으로 가득 찰 때 이전보다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데 필요한 책이다.

한줄 평 및 별점 ★★★★☆

‘냉소적인 인간’이 될 작정을 하고 읽다가 내용 발췌만 잔뜩 한 책

인상 깊은 구절

우리들 각자에게는 간디부터 히틀러까지 모든 인물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모든 인간에게는 부정적인 모습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p.26.

인위적이고 멋진 모습들로 진정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자체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 사람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p.34.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대개 ‘보상’에 불과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부를 잘하고, 할머니께 웃음을 보이고, 손을 잘 씻으면 ‘사랑받을’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것이 조건적인 가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사랑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사랑이 그토록 많은 것들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p.49.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이미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거나 자신을 학대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실수를 했다면 당신은 “걱정 마. 누구나 다 그러는데 뭐.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스스로를 쓸모없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오히려 남에게 더 관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p.50.

우리가 밤하늘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경험하는 것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p.139.

당신이 하는 행동 중에서, 어떤 것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어떤 것이 절망을 배달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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